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EBS 다큐프라임 - 넘버스

Lesley 2016. 10. 25. 00:01

 

  지난 번에 'EBS 다큐프라임' 중 2014년도 방영작인 '문명과 수학' 및 '수학의 위대한 여정' 을 소개한데 이어, 이번에는 2015년도 방영작인 '넘버스' 를 소개하겠다.  EBS 다큐프라임 - 문명과 수학 / 수학의 위대한 여정(http://blog.daum.net/jha7791/15791322)

  사실 이 세 다큐멘터리 모두 수학사 관련한 것이다 보니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흥미롭기만 하다.  수학이라는 지겨운(!) 소재로 이런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세 편이나 만든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한다. ^^

 

  이번에도 지난 포스트처럼 흥미진진한 부분만 골라서 포스팅하겠다.

  '넘버스' 는 5부작인데, 수학 관련 세 다큐멘터리 중 '넘버스' 가 가장 재미있어서 포스팅 할 부분을 고르는데 애를 먹었다.  '넘버스' 가 제일 재미있는 이유는, 다큐멘터리인데도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코믹 드라마, 비극적인 드라마, 에로틱한(?) 드라마 등등.  혹시 EBS 다큐프라임의 수학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세 편의 다큐멘터리 중 '넘버스' 만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정도로 재미있다. 

 

 

  ◎ 1부 - 하늘의 수, π 파이

 

  1부는 기하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 라고 부르는 직각삼각형에 관한 공식의 증명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루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피타고라스가 그리스인이니까. ^^)  그런데 고대 중국에서도 그리스와 별도로 '피타고라스의 정리' 를 알고 있었다.  물론 고대 중국인들은 그것을 '피타고라스의 정리' 라고 부르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이 공식을 '구고현 정리' 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복희여와도'

(복희는 곡척(자)를, 여와는 규(컴퍼스)를 들고 있음.)

 

 

  그리스인이 기하학 연구에 자와 컴퍼스를 쓴 것처럼, 중국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오래 전부터 자와 컴퍼스를 썼다는 사실은 7세기 작품인 '복희여와도' 를 봐도 알 수 있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두 신 복희와 여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인데, 이 그림 속에서 두 신은 각각 곡척(자)과 규(컴퍼스)를 들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와 상관없이 여담으로 쓰자면...

  복희여와도가 우리나라 박물관에 있는 것은 어떤 일본인 덕분(?)이다.   20세기 초에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라는 일본 승려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탐험하다가, 유명한 둔황석굴에서 나온 각종 문화재를 일부는 약탈하고 일부는 밀매해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오타니가 운영하던 절이 파산하면서 그 문화재들은 일본 재벌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재벌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광산채굴권을 얻기 위해서, 그 문화재 중 상당량을 조선총독부에 기증이라는 명목으로(사실상 뇌물로) 바쳤다.

  그런데 훗날 갑자기 8.15 해방을 맞으면서, 조선총독부의 일본 관리들이 급하게 일본으로 돌아가느라 이 문화재들을 챙겨가지 못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얼떨결에 1,500여 점이나 되는 중요한 문화재를 득템(!)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오타니 컬렉션' 이란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고, 일부는 상설전시도 하고 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중앙박물관 3층의 중앙아시아관에 가서 구경하시기를...) 

 

 

 

 

'주비산경' 에 나오는 원과 사각형에 관한 내용.

 

 

  '주비산경' 은 기원전 100년 경에 편찬된 중국의 수학책이다.

  이 책에는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는데, 뜻밖에도 여기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규칙' 이란 말의 유래가 나온다.  '규' 는 위에 나온 복희여와도 부분에 나온 것처럼 컴퍼스를 뜻하는데, 규로 원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칙' 은 자를 뜻하는데, 칙으로 사각형을 그릴 수 있다.  옛날 동양에서는 하늘을 둥글고 땅을 네모지다고 생각했으니, 결국에는 '규칙' 이란 말은 하늘과 땅, 즉 세상의 규범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규칙이란 말이 우리 생활에서 수시로 쓰는 뻔한 말이건만, 이렇게 생각하니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   

 

 

 

주공과 상고의 심오한(!) 대화.

 

 

  중국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황제를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 이라고도 불렀다.

