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서울(성북구 이외 지역)

청계천 박물관 -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역사 훑어보기

Lesley 2019. 3. 29. 00:01


  오늘 소개할 곳은 서울 마장동에 있는 청계천 박물관이다.

  지난 달에 소개했던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과는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두 곳을 한 번에 묶어 관람하면 좋을 듯하다.  ☞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http://blog.daum.net/jha7791/15791554)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2호선 용두역에서 하차해서 5번 출구로 나가서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청계천 박물관의 외관.



  4층짜리 청계천 박물관 건물이 꽤 커서 똑딱이나 폰카로는 전체 사진을 찍는 게 곤란할 정도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4층에서부터 1층까지 내려오며 관람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사진 속에 보이는 금색으로 '청계천 박물관' 이라고 되어 있는 정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정문 옆에 있는 에스켈러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4층부터 관람할 것...! 



내부 경사로.



  박물관 내부의 각 층 사이는 완만한 경사로로 연결되어 있다.

  경사로 벽면에도 사진 등 각종 자료를 전시해 놓았던데, 만일 경사로 대신 계단을 두었더라면 사진 등을 구경하며 걷다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가능성 90% 이상...!!!)  그러니 휠체어 이용자를 배려한다는 면에서 뿐만 아니라 부상자 방지 차원에서도, 경사로를 설치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 셈이다.



서울의 확장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지도.



  이 박물관 이름은 분명히 '청계천' 박물관인데, 실제로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역사' 에 관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위의 지도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원래 서울은 한강 이북 지역 중에서도 사대문 안의 좁은 지역이었다.  조선왕조가 서울을 수도로 정한 후 일제 강점기 때 서울을 확장하기 전까지 500년 넘도록 그러했다.  그러니 청계천의 역사가 곧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 이후의 서울의 역사 대부분과 겹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이야 서울을 가로지르는 젖줄 하면 당연히 한강을 떠올리지만, 한강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게 된 것은 1970년대 경기도 광주와 부천의 상당 지역이 서울로 편입된 후의 일이다.  그러니 서울 대확장이 있기 전까지의 '미니 서울'(!) 시대에 서울을 가로지르는 가장 큰 물줄기는 청계천이었다. 


  이 박물관에 관심 있는 이에게 미리 보고(혹은 듣고) 가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과 팟캐스트가 있다.

  책은 2015년에 출간된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이고, 팟캐스트는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 중 도시정치학 부분 이다.  사실 이 책과 팟캐스트는 같은 내용이라 둘 중 하나만 봐도 괜찮다.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 의 진행자인 김종배와 게스트인 임동근 교수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옮긴 게 바로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행정구역 개편 및 국토개발정책을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해주는 내용인데, 다사다난한 우리나라 현대사와 사람들의 욕망이 넘실대는 부동산 관련 이야기가 어우러져 무척 흥미진진하다. (여담으로, 주요 설명자인 임동근 교수의 목소리가 어지간한 성우 목소리보다 근사해서 금상첨화였음. ^^)  이 책이나 팟캐스트를 미리 접하고 가면, 청계천 박물관을 관람할 때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범상치 않은 4층 바닥 모습.



  이 박물관의 4층 바닥 디자인이 매우 독특하다.

  옛날 지도에 나오는 서울 모습을 확대해서 꾸며놓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특히 종로 쪽을 자주 다녀서 그쪽 지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바닥을 구경하며 지금의 종로 지역 랜드마크 위치를 가늠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교보빌딩은 여기고, 종로타워는 저기고 하는 식으로... ^^



네, 4층 바닥 디자인의 원형이

바로 이런 옛날 서울 지도랍니다...!



  위의 지도를 보면 하얀색 글씨로 된 부분이 다섯 군데 있다. 

  행정구역 이름과는 별도로, 사람들의 생활권에 따라 부르던 지역 이름이다.


  먼저, 지도의 윗쪽에서 아랫쪽으로 북촌, 중촌, 남촌이 있다.

  요즘 북촌 한옥마을이라고 해서 관광지화 된 북촌은 청계천의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주로 고위 관직에 오른 양반(특히 조선 후기에는 세력을 독점했던 노론)이 살던 지역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서울에서 한옥이 가장 많이 보존된 지역으로 남아 관광지화 되었다.

  지금의 청계천 근방인 중촌은 저잣거리라고 해서, 여러 관청과 각종 상가가 있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은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주로 기술직 중인(의관, 역관, 화원, 악공)들이 모여 살았다.  일제 강점기 때는 명동, 소공동, 충무로 등이 있는 이 지역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고,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서울의 패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남촌은 청계천 남쪽에 있는 남산 기슭에 있었는데, 가난한 양반이나 서민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읽은 옛날 이야기 책을 보면 '서울 남촌에 어떤 가난한 선비가 있었는데...'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지도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웃대(상촌)와 아랫대(하촌)이 있다.

