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EBS 다큐프라임 - 문명과 수학 / 수학의 위대한 여정

Lesley 2016. 10. 17. 00:01


  학창 시절에는 지루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한 수학의 매력(!)을 요즘에야 느끼고 있으니, 뒤늦게 알게 된 명품 다큐멘터리 덕분이다.


  EBS에서 제작 및 방영하는 '다큐프라임'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만 봐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고 두루두루 호평받고 있다는데, 나는 우리나라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다. -.-;;

  그러다가 지난 달 초에야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다큐프라임에 대한 평을 보게 된 건데, 내용은 물론이고 영상이나 CG까지 나무랄 데가 없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나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듣보잡(!) 프로그램인데, 여러 사람이 칭찬하는 것을 보니 호기심이 들었다.  원래는 다큐프라임 중에서도 특히 이슈가 되었던 '자본주의' 와 '민주주의' 를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래에 나오는 사정 때문에 둘 다 지금까지 안 보고 있음. ^^;;)  다만, 이왕 보기로 한 김에 네티즌들이 추천하는 다른 것도 몇 편 더 추가해서 보기로 했다.



'문명과 수학' 의 오프닝 화면.



  그렇게 덤(!)으로 구한 게 '문명과 수학' 이다.

  어떤 네티즌이 고등학교 때 수학을 지겨워하다가, 이 5부작짜리 '문명과 수학' 을 보고서 문과 전공자가 된 상황에서 뒤늦게 수학에 푹 빠졌다는 글을 읽었다.  그 글을 보고 나니, 역시 고등학교 때 수학이라면 치를 떨었던 1人으로서 '도대체 어느 정도로 잘 만든 다큐멘터리기에 이렇게 요란하게 칭찬하나?' 하는 마음으로 다운받은 것이다. 

  그렇게 본 이 다큐멘터리, 정말로 재미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들여가며 만들었음이 팍팍 느껴진다.  유익한 것도 유익한 것이지만, 무슨 다큐멘터리가 어지간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단 말이냐...!  (심... 봤... 다...!!! ^0^)  한 편 당 40분 남짓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시간적 부담도 적은데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니, 그 자리에서 5부작짜리를 끝장(!)내버렸다.  


  '문명과 수학' 에 반해서 같은 EBS 다큐프라임 중 수학과 관련된 다른 작품도 찾아봤다.

  그래서 '문명과 수학' 과 같은 해에 방영한 '수학의 위대한 여정' 및 그 다음 해 방영한 '넘버스' 도 찾아냈다.  그리고 나도 뒤늦게 수학의 매력을 알게되어 헌책방에서 수학 관련 책(그 동안은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알고 보니 시중에 쉽게 쓴 교양 수학책이 제법 많이 나와 있음.) 몇 권 구해다가 읽는 중이다.  그리고 원래 보려던 '자본주의' 와 '민주주의' 는 완전히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 두 작품은 지금 외장하드 안에서 쿨쿨 자고 있다. ^^;;


  여기에서는 2014년에 방영한 '문명과 수학' 및 '수학의 위대한 여정' 을 포스팅하겠다.

  '넘버스' 는 2015년 작품이고 또 분량 문제 때문에 다음 포스트로 미루겠다.  그리고  2014년 8월에 방영한 '문명과 수학' 을 같은 해 2월에 방영한 '수학의 위대한 여정' 보다 먼저 소개하겠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내가 '문명과 수학' 을 먼저 봤기 때문이다. ^^




문명과 수학(2014년 8월 방영, 5부작)



  '문명과 수학' 은 정확히 말하자면 '수학' 관련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수학사' 관련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배웠던 복잡한 수학 공식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만일 그런 다큐멘터리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임. ^^;;)  '문명과 수학'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류의 문명사에서 수학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고, 또 수학이 인류의 문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려준다.  그러니 넓게 보면 일종의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다.  '문명과 수학' 은 모두 5부작인데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만 소개하겠다. 