  명색이 하늘의 아들이니, 하늘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어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달력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천체의 흐름을 연구하여 달력을 만드는 작업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신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대단한 일을 할 권리는 오직 황제에게만 있었고, 달력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 자체가 황제의 권위를 높이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높은 수준의 천문학 및 수학 지식이 필요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중국 주나라 시대의 유명한 정치가 '주공' 이 수학자인 '상고' 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주공과 상고의 대화 장면을, 산수가 수려한 곳을 배경으로 해서 신비롭게(!) 연출해냈다. (신비롭다는 말은 다큐멘터리를 직접 봐야 이해가 감.)  이쯤 되면, 정치인과 수학자의 대화가 아니라 이미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 도인들끼리의 선문답이라 할 수 있다.

   

주공 : "하늘은 계단을 밟아 오를 수 없고 땅은 넓어서 잴 수가 없는데, 그 수를 어떻게 알았는가?"

상고 : "그 수는 원과 정사각형에서 나옵니다.  원은 정사각형에서, 정사각형은 곡척에서 나옵니다.  곡척은 구구단으로 계산합니다."

 

  상고의 말인즉슨, 곡척(자) 하나만 있으면 아무리 높은 하늘과 아무리 넓은 땅이라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무교육이란 개념조차 없어서 지금처럼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았던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달력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비법이 있을 거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자 하나만 있으면 계절마다 변하는 태양과 땅의 높이를 재서 달력을 만드는 게 가능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본원리가 간단하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임.)

 

 

 

중국판 '피타고라스 정리' 인 '구고현 정리'.

 

 

  '구고현 정리'의 증명 방법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피타고라스 정리' 의 증명 방법과는 다르다.

  하지만 어쨌거나 고대 중국인들 역시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을 합한 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증명할 줄 알았다.  사는 곳이 어느 나라든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이르렀던 게 아닐까?

 

 

 

'문명과 수학' 에 이어 다시 등장한

멋쟁이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 ^^

 

 

  '문명과 수학' 에 나왔던 패셔너블(!)한 프랑스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 가 다시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독 기하학이 발달했던 것은, 그리스인들이 거의 강박증 수준으로 증명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이나 바빌론인들은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그저 실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반드시 '왜?' 라는 질문을 하며 자신들이 아는 지식이 어떤 경우에라도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수학 공식을 명확히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와 컴퍼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와 컴퍼스를 이용하는 기하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 3부 - 자유의 수, χ 엑스

 

  '넘버스' 5부작 중 이 3부에서 제작진의 연출력이 제.대.로. 폭발(!)한다.

  이 영상물은 분명히 시청자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다큐멘터리이건만, 불과 40분 정도 밖에 안 되는 다큐멘터리 안에 코미디와 비극이라는 완전히 다른 두 장르가 모두 녹아들어가 있다.  EBS 다큐프라임의 제작진들 정말 마음에 든다. ^^

 

 

  먼저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구장산술에 나오는 '방정' 이란 용어.

구장산술에 담긴 소와 양을 이용한 연립방정식 문제.

 

 

 

  지난 포스트에 소개한 '수학의 위대한 여정' 에서 '방정식' 이란 용어의 유래를 설명했다.

  '넘버스' 3부에서는 '방정' 이란 용어가 담긴 중국 한나라 때 수학책 '구장산술' 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방정이란 말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그 책에 담긴 방정식 문제를 하나 소개한다.  그런데 그 소개하는 방법이 무척 코믹하다. 

 

 

 

소값, 양값을 잘 알아보지 않고 덜컥 사서

아내에게 혼나는 남편.

 

 

  어떤 사람이 소 5마리와 양 2마리를 10냥에 샀다.

  그런데 이 사람의 성격이 꼼꼼하지 못 한 편인지, 소와 양의 한 마리 값을 따지지 않고 뭉텅이로 사버렸다.  소와 양의 단가를 모르니, 소와 양을 비싸게 샀는지 싸게 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잔뜩 열받은 아내에게 잔소리 폭탄을 맞으며 쩔쩔매는 신세가 되었다.

 

 

 

'소는 1냥이고 양은 2.5냥이라면 딱 맞겠군.'

'소는 0.5냥, 양은 3냥이면 계산이 맞네.'

'소는 2냥, 양은 공짜인가?' (설마... ^^;;)

 

 

 

  원래 싸움 구경 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게 부부싸움 구경이라, 사람들이 부부를 둘러싸고 구경한다.

