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트에서는 '은하철도 999' 의 남자 주인공 '철이' 를 소개하겠다.
지난 번에 은하철도 999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훑었다. ☞ 은하철도 999(TV판) 1 - 은하철도 999 훑어보기 / TV판과 극장판 비교(http://blog.daum.net/jha7791/15791406) 이제부터는 등장인물 중심으로 은하철도 999의 내용을 살펴보겠다.
은하철도 999 TV판은 113회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그래서 줄거리 위주로 쓰다가는 아무리 줄여 쓴다고 해도 포스트가 수십 개는 나올 것이다. 그래서 내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등장인물 위주로 포스팅을 하려는 것이다. (랑야방 포스트를 쓴 후로 장편 포스트는 무조건 사절... ^^;;)
◎ 프로필
우리나라에서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이름이 '철이' 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이 이름은 한국식으로 변형된 거고 원래 이 주인공의 이름은 '호시노 테츠로(星野鉄郞)' 다. 은하철도 999가 주인공이 우리 은하에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여행하며 온갖 별에 들려 모험을 겪는 내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별의 들판' 이란 뜻의 '호시노(星野)' 가 주인공의 성이라는 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은하철도 999가 198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 TV에서 처음으로 방영하면서 철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 이름으로 워낙 유명하다 보니, 테츠로라는 이름이 분명히 들리는 일본어판 중에도 자막에는 철이라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여기서도 철이라고 하겠다. (익숙해서 그런지 더 정감 가니까... ^^)
철이는 지구의 빈민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년이다.
철이가 살고 있는 23세기의 지구는 기계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그리고 기계인간인지 평범한 인간인지에 따라 사회 계급이 나뉘어진다.
부유한 사람들은 뇌를 제외한 몸 전체를 기계로 바꾼 후 굶주림이나 추위 등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몸의 부품을 교환하는 식으로 수명을 연장하며 산다. 그런 기계인간들은 주로 화려하고 깔끔한 도시 메갈로폴리스에서 산다. 하지만 기계인간이 되는 데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메갈로폴리스 밖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채 살아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계몸을 공짜로 주는 별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1년에 한 번만 지구에 오는 은하철도 소속 999호를 타면, 가난한 사람이라도 기계몸을 공짜로 주는 별에 가서 기계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999호 승차권은 무척 비싸서 대단한 부자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애초에 돈이 없어서 기계인간이 되지 못 하는 건데, 기계몸을 공짜로 준다는 별에 가기 위해서는 비싼 돈이 드는 승차권을 사야 하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들은 999호가 정차하는 메갈로폴리스로 몰려들어 역 근처에 빈민가를 형성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언젠가는 999호 승차권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가진 채 비참하게 살아간다.
철이와 철이 엄마도 999호를 타겠다는 희망으로 한겨울에 메갈로폴리스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인간들을 사냥하는 악취미를 가진 기계 백작 일당에게 쫓기다가, 그만 엄마가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철이는 '꼭 기계인간이 되어 엄마와 아빠의 몫까지 오래 살아야 한다.' 는 엄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홀로 메갈로폴리스로 가다가 쓰러진다. 엄마의 유언을 지키지 못 한 채 이대로 얼어죽나 보다 하며 의식을 잃는데...
뜻밖에도 메텔이라는 정체불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철이를 구해준다.
그런데 메텔은 구해준 것만으로도 모자라, 그 귀한 999호 승차권을 철이에게 그냥 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철이는 엄마의 유언대로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메텔과 함께 999호를 타고 머나먼 안드로메다 은하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많은 별에 들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차츰 성숙해지게 되고, 마침내 인간의 유한한 생명이 기계의 무한한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결론을 얻은 후에, 메텔과 가슴 아픈 이별을 나누며 소년에서 어른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된다. (113회짜리 애니메이션 중 1회를 뺀 나머지를 한 줄로 요약해버리는 패기... ^^;;)
그런데 여행 중에 산전수전 다 겪게 되는 철이는 겨우 10살이다.