  ◎ 1부 - 수의 시작



파피루스에 정성껏 수학문제를 쓰는 아메스.



  이 다큐멘터리는, 기원전 1650년 전후의 어느 날 밤에 한 이집트 신관이 파피루스에 수학문제를 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신관의 이름은 '아메스' 라고 한다.  그리고 아메스가 쓴 파피루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학 관련 문서로, '아메스 파피루스'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아메스 파피루스 덕분에, 후세를 사는 우리는 이집트 수학의 수준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토지 면적을 측량하는 모습.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모습.



  이집트에서 수학이 발달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집트의 기하학은 매년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농경지 경계 획정 문제가 생기면서 발달했다.


  나일강 주변은 비옥한 농경지인데, 매년 홍수로 나일강이 범람하면 농경지의 경계가 흐트러진다.

  그래서 나일강의 범람이 끝난 후 다시 농경지의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농경지 소유자는 당연히 국가가 나일강 범람 이전과 같은 넓이의 농경지를 확보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농경지 경계선이라는 게 꼭 네모반듯 하게 생긴 게 아니라서 골치 아프다.  그렇다고 관리들이 경계선을 대강 그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지는 않지만, 매년 나일강이 범란할 때마다 농경지 면적이 줄어든다면 어떤 백성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백성들의 불만이 쌓여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동산 문제는 국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입니다요... ^^;;)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매년 농경지 경계선을 제대로 긋기 위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했고, 그 과정에서 기하학이 발달했다.

  사각형 뿐 아니라 삼각형이나 원 같은 여러 모양의 면적을 계산할 줄 알아야, 온갖 모양으로 생긴 농경지의 경계선을 정확히 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대의 면적 계산법은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원시적인 방법이라서 계산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고, 또 현대의 계산 방법만큼 정확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3,700년 전 사람들이 현대의 계산값과 비슷한 계산값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둘째, 이집트의 분수는, 이집트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피라미드 등 대건축물의 공사 때문에 발달했다. 


  피라미드나 신전 등 대규모 공사에는 당연히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다.

  이 사람들에게 급료로 식량을 지급해야 하는데, 사람 숫자와 식량의 양이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10명의 인부에게 9개의 빵으로 급료를 지급해야 할 경우, 1명에게 얼마만큼의 빵을 줘야 할까?  지배층 입장에서는 이 일 역시 위의 경작지 경계 획정 문제 만큼이나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다.  급료를 불평등하게 지급했다가는 인부들이 파업을 하거나 폭동을 일으킬 지도 모르니까.


  이집트인들은 이런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수를 이용했다.  

  사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이런 문제는 너무나 간단하다.  공식을 찾네 계산을 하네 할 필요도 없다.  '10명의 인부에게 9개의 빵을 똑같이 나누어 주어야 한다.' 는 문제를 보는 순간, 인부 1명에게 빵을 10분의 9씩 나누어 주면 된다고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이 보기에 답답하리만큼 하나 하나 따지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계산했다.  어째서인지 이집트인들이 아는 분수는 3분의 2를 빼고는 전부 단위분수(2분의 1, 3분의 1, 4분의 1...)여서, 이런 단위분수를 몇 번씩 돌려가며 계산했다.  덧셈으로 치자면, 어린이들이 3+5를 암산으로 간단히 계산하지 못 하고 일일이 손가락 꼽아가며 계산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 는 속담처럼, 결국에는 1명에게 빵을 10분의 9씩 나누어주면 된다는 답을 찾아냈다...! 



  ◎ 2부 - 원론



'피타고라스의 정리'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음.)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 는 '파타고라스의 정리' 로 유명하다.

  이집트나 바빌론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보다 일찍부터 직각삼각형의 독특한 비율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 비율을 실생활(건축 등)에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독특한 비율이 생기는지 그 이유를 알지는 못 했다.  이유를 알지 못 한 채, 어쨌거나 직각삼각형의 비율이 현실에 유용하니까 그냥 썼다.

