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전철 스크린도어의 시 -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Lesley 2017. 3. 1. 00:01


  서울 전철의 스크린도어에서 시를 볼 수 있게 된 지 꽤 오래 되었다.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보고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동시에 괜찮은 아이디어란 생각도 했다.  그 전에는 전철이 오는 걸 기다리며 멀뚱멀뚱 허공만 쳐다보거나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괜히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런데 삭막한 도시 생활 중에 시 한두 편이라도 보게 되니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는 기분이었다.

  스크린도어에 시가 생기고 얼마 후 스마트폰이라는 신통방통한 녀석이 생겼다.  그래서 이제는 전철 기다리는 동안 심심할 일은 없다.  그래도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 지금도 전철을 기다릴 때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스크린도어의 시를 훑어보곤 한다. (물론 전철을 탄 순간부터는 스마트폰으로 시선 고정~~! ^^;;)  그렇게 스크린도어의 시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특별히 신기할 것도 없게 되었는데...


  지난 2월의 언제였던가, 전철을 타러 플랫폼으로 내려가서 습관적으로 정면의 스크린도어를 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시의 제목이나 시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라는 시의 첫구절이었다.

  그걸 보고서 순간 멍해졌다.  꽃게가 간장 속에 들어있다면 그건 간장게장이잖아? -.-;;  아니, 간장게장 가지고 지은 시라니?  물론 이건 시의 소재로 삼아도 되고 저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내가 게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장게장을 차별대우(!)하는 건 더욱 아니고...  그래도 이건 좀 아닌데 하면서 시 전체를 읽어봤는데... 





  다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마리 어미 꽃게가 독한 간장을 뒤집어쓰고 죽어간다.  그 와중에도 자기 품 안에 든 자식(알)들만큼은 간장에게서 지켜보겠다고 몸부림치다가, 아무리 애써봐야  자식들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식들이 적어도 두려움은 느끼지 않고 죽을 수 있도록, 자식들을 덮치는 간장의 검은색 속에서 이제 저녁이 되었으니 불 끄고 자자고 가만히 말을 건낸다.

  이 시 왜 이렇게 슬프고도 감동적이냐...!  간장게장이란 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반찬일 뿐인데(그나마 나는 해산물을 안 좋아해서 먹지도 않는 반찬인데...!), 안도현 시인은 반찬 가지고도 이렇게 감동적인 시를 짓는구나...!   어디선가 읽었는데, 시인은 보통 사람과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말 그 말이 맞구나...   


  시를 읽고 나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두 가지가 생각났다.

  먼저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 '마루타' 속 한 장면, 즉 독가스 실험에 끌려나온 중국인 모녀가 떠올랐다.  다른 생체실험 대상자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거나 생체실험을 담당한 일본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다가 죽었다.  그런데 그 모녀 중 엄마는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서너살짜리 딸이 공포에 질리지 않도록 무언가 다정하고 일상적인 말을 건네며 아이를 끌어안고 조용히 죽는다.  아이는 엄마 품 속에 파묻혀 엄마보다 독가스의 영향을 느리게 받았기 때문에, 엄마가 숨을 거둔 후에도 잠시나마 더 오래 꿈틀거리다가 죽어간다.  

  그리고 영화 '타이타닉' 에 나온 겨우 몇 초 밖에 안 되는, 그러나 무척 인상적이었던 장면도 생각났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며 인간 군상의 온갖 모습이 나타난다.  누구는 승객과 선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도망치고(그러고 보니 2014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과 놀랄울 정도로 비슷함. -.-;;), 누구는 뇌물을 주고 구명보트에 탈 자기 차례를 앞당기려고 하고, 누구는 공포에 질려 떨면서 울고, 누구는 의연한 태도로 죽음을 맞는다.  그 중에는 어린 남매를 선실 침대에 눕힌 채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재우는 엄마도 있다.  이 엄마 역시 탈출할 기회가 없음을 알고, 살 길 찾겠다고 아이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겁에 질리게 만들어 얼마 안 남은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게 해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시 본문을 다 읽고서야 시인과 제목을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이다...!

  이게 왜 놀라운 일이냐 하면, 지금까지 스크린도어에서 많은 시를 봤지만 유명한 시인의 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에 관련 기사를 스치듯 읽은 적이 있는데, 스크린도어의 시는 전업 시인의 작품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작품(즉, 취미 생활로 지은 시)이 더 많다고 한다.  전철이 시민의 발이니 시민의 작품을 전철역 스크린도어에 전시하겠다는 취지다.  분명히 좋은 취지이기는 한데, 검증(?)되지 않은 작품들이다 보니 한편에서는 작품의 질에 대해 안 좋은 말도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유명한 시인의 작품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된 일인가 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서울시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수용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애송시로 많이 알려진 유명 시인의 작품 비율을 대폭 높이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시 뿐 아니라 외국시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시라도 한글시 위주였던 것에다가 한시까지 더해서, 함께 스크린도어 시로 선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전철을 탈 때면 스크린도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될 듯하다.

  너도 나도 바쁘고 빡빡하게 사는 세상인데 잠깐이라도 윤동주, 정지용, 백석의 멋진 작품을 볼 수 있다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도어를 시로 장식하자고 처음 계획을 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휴대전화 번호를 알 수 있다면 녹차라떼 이모티콘 하나 쏘아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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