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유기견 집 / 미세먼지 속 일몰

Lesley 2017. 3. 22. 00:01


  한동안 잠잠한 것 같았던 미세먼지가 요즘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뿌연 하늘을 보면 실내에만 있고 싶지만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다음에야 어디 그렇게 살 수 있나...  그리고 작년 하반기에 부쩍 늘어난 살 때문에라도 활동량을 늘여야 한다. ㅠ.ㅠ  그래서 지난 토요일 오후에 미세먼지가 어느 정도 걷혀서 희뿌옇던 하늘 색깔이 탁하게나마 푸르스름해진 틈을 타 산책 겸 운동 겸 해서 나갔다. 


  그런데 평소 안 다니던 길을 걷다가 뜻밖에도 개집을 발견했다.

  그 길은 분명히 인도이기는 한데, 근처에서 아파트와 대형마트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라 먼지가 펄펄 날리고 시끄러워서 공사 관계자들 빼고는 다니는 사람이 없다.  그런 길에 누군가 유기견을 위해 만든 집이 하나 덩그러니 서있다.    



이 집 주인인 견공은 출타 중인지 안 보임.



  처음에는 유기견에게 집을 마련해 준 사람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는데, 그 다음에는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재개발 때문에 집과 주인을 잃어버린 개라니...  주인이 자기도 갈 곳이 마땅찮은 상황에서 개까지 돌볼 여력이 안 되어 일부러 개를 버린 건지, 아니면 혹시라도 강제철거 와중에 개를 잃어버린 건지...

  관리자가 있다고 써놓았는데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일까?  정말로 관리자가 있어서 밥과 물을 챙겨주는 건지, 아니면 나쁜 사람이 개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엄포용으로 써놓은 건지...


  안 좋은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창곡천 쪽으로 가는 사이 해가 지기 시작했다.

  오전보다는 미세먼지가 한결 옅어졌다고는 해도 역시 공기 상태가 좋지는 않았나 보다.  평소 같으면 햇빛이 퍼져서 해의 형태를 알아보기도 힘들고 해의 색깔도 흰색과 노란색이 섞여 보일 뿐이다.  그런데 이 날은 뿌연 미세먼지 덕분에(?) 하늘을 배경으로 한 해의 형태가 너무 또렷해 보였고 색깔도 강렬한 주홍빛으로 보였다.   



육안으로 볼 때보다 해가 훨씬 작게 찍혔구만...



  도시의 일몰이 농촌의 일몰보다 아름다운 이유가 대기에 오염물질이 많아서라고 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염물질이라는 건 사람에게나 자연에게나 하나도 좋을 게 없는 것인데, 그런 더러운 물질이 대기 중에 퍼진 채 햇빛을 반사해서 일몰 풍경을 보다 찬란하게 보이게 한다니...

  그래도 미세먼지가 많이 옅어졌다고 생각해서 산책 나온 건데, 저녁놀이 퍼진 하늘이 평소보다 뿌옇게 보이는 걸 보니 약한 내 호흡기가 걱정되었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겁은 많아가지고... -.-;;)  모처럼 삘(!) 받은 김에 오래 걷기로 했던 계획을 바꿔서 안전한 집으로 고고씽~~!  집으로 돌아가다가 놀이터 주변에서 창곡천 방향을 돌아보니 해진 뒤의 하늘이 예뻐서 한장 더 찍었다.  성능이 꽝인 폰카지만 그럭저럭 찍힌 듯하다.



창곡천 주변 놀이터의 일몰 직후의 풍경.

(매직아워 사진? ^^)



  예쁘게 물든 풍경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로 심란한 건 심란한 거고, 이제는 이 동네에 정을 좀 붙였구나 하는 생각.  작년 늦봄에 여기로 이사올 때만 해도 정말 심란했다.  쭉 살던 서울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교통도 먼저 살던 동네보다 불편하고, 게다가 무슨 동네가 아파트와 공사장만 가득하고 정작 편의시설은 하나도 없나 했다.  그런데 이제는 공사가 마무리 된 곳들도 많고(그래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공사 중...), 또 이런저런 것들이 많이 생겨서 사람 사는 곳 같아졌다. (그 동안은 짐승 사는 곳이었던가? ^^;;)

  그래, 어디든 살다 보면 정이 붙게 마련이다.  그리고 정 붙이고 살면 그게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