그 동안 철이의 나이를 막연하게 10살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번에 TV판을 정독(?)해 보니 10살 정도가 아니라 정확하게 10살이다. 18회 '진흙의 메텔' 편에서 철이가 메텔과 이름이 같은 여자에게 납치당하자 TV에서 철이의 실종 사실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는데, 그 방송에서 철이를 10살로 소개한다.
그리고 메텔과 여행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철이의 부모는 모두 사망한 상태다.
일단 철이 아빠는 철이가 더 어렸을 적에 과로로 사망했다. 1회 '출발의 발라드' 에서 철이 엄마는 철이 아빠가 비싼 999호 승차권을 사려고 무리해서 일하다가 죽었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86회 '불효자 별의 UFO' 에서 철이가 메텔에게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포크레인 기사였던 철이 아빠는 999호 승차권을 살 돈을 모으려고 열심히 일만 하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고 한다. (다만, 극장판 2기에서는 철이 아빠가 기계제국의 여왕 프로메슘의 측근으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음. 엄청난 설정충돌...)
철이 엄마는 남편을 잃은 후 혼자서 철이를 키웠는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들을 끔찍하게 아끼며 올바른 가치관(노동의 중요성, 가난하다고 해서 남의 동정을 받지 말 것 등을 강조)을 가르쳤다. 철이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엇나가지 않고 착하고 정의감 넘치는 아이로 자란 것은 엄마의 가르침 덕분이다.
◎ 외모
은하철도 999는 장편 애니메이션이라 각 회차에 나오는 조연급 등장인물이 많은데, 그들을 외모로만 구분하자면 철이형과 메텔형으로 나눌 수 있다. ^^;;
철이형은 키가 작고 둥글둥글하게 생겼으며 소탈한(...이라고 쓰고 '좀 깔끔하지 못 한' 이라고 읽음. ^^;;) 스타일이다. 그에 비해 메텔형은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를 지니고 얼굴마저 빼어나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철이.
철이의 외모는 다음과 같다.
일단 숱이 무척 많은지 머리가 덥수룩하다. (나도 숱 많은 1人으로서 철이에게 동지애가 느껴짐. ^^) 코는 주먹코고 입은 큰 편이며 얼굴의 아랫볼이 토실토실하다. 잘 생긴 얼굴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귀염성 있고 친근감 가는 얼굴이다.
키는 어린 나이를 생각하더라도 작은 편이라, 위의 그림을 봐도 메텔의 허리 정도 밖에 오지 않는다. 물론 메텔이 장신이기는 하다. 메텔은 은하철도 999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자보다 키가 큰데, 굽이 있는 부츠를 신고 다닌다는 점을 생각해도 18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철이가 메텔 허리에 겨우 닿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자그마한 키다.
그리고 다리가 짧은 것으로도 모자라 안짱다리이기까지 하다. 6회 및 57회 '냉혈제국' 에서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공룡이 자기네 공룡이나 인간들이나 성격이 다양하니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하필이면 철이 앞에서 "보통 인간들도 숏다리도 있고 안짱다리도 있고..." 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철이를 은근히 열받게 만든다. ^^;;
이런 철이의 외모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도 코믹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예를 들어 27회 '눈의 나라의 귀자모신(겨울 나라의 모정)' 에서는 철이가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한다.
이 회차에서 나오는 별은 추위와 굶주림이 만연한 곳인데, 어떤 엄마가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 철이를 잡아먹으려 한다. 그런데 사람이 같은 사람을 잡아 먹으러 한다는 잔혹한 상황에서도, 그 엄마가 딸에게 하는 말이 정말 웃기다. "오븐 상태가 별로 안 좋구나. 그래도 20분 정도 지나면 그 꼬마애 정도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질거야. (중략) 생긴 게 이상해서 더 잘 구워야겠다. 뼈는 나중에 박제 가게에 내다 팔면 되겠지만 다리가 짧아서 얼마 안 쳐주겠구나." 그야말로 철이의 굴욕이다. ^^;;
그런가 하면 68회 '호기심의 별' 에서는 지능을 가진 '호기심' 이라는 이름의 별이 이름값 하느라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 못 한다.
