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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삼의사 묘역) / 백범김구 기념관

Lesley 2015. 11. 2. 00:01

 

  지난 달 중순에 공덕역 근처에서 대학시절 친구를 만났다.

  함께 점심을 먹고난 후 배불리 먹은 것을 소화시킬 겸 날씨가 좋으니 산책도 할 겸, 공덕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효창공원' 으로 갔다.  효창공원 근처를 지난 적은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공덕역 쪽에서 효창공원까지 계속 오르막길(처음에는 완만한 오르막길, 한겨레신문사 앞에서부터는 좀 급한 오르막길)이 나왔다.  우리 둘 다 점심을 과식해서 몸이 무거웠는데,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속 오르막길만 걸으려니 효창공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  

  처음부터 효창공원을 목적으로 하고 가실 분들은 공덕역 바로 전 역인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하차해서 1번 출구로 나가시기를... (물론, 우리처럼 오르막길을 체험하고 싶으신 분들은 공덕역에서 내리셔도 되고요~~~ ^^) 

 

 

연잎이 너무 많아서 좀 무서워 보이는... ^^;;

 

 

삼의사 묘역 근처에 있는 초가집.

 

 

  삼의사 묘역 근처에 뜬금없이 자그마한 초가집 한 채가 서있다.

  크기를 보아 하니 안에 사람이 드나들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공원 안에 있는 초가인데 크다고 한들 사람이 그 안에서 생활할 리는 없고... ^^;;)  근처 주민들이 꽤 많이 와서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수다도 떠는 곳이라, 주민들 정서 함양을 위해 만든 미니어처(미니어처치고는 덩치가 좀 큰...) 초가집인가 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초가집 지붕을 닭둘기 한 마리가 독차지 하고 있다는 사실... (위의 초가집 사진에도 다소곳이 앉아있는 닭둘기가 보이지요~~ ^^)

  지푸라기 물어다 둥지 만들 것 없이, 어차피 지푸라기로 만든 지붕이니 아예 통째로 자기 둥지로 삼은 모양이다.  닭둘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가 사진 찍는다고 근처를 계속 다녀도 전혀 신경 안 쓰고 눈만 껌뻑이고 자기 깃털이나 골랐다.

 

  

초가집 지붕을 전세낸 닭둘기의 확대 모습.

 

 

초가집 옆에는 미니 원두막(혹은 정자?)도 하나 있음.

(그런데 원두막이든 정자든 그 안에 장독이 들어있다니 좀 이상한... ^^)  

 

 

안중근 무궁화도 최악의 가뭄이라는 날씨 탓에 시들시들함.

 

 

삼의사 묘역.

(삼의사 묘 한쪽 끝에 있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

 

 

  삼의사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3명의 의사를 말한다.

  이봉창과 윤봉길이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두 의사 모두 상하이임시정부의 김구가 주도한 한인애국단 소속이다.  1932년에 이봉창 의사는 일본 도쿄에서 당시 일본 천황인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지만 실패하고 체포되어 순국했고, 같은 해에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일본 천황 생일) 축하식 및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기념행사에 폭탄을 던지고 순국했다.

  백정기는 아나키스트였는데, 솔직히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에 이런 인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 -.-;;  백정기 의사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가 있던 다음해인 1933년에 역시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중국 주재 일본 공사를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어 복역 중 사망했다.    

  다행히 삼의사의 유골은 모두 수습되어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고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래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해방된 조국의 효창공원 안에 있는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그런데 삼의사 묘역에는 삼의사의 묘 말고 또 다른 묘가 있으니, 바로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루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측에 체포되어 사형되었는데, 시신은 사형이 집행된 뤼순 혹은 그 근방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정부에서 여러 차례 유해를 발굴하려 애썼지만, 묻힌 장소도 불분명하고 세월이 오래 흘러 그 지역이 여러 차례 개발되기도 해서 계속 실패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유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으로, 삼의사 묘역에 가묘를 만들어 두었다.  이제는 유해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꼭 찾아 가묘가 진정한 묘소가 되기를 바란다.  

 

 

효창공원 바로 옆에 있는 백범김구 기념관 1층의 김구 석상.

 

 

  백범김구 기념관은 효창공원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어째서인지 '백범 김구 기념관' 이 아니라 '뱀범김구 기념관' 임.)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진 전시관에 이런저런 자료들이 있는데, 전시관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도 1층 로비에 있는 김구 석상은 찍어도 된다고 한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입구에 서있던 안내원이 말해줬음. ^^)


  개인적으로는 1층보다 2층에 있는 전시관의 자료가 더 흥미로웠다.

  백범김구 기념관이니 당연히 대부분은 김구 중심의 자료지만, 같은 시대를 살며 역시 독립운동에 투신했거나 독립운동에 관여했던 이들(윤봉길, 이봉창, 안창호, 이승만 등 한국 측 인사는 물론이고, 장제스 등 중국 측 인사까지) 관련 자료도 있다.  백범 김구 혹은 독립운동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가 보시기를... 


  

기념품 가게 옆에 있는 김구가 생전에 이용하던 자동차와 동종 제품.

 

 

  해방 후 백범 김구가 귀국해서 사용했던 자동차와 같.은. 모.델.이다. (즉, 김구 생전에 쓰던 그 자동차는 아님!)

  광복 70주년을 맞아 김구재단에서 같은 모델을 구해서 이 곳에 기증했다는데, 특이하게도 번호판 숫자에 따로 의미가 있다.  번호판 숫자 2331의 각 자리 숫자를 합치면 9가 된다.  김구의 이름이 아홉이란 뜻의 구(九)라, 일부러 숫자를 그렇게 맞췄다고 한다. (나 같으면 아예 9999로 할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