  그런데 구경꾼 중에서 탐구심이 강한 몇몇 사람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소 5마리와 양 2마리가 10냥일 경우, 소값과 양값은 각각 얼마일까 하면서...  그런데 경우의 수가 여러 개가 나와서 정답을 알 수가 없다.

  

 

 

여기 또 소값과 양값을 알아보지 않고 샀다가

아내에게 혼나는 남편 등장. ^^;;

 

 

  그런데 아까 그 부부와 비슷한 사정의 부부가 또 등장한다.

  이쪽 부부의 남편도 소와 양의 단가를 모르는 상태로 소 2마리와 양 5마리를 합쳐서 8냥에 샀다. (이 동네 남편들 다 왜 이러시나... ^^;;)  그래서 경제관념 투철한 아내에게 잔뜩 혼나는 중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두 가지.

첫째, 소 5마리와 양 2마리는 10냥.

둘째, 소 2마리와 양 5마리는 8냥.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구경꾼들. ^^;;

 

 

  현대인에게는 너무 간단한 문제다.

  소를 X 라고 하고 양을 Y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방정식이 나온다.  ① 5X + 2Y = 10  ② 2X + 5Y = 8  즉, 우리가 중학교 때 연립방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배운 방정식이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은 조상들이 수천 년 간 쌓아온 지식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기에, 이 문제를 간단하게 느끼는 것 뿐이다.  저 시대에는 방정식은 둘째치고 덧셈이나 뺄셈조차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으니, 이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첫 번째 부부의 경우만 봤을 때는 몇 가지 정답 후보라도 꼽아볼 수 있었는데, 두 번째 부부의 경우까지 함께 생각하려 하자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도저히 계산을 할 수 없다.

 

 

 

 

이 때 멋지게 등장하는 관리.

산가지를 이용해서 소값과 양값을 찾아냄.

 

 

  이 때 관리 한 사람이 폼이란 폼은 다 잡고 등장한다. ^^

  그리고 산가지(주판이 등장하기 전에 계산기구로 썼던 길쭉한 나무 막대기)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소값과 양값을 알아낸다.  비록 현대 수학처럼 간단한 방식은 아니어도, 어쨌거나 이 시대에도 연립방정식을 푸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다음은 비극적인 이야기다.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

(뭐가 이렇게 길고 복잡하냐... ㅠ.ㅠ)

 

 

  2차방정식에 관한 근의 공식이 알려진 후, 유럽의 수학자들은 그 보다 더 높은 차수의 방정식에서도 근의 공식을 찾으려 들었다.

  그렇게 노력하고 연구한 끝에 3차방정식과 4차방정식에 관한 근의 공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에는 5차방정식에 관한 근의 공식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4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발견한 후 무려 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찾지 못 했다.  하지만 수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공식이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서 아직 자신들이 발견하지 못 했을 뿐,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라 여기며 계속해서 찾았다.

 

  그러다가 19세기 프랑스에 '갈루아' 라는 천재 수학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천재 중에는 당대에는 인정 못 받고 불우하게 살다가 사후에야 겨우 인정받아 유명해지는 사람이 제법 많다.  유감스럽게도 갈루아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겨우 20세에 세상을 떴는데, 지독하리만큼 운이 없어서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 했다.

  원했던 대학의 입학시험에는 낙방했고, 아버지는 자살했고, 논문을 써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로 두 번이나 보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두 번 모두 담당자가 논문을 분실했다...!  어떻게 운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잖아도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였고, 또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까지 있었기에, 갈루아는 엄청나게 분노했다. 

 

  당시 프랑스는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투쟁으로 혼란스러웠는데, 갈루아는 공화파 쪽에 서서 혁명에 가담했다.

  갈루아가 위험천만한 혁명에 뛰어든 것은 그 시대 많은 프랑스 젊은이처럼 공화주의가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유 말고도, 남보다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 재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도 한몫 했을 것이다. 

 

 

 

 

결투 전날 밤 정신없이 증명을 완성하려는 갈루아.