문제는 이 호기심이라는 게 안 좋은 쪽으로 발달한 호기심이라는 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옷을 벗겨 겉모습을 구경하는가 하면 아예 해부해서 몸속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철이 일행도 호기심에게 붙잡히는데, 999호의 차장이 워낙 독특한 모습이다 보니(투명인간이라 노랗게 빛나는 눈만 빼놓고는 몸이 안 보임.) 호기심에게 찍혀서 옷을 다 벗어야 할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차장은 투명한 자기 몸을 남에게 보이는 걸 지독히 싫어하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고, 그런 차장을 위해 철이가 대신 옷을 벗어부치고는 어디 마음껏 보라며 소리를 친다. 그런데 살신성인의 자세로 나선 철이에게 호기심이 하는 말은 "넌 보고 싶지 않다. 보기 흉하고 지저분한데다 별로 호감이 안 간다" 다. ^^;;
"볼만하다.
감자 삼형제가 뭉쳐서 감자볶음 만드냐?"
둥근 얼굴과 주먹코 때문인지 철이 얼굴이 감자에 비유되는 경우도 있다.
31회 '노발대발 별' 에서 철이가 총에 맞아 다치는데 어떤 가족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참고로 이 가족은 전부 외모상으로 철이형 인간에 속함. ^^;;) 이 별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이 식구도 다혈질이라 툭하면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주먹질을 해대지만, 사실은 마음씨가 무척 따뜻한 시람들이다.
그런데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철이에게, 그 집의 두 아들 중 하나가 한다는 소리가 "안녕, 감자돌이." 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아이나 그 형제도 모두 감자처럼 생김. -.-;;) 나중에 두 아들과 철이가 무척 친해져서 한 덩어리가 되어 장난치는 걸 보고, 아이들 엄마가 하는 말도 정말 재미있다. "볼만하다. 감자 삼형제가 뭉쳐서 감자볶음 만드냐?" 원래 대사가 이런 건지 아니면 자막 만든 이가 유머 감각을 발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
짖궂거나 불량한 표정도
아주 잘 소화해내는 철이.
그런데 둥글둥글 귀엽고 수더분하게 생긴 철이지만, 짖궂고 불량한 표정도 꽤나 잘 어울린다.
72회 및 73화 '대 암흑성운 아프리카' 에서 철이, 메텔, 차장은 이상한 종족에게 납치되어 해부실험 대상이 된다. 차장이 첫 번째 실험 대상자로 찍혀서 본의 아니게 몽땅 벗게 된다. 실험실이 어두컴컴해서 철이나 메텔은 차장의 벌거벗은 몸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철이는 차장이 자기 몸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걸 알고, 그 와중에도 장난기가 발동해서 차장 몸을 만져보기라도 하겠다며 다가선다. 이 때 철이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런가 하면 103회 및 104화 '안드로메다의 아라비안 나이트' 에서는 도둑떼를 이끄는 여자 두목이 철이와 메텔을 붙잡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러자 메텔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 속에 자신과 철이를 끼워넣어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사기꾼으로 나오는 철이의 표정이 가관이다.
정리하자면 철이의 외모는 '감자돌이 + 불량한 표정' 이다 .
그러니 합쳐서 말하면 불량감자(!)라고 할 수 있다. 단, 매우 귀엽고 정겨운 불량감다. ^^
◎ 성격
철이의 성격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진국(!)이다...!
선량하고 남에 대한 배려심이 깊다. 그래서 때때로 무모할 정도로 겁없이 나서기도 하고 거칠게 굴 때도 있지만, 안타까운 처지의 사람을 볼 때면 자주 눈물을 보이곤 한다.
48회 '영원한 전투 실험장(후편)' 에서는 전쟁용 소모품으로 동원된 젊은이들의 비극이 나온다.
두 별의 젊은이들이 고향에서 납치되어 관광객을 위한 전쟁에 동원되어, 서로에게 아무 원한이 없는데도 서로 죽고 죽이는 비참한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한 젊은이의 주도로 한 마음이 되어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몰살당한다.
