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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琅琊榜) 1회~6회 - 기린지재 매장소 / 금릉에 이는 풍운

Lesley 2016. 1. 31. 00:01

 

  '랑야방(琅琊榜)' 은 중국 드라마인데, 동명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작년(2015년) 가을에 중국에서 방영했는데, 처음에는 시청률 7~9위였다가 중반부를 넘기면서 1~2위로 올라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종영하고 며칠 지난 10월 19일부터 '랑야방 : 권력의 기록' 이란 제목으로 케이블 방송 중화TV를 통해 방영했다.

  나는 뒤늦게 올해 1월에야 이런 드라마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방영 당시 우리나라의 중드팬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음넷 평점이 10점 만점인데 9점을 넘길 정도니...)  그런 인기에 힘입어 올해 1월 들어 재방영하기도 했다.

 

 

12년 전에는 적염군의 소년장수 '임수' 였고,

그 동안 강좌맹의 종주 '매장소' 로 살았으며,

지금은 책사 '소철' 이다.

 

 

  이 드라마 주인공은 세 가지 이름과 신분을 갖고 있다.

  강호를 호령하는 강좌맹의 종주 '매장소' , 양나라 정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책사 '소철', 양나라 최고의 정예군대였던 적염군에서 어린 나이로 활약했던 소년장수 '임수'.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세 개의 삶 중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도 벅찰텐데, 주인공은 기구한 운명으로 세 개의 삶을 번갈아가며 살게 된다.

 

  이 드라마 제목인 '랑야방' 은 강호의 랑야각이라는 문파에서 만든, 천하의 인물들을 각 분야별로 순위를 매긴 문서를 말한다. 

  현재의 실력은 물론이고 과거의 전적까지 합쳐서 복잡하고 정교한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누군가 랑야방에 올랐다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이 랑야방에서 순위를 매기는 분야에서 있어서 일류급 인사라는 이야기가 된다.  드라마에서도 간간히 "아무개는 랑야방 0위의 고수요." 라든지 "저런 고수가 어떻게 랑야방에 이름이 없단 말이냐?" 등의 대사가 나온다.  요즘으로 치면 통계분석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우수업체에서 내놓는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다만, 랑야방이 그토록 대단한 문서인 것은 인정하더라도, 도대체 어째서 랑야방이 이 드라마의 제목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30개는 써야 할 듯하다. (누구 아시는 분? -.-;;)

 

  이번 포스트에서는 1회에서 6회까지만 다룰 것이다.

  6회에서 끊은 이유는, 여기까지가 이 드라마의 배경설명 및 도입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많은 등장인물이 소개되고, 어째서 주인공 매장소가 복수극에 나섰는지, 그리고 매장소가 복수극에 나섰을 때 양나라 상황이 어떠하며 그 상황이 매장소의 복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매장소가 임수로 살던 시절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재회, 매장소와 정왕(매장소가 난세를 끝내고 올바른 정치를 펼칠 다음 황제로 고른 황자)의 연합과 관계설정 등이 1회에서 6회까지 나온다.  

  앞으로도 여러 회차를 같이 묶어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줄거리를 자세히 쓸 수는 없고, 인상적인 부분만 골라서 써야 한다.  하지만 내용 파악을 위해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번 포스트에서는 비교적 자세히 다루려 한다.

 

 

 

매우 치밀하고 복잡하지만,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여백이 느껴지는, 독특한 드라마

 

 

  ◎ 복합적인 장르

 

  이 드라마의 장르는 복합적이다.

  일단 형식적인 면을 보면 무협극 + 가상역사극(퓨전사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을 보면 복수극 + 정치극이다.  이런 복합적인 성질에 대해 분석(?)을 해보자면...

 

 

  무협극

  :  주인공 매장소가 강호 최고 문파인 강좌맹의 종주(우두머리)로 나오고, 그 밖의 천천산장 등 다른 문파와 대단한 무공을 갖춘 고수들이 나온다.

 

  가상역사극

  :  시대적 배경은 중국 역사에서 분명히 존재했던 남북조 시대의 '양나라' 다.  하지만 시대만 역사에서 가져왔을 뿐, 왕조시대 가장 중요한 인물인 황제부터 가상의 인물이고 그 밖의 다른 등장인물도 가상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상 분명히 존재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가상의 왕과 왕자들을 내세웠던 우리나라 드라마 '해를 품은 달' 과 비슷하다.

 

  복수극

  :  큰 틀에 있어서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과 비슷하다.  행복하게 살던 주인공이 더러운 음모에 걸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오랜 세월 동안 치밀한 복수계획을 세운 뒤 신분을 숨기고 활약하며 원수를 하나씩 몰락시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몽테 크리스토 백작보다 랑야방이 훨씬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느낌을 준다.  몽테 크리스토백작에서는 음모에 걸려 희생된 이가 주인공 혼자이며, 그 주인공이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복수를 한다.  그러나 랑야방에서는 주인공 말고도 무려 7만명이 넘는 사람이 몰살되었으며, 주인공은 스스로의 원한 뿐 아니라 그 많은 동료들의 원한을 짊어지고 그들 모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애쓴다.  바꾸어 말하자면, 몽테 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이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것이라면, 랑야방의 주인공에게 복수란 자신이 포기하고 싶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닌 절대적인 의무이며 신성한 대의인 것이다. 

  그리고 몽테 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이 '복수' 를 하는데 비해, 랑야방의 주인공은 단순한 복수가 아닌 '명예회복' 을 도모한다.  그래서 더 강한 비감과 숭고한 느낌을 자아낸다.   


  정치극

   :  랑야방 주인공의 인생을 뒤틀어 놓은 '적염군 사건' 자체가 정치판의 더러움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복수에 나서는 시점의 양나라는, 다음 황위를 둘러싸고 황실도 조정도 양분되어 권력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주인공은 권력투쟁에 끼여들어 교묘하게 이쪽 저쪽 모두 쳐내면서, 한편으로는 적염군 사건에 대한 복수 및 명예회복에 나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 같은 억울한 희생자를 낳는 난세를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한다. (복수도 하고 정권 교체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판 속 인간군상들의 다양한 모습과, 부모자식이나 형제자매도 소용없는 잔인한 권력의 속성 등이 세세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아무리 암담한 난세라도 태평성대로 나아가는 작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결국 그 작은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 치밀하고 복잡하지만 여백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

 

  제법 복잡한 내용인데도, 의외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 한다든지 기가 쭉쭉 빨리는 일은 없다.

  위에 설명한대로 드라마 장르가 복합적인 만큼, 드라마 내용도 단순하지 않고 이런저런 사연이 얽혀 있다.  한국 드라마 '황금의 제국' 이나 '펀치' 도 이 드라마 못지 않게 복잡하면서 치밀했다.  남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볼 줄 알고 큰 판을 짜서 펼칠 줄 아는 머리 좋은 주인공이 등장하고, 드라마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복선이 깔리고 반전이 일어났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으니...  '황금의 제국' 과 '펀치' 는 KTX 속도로 전개되는 통에, 보는 사람도 그 속도 따라가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그래서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다 본 후에는 다시 볼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랑야방은 치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여유있게 전개되어, 시청자가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    

 

  랑야방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무래도 현대극이 아닌 사극이다 보니,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말에서 우아함과 절제가 느껴진다. 

