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똘이장군의 추억

Lesley 2017. 2. 9. 00:01


  지난 달에 '촛불을 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글쓴이는 동아시아 전문가인 미국인 교수인데(현재 경희대에 재직하고 있음.), 본명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이고 한국 이름은 '이만열' 이다.  중문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일본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만큼, 처음에는 중국과 일본 위주로 동아시아 연구를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한국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국어를 배웠고, 2007년부터는 한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나 학술기관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 글쓴이가 요즘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바를 '촛불을 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라는 제목의 글로 쓴 것이다.


  한 친구가 자신이 활동하는 밴드에서 위의 글을 보고 감명받아, 링크를 복사해 나에게 전달했다.

  나 역시 읽어보고서 '이런 좋은 글은 마땅히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 는 생각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했다.  평소 같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대충 훑어보거나 바쁘다며 아예 안 읽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의외로 여러 사람이 꼼꼼히 읽고서 짤막한 독후감(?)을 답장으로 보내왔다.


  다만, 이 글이 이 포스트의 주제가 아니라서 여기까지만 언급할테니, 관심 있는 분은 다음 링크를 클릭해 읽어 보시기 바란다.  ☞ 촛불을 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http://thetomorrow.kr/archives/3533)

  글쓴이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를 해서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듯하다.  또한 외부인이라서 한 발자국 떨어진 시각으로 현재 한국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기에 오히려 내부인인 우리보다 더 심도있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정작 한국인들이 당장 발 등에 떨어진 불 끄느라 바빠 미처 생각하지 못 하는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자,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여러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답장을 보냈는데, 그 중 재미있는 답장이 있었다.

  나는 글만 읽느라 글에 딸린 그림은 대충 보고 넘겼는데, 그 답장을 보낸 이는 그림까지 눈여겨 봤던 모양이다.  '김정은 그림이 인상적이다.  똘이장군 이후로 북한을 저렇게 그린 그림을 정말 오래간만에 본다.' 라고 했다.  갑자기 웬 김정은과 북한인가 하면서 다시 그림을 봤더니, 정말 그런 그림이 있다.  바로 아래 그림이 문제의 인상적(?)이라는 그림이다. 

  


페스트라이쉬 교수 및 김기도 작가의 공동작.
(출처 : http://thetomorrow.kr/archives/3533)



  위의 그림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이고 북한에게 위협당하는 우리나라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북한 그림이 여러가지로 인상적이다.  그 답장에 나온 그대로, 똘이장군 이후로 북한을 저렇게 그린 그림을 정말 오래간만에 본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록새록 되새겨 보려 한다.      



타잔의 후예 같은 옷차림의 똘이장군...!



  '똘이장군' 은 한 시대를 풍미(!)한 반공 애니메이션이다.

  나는 여지껏 '똘이장군' 이 1980년대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포스트를 작성하느라 알아보니 1970년대에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다만 내가 1980년대에 이 에니메이션을 TV 특선만화(명절이나 공휴일에 해주는 만화)로 봤기 때문에 1980년대 애니메이션으로 착각한 것 뿐이다.. 


  그리고 이건 좀 뜻밖인데 똘이장군을 김청기 감독이 만들었다고 한다.

  1970~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김청기 감독의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표작으로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 가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실사영화(일종의 하이브리드 영화라고 할까? ^^)인 '우뢰매' 도 빼놓을 수 없다.



  어찌되었거나, 가물가물한 나의 기억을 되짚어 복원(?)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물론 오래된 기억이라 틀릴 수도 있음!!!) 


  똘이란 아이는 부모도 형제도 없이 북한에 있는 어떤 산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일단 똘이의 의생활부터 살펴 보자면, 타잔의 패션(?)을 모방한 것처럼 밑단이 너덜너덜한 팬티 한 장만 입고 있다.  그리고 역시 타잔처럼 나무 줄기를 밧줄처럼 늘어뜨려 잡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닌다.  한 마디로 자연인이다. ^^

  그런데 숙이라는 같은 또래 여자아이를 만나 친구가 된다. (동물하고만 살던 아이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지는 일단 넘어가자... -.-;;)  숙이가 똘이가 사는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온 이유는, 북한 공산당이 나물을 캐오라고 했던가 나무 열매를 따오라고 했던가, 대충 그랬던 것 같다.  어쨌거나 할당량을 채우려고 산에 들어왔다가 무슨 일로 위험에 처한 걸 똘이가 도와준 것이다.  그리고 숙이와 친구가 된 일을 계기로, 똘이는 인간 세상으로 나와 북한 사람들의 참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에서 북한 사람들을 묘사한 부분이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블랙 코미디다. 