반란을 주도했던 청년과 친해졌던 철이는, 999호를 타고 떠나면서 메텔의 위로에도 슬픔을 누르지 못 하고 객실을 뛰쳐나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은하철도 999의 각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 항상 나오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메텔은 알고 있다. 철이는 자기 일로는 좀처럼 울지 않으려 애쓰면서 다른 사람 일로는 눈시울을 적신다는 것을... 철이는 믿고 있다. 친구를 위해 운다는 것은 조금도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철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아이...
그리고 철이는 자신의 외모가 볼품없다는 걸 알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62회 '밤이 없는 도시(밤이 없는 별)' 에서는 원래 착하지만 흉칙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서운 괴물로 오해받는 용 '헤론' 이 나온다. 헤론이 못생긴 자기 얼굴을 철이에게 보이게 된 걸 부끄러워 하자, 철이는 "신경쓰지 말라구. 웃기게 생기기로는 피차일반인데 뭐. 남자는 얼굴이 아니라 하트(마음), 하트라구!" 하며 호방(!)한 모습을 보인다. 철이가 헤론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한 이 말은, 사실은 철이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나이가 어리고 외모도 볼품없지만, 툭하면 여러 누님(!)들과 이모님(!)들의 목표물이 된다.
기나긴 여행 중에 이 별 저 별에 사는 큰누나뻘 혹은 이모뻘 되는 여자들이 철이를 납치해서 같이 살 것을 강요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터진다. 다 큰 여자들이 10살 밖에 안 된 아이에게 집착하는 걸 보면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 여자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되기도 한다.
철이를 납치하는 여자들이 무슨 변태라서 어린 아이에게 집착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기계인간인데,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젊음을 얻었지만 행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나긴 세월 속에서 외로움과 무료함에 몸부림 치며 살았다. 그러다가 따뜻하고 순수한 성격의 철이를 보고, 예전에는 자신들도 철이처럼 피와 살이 통하는 인간이었음을 떠올리면서 철이에게 집착하게 된다. 즉, 그 사람들에게 철이는 그냥 아이가 아니라, 자신들이 잃어버린 인간성과 인간으로서의 삶의 상징 같은 것이다.
물론, 단점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라 철이 성격에도 흠이 있다.
다혈질이라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기 일쑤인데다가 호기심까지 강하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골치아픈 일에 휘말리거나 아예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메텔이 같이 여행했던 많은 소년 중에서 가장 대단한 사고뭉치였는지도... ^^;;)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와 메텔이 위험에 빠지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나쁜 사람(999호의 승차권을 훔치려는 사람 또는 독재자이거나 성격파탄자라서 괜히 시비 걸며 해치려는 사람)에게 공격받는 경우다. 이런 경우야 상대방이 작정하고 달려드니 철이와 메텔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또 하나는 철이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다. 호기심이 넘치는 철이가 메텔이나 차장의 충고를 흘려듣고 조심성 없이 움직이거나, 자신과 상관 없는 일에 정의감 내세우며 함부로 끼여들다가, 위험한 일에 휘말리곤 한다. 그나마 사람 목숨이 걸렸다든지 하는 심각한 경우야 철이가 두 팔 걷어부치고 나서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연인 간의 문제 같은 시시비비 따지기 곤란한 일에까지 끼여드니 문제다. (어린 아이가 왜 그렇게 남의 연애사에 잘 끼여드는지... -.-;;)
(위) 헌신적인 연인을 두고 떠나는 남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철이.
(아래) 다른 여자를 짝사랑하느라 자기를 짝사랑하는 여자를 귀찮아 하는 남자에게 따지는 철이.
그리고 아직 어린 탓인지, 아니면 가난하게 살아서 습관이 안 된 탓인지, 목욕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메텔이 목욕하라고 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거나 피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목욕을 하도 안 하려고 해서, 메텔이 철이를 욕실에 가두고 목욕 끝내기 전에는 문을 안 열어주겠다고 한 적도 있다.