  현대극 같으면 등장인물이 벌써 할 말 다 하고 자리 떴을 정도의 시간 동안, 랑야방에서는 손을 모아들거나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춘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비유적이거나 함축적인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명대사가 줄줄 나옴!)

  사극이라도 퓨전사극의 경우는 분위기를 가볍게 하느라 그런지, 복잡한 예법 같은 건 적당히 생략하고 대화도 현대어에 가깝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랑야방은 퓨전사극이지만 전체적으로 진지한 분위기의 사극이라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영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감스럽게도 내가 본 버전이 분명히 720P인데도 화질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감독이 누군지 참 공들여 촬영했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깔끔한 배경과 구도로 이루어진 장면이 종종 나와서, 시청자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그 외에도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이용한 감각적인 장면으로, 시청자의 눈도 즐겁게 만들어 준다. 

 

  또한,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좌식문화가 많이 남아있던 남북조 시대라는 점도, 동양화 같은 느낌을 더해 준다. 

  가구들의 높이가 좌식생활에 맞춰 낮으막하기 때문에, 실내가 훨씬 넓어 보이는 효과를 자아낸다.  실내공간에 무언가 빡빡히 차있지 않다 보니, 흔히 말하는 '동양화에 담겨진 여백의 미' 가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 사극 하면 흔히 떠올리는 청나라나 명나라 때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주인공 매장소가 악몽을 꾸다가 일어난 장면.

(공간을 적절히 나누고 빛과 어둠을 잘 이용한 장면임.)

 

 

궁궐 후미진 곳에서 만난 매장소와 몽지.

(깔끔하고 균형 잡힌 구도)

 

 

중국도 처음부터 입식생활을 했던 게 아니랍니다~~ ^^

 

 

 

기린지재(麒麟之才)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다.

 

 

  ◎ 랑야각의 금낭

 

   드라마는 후계자 다툼을 벌이고 있는 황자들이 기린지재(麒麟之才 : 기린처럼 빼어난 능력을 지닌 인재) 영입전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린은 전설 속 영물을 말하는 것임.  절대로 목이 길고 노란 바탕에 검정 땡땡이 무늬 있는 그 기린이 아님...! -.-;;)

 

  양나라는 다음 황제 자리를 놓고 몸살을 앓고 있다.

  양나라 황제에게는 황후 소생의 황자는 없지만 후궁 소생의 황자는 10명 가까이나 있다.  그 중 태자(가장 총애받는 후궁 월귀비의 소생이라서 어머니의 뒷배로 태자가 되었음.)예왕(황후의 양자가 되어 황후의 지지를 받고 있음.)이 가장 유력한 황자들이라, 두 사람 사이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조정은 조정대로 태자파와 예왕파로 나뉘어 민생에 관한 일은 내팽개친 채 수시로 정쟁을 벌이는 중이고, 내명부는 내명부대로 태자의 생모 월귀비와 예왕의 양모 황후가 불꽃 튀는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황제는 그런 상황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동시에 그런 상황을 은근히 조장한다.  황제는 권력욕과 의심이 넘치는 성격이라서, 자신이 누리는 절대권력에 도전할만한 2인자는 절대로 키우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자식들로 하여금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고, 자신은 필요에 따라 태자 편도 들었다가 예왕 편도 들었다가 하는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그런데 이웃나라 북연에서 태자파와 예왕파 모두의 관심을 끄는 소식이 날아온다.
  공교롭게도 북연도 양나라처럼 여러 황자들 사이에 후계자 다툼이 있었는데, 마침내 한 사람이 승리하여 후계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력한 황위 계승 후보자였던 황자들을 모두 제치고 아무런 세력도 없던 황자가 승리한 것이다...! 

  태자파나 예왕파나 그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하기 그지 없는데...  알고 보니 그 황자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공신력(?)을 인정하는 강호의 사설정보기관(?) '랑야각' 에서 금낭을 받아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금낭은 비단 주머니란 뜻인데, 랑야각에서는 정보를 분석한 문서를 비단 주머니에 담아서 줌.)

 

  그러자 태자와 예왕도 앞다투어 랑야각의 금낭을 손에 넣으려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북연의 듣보잡(!) 황자조차 최후의 승자로 만들어 준 대단한 금낭이라는데...!  그런데 랑야각 측에서는 무슨 꿍꿍이인지 태자와 예왕 모두에게 똑같은 내용이 담긴 금낭을 내어 준다.  금낭 속 내용은 江左梅郞, 麒麟之才, 得之可得天下다.  즉, '강좌의 매랑은 기린 같은 뛰어난 인재니, 그를 얻는 자가 천하도 얻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강좌의 매랑' 이란 '강좌맹' 이라는 강호 문파의 종주(우두머리)인 '매장소' 를 말하는데, 무척 유명한 인물이다.
  매장소는, 원래 강호의 작은 문파에 불과했던 강좌맹을 불과 10여 년만에 강호 최고의 문파로 키워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명색이 강호 문파인 강좌맹을 이끌고 있으면서, 정작 매장소 스스로는 무공을 하기는커녕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로 병약한 몸이다. 

  즉, 무공 실력을 최고로 치는 강호에서 무공을 전혀 못 하면서, 순전히 뛰어난 두뇌 하나만으로 강좌맹을 강호 최고의 경지로 이끈 것이다.  비유하자면, 몸이 너무 약해 축구를 전혀 못 하는 사람이 피파 랭킹 100위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뛰어난 두뇌로 선수들을 이끌어 약 10년만에 월드컵 우승팀으로 만든 것 같은 상황이다. (이 비유는 내가 쓰고도 참 잘 쓴 것 같은... ^^) 

 

 

  ◎ 기린지재를 찾아 모셔라!


  이 때부터 태자와 예왕 모두 매장소를 먼저 찾아내어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된다.
  그런데 매장소는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 소철 이라는 이름의 서생으로 위장하고 금릉(지금의 중국 난징으로, 양나라의 수도임.)으로 간다. (모두가 소철이 매장소라는 것을 알게된 후에도 계속해서 매장소를 '소 선생' 이라고 부름.)  등잔 밑이 어둡다고, 태자와 예왕은 매장소가 자기들과 같은 금릉 하늘 아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하고 엉뚱한 곳만 찾는다. 

  매장소는 그렇게 태자와 예왕을 한참 동안 애태운 후에야, 은근슬쩍 자신이 금릉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흘린다.  태자와 예왕이 보기에는, 마치 매장소가 자신들을 놓고 어느 쪽에 붙어야 더 유리할지 저울질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린지재를 손에 넣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데...!    

