- 국내 여행기/서울(성북구 이외 지역)

구 화랑대역 철도공원 - 서울 마지막 간이역의 변신

Lesley 2017. 12. 18. 00:01


  지난 주말에 구 화랑대역('전철 6호선 화랑대역' 말고 '기차 경춘선 화랑대역')에 다녀왔다.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가 몇 년 전 경춘선이 전철화되면서 폐역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바로 그 화랑대역이다.  전에도 여기에 가 본 적이 있다.  ☞ 화랑대역 -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http://blog.daum.net/jha7791/15790829)

  이번에 다시 간 이유는 몇 달 전에 읽은 기사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화랑대역을 중심으로 철도공원을 꾸미고 있는데 11월 중 완공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다시 가보리라 벼르고 있다가, 화랑대역에서 멀지 않은 전에 살던 동네에 갈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다녀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전철 6호선 화랑대역에서 하차해서 4번 출구로 나가는 게 가장 편리하다.

  전에는 전철 화랑대역에서 구 화랑대역까지 가는 길에 아무 것도 없어서, 나 같은 방향치가 찾아가려면 애로사항이 활짝 꽃피었더랬다. ㅠ.ㅠ  다행히 지금은 화랑대역 4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기찻길이 쭉 뻗어있어서, 그 기찻길을 따라 느긋하게 걸으면 된다.



6호선 화랑대역 4번 출구로 나가면

보도 옆으로 기찻길이 쭉~~  뻗어있습죠~~ 



저 신호등 건너편이 철도공원올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녀석은 '혀기 1' 호...! (이름이 상당히 독특함. ^^)

  일본에서 수입한 열차인데, 1951년부터 1973년까지 수인선(수원~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에서 운행했던 협궤열차라고 한다.  협궤열차라니 너비가 다른 열차보다 좁은 거야 짐작할 수 있었지만, 뜻밖에도 높이마저 낮아서 마을버스보다도 천장이 낮다.  아마 옛날 사람들 신장에 맞춰 만든 열차라 그런 것 같다.  나조차 안에 들어가 돌아다니면서 머리 부딪힐까 신경 쓰일 정도였으니, 어지간하면 키가 170센티미터는 넘어가는 요즘 성인 남자들이 입석으로 탑승한다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 할 것이다. (협궤열차성 목 디스크... ^^;;)  



고전미(?)를 뿜어내는 혀기 1호...!



  수인선 협궤열차 하니 생각나는 사연이 있다.

  다만, 이쪽은 수원에서 인천이 아니라 수원에서 서울로 다니던 열차에서 피어난 이야기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이 정년퇴직을 앞둔 할머니 선생님이셨다.  연세가 연세다 보니 이 선생님 이야기 중에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나룻배 타고 한강 건너던 이야기, 우물에서 물 길어 빨래하던 이야기 등등)가 종종 나왔더랬다.  그 중 하나가 선생님의 고등학교 동창 중 1호로 결혼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 동창은 수원에 살고 있었는데 열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했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통학하다니, 이 부분부터 우리 세대로서는 얼른 상상이 안 되는 일임.)

  그런데 한 젊은 장교가 같은 시간에 열차를 타고 통근하면서, 얼굴 예쁘고 문학소녀 분위기까지 내뿜는 그 여학생을 눈여겨 봤다는 것이다.  물론 보수적인 시대인데다가 상대방이 대학생도 아니고 솜털 보송보송한 고등학생이었으니, 감히 말을 붙이거나 하지는 못하고 아침마다 열차 안에서 몰래 보기만 했다고 한다. (60년대 한국영화 분위기로구만...)

  다만, 교복을 보고 명문고로 소문난 학교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그 정보를 밑천(?) 삼아 수소문해서 여학생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다. (혹시 정보과 장교였나... ^^;;)  그리고 결혼하라며 선 자리를 마련한 부모님께 그 여학생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결혼할 상대보다 부모님께 미리 이야기하는 시절이라니...! @.@)


  그리고 여학생이 고등학교 졸업한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렸다...! (젊은이, 3년 간의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이루었구려...)

  여학생이 3학년이 되자마자 장교네 집에서 여학생네 집에 청혼을 넣은 것이다.  그 여학생이 대학 진학을 하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 고3이 되기가 무섭게 미리 찜(!)하고 나선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출신이라도 여자는 대학 진학을 안 하고 결혼하는 일이 흔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여학생 부모님이 남자의 됨됨이와 집안을 마음에 들어하기도 해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졸업하고 겨우 한 달 만이라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학생 전원(!)이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같은 반 전원이 참석한 유일무이한 결혼식이었다고...)  이 이야기는 결혼식에 참석한 동창들이 아직 익숙치 않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와서 얼굴은 도깨비 같았고, 역시 익숙치 않은 하이힐을 신어서 절뚝거리며 걷는 둥 가관이었다는, 뭔가 풋풋한(?) 후일담으로 끝을 맺었다. ^^



열차는 사랑을 싣고...!

