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서울(성북구 이외 지역)

강서구 구경하기(1) - 양천향교 / 궁산땅굴

Lesley 2019. 6. 8. 00:01


  지난 주말에 서울 강서구의 가양동, 마곡동 지역에 다녀왔다.

  서울 중에서 '내 구역'(?)이라 할 수 있는 곳은 강북의 중앙(광화문, 종로 일대)부터 북동부(성북구, 강북구, 노원구, 동대문구 등)까지만이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가장 익숙하고 가장 자주 다닌 곳이다.  같은 강북이라도 은평구 등 서쪽 지역이나, 아예 한강 건너편에 있는 강남3구는, 나에게는 다른 도시로 느껴질 만큼 거리감과 이질감이 넘친다.  그러니 서울 북동부 지역에서 대각선으로 정반대 방향에 있는 강서구나 양천구 같은 남서부 지역은 무슨 별나라나 달나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향천향교라는 곳을 발견했다.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향교라고 한다.  마침 근처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만든 땅굴(!)이 있다고 해서 두 곳을 세트로 묶어 다녀오기로 했다.   



  ◎  양천향교 - 서울의 유일한 향교


  양천향교가 두 번째로 가 본 향교다.

  전에 하남에 있는 광주향교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하남 광주향교(http://blog.daum.net/jha7791/15791334)  규모, 위치, 분위기로는 광주향교 쪽이 더 향교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양천향교는 주택가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예스러운 풍취는 덜 하다.


  양천향교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기억하기에 참 좋다.

  양천향교와 이름이 똑같은, 9호선 전철 양천향교역(!)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교라고는 하지만 전에는 강서구나 양천구 주민들이나 아는 곳이었는데, 9호선이 개통하고 양천향교역이 생기면서 인지도가 쭉 올라갔다고 한다.

  9호선 양천향교역의 1번 출구나 2번 출구로 나가서, 두 출구 사이에 있는 얕으막한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양천향교 안내판이 보인다.  그 안내판 쪽으로 꺽어 들어가면 바로 양천향교가 보인다. 



두둥~~ 하고 자태를 드러난 양천향교의 모습.

(홍살문 프레임 안으로 외삼문이 보임.)



  양천향교는 이름만 봐서는 양천구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강서구 가양동에 있다.

  양천향교를 세웠던 조선 초기(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 재위하던 1411년)만 해도 지금의 가양동 일대가 경기도 양천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세운 향교를 양천향교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경기도 김포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63년 서울 대확장 때 다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었고, 나중에 영등포구 일부가 강서구로 독립하면서 강서구 소속이 되었다.  정작 옛 이름인 양천은 강서구의 바로 옆 이웃이자 강서구에서 독립한 양천구가 가져갔다.



외삼문에 들어가기 전에, 그 옆에 있는 건물.

(학생들에게 전통 교육을 시키기 위한 곳이라고 함.) 



명륜당이 위에 우뚝 서있고

아래쪽 양편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음.



  향교는 조선시대에 유학 교육을 위해 건립한, 각 지방의 국립 중등학교였다.

  지방 학생들은 서당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향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후, 과거의 소과에 합격하면 지금의 대학교에 해당하는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향교 학생들은 기숙사(동재, 서재)에서 숙식을 하며 강의실인 명륜당에서 공부했다.


  다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험에는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이 유리한 법...!

  조선 중후기가 되면 국립학교인 향교는 양반 자제들에게 외면 당해서 교육 내용이 부실해지고, 중인이나 상민 자제들을 위한 학교처럼 변했다고 한다.  대신 양반 자제들은 사립학교라 할 수 있는 서원에서, 혹은 그룹과외 비슷하게 유명한 학자 밑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공부하며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서원이나 같은 스승 아래에서 이룬 학맥으로 관료 사회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줬다고 한다.



대성전으로 통하는 내삼문.

(유감스럽게도 잠긴 상태라 대성전은 못 봤음.)



  향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유학 성인들을 모시는 제사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내삼문 너머에 있는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유교 성인들 및 한국 유교 성인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 향교에서도 매년 봄, 가을에 석전대례를 거행한다고 한다.  문이 잠겨 있어서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 하고, 내삼문 양옆에 있는 담 너머로 안쪽을 훔쳐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명륜당 뒤편의 굴뚝.

