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잡담 - 눈

Lesley 2017. 1. 27. 00:01


  지난 주에는 두어 차례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밥을 먹기 전 내 방에 난 큰 창으로 보이는 풍경부터 찍었다.  경비실에서 눈을 치우기 시작하면, 설경이 예쁘기는 커녕 오히려 지저분해질테니 서둘러 찍은 것이다. 

 

 

때늦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위기? ^^



  지금 사는 집이 1층이라는 걸 마음에 안 들어했는데, 바깥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좋다.

  먼저, 계절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화단 풍경을 보며 어수선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여러 색깔의 꽃, 대추나무에 굵직하게 매달린 대추, 산딸나무에 날아와 열매를 쪼아먹는 알록달록한 새, 나무 위로 쌓인 눈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럭셔리(!)하게 산다는 환상도 누릴 수 있다.  우리집 외벽을 둘러싼 아파트 화단을 보면서 따끈한 커피나 차를 마시면 '나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고급스런 별장에서 살고 있어.' 하는 기분이 든다. ^^



어린 딸을 눈썰매에 태워 끌어주는

착한 루돌프 사슴 아빠. ^^

(요즘은 일반 가정에도 눈썰매가 있구나...)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울에도 겨울에는 많이 춥고 눈도 많이 왔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연탄재 굴리며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아이들이야 그렇게 신나게 놀 수 있었으니 눈 오는 게 마냥 좋았지만, 어른들에게는 꽤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 시절 겨울철마다 마당과 골목에 쌓인 눈을 치웠던 일을 지겹다는 투로 말씀하신다.


  그 때는 겨울철에 어린이용 부츠를 신고 다녔다.

  눈이 많이 와서 지금처럼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 눈이 신발 속으로 스며들어 발이 젖게 되기 때문이다.  발목 위로 올라오고 안에 털까지 달린 어린이용 부츠는 틀림없이 꽤 따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툭하면 동창에 걸려(어른들은 보통 '얼음이 배겼다' 라고 표현했음.) 고생했는지 알 수 없다.  그 시절의  겨울이 그 만큼 추웠다는 뜻일까?

  그리고 어린이용 부츠하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신발 바닥 가운데에 톱니가 난 쇠붙이가 달려 있어서, 빙판에서 넘어지는 걸 막아줬다. (1980년대의 기능성 신발. ^^)  몇 년 전 모처럼 서울에 폭설이 쏟아져 야단이 났을 때 미끄럼 방지용으로 많이 팔렸던 '도시형 아이젠' 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


  그렇게 매섭고 눈이 많이 왔던 겨울이 언제부턴가 바뀌었다.

  같은 중부지방이라도 강원도 쪽이나 눈이 펑펑 쏟아질 뿐, 수도권에서는 한 해 겨울에 겨우 서너 차례 눈을 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나마 그 눈도 풍성하게 내리는 게 아니라 어설프게 내려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리거나, 땅에 좀 쌓이더라도 어느 정도의 제설작업으로 금세 치울 수 있는 수준일 뿐이다.  틀림없이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일 것이다.

  세월 따라 변한 것은 겨울 날씨만이 아니다.  나도 겨울 날씨만큼이나 변했다.  눈이 내리면 예쁘다고 감탄하며 그저 즐거워하던 소녀감성(?)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밖에 나갔다가 넘어지지 않을까 혹은 눈 때문에 버스 타면 길이 많이 막히겠네 하는 걱정만 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눈을 좀 특별했다.

  모처럼 눈 같은 눈이 내려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이번 눈이 주말에 집중적으로 와서, 집에 가만히 앉아 눈을 보며 감상적인 기분에 젖을 여유가 있었다.

  앞으로도 가끔씩만,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때에 맞춰서 눈이 내려주면 좋겠다.  어느 때고 반가운 마음으로 눈을 맞을 생각은 안 하고, 눈에게 사람들 사정에 맞춰 내려달라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