 

 

마침내 매장소를 만난 태자(왼쪽 콧수염 난 사람)와

예왕(오른쪽 황룡무늬 옷 입은 사람).

 

 

  궁궐에서는 예황군주의 신랑감을 찾기 위한 무술대회가 열린다. (이 무술대회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따로 설명하겠음.)

  태자와 예왕도 무술대회를 참관하는데, 눈만 경기장에 가있을 뿐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  매장소를 금릉으로 데려온 귀족 청년들(둘 다 황실의 친인척임.)도 무술대회를 구경하러 올텐데, 그 때 틀림없이 매장소도 데려올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밀당(!)의 고수 매장소는 태자와 예왕이 더 안달복달하도록 일부러 늦게 무술대회에 간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달을대로 달은 태자와 예왕은 매장소를 보자 얼른 가서 인사를 하고 환심을 사려 애를 쓴다.

  이 장면이 분명히 진지한 장면인데도 은근히 웃기다.  그리고 진지함 속에 숨은 은근한 코믹함이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다.  물론 개그 캐릭터 역할을 맡은 이들도 두어 명 있기는 하지만, 작정하고 웃긴 장면 넣는 것보다 은근히 웃기는 것이 더 색다른 맛이 난다.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태자다.

  황실 소유의 정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옥패를 내어주며 매장소를 회유하려 한다.  태자로서는 큰 마음 먹고 대단한 특권을 준 셈이다.  하지만 매장소는 그깟 옥패가 별 거냐는 식으로, 자기 호위 노릇하는 비류에게 옥패를 넘겨버린다.  마치, 네 눈에는 내가 이런 옥패 따위에 넘어갈 사람으로 밖에 안 보이냐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둔탱이 태자는 자신이 베푼 호의가 깡그리 무시당한 것을 전혀 눈치 못 챈 듯함. -.-;;)

 

  그러자 태자보다 훨씬 용의주도하고 머리도 좋은 예왕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나온다.

  즉, 자신이 유명한 학자의 친필원고를 소장하고 있다면서, 그 친필원고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한다.  매장소가 예왕의 제의에 귀가 솔깃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자, 태자가 얼른 나서서 예왕을 깎아내리려 한다.  "너는 어찌 그리 인색하냐?  선생께 그냥 드리면 되지, 귀찮게 오라 가라 하는 것이냐?"  여기에서 멈추었으면 예왕에게 큰 타격은 못 주어도 태자 스스로의 체면은 구기지 않았을텐데, 그만 지나치게 나간다.  "얼마면 되냐?  값을 마음대로 불러봐라.  내가 너에게 사서 선생께 선물하겠다." 라고. (드라마 '가을동화' 의 유명한 대사 "얼마야?  얼마면 되는데?" 가 떠오르는... ^^;;)

  하지만 역시 예왕이 태자보다 한 수 위다.  그 친필원고는 그 학자를 존경하는 사람 눈에는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며, 책값 운운한 태자를 그저 돈이면 다인 줄 아는 무식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소중한 옛 인연들과의 재회

 

  

  ◎ 금위군 통령 몽지

 

  매장소는 12년만에 돌아온 고향 금릉에서 소중한 옛 인연들을 차례로 만나게 되는데, 첫 번째가 몽지다.  

  몽지는 무공으로 랑야방 순위 1위니 2위니 할 만큼 뛰어난 무인이며, 충직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이제는 궁궐을 호위하는 금위군의 최고책임자인 통령의 직위에 올라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다.

  매장소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위험천만한 일이기에 몽지를 끌어들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의리 넘치고 우직한 몽지는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걸 다 잃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매장소를 돕겠다고 나선다.

 

  그런데 몽지에 대해 좀 의아한 점이 있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몽지가 정의로운 사람이기는 하지만 정치적인 처세술에 서툴고 인간관계에서의 눈치도 부족하다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하긴, 뛰어난 무예솜씨와 성실함을 갖추었으면서도, 동시에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해서 태자와 예왕 어느 쪽에도 빌붙는 행태를 안 보였기에, 의심 많은 황제조차 몽지는 믿고 궁궐의 호위를 맡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몽지가 옛날과 완전히 바뀐 얼굴을 하고 있는 매장소를 첫눈에 알아본다...!  물론 매장소가 몇 년 전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살아남았으나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알려주긴 했다.  그러나 그저 얼굴이 바뀌었다고 알려주었을 뿐, 앞뒤 상황을 보면 미리 초상화를 본 것도 아니고 매장소의 현재 이름이나 지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걸까...  이 부분은 아무래도 설정오류 같다. ^^;;

 

 

"결국 돌아온 거냐?"

"네, 결국 돌아왔습니다."

 

 

  몽지와의 만남으로, 매장소의 과거사 및 금릉으로 온 목적이 대강이나마 드러난다.

 

  매장소의 원래 이름은 임수인데, 양나라 최정예군대였던 적염군을 지휘하는 임섭 장군의 아들이다.

  그런데 12년 전에 이른바 적염군 사건이 터지면서 임수의 인생이 완전히 뒤틀려 버렸다.  적염군 사건이란, 황제의 큰아들이며 조정과 군부에서 인망이 두터웠던 기왕이 적염군을 동원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알려진 일을 말한다.  적염군이 반란군이 되었다는 것은, 적염군을 이끌던 임섭-임수 부자도 반란에 가담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황제가 반란계획을 미리 알게 되어 기왕을 죽이고, 다른 나라와의 전쟁 때문에 매령이란 지역에 나가있던 적염군 7만명도 몰살해버렸다.  당시 19살의 어린 장수였던 임수 역시 아버지를 따라 출정했다가, 매령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임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완전히 달라진 얼굴을 하고서 매장소란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다. (다만, 어쩌다가 얼굴이 달라졌는가 하는 사연은 드라마 후반부에야 나옴.)  7만명이나 되는 전우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10년 넘는 세월 칼을 갈고 계획을 세우며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금릉으로 돌아온 것이다.   

 

 

  ◎ 운남왕부 군주 목예황

 

  예황군주는 운남왕의 딸인데 과거에 임수와 정혼한 사이였다.

  적염군 사건으로 정혼자를 잃은데 이어 부모님도 일찍 세상을 뜬 후, 운남왕 계승자인 남동생이 너무 어린 탓에 대신 운남왕부를 이끌게 되었다.  그런데 운남이란 곳이 양나라와 사이가 나쁜 남초와의 국경지대라서 전투가 수시로 벌어진다.  그래서 예황군주는 지난 10년 간 남초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는 등 여장부로 이름을 날리며 살았다.  

 

  매장소는 외증조모인 태황태후의 처소에 갔다가 예황군주와 다시 만나게 된다. (매장소/임수의 어머니는 태황태후의 손녀이자 황제의 누이동생임.)

