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초순에 헌릉(獻陵)과 인릉(仁陵)에 다녀왔다.
두 능을 합쳐서 헌인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다.
전에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선정릉에 대해 소개하면서, 서울 변두리에 있는 다른 조선시대 왕릉과는 다르게 번화가 한복판에 있다고 쓴 적이 있다. ☞ 선정릉(宣靖陵) - 서울 강남 한복판의 조선왕릉(http://blog.daum.net/jha7791/15791304) 공교롭게도 헌인릉도 강남구 못지 않게 고층빌딩과 차가 잔뜩 있는 서초구에 있다. 그래서 헌인릉 주변이 선정릉 주변과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했는데, 이게 웬걸... 내곡동이란 동네가 서초구는 서초구인데 경기도와 인접한 지역이라, 내가 생각한 그런 번화가가 아니다. 능 주위에 꽃을 키우고 파는 비닐하우스도 여러 채 보인다.
◎ 인릉
헌인릉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앞에 인릉이 있다.
인릉은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와 그 왕비인 순원왕후가 합장되어 있는 곳이다. 순조란 왕은 조선왕조의 임금 중에서 존재감이 희미한 편이다. 11살의 나이에 즉위한데다가 한 나라의 왕으로서 강단있는 성격도 못 되어서 장인 김조순에게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선 후기에 여러가지 폐단을 낳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물론 세도정치의 원인과 책임을 순전히 순조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애초에 어린 순조가 자신의 의지로 김조순의 딸과 혼인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장인과 그 일족에게 휘둘린 것을 덮어놓고 관대하게 봐줄 수만은 없다.
한적한 느낌의 인릉 모습.
향로(향과 축문을 들고 걷는 길)와 어로(왕이 걷는 길).
향로와 어로라는 용어가 생소하다.
서울 시내에 있는 다른 조선왕조 능에 갔을 때는 '신도' 와 '어도' 라고 설명해놓았던데, 여기는 개성적(?) 용어를 쓰고 있다. 하긴 엎어치나 메치나다. 신을 모시는 길이라 신도라고 부르나, 신에게 바치기 위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라 향로라고 부르나... 어도나 어로나... ^^
오른쪽 비석에는 '조선국' 이라고 되어 있고
왼쪽 비석에는 '대한' 이라고 되어 있음.
인릉에는 비석이 두 개 있다.
먼저 '조선국' 이라고 새져져 있는 비석이 있다. 순조가 승하한 후 즉위한 헌종(순조의 손자) 때 인릉을 조성하면서 함께 만든 것이다. 조선왕조의 국왕을 위한 비석이니 당연히 조선국이라고 썼다.
그런데 그 옆에는 '대한' 이라고 되어 있는 비석도 있다. 고종 때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순조와 순원왕후를 황제와 황후로 추숭한 후 새로 만든 비석이다.
어설프게 피어난 진달래와 개나리.
여기를 찾아간 때가 4월 초순이다 보니 아직 봄꽃이 제대로 피어나지 못 한 때였다.
이 날이 아니면 당분간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갔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날짜를 잘못 잡았다. 나무도 아직 잎새를 피어내지 못 한 것들이 많은데다가 봄꽃까지 어설프게 났으니, 왕릉 부지가 전체적으로 휑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관람객이 별로 없어서 더욱 썰렁해 보였다.
◎ 헌릉
이 날 나의 주요목표(!)는 인릉이 아닌 헌릉이었다.
인릉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헌릉이 보인다. 여기에 조선 제3대 국왕인 태종과 그 왕비 원경왕후가 나란히 묻혀있다.
태종은 바로 옆집(?)에 사는 한참 아래의 후손인 순조에 비하면 존재감과 유명세가 크다 못 해 아예 철철 넘칠 정도다.