53회 '거울 나라의 철이' 에서는 철이와 쌍둥이처럼 닮은 소년이 등장한다. 생김새만 빼다박은 게 아니라 옷차림까지 똑같아서, 항상 주도면밀한 메텔조차 그 소년을 철이로 착각하고 숙소에 데려갔을 정도다. 그런데 메텔이 목욕하라고 하자, 그 소년은 철이와는 다르게 기뻐하며 당장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메텔은 평소 철이와 다른 모습에 의아해 하면서도, 어쨌거나 철이가 목욕하는 것에 저항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목욕을 싫어하는 건 철이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데, 그 소년이 순순히 목욕을 할 때 철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어야 한다. ^^;;
◎ 트라우마
10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눈앞에서 엄마가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봤으니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철이는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엄마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 한 채, 혼자서 계속 길을 가야 했다. 반드시 살아남아 기계인간이 되어 부모 몫까지 오래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유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엄마의 죽음은 철이에게 충격으로 남기 보다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철이는 여행 중 자식에게 헌신적인 부모를 만날 때면 으레 엄마를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물론 기계인간들의 횡포를 볼 때마다 기계인간 손에 죽은 엄마를 떠올리며 분노하기도 하지만, 철이가 죽은 엄마에게 지닌 감정 대부분은 그리움이다.
엄마의 죽음, 메텔과의 만남, 999호에 몸을 싣고 시작한 여행 등 철이의 일생을 바꾸어 놓을만한 큰 사건들이 겨우 하루 이틀의 짧은 시간 동안 연달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끔찍한 죽음에 대한 충격이 어느 정도 희석되었던 것 같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충격에 잠겨 있을 여유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철아, 너는 엄마 아빠 몫까지
오래 살아야 해. 엄마 아빠 몫까지..."
그리고 엄마의 유언은 철이가 위험천만한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철이는 여행 중 몇 번이나 위험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다. 그리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게 과연 진정한 행복인가 하는 의문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기계인간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없다. 기계인간이 되는 게 엄마의 유언이기 때문이다. 철이에게 엄마의 유언은, 여행 중 터지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기계인간에 대한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기계몸을 준다는 별로 여행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의 원천인 셈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엄마의 죽음이 철이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여행 중에 온갖 일을 다 겪다 보니 엄마가 살해당하는 걸 직접 본 상처를 곱씹을 시간조차 없었을 뿐, 사실 철이의 마음 속에는 엄청나게 큰 상처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악랄한 기계인간들이 그 트라우마를 건드리면서, 철이가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성을 잃고 학살(!)에 가까운 행동을 저지르는 일이 생긴다.
14회 '이중행성의 라라' 에 나오는 별은 지구보다 기계화가 훨씬 진전되어 기계인간 아닌 사람이 없다시피 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인간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하다. 그래서 메텔은 철이에게 그 별에서는 무시를 당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런데 철이와 메텔이 음료수를 마시려고 식당에 들렸다가, 다른 손님들(물론 모두 기계인간)에게 보통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저 무시당하거나 모욕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기계인간들은 철이를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메텔 주위를 에워싸며 "너도 살아 있는 인간이지? 박제해서 거실에 장식하면 좋겠는데.", "아니, 가죽을 벗겨서 걸어놓는 게 낫겠어." 같은 끔찍한 위협을 하며 해코지를 하려 든다.
철이는 총솜씨가 뛰어나고 성격도 다혈질이지만, 적이라고 해서 함부로 살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해치려던 적에게까지 동정심을 보이다가 당할 뻔한 일이 몇 번이나 있다. 하지만 이 때만큼은 말 그대로 폭주(!)해서 그 자리에 있는 기계인간들에게 인정사정 없이 총을 쏜다. 철이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게 된 메텔조차 경악할 정도로 이성을 잃고 닥치는대로 죽인 것이다. 그리고 그걸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장식장에 진열되어 있는 술병까지 몽땅 쏘아 깨뜨려 버린다.
메텔을 해치려고 다가서다가
이성을 잃은 철이에게 몰살당한 기계인간들.