옛날에 이런 열차 안에서

한 장교가 매의 눈으로 여학생을 바라봤다는...



여학생은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줄 모르고

창 밖의 풍경에만 시선을 줬겠지요... ^^



  협궤열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노면전차가 있다.

  대한제국 시절이었던 1899년에 운행을 시작했던 전차라고 한다.  원래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 중이었다는데, 지난 달에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아직 정비작업이 안 끝나서 출입금지줄을 쳐놓았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전차 운전사 아저씨...! ^^

 


  그리고 체코에서 수입한 트램도 있는데...

  이쪽은 좀 뜬금없다.  그저 예스러운 열차라서 여기에 둔 걸까?  아니면 과거 우리나라 열차 중 체코의 트램과 같은 기종이 있었던 걸까?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모르겠다.  나중에 철도공원이 제대로 자리잡게 되면 설명판을 붙여놓으려나...



체코 프라하에서 불과 2년 전까지 운행했다는 트램.

(참 멀리서 오셨구랴...)



체코 트램 뒷편의 풍경을 보면 역시 겨울은 겨울...

(이 날 최고기온조차 영하 2도였음.)



  자, 이제 구 화랑대 역사 근처로 좀 더 접근해 보면...

  여기부터는 아직 철도공원이 꾸며지기 전인 몇 년 전에, 구 화랑대역에 처음 가봤을 때의 풍경이 펼쳐진다.

 


역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수십 년간 수많은 이들의 사연을 담고 달렸던

철길만은 그대로...



앗, 반가운 花...! ^0^



  몇 년 전에도 갔을 때도 잘못 인쇄된 化를 손글씨로 花로 바꿔놓은 걸 봤더랬다.

  이미 폐역이 되었으니 제대로 수정하지 못 하고 옛모습 그대로인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어쩐지, 보는 이의 추억을 위해 누군가가 일부러 그대로 남겨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괜히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 



왼쪽은 성북역과 청량리역, 오른쪽은 춘천역.

많은 대학생들이 MT 떠나면서 봤을 표지판.



은하철도 999의 C62 기관차를 닮은

미카 5-56호 기관차의 모습.



  일본에서 1952년에 수입하여 경부선(서울~부산)에서 운행했던 증기 기관차로, 1967년 디젤 기관차를 쓰면서 은퇴했다고 한다. 

  저 위에서 소개한 혀기 1호도 증기 기관차지만, 협궤열차라서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미니미니하게 생겼다.  그런데 이 녀석은 좀 더 우람하게 생긴 게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속 기관차의 사촌처럼 생겼다. ^^


 

늘씬하고 날렵하게 생긴 요즘 전기 기관차에 비하면

터미네이터처럼 울퉁불퉁 근육질 생김새임. 



미카 5-56호 뒤에 달린 건 객차가 아닌 가건물. ^^



  처음엔는 이게 뭔가 했는데,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무슨 전시회나 바자회 등의 행사장으로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참석자들이 행사 참석도 하고 옛날 느낌 물씬 흐르는 기차도 구경하면 일석이조일 터...!



생각보다 긴 가건물 내부.

겉보기에는 토막(?) 나 보이던데, 안은 이어져 있음.

 


언밸런스한 지붕이 특징인 구 화랑대역 역사.



  철도공원을 조성한다고 해서 혹시 구 화랑대역 역사에 진한 페인트라도 덕지덕지 발라놓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몇 년 전에 접했던 고즈넉하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마침 얼마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역사 앞 철길에 쌓여있어서, 간이역 특유의 아련한 느낌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고얀 것들을 보았나...!

너희가 너희 죄를 알렸다...!



  이왕 사진 찍으러 왔으니 멋진 사진 찍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그래도 공중도덕 좀 지킵시다...!

  분명히 역사 문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떡하니 붙여놓았다.  그런데도 여자친구(혹은 모델)에게 안에 들어가 문 열고 포즈 취하게 하고 셔터 눌러대는 남자는 무엇이며, 또 시킨다고 아무 생각없이 히히 웃으며 포즈 취하고 있는 여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 진짜 왜들 이러셔~~~!)

  그래도 자기네 잘못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나 보다.  내가 사진 찍으려고 다가서자 둘 다 나를 의식하는 표정으로 괜히 먼 산을 쳐다봤다. -.-;;



떠나기 전에

아쉬운 마음을 담아 마지막으로 찰칵...!





화랑대역 -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http://blog.daum.net/jha7791/15790829)

전철 중앙선 / 경기도 양평의 간이역 석불역(http://blog.daum.net/jha7791/15791141)

서울의 운치있는 철도, 항동철길 / 푸른수목원(http://blog.daum.net/jha7791/1579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