  그러나 따지기 좋아하는 그리스 사람들은 달랐다.  피타고라스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마침내 '피타고라스의 정리' 를 완성해냈다. (그리고 이런 정리를 만들어 낸 일 때문에 현대의 중학생들에게 온갖 원성을 듣고 있는... ^^;;)  그리고 나중에는 음악의 각 음에도 일정한 비율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직각삼각형의 비율 및 음의 비율에서 신비함을 느낀 피타고라스는, 마침내 이 세상이 수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수는 어디까지나 '정수' 를 말한다.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



  피타고라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피타고라스 학파' 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 학파가 여러가지로 특이했다.  그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기 보다는, 마치 신비주의적 종교 단체 혹은 무슨 비밀결사와 비슷했다.

  우선, 피타고라스가 발견하고 완성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라든지 '이 세상은 정수로 이루어져있다' 등의 주장을 절대적 진리로 여겼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주장이 한 사람의 뛰어난 학자가 연구한 학설이 아니라, 신성한 종교적 신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가 하면, 모든 연구 성과는 회원 개인의 이름이 아닌 학파 전체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그 시대로는 파격적이게도 여자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또한 회원에게 피타고라스 학파 내부의 일에 관한 비밀 엄수 맹세를 요구했고, 모든 회원들은 흰색 옷을 입고 채식을 했다.



무리수의 발견...!

피타고라스가 만든 정수의 세계가 깨졌다...!



  하지만 아무리 폐쇄적인 조직이라도 이단자는 나오는 법이다.

  피타고라스 학파 중에 '히파수스'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히파수스가 '피타고라스의 정리' 를 연구하던 중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의하면, 직각삼각형의 빗변(c)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a, b)의 제곱의 합과 같다. (c² = a²+b²)  그런데 만일, a와 b가 모두 1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a² + b² = 1 + 1 = 2가 되어, 결국에는 c² = 2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어떤 정수를 제곱해도 2라는 숫자는 나올 수가 없다.  현대인은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는 1.414213... 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은 정수가 아니다.  세상이 정수로 이루어져있다는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런 수는 나올 수가 없다.

  히파수스는 현대인이 √2(루트 2)라고 부르는 수를 알게 된 것이다.  즉, 무리수를 발견한 것이다...!


  요즘 이런 대단한 발견을 한다면 큰 상을 받고 유명해지겠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히파수스는 오히려 목숨을 잃었다.

  피타고라스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히파수스가 발견한 무리수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히파수스의 발견을 인정한다면 피타고라스가 성립시킨 정수의 세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결국 피타고라스 학파 회원들은 히파수스를 물에 빠뜨려 죽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닭의 목을 비튼다고 새벽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히파수스를 죽인다고 해서 수학적으로 존재가 확인된 무리수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리수는 히파수스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살아남아 현대까지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 3부 - 신의 숫자



이집트의 숫자 및 로마의 숫자.

메소포타미아 숫자, 마야 숫자, 중국 숫자.



  고대에 뛰어난 문명을 이룬 지역에는 각자 고유의 숫자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고대 세계에서는 사회가 점점 복잡하게 발달하며 더 큰 단위의 숫자가 필요할 때마다, 일일이 새로운 숫자를 만들어 썼다. 즉, 오십 단위, 백 단위, 천 단위, 만 단위의 숫자가 별도로 있었다. 

  만일 우리가 지금까지도 이런 식의 숫자 체계를 쓰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억이니 조니 하는 엄청난 단위까지 쓰는 요즘 세상에는, 아마 숫자를 최소한 수십 개는 발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발달된 세상에서 살게될 수백 년 후의 우리 후손들은 숫자를 100개 이상 써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대 숫자 중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의 숫자(즉, 한자로 된 숫자)다.

  지금 우리가 아는 한자 숫자와는 많이 다르다. 1, 2, 3까지는 지금의 한자와 같지만, 4~10까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그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나중에 수학 관련 책을 찾아봤는데, 이 생소한 숫자에는 중국인들의 음양사상 등이 관련되어 있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만국 공통으로 0~9로 이루어진 '아라비아 숫자' 를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 라고 부르는 숫자는 원래 인도에서 탄생한 숫자다.  다만, 아라비아 학자와 상인을 통해 유럽에 전해졌기 때문에, 유럽인들이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던 게 그대로 굳어진 것 뿐이다.