  웃대는 지금의 인왕산 일대로 산천풍경이 좋은 곳인데, 종로의 육조거리와 가까워서 그곳에서 근무하는 아전 등 행정직 중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웃대에서 중인들의 문화 활동이 활발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애초에 이 지역이 중인들의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아랫대는 지금의 동대문 일대로, 원래 이 지역에는 수도 방위를 위한 군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직업 군인 및 그 가족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 조선 조정이 재정난으로 군인들에게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게 되자, 군인들에게 부업으로 상업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 (만일 요즘 정부에서 직업 군인들에게 급여를 못 준다며 각자 알아서 장사해서 돈 벌라고 한다면, 이게 무슨 막장 상황이냐고 여론이 부글부글 들끓을 것임. -.-;;)  그러자 군인과 상인의 일체화 현상이 생기면서, 동대문 밖에 큰 채소시장이 형성되었다.



조선인 거주지역인 동.

일본인 거주지역인 마찌(정).



  일제 강점기 때는 동과 마찌(정)라는 하부행정구역이 혼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기에는 대체로 마찌로 통일되는 분위기였던 모양인데, 어찌되었거나 일단은 조선인이 많이 사는 곳이 동이었고 일본인지 주로 사는 곳이 마찌였다고 한다.  위의 표를 보면, 북촌인 안국동과 삼청동은 조선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남촌인 남산 일대에는 일본인 비율이 훨씬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 속

무작정 상경 세태에 관한 기사.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은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며 그런 현상이 가속화되더니,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현상이 되었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의 서울 인구가 124만 명이었는데, 1965년에는 347만 명으로 2.5배 이상 늘어나더니, 다시 5년이 지난 1970년에는 무려 542만 명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책과 팟캐스트에 의하면, 당시 박정희 정권은 서울 인구가 최대 300만 명 정도까지 늘어날 것을 예상하며 서울 크기를 지금과 같이 넓혀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서울의 인구는 1,000만 명에 가깝다.  당시 서울의 인구 추세는 말 그대로 인구폭발이었던 것이다. 

 

  특히 시골 젊은이들이 서울의 화려함에 끌려 덮어놓고 상경했다가 큰 곤경에 처하는 게 사회문제가 되었다.

  바로 위의 기사(1965년도 경향신문의 기사)가 그런 세태에 관한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15세에서 20세 전후의 어린 여성들이 세상물정도 모른 채 그저 서울만 가면 잘 살 수 있다고 무작정 상경했다가, 몹쓸 일을 겪는 일이 종종 벌어졌던 모양이다.  기사 속에 등장하는 어린 처녀 두 명도 서울에서 험한 일을 당하고 여자 경찰의 도움으로 겨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인구가 폭발하는 시기,

청계천 판잣집촌을 보여주는 모형.

 


  이렇게 인구가 폭발하니, 당연히 도시 인프라가 인구를 따라잡지 못 했다.

  주택, 상하수도, 전기, 도로 등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게 없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서울에만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상당수는 수도도 전기도 안 들어오는 판잣집에서 공동화장실을 쓰며 살아야 했다.

  1990년대 후반에 방영했던 드라마 '육남매' 는 1960년대 서울 문래동을 배경으로 한다.  명색이 서울이라는 문래동 사람들이 수돗물이 없어서 동네 한복판에 있는 우물에 모여 빨래를 하는(덤으로 동네 사람들 뒷담화도 하는... ^^;;) 장면이 수시로 나오곤 했다. 

  


철거민 이주 정책의 시작.



  결국 서울시와 정부는 판잣집으로 대표되는 무허가주택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종로, 청계천변, 남산 등 서울 중심가의 판잣집 주민들 일부는 원래 살던 곳에 시민아파트를 지어 거주하게 하는 식으로 양성화하려고 했고, 상당수는 상계동이나 신림동 등 서울 변두리나 아예 서울 밖 경기도로 내보내려고 했다.  지금보다 관청의 힘이 훨씬 강하던 군사독재시절이니 모든 게 계획대로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시민아파트 계획은 마구잡이 부실공사로 인해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등이 일어나며 망해버렸다.  그리고 철거민을 제대로 된 계획없이 서울 밖으로 몰아낸 일은 광주대단지 사건을 불러일으켰다.



광주대단지.


 

  여기에서 잠시, 청계천 박물관에는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광주대단지 사건이라고 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광주는 지금의 광주광역시가 아니다.  그 당시에는 경기도 광주군(지금의 광주시) 소속이었으며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에 해당하는 지역을 말한다.

  당시 서울시에서는 청계천, 용산, 마장동 등지의 판자촌을 없애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새 거주지를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하고, 10만 명이 넘는 철거민을 서울 밖으로 내보냈다.  그들을 데려간 곳이 광주군 중에서도 변두리 지역인 중부면(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일대)이었으니, 이곳에 마련한 철거민들의 새 거주지를 광주대단지라고 했다.


  하지만 광주대단지는 도무지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서울의 판자촌 지역은 빈민가라고는 해도 어찌되었거나 서울에 있어서,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시장 등 생필품 구입처라든지 학교나 병원 등 기본적인 생활기반이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광주대단지는 땅만 있을 뿐(그나마 평지도 아니고 산비탈이었음.)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라,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전쟁 난민처럼 지내야 했다.