동재 처마 아래에 있는 낙숫물 자국.



양천향교를 관리하는 재단이 별도로 있음.



  양천향교를 나와 궁산땅굴로 가는 길에 향교재단 사무실 옆을 지나쳤다.

  걷다가 무심코 옆을 보니 건물 벽에 한복 입은 아이들 그림(그림이라기 보다는 부조 같이 양각으로 된 것.)이 있어서 뭔가 했다.  그래서 보니, 간판에 '재단법인 서울특별시 향교재단' 이라고 되어 있다.  이름만 봐서는 서울에 있는 향교 전체를 관리하는 재단 같지만, 서울에 양천향교 말고는 다른 향교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양천향교만을 위한 재단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양천향교역 근처에 있는 하마비.



  향교 앞에는 궁궐이나 왕릉 앞처럼 하마비를 세워 신분이 높은 이라도 말에서 내리게 했다.

  물론 유학 성인들을 모신 향교에 대해 경의를 표하라는 듯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양천향교의 하마비는 특이하게도 양쳔향교에서 300미터 이상은 떨어진 9호선 양천향교역 옆에 있다.

  양천향교 다음에 들린 궁산땅굴에서 만난 가이드 분 말씀으로는, 원래 양천향교 근처에 있었는데 그 근처에 이런저런 건물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런 이유 말고도 홍보를 위한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오가는 사람 많은 전철역 옆에 하마비를 둬서 양천향교의 존재를 알리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 궁산땅굴 - 서울의 유일한 일제강점기 땅굴


  양천향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궁산땅굴이 있다.

  보통 땅굴 하면 북한이 남침을 하기 위해 휴전선 근처에 뚫은 땅굴을 떠올리는데, 여기는 특이하게도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군사목적으로 뚫어놓은 땅굴이라고 한다.  2008년도에 발견된 이 땅굴은 2018년부터 일반인의 관람을 위한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궁산땅굴 전시관의 겉모습.



  일제강점기 때도 지금의 김포공항 자리에 일본 공군 비행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가까운 이 자리에 땅굴을 파서 무기 저장고로 썼다고 한다.  궁산땅굴의 내력을 설명해주신 가이드 분(이 분 얼굴이 유시민 작가와 닮아서 처음에 좀 당황했다는... ^^;;)의 설명으로는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식민통치하기 위해 무기를 땅굴에 저장해 둔 것이라고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혹은 망상... ^^;;)일 뿐인데...   궁지에 몰린 일본 정부가 일본땅이 연합국에게 점령당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한반도를 최후의 아지트로 삼으려고 무기를 비축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나 수필을 보면, 전쟁 막바지에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툭하면 민간인들에게 대피훈련이나 화재진화훈련 같은 것을 시켰다고 하니 말이다.    



궁산땅굴 입구 모습.

(일반인은 딱 여기까지만~~!)



  유감스럽게도 궁산땅굴 내부를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람객은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막아놓은 땅굴 입구에서 안쪽을 쳐다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원래는 내부를 정돈하고 복원해서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복원공사를 하려고 내부에 오랜 시간 들어찬 습기를 빨아들였더니, 동굴 위쪽의 바위들이 갑자기 습기가 사라져 마르면서 떨어지는 일이 여러 번 발생했다고 한다.  결국 안전 문제로 일반인의 내부 관람을 불허하고 입구만 들여다 보게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강서구는 겨우 한두 번 갔을 뿐이라 거의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 의외로 갈만한 곳이 많다.  시간 관계상 들리지는 못 했는데, 궁산땅굴 바로 맞은 편에 겸재정선미술관도 있고 좀 떨어진 곳에는 허준박물관도 있다.  궁산땅굴 바로 옆에 있는 산길을 올라가면 강서구 일대를 조망할 수 있고,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일본군과 전추를 벌인 산성도 있다고 한다.

  궁산땅굴의 친절한 가이드 분께서 강서구 관광지도를 한 장 주셨는데, 책상 위에 쌓여있는 걸 보니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듯했다.  강서구 일대의 문화재 등에 관심있는 이라면 궁산땅굴에 갔을 때 부탁해서 한 장 얻어보시기를...





   

강서구 구경하기(2) - 서울식물원(http://blog.daum.net/jha7791/15791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