(그런데 20살이라고 하기에는

갈루아 역의 배우가 좀 노안임. ^^;;)

 

 

  갈루아 인생의 곡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하필이면 애인 있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 그 여자의 애인에게 결투 신청을 받게 되었다.  어쩌면 자기 인생의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르는 결투 전날 밤(그리고 결국에는 정말로 마지막 밤이 되었음.)에, 갈루아는 잃어버린 논문의 내용을 정신없이 복구하면서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발견한 게 아니라, 황당하게도 5차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다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젊은이가 몇 시간 안 남은 인생을 쪼개어가며 정신없이 증명한 것이 '무언가가 가능하다.' 가 아니라 '무언가가 불가능하다.' 라니...

  이런 기막히고 얄궂은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저 위에 나온 패셔너블한 프랑스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 는 갈루아의 증명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무언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쪽은 차라리 해답만 찾아내면 되기 때문에 쉽지만, 불가능한 것을 증명하는 일은 '모든 시도를 다 해도 안 된다는 것' 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20세에 결투로 삶을 마감하는 갈루아.

 

 

  갈루아가 결투를 하고 죽음에 이르는 장면에서 흐르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방정식을 풀 듯 인생을 풀었으면 더 쉬웠을까요?  (중략)  인생에는 답이 안 나오는 문제가 있지요."  갈루아의 인생은 갈루아가 증명해 낸 '5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다.' 는 사실과 흡사하다.  불같은 성정을 지닌 이 천재 수학자는 짧은 인생 동안 수학에서는 큰 업적을 남겼지만, 결국 5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그의 인생을 행복하고 순조롭게 할 그 무언가는 없다는 것도 알았을테니 말이다.

 

 

 

  ◎ 4부 - 신의 손짓, 0 영

 

  '3부 - 자유의 수, χ 엑스' 가 코미디와 비극으로 이루어졌다면, '4부 - 신의 손짓, 0 영' 에는 엷은 에로티시즘이 담겨 있다. 

 

  먼저번 포스트의 '문명과 수학' 에 이미 나온 것처럼, 0이라는 숫자는 인도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0이 계산법에 이용되면서 현대적인 방정식 풀이법이 가능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0 뿐 아니라 현대적인 방정식 풀이법도 인도에서 태어난 셈이다.

 

  인도는 시와 음악의 나라다.

  지식계급인 브라만은 각종 지식을 가르칠 때 책을 이용하지 않고 암기하는 방식을 썼다.  짧은 내용도 아니고 기다란 내용을 암기하려면, 그냥 밋밋하게 중얼거리는 것보다는 운율과 리듬을 붙여 시처럼 암송하는 게 효과적이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에서 천자문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하고 운율과 리듬에 따라 읽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이 생각하기에는 좀 황당하게도 수학 문제에도 시를 이용했다.

  인도의 경전인 '아타르바 베다' 에 수록된 수학 문제도 시로 되어 있다.  그 수학 문제는 다음과 같다.

 

 

 

한 쌍의 연인이 사랑을 나누던 중

여자가 차고 있던 진주 목걸이가 끊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었기에? ^^;;)

 

 

 

진주알 중 3분의 1은 바닥에, 5분의 1은 침대 위에,

6분의 1은 여자에게, 10분의 1은 남자에게,

6개는 목걸이 실에 남았다.

그렇다면 목걸이의 진주알은 모두 몇 개인가?

(이런 문제가 시로 이루어져 있다니...!)

 

 

 

 

무(無)를 그냥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서양과 달리

인도에서는 무 또한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여

마침내 0을 탄생시켰음.

 

 

  '문명과 수학' 에 이미 나온대로,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 는 0을 계산법에 넣었다.

  0은 덧셈이나 뺄셈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 한다.  3 + 0 은 결국 3 그대로고, 5 - 0 도 역시 5 그대로다.  그러니 어떤 수에 0을 더하거나 빼는 것은, 얼핏 보면 쓸데없는 짓인 것만 같다.  하지만 0을 계산에 넣음으로써 수학계에 혁명적인 일이 벌어졌다.  지금 우리가 쓰는 방정식 풀이법이 가능해진 것이다...!  

 

 

 

처음 볼 때는 방정식에만 신경써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연인들의 발바닥이 눈에 들어오는... ^^;;

 

 

  다시 아까 그 연인들의 진주알 문제로 돌아가서...

  목걸이가 끊어져 흩어진 진주알 중 3분의 1은 바닥에, 5분의 1은 침대 위에, 6분의 1은 여자의 손에, 10분의 1은 남자가, 6개는 목걸이 실에 남았다.  이것을 정리하면 위의 이미지에 나타나는 방정식이 나온다.