  어쨌거나 10개 밖에 안 되는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하면 아무리 큰 수라도 표현할 수 있다.  같은 숫자라도 어떤 자리에 쓰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77이라는 수는 똑같은 7을 세 번 쓴 것이지만, 왼쪽의 7은 700을, 가운데의 7은 70을, 오른쪽의 7은 그냥 7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0에서 9까지 달랑 10개 밖에 안 되는 아라비아 숫자를 써서 6,392,052,174,208,248 같은 어마어마한 수를 표현할 수 있다.



인도 차투르부즈 사원 벽에 새겨진 270.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0...!)



  0이라는 숫자(그리고 개념)는 인도에서 발명되었다.

  지금이야 전세계 사람들이 0을 일상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다.  하지만 0의 발명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다.  0이라는 건 '없음' 을 의미하는데, 없는 것을 굳이 '표시'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같은 시대 유럽에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 한 기발한 생각이었다.  인도라는 나라의 종교와 철학에서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인도의 사상적 배경 속에서 0의 탄생이 가능했다.


  하지만 인도인이라고 해서 0을 처음부터 자유자재로 이용했던 것은 아니다.

  0이라는 개념이 진작부터 있었던 건 있었던 거고, 이것이 본격적으로 수학에 쓰이지는 못 했다.  그러다가 7세기 인도의 수학자 겸 천문학자인 '브라마굽타' 가 0을 수학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브라마굽타는 덧셈과 뺄셈 같은 계산법에 0을 이용한 최초의 수학자였다. 

  0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인도인들이지만, 브라마굽타의 계산법에는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당시 인도인들이 생각하기에 '3 + (-3)' 의 답은 그냥 '아무 것도 없다' 일 뿐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굳이 그걸 0으로 표시하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 사람들의 통념을 뛰어넘은 브라마굽타 덕분에 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얼핏 보면 쓸모없어 보이는 0이라는 숫자가 계산법에 들어오면서, 방정식 풀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온갖 기계나 제도에 방정식이 응용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 현대인들은 1,400년도 전에 살았던 브라마굽타의 덕을 단단히 보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



  위의 프랑스 수학자는 '문명과 수학' 뿐 아니라 다음 포스트에 소개할 '넘버스' 에도 출연한다.

  아마 같은 시기에 촬영한 영상을 각각 편집해서 '문명과 수학', '수학의 위대한 여정', '넘버스' 등 세 다큐멘터리로 나누어 제작한 모양이다. (일타삼피...! ^^)  '문명과 수학' 을 처음 볼 때는 미처 몰랐는데, 이 포스트를 작성하느라 두 번째로 볼 때야 알게 되었다.  2010년 인도에서 열린 '세계 수학자 대회' 에서 필즈상 수상자들과 인도 대통령이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수상자들 중에 이 수학자도 있다는 것을...!  즉, '세드릭 빌라니' 라는 이 수학자는 필즈상(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 수학자는 필즈상을 수상한 것 말고도 독특한 패션 때문에 눈에 확 띈다. ^^;;

  나처럼 패션에 무관심한 사람 눈에도 이 수학자의 패션은 범상치(!) 않다.  단발머리,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넥타이, 상의 왼쪽 가슴에 단 큼직한 거미 모양의 브로치...

  보통 수학자니 과학자니 하는 이과 분야의 학자라고 하면, 아인슈타인처럼 흐트러진 머리에 대충 걸쳐입은 옷차림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수학자라기 보다는 화가나 음악가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패션에 무척 신경쓴 모습이다.  이공계 학자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이공계 학자는 좀 다른가? ^^  하긴, 이공계 쪽 사람은 털털한 옷차림이고 예술계쪽은 멋진 옷차림일 것이라는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고, 프랑스 사람은 패션에 센스 있다는 생각 역시 고정관념이긴 하다.