  위에 설명한대로 태자와 예왕이 무술대회장에서 만난 매장소의 환심을 사려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입궁한 젊은이들 모두 태황태후의 처소로 가서 문안을 드리라는 전갈이 온다.  겉으로는 태황태후가 황실의 친인척인 젊은이들을 보고 싶어하며 보낸 전갈 같다.  하지만 앞뒤 상황을 보면, 앞으로 황위계승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기린지재 매장소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황후와 월귀비 등이 태황태후에게 바람을 넣은 듯하다.  


  매장소와 예황의 재회 장면은 연출, 배우들의 연기, 배경음악 전부 좋았다...!

  사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첫날 봤던 1회와 2회는 다소 지루한 편이었다.  많은 등장인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통에 누가 누군지 구별도 안 갔고, 그렇게 많은 인물이 나오니 내용이 이리저리 쪼개져 어수선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2회 끝부분에 나오는 매장소와 예황의 재회 장면 하나로, 그 모든 지루함이 몽땅 날아가버렸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감성 넘치는 장면이었다. 

 


예황이 손을 빼내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예황의 손을 꼭 잡는 매장소.

그런 매장소의 행동에 놀란 예황.

 

  

  나이가 많아 치매기가 있는 태황태후가 매장소를 원래 이름인 '수' 로 부른다.

  태황태후 주위의 황실 여인들은 그저 태황태후가 또 정신이 혼미해졌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매장소는 그렇잖아도 자신을 무척 귀여워해주던 외증조모 앞에서 반가움, 서러움 등 온갖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다정스레 자신의 원래 이름을 부르는 외증조모의 목소리에,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 한다.

 

  태황태후는 매장소 뿐 아니라 예황까지 자기 앞에 불러놓고, 어서 혼인하라며 두 사람 손을 하나씩 잡아다가 포갠다.

  황후가 사람을 착각한 것이라고 일깨워주자 태황태후는 어리둥절해하며 두 사람의 손을 놓는다. 그러자 그 틈에 예황이 매장소의 손 아래 놓인 자신의 손을 빼내려는데, 매장소가 그런 예황의 손을 꼭 붙든다.  12년만에 만난 외증조모와 정혼녀에게 정체를 드러내지 못 하는 아픔에, 정혼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까지 더해지니,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어져 무의식 중에 잡은 것이다.  예황은 낯선 사람이 보이는 뜻밖의 행동에 당혹해하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어떤 강한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이 장면에서 배우들이 보이는 미묘한 표정 연기도, 감성적인 배경음악도, 정말 좋음...! ㅠ.ㅠ)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매장소를 불러 세운 예황.

예황의 목소리를 듣고서

 차마 고개도 못 돌리고 굳어버린 매장소. 

 

 

  예황은 매장소에게 산책을 하자고 제의하고 매장소는 순순히 따른다.

  예황이 태황태후의 처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으려 하자, 매장소는 황급히 사죄를 한다.  태황태후에게 맞춰주느라 자신이 예황에게 그만 결례를 범했다고.  이 때 예황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한다.  마치 정말 그것뿐일까 하는,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어떤 다른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은 실망감이 예황의 얼굴에 떠오른다.  

 

 

  ◎ 일곱 번째 황자 정왕

 

  정왕은 황제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임수와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 나누던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고, 황제의 큰아들이며 자신의 이복형인 기왕을 무척 따르고 존경했다.  그런데 적염군 사건으로 하루 아침에 친구와 형을 모두 잃었다.  정왕은 누구보다 임수와 기왕을 잘 알기에, 그들이 반란을 꾀했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왕과 적염군을 옹호하는 말을 했다가 황제에게 단단히 미운 털이 박혀, 다른 황자들과는 달리 허구한 날 변방의 전쟁터를 떠돌게 되었고, 어쩌다 금릉에 돌아와도 노골적으로 냉대 받는 신세가 되었다.   

 

  태황태후궁을 나온 매장소는 정왕과 마주치게 된다. 

  매장소는 예황과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어린 노비가 내관에게 맞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정생이라는 이름의 그 노비는 평소 정왕이 무척 아끼던 아이인데, 마침 정왕도 그 광경을 보고 달려온다.  뜻밖의 일로 오랜 시간 그리워했던 벗과 마주한 매장소.  하지만 이미 태황태후와 예황을 만나 감정의 소용돌이를 한 바탕 겪은 뒤라 그런지, 이번에는 담담히 행동한다. 

 

 

매장소가 잃어버린 친구 임수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뭔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는 정왕.

 

 

  매장소는 정생을 노비 신분에서 풀어주겠다고 정왕 앞에서 확언한다.

  정생이 일개 노비일 뿐인데도 정왕이 무척 마음 쓰고 있다는 점, 정생의 생김새, 11살이라는 나이... 그런 몇 가지 단서로 정생의 정체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정생은 죽은 기왕의 유복자인데 12년 전 적염군 사건 와중에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정왕은 형이 남긴 유일한 핏줄을 노비 신분에서 빼내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 해서 그저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매장소는 정왕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소중했던 이의 자식을 구해낼 겸, 또한 자신의 계획에서 중요한 인물이 될 정왕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겸, 정생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정생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매장소는 담담하지만 확신을 주는 표정으로 답한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방법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요." 라고 말이다.  정생의 일에 대한 대답일 뿐 아니라, 황실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정왕에게 '당신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 라는 뜻으로 한 말일 것이다. (이런 함축적이고 이중적인 대사가 자주 나와서 좋음. ^^) 

 

 

갑자기 결성된 정생(뒷모습만 보이는 아이) 구출위원회. ^^

 

 

  매장소의 말에 정왕과 예황이 보이는 반응이 일견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라서 재미있다.

  정왕은 "좋소, 지켜보겠소." 라고 한다.  매장소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서 불행한 삶을 사는 정생을 구해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디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한 번 두고보자.' 식의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데 예황이 하는 "나도 지켜볼게요." 라는 말에는, 정왕처럼 매장소의 능력을 가늠해보려는 마음과 함께 어느 정도의 신뢰감도 묻어나온다.  태황태후궁에서 느낀 기묘한 감정과 천한 노비에게 보이는 매장소의 따뜻한 태도 때문에, 매장소라는 낯선 이에게 벌써 믿음을 갖게 된 듯하다. 

 

 

 

정사요 사건 - 예황군주를 둘러싼 음모

 

 

  ◎ 황실 사람들의 동상이몽

 

  예황군주가 운남을 떠나 금릉으로 온 것은, 황제의 명령으로 열리는 무술대회에서 신랑감을 고르기 위해서다.

  사실, 예황군주 스스로는 혼인할 마음이 없다.  옛 정혼자 임수를 아직 못 잊고 있기도 하고, 허구한 날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금릉의 분위기를 안 좋아해서 혼인하여 금릉에 머무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황제가 혼인을 재촉하는 속셈을 눈치채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무술대회에서 뽑힌 최종후보 10명과 차례로 대결해서, 자신을 이긴 사람하고만 혼인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예황군주는 랑야방에 이름이 올라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임.)  황제는 그런 예황을 못마땅해 하고...