  그리고 이 방정식을 풀려면 반드시 0의 개념이 필요하다.  X항은 왼쪽으로 상수항은 오른쪽으로 옮기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0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푼  X의 값은 30이 된다.  목걸이에 있던 진주알 개수는 총 30개인 것이다.

 

  이토록 유용한 0을 포함한 인도의 10진법 체계는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대인이 너무 당연하고 편리하게 쓰는 인도의 숫자(지금 우리는 '아라비아 숫자' 라고 부르지만...)가 유럽에 처음 전해졌다가 널리 보급되기까지는, 자그마치 8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시대는 지금처럼 '이 문화권의 학문이든 저 종교권의 기술이든 그저 우수하고 편리하면 그만이다.' 라는 쿨(!)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139대 교황인 실베스테르 2세.

제르베르 도리악이란 이름의 수도사 시절부터

인도와 아랍의 수학에 빠져들었음.

 

 

  유럽에 아직 0이 보급되지 않은 10세기 말, 일부 유럽 수학자들은 인도와 아랍의 수학책에 몰두했다.

  그런 사람 중에는 훗날 교황이 된 사람까지 있다!   바로 제139대 교황 '실베스테르 2세' 라고 역사에 기록되는 '제르베르 도리악' 이다.  이 사람은 아랍 상인들에게서 구한 아랍의 수학책에서 0이 포함된 10개의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보고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먼저 번 포스트에서 소개한 '히파수스' 가 '피타고라스 학파' 동료들에게 살해된 사연처럼, 학문을 학문 그 자체로 보지 않는 시대에는 같은 시대 사람보다 너무 앞서가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실베스테르 2세의 경우도 그랬다.  기독교 세계의 최고 지위라는 교황까지 된 사람이건만, 단지 이교도의 숫자와 수학에 흥미를 갖고 연구한다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의심을 받았다.

 

 

 

 

사탄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받은 실베스테르 2세.

 

 

  실베스테르 2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안 좋은 소문에 휩싸였다.

  그 시대 유럽 사람들은 이슬람 수학을 그냥 수학 자체로 보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슬람권의 수학은 당연히 이슬람교와 연관이 있는, 다시 말해서 비기독교적인 무언가였다.  그래서 명색이 성직자, 더구나 그냥 성직자도 아니고 교황까지 된 실베스테르 2세가 이슬람 수학에 관심을 갖는 것을 불경하게 여겼다.  심지어 실베스테르 2세가 세상을 뜬 후에도 악마와 결탁한 교황의 무덤을 파헤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실베스테르 2세와 히파수스의 경우를 비교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실베스테르 2세가 교황이라는 대단한 지위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히파수스처럼 평범한 이였다면 히파수스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을 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 동시대 사람들이 이단시하는 연구를 했건만, 서로 다른 최후를 맞았다.

  권력이란 게 물질적으로 부유한 삶을 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연을 접하고 나니, 권력이라는 게 정보를 취득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데에도 엄청난 이점이 되는 것 같다.  '아는 것이 힘이다' 는 말이 있지만, 거꾸로 힘이 있어야 아는 것에 대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나 보다. (역시 출세하고 볼 일이다... -.-;;)

 

 

 

  수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지만 그저 지겹기만 해서 골머리 앓는 이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강추한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해서 원래 수학에서 30점 받던 사람이 두세 달 만에 갑자기 100점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기적의 다큐멘터리로 전세계에 소문났겠지... -.-;;;;)  하지만 수학이 한결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 자신이 살아있는 증거다.  나도 나 자신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참 지난 이 나이에 갑자기 중.고등학교 수학책을 뒤져보고 교양 수학책을 구입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좋다던데... ^^;;)

  그리고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저 역사나 문화 쪽에 관심있는 이가 봐도 재미있을 다큐멘터리다.  수학이 인류의 문명 발달사에서 어떻게 탄생했고, 그 후에는 거꾸로 인류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시청자를 가끔은 웃게 하고 가끔은 감탄하게 하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강...!!! 추...!!! 

 

 

EBS 다큐프라임 - 문명과 수학 / 수학의 위대한 여정(http://blog.daum.net/jha7791/1579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