  또한 광주대단지에서 서울로 나가는 버스 노선이 달랑 한 개인데다가 그나마 그 노선에 배정된 차가 4대 밖에 없었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광주대단지로 이주한 사람들이 빈민들이다 보니, 상당수 가장이 서울의 종로나 을지로에서 막노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서울로 나가는데 3시간씩이나 걸리는 문제의 버스는 출퇴근 시간마다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상수도가 깔리지 않아 웅덩이를 파서 식수 및 생활용수로 사용해야 했다.  이것만으로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즉, 가구당 화장실은 고사하고 공중화장실도 없어서 사람들이 근처 야산에서 용변을 본 탓에, 장마철이 되자 변이 섞인 토사가 웅덩이로 흘러들었다.  결국 이질이나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돌아 하루에 서너 명씩 사망하곤 했다. (왜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  일상용품 구입할 시장도 없는데 병원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힘들게 병원을 찾아간다 한들 지금처럼 전 국민이 의료보험 적용을 받던 시절도 아니라 병원 문턱이 높던 시절이었으니...)


  주민들의 불만이 치솟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처음 약속했던 '저렴한 비용으로 새 거주지를 마련해주겠다' 는 약속마저 깨졌다.

  서울시와 경기도 사이에 의견 대립도 있었던 모양이고, 철거민들에게서 소위 딱지라는 것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의 일까지 겹치면서 일이 더욱 꼬였다.  경기도 측에서는 광주대단지 주민들에게 서울시가 원래 약속한 가격보다 최소 4배가 넘는 가격을 지불하라고 통지했다.

  가뜩이나 서울시와 정부에게 속았다며 분노하던 주민들의 분위기가 더욱 험약해지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주대단지 주민들과 서울시장이 면담하기로 했다.  그런데 서울시장이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던 건지, 하여튼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안 나타났고... 



광주대단지 사건 발생...!



  나중에야 서울시장이 나타났지만, 광주대단지 주민들은 이미 폭발해버린 상태였다...!

  흥분한 주민들이 광주대단지 지역의 출장소와 파출소를 공격해 집기를 부수고 불을 지르자, 정부는 진압을 위해 700명 이상의 경찰을 출동시켰다.  그러나 들고 일어난 주민 숫자가 경찰보다 훨씬 많은 수만 명이었던데다가 분노와 배신감으로 이성을 잃은 상태라서, 오히려 경찰이 주민들에게 진압(?)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후 주민들은 지나가는 버스와 트럭 등을 탈취해서 타고 서울로 향했다.

  사태가 서울시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정부에서는 내무부 차관을 보내 광주대단지 주민들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기로 약속했다.  이 때 정부가 수용한 광주대단지 주민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광주대단지 지역을 별도의 도시로 독립시켜달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탄생한 도시가 바로 지금의 성남시이다. (성남시 탄생의 비화...)

   

 

고도성장기의 청계천 주변 상가 모습.

(미사일과 탱크도 만들 수 있는 곳. ^^)



2000년대 들어 본격화 된 청계천 복원 문제.



  1960년대 및 1970년대에 청계천을 복개하고 청계고가를 만들었고, 그 주변은 온갖 물건을 다 구할 수 있는 상점이 들어셨다.

  그러나 청계고가가 노후화되고 주변 상가 분위기도 침체되자, 청계고가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래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자 2003년부터 2005년에 걸쳐 청계천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청계천이 복원되자, 차츰 슬럼화되던 청계천 주변 지역이 깔끔하게 정비가 되고 청계천이 국내외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명박이 훗날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는 청계천 복원 공사의 덕이 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도시 미화나 관광업 차원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청계천 복원의 문제점.



  하지만 청계천 복원에는 빛 뿐 아니라 그림자도 있었으니...

  일단, 처음 내세웠던 생태계 복원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공사였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커다란 인공 어항' 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청계천을 자정능력이 있는 자연 하천이 아닌, 기계의 힘이 없으면 녹조가 넘쳐나고 썩어들어 갈 수 밖에 없는 인공 하천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하소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는 자연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계획에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그러나 막상 복원 공사가 끝난 후의 모습을 보고, 생태계 복원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조경 공사였을 뿐이라고 비판하고 한탄했다.

  또한, 청계천 주변의 상인들의 생계 문제도 있었다.  당시 서울시에서는 서울 문정동에 가든파이브를 만들어 청계천 상인들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현재 가든파이브에 입주한 상인 중 청계천 근처에서 장사하던 이들은 얼마 없다.


  그래서 청계천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번에 끝낼 수도 있었던 공사를 두 번 하게 생겼으니 답답한 일이다.  미완의 청계천 복원 공사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 그리고 서울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청계천 박물관을 서울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강추한다.

  청계천 박물관에서 서울의 역사를 쭉 훑고서, 맞은편에 있는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으로 옮겨가서 낭만과 향수를 느끼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면 딱이다!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http://blog.daum.net/jha7791/15791554) 

팟캐스트(2) -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 중 '도시정치학(with 임동근)'(http://blog.daum.net/jha7791/1579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