  그렇게 당사자는 혼인에 뜻이 없건만 오히려 그 주위에서 더 열을 올린다.

  문제는, 예황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예황이 좋은 짝을 만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예황의 혼인 문제를 놓고 자신의 이익을 따지며 주판알 튕기느라 정신없다.  

 

  일단, 예황의 신랑감을 찾아주겠다며 무술대회까지 연 황제부터 정치적인 속셈이 있다. 

  황제 입장에서 보자면, 지난 10년간 예황이 운남왕부를 이끌며 남초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덕분에 남쪽 국경이 안정된 것은 좋다.  하지만 전투경험 풍부한 10만명의 운남 철기군이 예황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며 뭉쳐있는 게 불안하다.  자칫하면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운남이 독립을 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황을 황제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귀족가문으로 시집보내, 운남왕부의 세력을 누를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표면적으로는 양나라 주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무술대회의 문호를 활짝 열어놓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혹시라도 예황이 외국인과 혼인하게 되면, 강력한 운남 철기군이 전부 외부세력에 넘어갈 판이니 말이다.  그래서 외국 출신의 뛰어난 무인이 나타나자, 조바심을 내며 어떻게든 대책을 세우라고 아랫사람들을 닥달하기도 한다.  

 

  또한, 태자와 예왕은 운남왕부의 힘에 군침을 흘리며 예황이 자기네 쪽 사람과 혼인하기를 바란다. 

  태자파와 예왕파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운남왕부는 내내 중립을 지켜왔다.  하지만 운남왕부의 수장 노릇을 하는 예황이 어느 한 쪽 사람과 혼인을 한다면,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운남왕부가 그 쪽에 힘을 보탤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태자의 생모인 월귀비도, 예왕의 양모인 황후도, 각자 자기네 편에서 적당한 젊은이를 골라 황제에게 예황의 신랑감으로 추천하는 등 로비활동(!)에 바쁘다.

 

  이렇게 예황의 혼인을 둘러싼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어처구니 없는(그리고 막장스럽기도 한) 음모가 생기게 된다.

 

 

  ◎ 정빈과 리양장공주  

 

  정왕의 생모 정빈은 얼핏 보면 그저 얌전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주도면밀하고 통찰력 있는 인물이다.

  드라마가 6회를 지난 후에야 나오는 이야기지만, 정빈은 신비(기왕의 생모)와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신비는 적염군 사건으로 아들 기왕을 잃은 후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리고 신비의 친정이며 정빈와도 인연이 깊은 임씨 가문도, 임섭-임수 부자는 적염군이라서 매령에서 살해되었고, 임섭의 아내이자 임수의 어머니인 진양장공주는 칼로 목을 베어 자살하고 말았다.

  정빈이 그 동안 조용히 지낸 것은 원래 성품이 차분하고 음전한 이유도 있지만, 살벌한 궁궐에서의 처세술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까운 이들이 끔찍한 화를 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과 아들 정왕의 안전을 위해 몸을 최대한 낮추고 조용히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정빈이 우연하게도, 누군가 정사요(일종의 최음제)를 손에 넣은 것을 알게 된다.

  정빈은, 과거에 정사요와 리양장공주(황제와 죽은 진양장공주의 누이동생.)에 대하여 궁궐에 떠돌던 소문, 또한 최근에 태자파와 예왕파가 예황군주를 자기 쪽 사람과 혼인시키려 안달이라는 사실, 그 두 가지를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그 정사요를 이용해 예황군주를 자기 쪽 사람과 강제로 혼인시키려고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정빈의 추리력은 주인공 매장소에 필적할 수준임...! @.@) 

 

  여기에 나오는 리양장공주와 정사요에 얽힌 소문이라 함은... 

  이미 세상을 뜬 태후(황제와 리양장공주의 어머니)가, 예전에 딸 리양장공주에게 정사요를 먹여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후 녕국후 사옥과 동침시켜서 강제로 혼인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정빈이 정사요에 관해 언급했을 때 리양장공주의 반응을 보면, 그 소문은 사실이 분명하다. (이게 웬 막장 어머니에 막장 남편이냐... -.-;;)

  살짝 스포를 하자면...  리양장공주가 혼인하기 전에 겪은 그 일은 그저 과거지사로 끝나지 않는다.  나중에 리양장공주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큰 파란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다.

 

 

정빈(아래 흰색 옷)의 암시를 눈치챈 리양장공주(위 녹색 옷).

 

 

  예황을 도울 힘이 없는 정빈은 리양장공주에게 예황을 도와달라 간절히 부탁한다.

  굳이 리양장공주에게 부탁한 것은, 과거에 정사요 때문에 억지로 혼인한 아픔이 있는 리양장공주라면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물밑에서나마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피해자가 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예황이기 때문인 듯하다.  정빈은 함께 정사요 일을 들은 혜비(황제의 또 다른 후궁)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못 들은 척 하라고 했다.  그리고 정빈 스스로도 그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다.  아마 어지간한 일 같았으면 모르는 척 눈과 귀를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 정왕이 임수와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내던 사이였고, 자신도 임씨 가문과 깊이 연결된 사이였다.  그래서 임수의 정혼녀였고 아무 일 없었더라면 임씨 가문 며느리가 되었을 예황이 위험해지는 것을, 그저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 같다.

 

 

  ◎ 매장소의 두뇌에 분쇄된 음모

 

  이 음모 부분이 굉장히 박진감 있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불과 한 회차에 사건의 발생, 전개, 종결이 전부 담긴다.  그리고 이 음모는 매장소-정왕의 관계와 매장소-예왕의 관계에 있어서 큰 분기점이 된다.

 

  리양장공주는 예황을 만나지 못 하자, 조만간 예황을 만나게 될 매장소에게 자기 대신 경고의 말을 전해달라 부탁한다.

  그러나 일이 꼬이는 통에, 예황은 매장소에게서 경고를 듣고도 그만 월귀비의 꾀임에 빠져 정사요를 마시게 된다.  술을 마신 직후 태자파에서 미는 신랑후보 사마뢰가 태자와 함께 나타나자, 그제서야 자신이 덫에 걸렸음을 깨닫고 서둘러 나가려 한다.

  하지만 이미 정사요 기운이 몸에 퍼져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진 상태다.  그래도 랑야방 몇 위의 고수라는 명성이 그냥 생긴 게 아니라, 그런 몸으로도 사마뢰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한 방에 날려버렸음...! -0-;;)  그리고 자신을 저지하는 궁녀들을 뿌리치며 전각 밖으로 나가려 한다.

  태자와 예왕이 처음으로 매장소를 만난 장면도 진지하면서 은근히 웃기더니, 이 장면도 분명히 심각한 상황인데도 월귀비의 태도나 표정을 보면 재미있다.  아무래도 진지함 속에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를 담는 게 이 드라마의 개성인 듯하다.

