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 워리어 제로(Cosmo Warrior Zero) 오프닝곡 - 時代

 

  3월 들어서 '은하철도 999' 로 유명한 마츠모토 레이지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 '코스모 워리어 제로(Cosmo Warrior Zero)' 를 봤다.

  다만, 이번 포스트의 주제는 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곡' 이다.  애니메이션은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는데 오프닝곡에 삘(!)이 꽂혀 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진주만' 이후로 작품 자체보다 OST에 반해버린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래도 '코스모 워리어 제로' 라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간단히 쓰자면...

 

  일단, 13편(별도로 2편의 외전이 있음.)의 줄거리를 최대한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제로' 는 지구연방군 함장이다. (위의 그림 중 검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군복을 입고 흰색 모자를 쓴 사람)  인간과 기계인간 사이에 벌어진 전쟁 중에 아내와 딸을 잃은 제로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과 기계인간이 섞인 부대를 이끌고 우주해적 '하록' 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 전쟁을 벌였던 인간과 기계인간이 같은 함선에 있다 보니 수시로 갈등이 터진다.

  그래도 제로는 포기하지 않고 인간과 기계인간을 화합시키려 노력한다.  나중에는 부대원들도 제로의 노력과 지도력에 감화되어 전우애로 뭉치게 되고, 기계인간으로 밝혀진 여자 부함장과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며, 체포 대상이었던 하록과는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맺게 된다.  끝에서는 인간과 기계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를 꿈꾸며, 전쟁으로 엉망이 된 지구를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며 지구로 귀환한다.

 

  그런데 마츠모토 레이지의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를 보면, 유감스럽게도 제로의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코스모 워리어 제로' 속 이런저런 단서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메텔의 소녀 시절에 관한 '우주 교향시 메텔' 과 메텔의 숙녀(?) 시절에 관한 '은하철도 999' 사이의 어느 시대인 것으로 보인다.  '우주 교향시 메텔' 에서는 메텔의 고향별을 거점으로 일어선 기계인간이 본격적으로 우주로 세력을 뻗어나가게 되고, '은하철도 999' 에서는 이미 우주 전체에서 기계화가 이루어져 기계인간이 인간에 비해 우월한 존재로 취급되게 된다.  그런데 '코스모 워리어' 의 시간적 배경은 그 중간 어디쯤인, 인간과 기계인간이 전쟁을 치른 후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갈등이 팽배한 시대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인간이 공존하고 화합하는 세상을 꿈꾸던 제로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나마 제로가 살던 시절의 지구에서는 인간과 기계인간이 갈등을 빚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 한, 말하자면 양쪽이 불안정하게나마 평등을 누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은하철도 999' 속 지구는 기계인간이 상류층으로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인간은 비참하게 살아가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철이와 메텔이 기계제국을 무너뜨린 후에는 거꾸로 기계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종, 국적, 종교, 사상에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이야기 같음.)

 

 

 

  자, 이제부터 '코스모 워리어 제로' 의 오프닝곡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위에 쓴대로 이 애니메이션 내용보다 오프닝곡이 더 좋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라기보다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다른 작품들(정확히 말하자면 메텔, 하록, 에메랄다스 등이 등장하며 서로 연결되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마츠모토 레이지의 다른 작품들을 보지 않고 이 애니메이션만 본 사람은 뭔가 중요한 것이 생략되어 내용이 듬성듬성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에 박한 점수를 주는 사람이더라도 오프닝곡에는 후한 점수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가능성 90% 이상...!!!)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아일랜드풍의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이 일품이다. 

 

 

'코스모 워리어 제로' 의 오프닝곡.

 

 

  오프닝곡에 반해서 검색을 해봤다.

  다행히도 오프닝 영상 중간에 음악의 이름과 작곡자의 이름이 나온다.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몰라서 時代(한국어로는 '시대' 라고 읽지만 일본어로는 '지다이' 라고 한다나...)라는 한자로 된 음악 이름만 알 수 있을 뿐, 작곡자에 대해서는 따로 인터넷을 찾아봤다.  

 

  알고보니 '코스모 워리어 제로' 오프닝의 원곡인 時代는 일본에서 무척 유명한 노래라고 한다.

  1970년대 중반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앨범이 2,000만장 이상 판매된 여자 가수 '나카지마 미유키(中島みゆき)' 가 작곡 및 작사를 하고 부른 노래이다.  원곡은 통기타 반주로 노래하는 포크송인데 '코스모 워리어 제로' 에서는 아일랜드풍의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편곡되어 나온다.  다른 블로그에 올라간 원곡을 찾아 들어봤는데, 원곡은 원곡대로 '코스모 워리어 제로' 의 오프닝곡 버전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  나카지마 미유키가 부른 時代 원곡을 들을 수 있는 블로그

 

  https://blog.naver.com/vj8689/220861746909 

  https://blog.naver.com/smile8684/10108102469

 

  특히 가사를 찾아본 후 들어보면 감동이 더 커진다.

  가사 전체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따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시고, 여기에서는 해석 일부분만 소개하겠다. (아, 이런 성의없는 포스팅을 봤나... ^^;;)  결국 이루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어쨌거나 암담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인간과 기계인간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제로의 심정에 어울리는 가사라고 할 수 있다.

  1절은 다음과 같다.  "지금은 슬퍼서 눈물조차 말라버려 두 번 다시 웃는 얼굴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언젠가는 말할 수 있겠지요. (중략) 돌고 돌아요. 시대는 돌고 돌아요. (중략) 오늘 헤어진 연인들도 새롭게 다시 만날 거에요."

  2절은 다음과 같다.  "나그네는 언젠가 고향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오늘 밤 쓰러지더라도 문을 나설 거에요. (중략) 돌고 돌아요. 시대는 돌아요. (중략) 오늘 쓰러진 나그네들도 새롭게 다시 태어나 걸을 수 있을 거에요."  

 

  나카지마 미유키가 어떤 심정으로 이 가사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가 1975년에 나왔다는 사실만 놓고 풍부한 망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일본의 학생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방황하던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뜻에서 만든 가사가 아닐까 싶다.  피끓는 젊은이들은 세상의 부조리를 참을 수 없고 어떻게든 뜯어고치고 싶은 열망은 넘치는데, 학생운동은 과격한 노선을 내달리다가 망해버렸으니, 여기에도 저기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젊은이들을 이 노래로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설사 대부분의 대중가요처럼 그저 실연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라 하더라도, 1970년대 일본 젊은이들에게는 내가 추측한 것과 같은 위로의 의미로 느껴졌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치 '시인과 촌장' 의 하덕규가 작사 및 작곡한 노래 '가시나무' 가 하덕규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노래지만, 1980년대 후반의 격동기를 살던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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