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어를 독학하고 있다.
사실은 작년에도 일본어를 살짝 맛만 본 적이 있다.
발단은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에 다시 한 번 푹 빠진 일이었다. 은하철도 999의 오프닝곡과 엔딩곡 가사를 해석하고 싶다는 마음에 일본어에 달려들었다가, 겨우 2주일 정도 하고 그만 두고 말았다.
일본어가 영어나 중국어보다 쉽다고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차라리 영어와 중국어의 경우에는 입문 과정은 수월했다. (중.고급 과정으로 올라가면서 실력이 안 늘어서 문제일 뿐... -.-;;) 그런데 일본어는 시작부터 절벽이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벽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그런데 지난 10월에 만난 친구에게서 팟캐스트로 일본어를 독학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일본어 선배(겨우 2주 했을 뿐인데... ^^;;)로서 내가 봤던 일본어 책을 친구에게 알려주며 권했는데... 아이쿠야~~ 1년 반 동안 기억에서 싹 지워버렸던 그 책을 다시 들춰보니, 괜히 내 마음까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일본어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이번에는 두 달째 꾸준히 하고 있다. (아자! 아자! 아자!)
보통, 일본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같고 문법상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쉽다고 하는데...
그것도 일정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일본어에 입문하는 단계에서는, 위에 쓴 것처럼 오히려 영어나 중국어보다 어렵다.
꽤 오래 전에 한 친구가 일본어 공부를 한다며 학원까지 등록했다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벽에 부딪쳐서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 뒀다. 그 때에는 '히라가나니 가타카나니 하는 것 전부 합쳐봐야 겨우(!) 100개도 안 된다면서, 그거 외우는 게 뭐가 어렵다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만사란 게 원래 옆에서 쳐다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다른 법이다. 막상 내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우려고 하니 애로사항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ㅠ.ㅠ
그러고 보면 알파벳이나 한자는 영어나 중국어를 배우기 전이라도 익숙한 편이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조기교육의 광풍이 불어닥치기 전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라, 중학교에 가서야 영어와 한자를 배웠더랬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에도 알파벳이나 한자를 맛보기 수준으로는 접했다. 가령, 영양제나 문제집 이름으로 나오는 '비타민C' 나 '수학 A+' 같은 것을 보면서 알파벳을 몇 글자나마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리고 아직 신문이 국한문 혼용으로 표기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문에서 자주 보게 되는 몇몇 한자는 비록 쓰지는 못해도 읽을 수는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30개도 안 되는 영어 알파벳을 빨리 익힌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자도 숫자가 많아서 골머리를 앓았을 뿐, 적어도 한자 역시 우리 한글처럼 문자라는 인식 정도는 있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고?' 하는 식의 막막함은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문자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평소에 볼 일이 없었으니 낯설게만 느껴졌다.
히가라나는 무슨 마약 잔뜩 먹은 지렁이가 미친 듯이 몸을 뒤트는 것처럼 보이고, 가타카나는 아무리 봐도 짝퉁 한자처럼 생겼다. (원래 가타카나가 한자의 약자에서 기원한 것이라 짝퉁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임. ^^;;) 워낙 요상하게 생긴 녀석들이라 외우고 또 외워도 도저히 외워지지가 않았다. 안 외워지던 글자를 겨우 외우고 나면 멀쩡히 알고 있었던 다른 글자를 잊어버리고, 그래서 그 글자를 다시 외우고 나면 아까 외웠던 글자는 또 잊어버리는 식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있는 지인에게 비결이나 요령 좀 알려달라고 했다. 지인은 특별한 비결이나 요령 같은 건 없다고 했다. 자기도 외우지 못 해서 고생하다가 어느 날 밤에 잠이 안 오기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10장이나 썼더니, 그 후로는 안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했다. (결국 외워질 때까지 무조건 많이 보고 많이 써보라는 말... ㅠ.ㅠ)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벽을 넘어 입문 과정을 끝내고 초급 과정으로 들어서는데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도 한쪽 발 끝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벽에 살짝 걸치고 있는 상태이다. 일본어 교재에 나온 단어나 문장을 그럭저럭 읽어나가다가도, 가끔 '이 글자가 뭐였더라?' 하면서 50음도 표를 쳐다보게 되니 말이다.
역시 이 세상에 쉬운 외국어 따위는 없다.
'한국인이 제일 쉽게 배울 수 있는 외국어가 일본어' 란 말은 일본어 자체가 쉬운 외국어란 뜻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다른 외국어보다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입문 과정의 벽을 넘어서서 기초 단계로 진입했을 때나 쉽게 느껴진다는 뜻일 뿐이다. (경험자들의 말로는 고급 단계로 들어가면 다시 미친 듯이 어려워진다는데, 나는 중급에서 만족할 예정이니 고급은 어렵거나 말거나 알 바 아님. -.-;;)
일본어가 한국어와 문법상 비슷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일본어도 한국어처럼 복잡한 문법 구조를 가진 언어란 뜻이 된다. 요즘 일본어의 변화무쌍한 동사 변화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일본어를 공부한 적 있는 지인이 "일본어 공부하겠다는 사람 중 절반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우다가 포기하거나 동사를 배우다가 포기하게 된다."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어나 중국어에서는 한자를 읽는 법이 하나씩 있는 게 원칙인데, 일본어는 음독이니 훈독이니 해서 최소한 두 개는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너 개씩 되는 경우도 있다. 이건 마치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멀쩡했던 한자가 일본에 가서 망나니(!)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고 즐.기.며. 배워보려고 한다.
어찌되었거나 2주일 공부하다가 때려치웠던 작년과는 달리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라는 첫 번째 관문은 통과하지 않았나... 두 번째 관문인 동사 변화도 깨부수면(!) 그 다음부터는 한결 수월해지겠지... 얼마 전에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 의 삽입곡을 듣다가 일본어 제목인 '四月は君の嘘' 를 무심코 일본어로 읽고는, 내가 그것을 일본어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오... 감동... 공부의 효과가 드러나고 있구나...! ㅠ.ㅠ)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영어는 가장 오래 공부한 외국어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 지금까지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중국어는 영어에 비해 학습 기간이 훨씬 짧고 한자와 성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지만, 의무가 아닌 개인적인 관심과 흥미로 공부했기에 영어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일본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계기인 '좋아하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의 대사, 노래의 가사를 알아듣고 해석할 수 있는 것' 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의무감, 문법, 시험' 이라는 잘못된 목표와 방식 때문에 망한 외국어는 영어 하나로 충분하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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