 

 

(왼쪽 위) 사마뢰를 한 방에 날려보내는 울트라 초특급 파워 우먼, 예.황.군.주...!

(왼쪽 아래) 정사요를 마시고도 천하장사 수준으로 힘을 쓰는 예황군주를 보며 기겁한 월귀비.

(오른쪽) 예황군주를 막으라고 소리치는 월귀비. (이 표정 정말 웃김.  동영상으로 보면 더 웃김. ^^)

 

 

  한편, 매장소는 뒤늦게야 예황이 위험해졌음을 깨닫고, 그 짧은 시간에 재빨리 구조계획을 만들어 몽지에게 실행하게 한다.

  일단, 황제의 후궁 처소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그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의리의 사나이 정왕에게 예황을 구하도록 요청하게 한다.  그리고 월귀비와 앙숙 간인 황후에게도 월귀비의 음모를 알려, 월귀비의 음모가 그대로 묻히지 않고 황제에게 알려지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월귀비가 절대 발뺌하지 못 하도록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예황군주의 남동생인 운남왕에게 월귀비 처소 주위에 매복해있다가 사마뢰를 붙잡으라고 한다.

 

  겨우 전각 밖으로 빠져나온 예황은 더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인데, 다행히 정왕과 만나 보호를 받게 된다.

  정왕에게 음모를 들키게 되자, 월비는 증거인멸을 위해 정왕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태자가 정왕에게 붙잡히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게다가 황후가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정신을 잃은 예황과 병사 및 무기로 엉망이 된 현장을 황후에게 그대로 보이게 된다.

 

 

증거인멸을 위해 정왕을 죽이려 했지만

오히려 태자가 정왕에게 인질로 붙잡힘.

태황태후가 월귀비 처소에 든 예황을 보고 싶어한다며

갑작스레 들이닥친 황후.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황후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정의롭고 강직하지만 권모술수는 모르는 정왕은, 예황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고 앞뒤 안 가리고 월귀비 처소로 쳐들어가다시피 했다.  하지만 황후는 그렇게 무작정 간다면 월귀비의 죄상을 밝혀낸다 한들, 오히려 황제에게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그 순간에 거기에 간 것이냐?   혹시 평소에 월귀비를 감시한 거냐?  아니면 이 사건이 월귀비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너희가 꾸민 음모 아니냐?" 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급한 와중에도 태황태후 처소부터 가서, 예황을 보러 가자며 태황태후를 잡아끈다.  그래야 나중에 황제에게, 자기는 태황태후가 예황을 보고 싶어해서 모시고 간 것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황후가 아무리 보통내기가 아니라 한들, 매장소보다는 한참 아래다.

  매장소는 예황이야 정왕에게 무사히 구조되겠지만 정작 정왕이 무사하지 못 할 것을 예상하고, 정왕을 구하기 위해 예왕과 접촉한다.  그렇잖아도 매장소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공을 들이던 예왕은, 매장소가 자신과 만나준데다가 기막힌 수까지 알려주자 기뻐한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는 매장소의 예상대로 정왕을 의심한다.  월귀비가 예황에게 음모를 꾸민 것을 정왕이 어찌 알고 때맞춰 월귀비 처소로 갔던 것이냐고 묻는다. (바로 이런 점을 우려해서, 황후가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온전하지 못 한 태황태후를 굳이 월귀비 처소로 데려갔던 것임.)  정왕이 곤란해하며 머뭇거리는데, 예왕이 등장해서 자신이 정왕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며 상당히 그럴 듯한 해명을 늘어놓는다.  

 

  결국, 월귀비가 일으킨 음모의 최고 수혜자는 예왕이 된다. 

  월귀비와 태자는 지은 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지만, 어쨌거나 벌을 받기는 받았다.  기막힌 일을 겪을 뻔한 예황 입장에서는 그런 가벼운 처벌이 만족스러울 리 없지만, 황제가 월귀비와 태자를 결코 내칠 생각이 없음을 알기에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정왕은 태자를 위협했다고 벌을 받을 뻔했지만, 예왕의 거짓말 덕분에 무사하게 되었다. (사실 예황을 구한 정왕을 벌한다는 게 말도 안 되지만...)

  이렇게 이 사건에 관련된 자라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두가 불만을 품을만한 상황인데...  정작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던 예왕 혼자 수지맞았다.  매장소의 귀띔을 듣고 막판에 갑자기 등장해서 번지르르한 말 몇 마디 하는 것으로, 황제에게 '뛰어난 통찰력으로 음모를 꿰뚫어 보고 예황군주를 구한 정의의 사나이' 라는 눈도장 받고 상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

 

  여담으로, 월귀비의 음모에 동참해서 예황을 강간하려 했던 사마뢰는 그 죄값을 톡톡히 치렀다.

  태후와 태황태후가 갑자기 월귀비 처소로 오자 놀라서 급하게 도망을 쳤는데, 매장소의 계획대로 근처에 매복해있던 운남왕과 그 부하들에게 딱 걸렸다.  그래서 비오는 날 먼지 나는 수준으로 얻어터졌는데, 나중에 몽지가 황제에게 보고한 바에 의하면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결국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

  이 때 사마뢰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말을 듣고 황제가 짓는 표정이 상당히 귀엽고 코믹하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헐~~' 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역시 '진지함 속에 보이는 자잘한 코믹함' 이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다. ^^

 

  이 일로 예왕은 말로만 듣던 매장소의 능력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고, 또한 매장소가 자신 쪽으로 기울었다고 믿게 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매장소가 하라는대로 했더니, 꼴도 보기 싫은 태자와 월귀비는 당분간 찍소리도 못 하고 되었다.  또한 이복동생 정왕이 벌 안 받도록 도와준 셈이 되었으니, 나중에 그걸 빌미로 정왕에게서 무언가 받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예황에 대한 음모를 제일 먼저 눈치채고 정왕을 보낸 사람이 되었으니, 그 동안 중립을 지켰던 운남왕부도 앞으로 자기 쪽에 우호적으로 나올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황제에게도 일을 똑똑히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상까지 받았다.  일거양득도 아니고 무려 일거사득이다...!

  예왕은 기쁜 마음에 황후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과연 매장소가 소문대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감탄한다.  그리고 그런 대단한 매장소를 반드시 자기 책사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예왕 전하, 전하께서는 이제 매장소와 정왕을 위한 호구로서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

 

 

 

한 편이 된 매장소와 정왕, 그러나 아직은...

 

 

  월귀비가 대형사고를 치기 전, 매장소는 두 가지 일을 한 데 묶어 처리하고 있었다.

  하나는 정왕에게 약속한 '정생을 노비에서 빼내기' 고, 또 다른 하나는 황제와 예황에게 약속한 '예황의 신랑감을 뽑기 위한 무술대회에 나타난 엄청난 실력의 외국 무사를 어린 아이 몇 명으로 이기기' 다.  매장소는 외국 무사에게 대적할 아이로 정생을 뽑아다가 자기 집에 데려다놓고 무술을 가르친다.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정생을 비롯한 아이들로 외국 무사를 이기는 데 성공하고,(여기에 또 남들은 모르는 매장소의 계략이 있음.) 덕분에 정생은 노비 신분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정생은 일단 예황에게 넘겨졌다가, 나중에 정왕에게 가서 살게 된다.