  우선, 북한 지배층 중에서 하위급인 듣보잡(!) 공산당원들은 전부 늑대 아니면 여우의 모습으로 나온다.

  어지간한 애니메이션 같으면 차라리 모든 등장인물을 동물 캐릭터로 표현했을 것이다.  가령, 나쁜 공산당원들은 늑대나 여우로, 괴롭힘 당하며 사는 북한 주민들은 토끼나 사슴으로, 주인공 똘이는 멋진 호랑이나 표범으로.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신기하게도 피지배층은 전부 멀쩡한 사람인데 지배층만 동물이다. (혹성탈출의 거꾸로 버전... ^^;;)

  그런데 북한 공산당인 늑대와 여우가 그냥 발가벗고 다닌다. (나름 지배계층이라는 공산당원들이 북한의 일반 주민보다 더 헐벗은 상태라니, 이 무슨...! -.-;;)  더 웃긴 건, 옷은 안 입고 다니면서 따발총이나 채찍 같은 아이템(!)은 들고 다닌다는 점이다.  그리고 늑대와 여우가 따발총과 채찍을 휘둘러 북한 주민들을 위협하며 "일을 해라, 일을...!" 또는 "아니, 이런 반동분자 같으니라고...!" 따위의 대사를 하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웃기다. (북한 동물들은 전부 사람처럼 말을 할 줄 알아서 동물들과 자란 우리의 주인공 똘이도 말을 할 줄 알았나 보다... -.-;;)


  하지만 늑대와 여우가 아무리 웃기다 한들, 역시 최고의 대박은 김일성이다.

  저 위의 포스터 위쪽 오른편에 나오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못생긴 돼지가 바로 김일성이다. 그런데 기억에서 잊혀진 사실 하나를 저 포스터를 보고서야 알았다.  김일성의 두 손이 사람 손이 아니라 돼지 족발(!)이다.  하긴, 돼지에게 돼지 족발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


  결말 부분에서는 똘이가 공산당 늑대들과 돼지를 물리치고 북한 사람들을 구해낸다. 

  그런데 똘이는 맨주먹으로 싸울 뿐인데도, 따발총을 든 늑대 공산당 무리들은 똘이 하나를 제압하지 못 하고 줄줄이 나가떨어진다.  어린 마음에도 꽤나 이상해 보였던 장면이다. (왜 있는 총을 못 쏘고 나무 막대처럼 휘두르기만 하니... ^^;;)  

  돼지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권선징악으로 끝났을텐데 어떻게 되었더라?  똘이에게 죽었던가 아니면 돼지 우리에 갇히기라도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때는 아이들에게 통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래서 똘이장군이 아이들 미술 작품(?)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은 1년에 한두 번씩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그런데 북한 공산당을 늑대 모양으로 그려놓는 아이들이 꼭 있었다.  커다란 망치가 늑대 머리를 내려치는 그림이라든지, 커다란 파란색 손이 빨간색 늑대를 움켜쥐고 있는 그림이라든지...  내 생각에는 그 아이들이 똘이장군에서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이 포스트를 쓰다 보니 내 어린 시절이 재해석된다.

  지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꽤나 독특한 문화체험(!)을 하면서 자란 것 같다.  나중에 블로그에 쓸거리가 떨어지면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1980년대 애니메이션의 기억을 긁어 모아 시리즈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뱀발


  그 시절 본 애니메이션 중에는 '소년 007' 이라는 SF 애니메이션도 있었는데, 이쪽도 똘이장군 못지 않게 설정이 독특했다.

  외계 행성의 여왕이 적에게 쫓겨 혼자 지구로 도망쳐왔는데, 타조알 크기의 알 두 개를 갖고 다니다가 그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알들은 여왕이 낳은 자식들로,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잃어버린 알에서는 남자아이가 태어나고 여왕이 잘 간직한 알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고구려 주몽 신화의 외계 버전...? -.-;;)

  알을 잃어버리는 장면에서 여왕이 너무나 비통해했기 때문에, 그 때는 순진무구했던 이 시청자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엄마와 아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면서 봤다.  그런데 지금 그 때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외계인이 낳은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니, SF와 우리 건국신화를 결합하려는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이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