철이가 평정심을 잃고 날뛴 이유는 엄마의 죽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회 '출발의 발라드' 에서 기계 백작이 철이 엄마를 죽인 후 한 말이 "굉장히 아름다운 인간이다. 박제로 만들면 딱 좋겠군." 였다. (TV판에서는 철이 엄마가 박제가 되었겠구나 하고 짐작케 하는 앞의 대사만 나올 뿐, 실제로 박제된 모습은 안 나옴. 하지만 원작 만화나 극장판 1기에서는 다리 부분이 잘려나가고 눈은 제거된 박제가 되어 벽에 걸린 철이 엄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옴.)
기계인간들이 경솔히 내뱉은 박제니 가죽이니 하는 말 때문에, 철이는 너무 큰 상처라 감당하지 못 하고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엄마의 비참한 죽음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가 살해되고 시신마저 뻬앗길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죄책감도 한꺼번에 터졌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가 없는 이상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 메텔마저 엄마처럼 잃을 수 없다는 절박감과 분노도 한몫 했을 테고...
어떻게 생각하면 메텔을 해치려던 기계인간들은 지독히 운이 없었던 셈이다.
메텔을 위협하더라도 철이 엄마의 죽음과 상관없는 다른 말을 했더라면, 최소한 목숨 정도는 건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고 많은 말 중에 왜 박제를 하느니 가죽을 벗기느니 하는 말을 해서는...
현실에서도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시비가 붙어 큰 사고로 번지는 경우가 있다. 말을 할 때는 앞뒤 생각해가며 해야지, 함부로 내뱉았다가는 저 세상 갈 수도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
◎ 능력, 특기
위에 쓴 것처럼 철이는 대단한 총솜씨를 보인다.
하지만 철이의 나이나 성장 환경을 생각했을 때 사격술 같은 걸 배웠을 리 없다. 그런데도 1회 '출발의 발라드' 에서 메텔에게 빌린 기관총으로 엄마를 살해한 기계 백작 일당을 찾아가 모조리 죽여버린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사격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여행 중에 산전수전 겪으며 총을 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1급 사격 실력을 갖추게 된다. 오죽하면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패러디 한 89회 '건맨의 진혼가(슬픈 총잡이의 노래)' 에서는, 서로 대립하며 툭하면 총싸움을 벌이는 두 집단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철이의 총솜씨에 감탄해서 스카우트(!)하려고 할 정도다. (여보시오! 10살짜리 아이를 총잡이로 고용하려 들다니, 이건 아동학대요...! -.-;;)
철이의 총솜씨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코스모 드라군' 이라는 총이다.
참고로 절대로 드라곤(dragon)이 아니라 드라군(dragoon)이다...! 다만, 더빙판의 대사나 자막판의 자막에서 코스모 드라군이라는 이름 대신 '전사의 총' 또는 '코스모 건' 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3회 '타이탄의 잠든 전사' 에서 철이가 납치당한 메텔을 구하러 가겠다고 하자, 어떤 할머니가 철이에게 코스모 드라군을 줬다. 뛰어난 우주 전사였다는 할머니 아들이 쓰던 총인데, 그 아들은 이미 죽었다면서 철이에게 물려준 것이다. (TV판에서는 할머니의 아들이 누군지 전혀 나오지 않지만, 극장판 1기에서는 하록 선장의 둘도 없는 친구 '토치로' 인 것으로 나옴.) 드넓은 우주에 단 4대 밖에 없으며 진정한 용기를 가진 전사만이 다룰 수 있다는 코스모 드라군 덕분에, 철이는 여행 중 여러 번 위기를 넘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철이의 사격술은 점점 더 좋아진다.
우주에 오직 4대만 있다는
전사의 총, 코스모 드라군...!