 

  어쨌거나 매장소가 데려간 정생이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된 정왕이 찾아온다.

  그리고 태자와 예왕 사이에서 간을 보는 것 같은 매장소에게 빈정거리는 말을 한다.  "예황군주 말로는 대단한 재주를 가졌다는데, 일개 책사로 만족할 줄 몰랐소."  그러자 태연하게, 책사가 되면 출세도 할 수 있고 이름도 남길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매장소.  정왕의 눈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비웃음과 함께 그래도 너는 좀 다를 것 같았는데 하는 실망감이 함께 실린다.


  그리고 정왕이 다시 질문을 하는데 그에 대해 매장소가 엄청난 대답을 한다.

  시청자들야 매장소가 정왕을 장차 황위에 올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이다.  하지만 정왕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대답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이미 예상하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 대답을 할 때의 매장소가 내뿜는 기운을 보면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그렇다면 선생은 태자와 예왕 중 누구를 택할 생각이오?"

"당신을 택할 겁니다..."

"!"

"... 정왕 전하."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아서 큰 소리로 웃던 정왕도 이내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다.

  자신은 매장소 같은 책사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태자와 예왕이 황위에 오르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매장소를 믿지 못 하지만 매장소의 도움을 받아 황위에 오르겠다는 뜻을 피력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정왕에게 황위란, 태자와 예왕을 막기 위한 수단 같은 것이었던 듯하다. 

  여러 이복형제 중 유일하게 자신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했던 형 기왕이, 더러운 음모에 걸려 그리 허무하게 죽었다.  그리고 이제 아둔한 욕심쟁이 태자와 잔인한 야심가 예왕이, 기왕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했을 다음 황위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정왕으로서는, 태자나 예왕이 기왕의 자리를 차지하여 설치는 꼴을 도무지 참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황제가 되어 올바른 정치를 펼쳐보겠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마음 보다는, 그저 어떤 경우라도 태자와 예왕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우선인 듯하다.  그런 이유로, 정왕은 아직 매장소를 신뢰하지 못 하면서도 일단 한 편이 되어 황위 계승전에 뛰어들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주군과 책사 사이에 믿음이 없다는 것은, 대업을 이루는 길을 가는데 있어서 큰 불안요소가 된다. 

  얼마 안 가서 그로 인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위에 나온 월귀비가 정사요를 이용해 예황에게 꾸민 음모가 그 계기가 된다.

  정왕은 모든 일이 다 끝나고나서야, 예황을 구하려고 정왕 자신과 황후 등 여러 사람을 뒤에서 움직인 게 매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자 덜컥 의심이 든다.  교활하리만큼 머리가 뛰어난 매장소, 그 자가 혹시 아무런 권력도 배경도 없는 나에게 우호세력를 만들어주겠다며 월귀비가 예황에게 음모를 꾸미도록 뒤에서 판을 짠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모든 일이 매장소의 의도대로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수가 있을까...  위험에 빠졌던 예황은 너무나 극적으로 구출되었고, 나는 그런 예황의 은인이 되었으니 이제 운남왕부는 나를 지지할 게 뻔하지 않은가.

 

  정왕은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말해두고자 매장소를 만난다.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경고한다.  예황처럼 목숨 걸고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매장소 같은 사람들이 마음 편히 모략(!)이나 꾸미며 살 수 있는 거라고.  두 번 다시 예황 같은 이들을 이용하지 말라고.  아무리 더러운 음모를 꾸미는 책사라도 절대로 해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매장소는 굳은 얼굴로 자신이 꾸민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정하는 것을 보니 잘못한 일인 줄은 아는 모양이라며, 정왕은 아예 매장소의 소행으로 단정해 버린다.


  정왕은 소중한 형과 친구를 간신들과 그들의 책사들이 꾸민 모략으로 잃었기에, 책사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게다가 매장소가 기가 막히게 한 수 앞도 아니고 두세 수 앞을 헤아리며 이 사람 저 사람 장기판 위의 말처럼 쓰는 것을 보니 더욱 의심이 든다.  스스로 꾸민 일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자기 손바닥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이렇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단 말인가...!

 

 

"저에 대해 그리 생각하실 줄 몰랐습니다.

정말 뜻밖입니다."

 

 

  매장소, 아니 임수는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정왕이 자신의 정체를 안다면 절대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저, 자신을 낯선 사람으로 보기에 의심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모리배 취급을 받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사랑하는 예황을 정략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의심이라서, 더욱 견디기 힘들다.  예황이 위험에 빠졌다는 걸 안 순간 가장 속을 태웠던 건 바로 임수 자신인데, 예황을 위험 속에 밀어넣었다는 의심을 받다니...

 

 

"나의 형님,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들 모두가 그런 음모 속에서 죽었소.

나는 형님과 친구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절대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오."

"안심하십시오.

전하께서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도 임수에게 정왕은 여전히 최고의 친구고, 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반드시 황위에 올려야 하는 사람이다.

  정왕은 "안심하십시오.  전하께서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실 겁니다." 라는 말을, 그저 격앙된 자신을 달래는 말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수로서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맹세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옛 친구의 결백을 믿어주고 그 억울한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정왕이고,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휘지는 않을 대쪽 같은 정왕이다.  그런 정왕이 황위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모략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손에 피 묻히는 험한 일은 자신이 다 하고 정왕은 지금의 고고한 모습 그대로 지켜주겠다는 맹세.

 

  그리고 다시 임수의 입장에서 매장소의 입장으로 돌아와, 나지막하지만 강하게 말한다.

  태자와 예왕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독해져야 한다고, 충신이라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할 거라고, 다만 절대로 그들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바꾸어 말하자면, 도덕적으로 옳은 일만 해서는 절대로 정왕을 황위에 올릴 수 없다, 그러니 사람들을 아예 도구로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대신 이용은 하되 절대 넘지 말아야 하는 마지막 선만은 넘지 않겠노라 약속하는 것이다.

  괴로운 표정을 짓는 정왕을, 매장소가 정중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압박한다.  "금릉에 이미 풍운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청컨대 전하, 속히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정왕.

 

 

 "금릉에 이미 풍운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청컨대 전하, 속히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그렇게 매장소는 오랜 벗이자 주군인 정왕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금릉에 일기 시작한 풍운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섰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는 게 결코 한두 마디의 약속이나 다짐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임수-정왕이 아닌 매장소-정왕이기에, 앞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는 매장소에 대한 정왕의 믿음 부족으로 인한 고비가 있을 것이다. 

 

 

 

기타

 


  1. 임수(매장소)의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는 그 독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성형외과 쪽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 같다.