일단 조선왕조를 창업하는 과정에서나 기틀을 잡는 과정에서나 여러가지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려의 충신 정몽주나 어린 이복형제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가 하면, 자신이 즉위하는데 큰 도움을 준 처남들을 처형하기도 하는 등, 비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천하의 태종도 자식 일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 무척 아끼던 장남 양녕대군을 폐세자 하는 문제로 고심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용의 눈물', '뿌리 깊은 나무', '정도전' 등 여러 사극 속 태종은 권력의지가 강하고 잔인하면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보이는 입체적인 모습이다. 덕분에 악역이라고는 해도 무척 매력적인 악당으로 그려지곤 한다.
홍살문을 통해 보이는
정자각과 태종 및 원경왕후의 봉분.
위에 이미 썼듯이 태종은 자신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처남들을 숙청했다.
태종은 강한 왕권을 추구했기 때문에 조선을 건국하거나 자신의 즉위를 도운 공신들을 차례로 쳐냈다. 그런 태종의 눈에는, 원경왕후의 친정식구들이며 세자 양녕대군의 외삼촌들인 처남들도 껄끄러워 보였다. 나중에 세자가 왕이 되었을 때 외삼촌들 손에 휘둘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종의 처남들도 성격이 조심스럽지 못 했는지 아니면 태종이 작정하고 찍어내려 드니 어쩔 수 없었던 건지, 하여튼 태종에게 숙청의 빌미를 주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원경왕후의 두 오빠가, 몇 년 후에는 원경왕후의 두 남동생이 목숨을 잃었다.
원경왕후 입장에서는 당연히 남편에게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친정의 재산을 동원하는가 하면 자신의 형제들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즉위시켜놓았다니 뒤통수 단단히 맞은 셈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란히 있는 태종과 원경왕후 부부의 봉분을 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태종이 세상을 뜨고나서 아들인 세종은, 태종의 능을 따로 조성하지 않고 몇 년 전에 먼저 세상을 뜬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에 함께 묻었다. 아들로서, 생전에 사이가 나빴던 부모가 저승에서라는 금슬 좋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경왕후가 그런 아들의 마음을 기특하게 여겼을 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죽어서야 겨우 저 지긋지긋한 인간이랑 헤어졌는데, 아들 녀석이 그 인간을 내 옆에 데려오네?' 하면서 펄펄 뛰지 않았을런지... -.-;;
원수는 외다리 나무에서 만난다가 아니라
원수는 한 능에서 만난다... ^^;;
살아서 못 볼꼴 많이 봤던 부부가 누운 자리 밑에서는
까치들이 발자국 남겨가며 놀고 있는...
여담으로, 공교롭게도 헌인릉은 국가정보원과 관련이 있다.
전에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에 대해서 포스팅하면서, 의릉과 안기부(현재의 국가정보원)의 악연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 의릉(懿陵) - 왕릉과 안기부의 기묘한 동거(http://blog.daum.net/jha7791/15790831) 그런데 국가정보원이 의릉 부지를 떠나는 것으로 조선왕릉과의 인연이 끝나나 했건만 끝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국가정보원이 새로 보금자리를 튼 곳이 바로 헌인릉 옆이다. 아무래도 국가정보원이 조선왕릉을 엄청나게 사랑하나 보다. ^^;;
헌인릉 들어가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국가정보원 건물도 한장 찍을까 하다가 그만 뒀다. 경비원 눈에 띄면 제지당하고 사진을 삭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워낙 소심한 사람이라서 말이다. ^^;;
의릉(懿陵) - 왕릉과 안기부의 기묘한 동거(http://blog.daum.net/jha7791/15790831)
정릉(貞陵), 그리고 동구마케팅고등학교 오르막길에 얽힌 추억(http://blog.daum.net/jha7791/15790895)
태릉(泰陵)과 강릉(康陵) - 왕릉보다 훨씬 큰 왕비릉(http://blog.daum.net/jha7791/15791224)
선정릉(宣靖陵) - 서울 강남 한복판의 조선왕릉(http://blog.daum.net/jha7791/1579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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