수학의 위대한 여정(2014년 2월 방영, 2부작)



  ◎ 2부 - 세상을 바꾸는 힘, 방정식



이 포스트 앞부분에 소개한

고대 이집트 신관 아메스가 쓴 '아메스 파피루스'.



  '문명과 수학' 을 다 보고서 '수학의 위대한 여정' 을 보면서 좀 당황했다.

  '린드 파피루스' 라는 게 나오는데, 나레이션과 자막으로 나오는 설명을 보고 들으니 분명히 '문명과 수학' 에 나왔던 '아메스 파피루스' 인 것 같아서다.  그런데 왜 문서 이름이 달라진 것일까...

  어찌된 영문인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역시나 '아메스 파피루스' 와 '린드 파피루스' 는 동일한 파피루스다.  '아메스 파피루스' 란 이름은 이 파피루스의 작성자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고, '린드 파피루스' 는 2,000년 이상 잠자고 있던 이 파피루스를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린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다큐프라임 제작진이 이런 사정을 자막에 괄호라도 쳐서 언급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순진하고 소심한 시청자는 이게 도대체 웬일인가 하며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



중국 한나라 때의 수학책인 '구장산술'.

(책의 내용은 진나라 때의 것이지만

책 자체는 한나라 때 저술된 것임!)



방정식이라는 수학용어의 유례가 되는

구장산술 속 '방정' 이라는 단어.



  '방정식' 이라는 수학용어는 뜻밖에도 고대 중국 수학책 '구장산술' 에서 나왔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수학은 서양에서 집대성 되어 동양으로 유입된 것이다.  그래서 방정식이라는 수학용어도, 영어든 불어든 어쨌거나 서양쪽 언어로 된 용어를 번역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서야 알았다.  방정식이란 수학용어가 중국 한나라 때의 수학책인 '구장산술' 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방(方)은 네모, 즉 사각형을 뜻한다.  옛날 중국인들은 수학 문제를 풀 때 산가지라는 막대기를 이용해서 풀었는데, 특히 방정식을 풀 때는 산가지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배열해가며 풀었다.  그리고 정(程)은 헤아린다는 뜻이다.  직사각형으로 놓아 둔 산가지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배열하며 답을 구했다.  그래서 '방정' 이란 말이 나왔고, 여기에서 현대 수학의 방정식이란 말이 나왔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이 실생활(토지 경계 획정, 급여 지급) 속 필요 때문에 발달한 것처럼, 고대 중국의 수학 역시 마찬가지다.

  위에 사진에 나오는 구장산술 속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연립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인데, 소, 돼지, 양 등 중국에서 흔히 키우던 가축을 사고 파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정식이 고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너무나 당연한,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평소에는 거의 실감하지 못 하는 '수학의 출생의 비밀'(?)이 나온다. 

  이집트든 중국이든 혹은 그 밖의 어떤 나라든 간에, 수학의 시작은 절대로 형이상학적이고 심오하고 복잡미묘한 그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수학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현실에서 시작했다.  물건을 사고 팔고, 급여를 지급하고, 건축물을 짓는 등 실생활에서 우리가 수시로 부딪치게 되는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이 나온 것이다.  비록 지금 대한민국 사람의 99%는 수학을 실생활에 유용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지겨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


  정말 아쉽다.  왜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런 좋은 다큐멘터리가 없었을까?

  그 시절에 이런 다큐멘터리를 봤더라면 수학에 흥미를 느껴서 재미있게 공부했을 지도 모르는데...  혹시 이 포스트를 수학 싫어하는 중.고등학생이 본다면, 혹은 무슨 사정이 생겨 뒤늦게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 지긋지긋한 수학을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는 사람이 본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강추한다...!   이 작품들을 보고 나면 수학에 대한 거부감이 한결 엷어질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 넘버스(http://blog.daum.net/jha7791/1579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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