  이 포스트를 쓸 때가 전체 54회차 중 24회차까지 봤을 때인데, 아직 얼굴이 바뀐 사연은 나오지 않는다.

  가급적 뒷부분을 미리 안 보려고 했지만, 그 사연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어떤 무서운 독에 중독되어 원래의 얼굴과 전혀 다른 얼굴로 바뀌었다고 한다.  1회에서 나온, 매장소의 몸 상태로는 2년은 살 수 있네 마네 하는 이야기도 그 독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 독 꽤 괜찮은(!) 것 같다.

  중독 때문에 얼굴이 변했다고 하면, 보통은 흉칙하게 변하지 않나?  그런데 매장소의 얼굴은 비록 창백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깨끗하다.  어차피 보톡스라는 것도 원래는 무서운 독극물인데, 엄청나게 희석시켜서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 나오는 독도 부작용이 없을 만큼 잘 정제할 수만 있다면, 성형외과나 피부과 쪽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킬 듯하다.

  특히나 나처럼 심한 안면홍조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얼굴을 창백하게 해주는 독은 미용적인 효과 뿐 아니라 심리적인 효과도 일으킬 듯하다. (갑자기 찾아온 마음의 평화~~!  아,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요~~!)


 

  2. 파일이 여러가지로 마음에 안 든다.

 

  우선, 분명히 HD 파일인데도 왜 이렇게 화질이 안 좋냐... ㅠ.ㅠ

  노트북 화면으로 보다가, 어느 날인가 휴대폰 화면으로 봤더니 화질이 확 업그레이드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같은 파일이라면 작은 화면에서 볼 때 화질이 더 좋아 보이는 법이니까.  노트북으로 보자니 화질이 마음에 안 들고, 휴대폰으로 보자니 답답하고, 이를 어쩌란 말인가... ㅠ.ㅠ

 

  그리고 자체자막판이라 중국어 자막이 없어서 아쉽다.

  중국어를 공부한 내 입장에서는 '중국 원판 동영상(즉, 중국어 자막이 깔린 동영상)으로 된 파일' + '별도의 한글자막 파일' 로 된 조합을 좋아한다.  그래야 처음에는 편안하게 한글자막이 깔리는 것으로 보고 그 다음에는 한글자막 파일 없이 중국 원판 동영상으로 보면서, 자막 해석이 이상했던 부분을 확인할 수도 있고 멋진 대사를 원문으로 즐길 수도 있다.

  내가 이용하는 사이트들만 그런 건지 어떤 건지, 왜 다 자체자막판이냐...  어디 중국어 자막  깔린 동영상 파일 없수? 

 

 

  3. 몽지는 원래 '금위군 대통령' 인데 한글자막에는 '금위군 통령' 으로 나온다.

 

  이건 해석상의 오류라기 보다는 '한국적인 상황'(!) 때문에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국가 원수 직위를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하필 금위군의 총지휘관도 대통령이라고 한다.  발음 뿐 아니라 한자까지 똑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어색해하지 않도록 한글자막에는 통령이라고 표기한 것 같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드라마 속 인물들이 몽지에게 '멍 따통링(몽 대통령)' 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    

 

 

  4. 그렇잖아도 병약한 매장소인데, 수시로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와서 보기 딱할 지경이었다.

 

  드라마 촬영을 한겨울에 하기도 했지만, 매장소의 집으로 나오는 세트장이 정말 추운 모양이다. 

  우리 시청자가 보기에는 몇 분 안 되는 장면이라도 실제로는 몇 시간씩 촬영하는 경우도 많았을텐데, 배우들이 정말 고생하며 찍었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촬영장에서 난방을 아예 안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블로그의 글을 보고서야, 난방 문제도 있겠지만 멋진 배경을 위해 허구한 날 매장소 처소의 장지문을 열어놓은 탓도 크다는 걸 깨달았다.  매장소가 누군가와 마주앉아 대화할 때, 혹은 일어서서 마당을 내다보며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생각에 잠길 때, 그 배경으로 나오는 장지문과 마당의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다.  아름다운 화면 연출을 위해 덜덜 떨었을 배우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 

 

 

  5. 랑야방 1~6회에 나온 멋진 대사 중 일부를 바이두에서 찾아봤다.  

 

  ① 예황이 매장소와 궁궐 안을 산책하며 매장소의 됨됨이를 떠보자, 매장소가 한 말.

  良禽择木而栖,贤臣择主而事。(좋은 새는 좋은 나무를 골라 둥지를 짓고, 어진 신하는 좋은 군주를 골라 섬기는 법입니다.)

 

  ② 정왕이 정생을 어떻게 노비 신분에서 풀어주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매장소가 한 대답.

  只要想做, 办法总是有的。(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방법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요.)

 

  ③ 매장소가 몽지 앞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전우들의 억울함을 밝히겠다고 다짐하는 말.

  既然我活了下来,就不会白白的活着。(어차피 살아남았다면, 헛되이 살지는 않을 겁니다.)

 

  ⑤ 정왕을 다음 황제로 만들겠다는 매장소의 말에, 몽지가 정왕은 너무 원칙을 중요시하고 권모술수를 안 써서 곤란하다고 하자, 매장소가 하는 말. 

  不是还有我吗? 那些阴暗沾满鲜血的事,就让我来做。这些痛苦靖王承受不了,就让我背负吧。(그래서 제가 있는 게 아닙니까?  끈적한 피를 잔뜩 보아야 하는 음침한 일은 제가 할 겁니다.  그런 고통을 정왕은 감당하지 못 할테니, 제가 짊어질 겁니다.)

 

  ⑥ 월귀비가 정사요로 예황군주를 위험하게 하려던 일이 전부 매장소가 꾸민 일이 아닐까 의심하는 정왕이, 자신은 음모를 꾸미는 책사가 싫다며 하는 말.  그리고 그에 대해 매장소가 하는 말.

  - 我的兄长,我最好的朋友,他们全都死于这样的阴谋。我绝不能让他们看见我也变成一个像那样不择手段的人。(나의 형님,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들 모두가 그런 음모 속에서 죽었소.  나는 형님과 친구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절대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오.)

  - 殿下,放心。你绝不会成为这样的人。(전하, 안심하십시오.  전하께서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실 겁니다.)

 

  ⑦ 바로 위 ⑥의 상황에서 이어지는 말로, 예황처럼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정왕의 경고.

  我不要求你能理解什么是军人铁血,什么是战场狼烟。但有些人不能伤害,有些事不能利用! (당신이 군인이 흘리는 피가 무엇인지, 전쟁터의 화염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소.  하지만 절대로 해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있고, 절대로 이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소!)

 

  ⑧ ⑥과 ⑦의 상황을 종결짓는, 앞으로 태자와 예왕을 제치고 황위에 오르기 위해는 독해져야 한다는 매장소의 말. 

  金陵城中风云已起,还望殿下,早做决断。(금릉에 이미 풍운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청컨대 전하, 속히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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