그런데 코스모 드라군 관련해서도 레이지버스에 설정충돌이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또 다른 작품 '퀸 에메랄다스' 에서는 코스모 드라군이 전부 5대라고 나온다. (총이 그새 새끼라도 쳤나... -.-;;) 그리고 은하철도 999에서는 메텔이 코스모 드라군 소유자가 아닌 것으로 나오는데, 퀸 에메랄다스에서는 메텔도 한 대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런 것도 능력이나 특기라고 할 수 있는지 좀 애매하지만, 철이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메텔이야 999호를 타고 다니는 생활을 수십 년을 했는지 수백 년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여행 베테랑(!)이다. 게다가 메텔의 과거를 다룬 외전(메텔의 10대 시절을 다룬 '메텔 레전드' 와 '우주교향시 메텔')을 보면, 메텔은 본격적으로 소년들을 기계제국으로 인도하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도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처지다. 그러니 메텔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과 전투 실력으로 온갖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해 철이는 999호를 타기 전까지 그저 가난하게 살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메텔과의 여행 중에 대단한 적응력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92회 '해저도시의 최후' 에서 비상사태 때문에 999호가 예정시간보다 빨리 출발해야 하는데, 철이가 돌아오지 않아서 메텔이 걱정한다. 그러자 차장이 "철이씨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살아남는 불사조 아닙니까?" 라며 메텔을 안심시킨다. 차장의 말이 100% 맞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공이 죽어버리면 큰일난다는... ^^;;)
마지막으로,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철이의 가장 강력한 능력이자 특기는 '따뜻한 마음' 이다.
999호가 어떤 별에 머무는 시간은 그 별의 자전주기, 즉 그 별의 하루다. 그래서 지구 시간으로 짧게는 겨우 한두 시간에서 아무리 길어봤자 이 주일 정도다.
철이는 그런 짧은 시간 동안에도 각 별에서 만난 사람들과 우정과 신뢰를 쌓는다. 서로를 제대로 알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지만, 철이의 진실하고 선량한 마음이 상대방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적조차 감동시켜서 철이 일행이 위기상황에서 헤어나오는 일도 몇 번이나 있다.
54회 및 55회 '끝없는 여름 이야기' 에서도 철이의 다정한 마음씨 덕분에 모두가 위기를 모면한다.
이 회차에서 철이 일행은 막 부화한 곤충인간 종족의 아이들에게 잡아먹힐 뻔한다. 처음에는 자신들도 살아야 하니 아이들을 없애려 했던 철이지만, 차마 어린 생명들을 해치지 못 한다. 보다 못한 메텔이 대신 나서려고 하자 그것마저 말린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곤충인간의 아이들이 철이 일행에게서 물러난다. 모든 일이 끝난 후에야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곤충인간의 여왕은 원래 철이 일행을 자기 아이들의 식량으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철이의 행동을 보고서 아이들에게 철이 일행을 해치지 말라고 텔레파시를 보낸 것이다.
뒷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은하철도 999(TV판) 1 - 은하철도 999 훑어보기 / TV판과 극장판 비교(http://blog.daum.net/jha7791/15791406)
은하철도 999(TV판) 3 - 철이(호시노 테츠로) 下(http://blog.daum.net/jha7791/15791411)
은하철도 999(TV판) 4 - 메텔 上(http://blog.daum.net/jha7791/15791396)
은하철도 999(TV판) 5 - 메텔 下(http://blog.daum.net/jha7791/15791412)
은하철도 999(TV판) 6 - 차장(http://blog.daum.net/jha7791/15791393)
캡틴 하록(キャプテンハーロック, Harlock : Space Pirate) / 은하철도 999(銀河鐵道999)(http://blog.daum.net/jha7791/15791042)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999展 - 발표 40주년 기념 전시회(http://blog.daum.net/jha7791/15791386)
은하철도 999 TV판 엔딩곡 青い地球(푸른 지구)(http://blog.daum.net/jha7791/15791395)
롯데리아 은하철도 999 피규어 뒤늦게 득템...!(http://blog.daum.net/jha7791/15791466)
코스모 워리어 제로(Cosmo Warrior Zero) 오프닝곡 - 時代(http://blog.daum.net/jha7791/15791473)
은하철도999 갤럭시 오디세이 展 -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http://blog.daum.net/jha7791/15791506)
은하철도 999 실사 라이브 드라마(http://blog.daum.net/jha7791/1579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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