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한성별곡 正 -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Lesley 2015. 12. 6. 00:01

 

  이 포스트는 지난 4월에 뼈대를 잡아놓고 살도 절반 이상은 붙여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절반 정도 써놓고 보니 처음의 의욕이 점점 사라져서, 몇 줄 쓰다가 뒤로 미루고 또 몇 줄 쓰다가 다시 미루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서 아예 블로그 한 구석에 된장마냥 묵혀두게 되었고, 찬 바람이 솔솔 불면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중간에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했는데, 그 동안 쓴 게 아까워서 차마 삭제할 수 없었다. ^^;;  다행히 다시 쓰기 시작한 후로는 비교적 순조롭게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포스트는,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 중에서, 쓰기 시작한 날부터 완성해서 공개한 날까지의 기간이 가장 길다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 비운의 명품 사극 - 종영한 후에야 진가를 인정받은 '한성별곡 正'

 

  올해 3월, 몇 년 만에 '한성별곡 正' 을 다시 봤다.

  이 드라마는 방영 당시 빛을 못 보고 종영한 후에야 인정받은, 비운의 드라마다.  2007년 여름에 8부작으로 방영했는데, 방영 당시에는 워낙 인기가 없어서 시청률이 달랑 한 자리 숫자였다.  그런데 종영된 후에야 이 드라마의 장점(탄탄한 구성, 화려한 영상, 멋진 OST, 타 사극보다 훌륭한 고증)이 소문이 나서, 나중에야 이 드라마를 보고 팬이 된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는 2010년에 방영한 드라마 '추노' 를 통해서 '한성별곡 正' 에 빠진 이들도 있다.  두 작품의 PD가 동일인물이어서 그런지, 묵직한 주제의식 하며 빼어난 영상 하며, 심지어 출연하는 배우까지 상당수가 겹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품 사극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드라마가 정작 방영할 때에는 어째서 시청률이 그토록 낮았을까를 분석(?)해보자면...

  3명의 주인공 모두가 무명배우(진이한, 이천희, 김하은)였던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 배우 모두 톱스타까지는 아니어도 많이 알려져서, 이런저런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성별곡 正이 방영할 때에는 시쳇말로 듣보잡(!) 배우들이었다. (죄송합니다, 배우님들... ^^;;)  그러다 보니 유명배우들이 나오는 다른 드라마에 치여서, 언론에게서나 시청자에게서나 크게 주목받지 못 했다.

  또한 짧은 분량도 시청률에 불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미니시리즈 정도만 되었어도, 비록 처음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 했을지언정, 탄탄한 완성도로 인해 차츰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자가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랑 8부작짜리로 편성된 드라마다 보니, 괜찮은 드라마라는 소문이 인터넷에 돌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즈음해서 드라마가 끝나 버렸다! ㅠ.ㅠ

 

  그렇다면 시청률에 목숨 거는 드라마 제작사 또는 방송국이 어째서 그런 모험(!)을 강행했을까? 

  내 추측일 뿐이지만 애초에 이 드라마는 땜빵(!)용이었던 것 같다.  세 주인공 중 한 명도 아니고 세 명 모두가 무명배우라는 점과 8부작이라는 우리나라 드라마계에서 보기 힘든 변칙적(?)인 방영 횟수를 보았을 때, 땜빵 드라마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어떤 드라마가 종영하게 되었는데 그 후속 드라마 제작에 차질이 생겼다든지 해서, 시간을 벌기 위해 후다닥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내 추측대로 '한성별곡 正' 이 땜빵용 드라마가 맞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엄청난 제작비 지원받고 검증된 배우들을 데려다가 만들어도 엉망진창인 드라마가 수두룩한데, 이 드라마는 땜빵용인데도 명품 사극이란 소리 들을 만큼 잘 만들었으니 말이다. 

 

 

 

 

  메인 포스터부터 무척 인상적이다.

  거친 붓글씨로 쓴 듯한 '한성별곡' 이란 제목 끝부분 여기저기에 붉은 핏방울이 떨어져있는데, 그 중 가장 큰 핏방울 속에 正이란 글자가 들어있다.  이 드라마가 조선의 수도 한성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사연을 담고 있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런 비극적인 사연 속에서도 언젠가는 올바른(正)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여러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한성별곡 正' 은 분명히 90년대의 '용의 눈물' 이나 작년의 '정도전' 같은 정통사극이 아니다. 

  당장 세 명의 주인공부터 허구의 인물이고, 분명히 조선 후기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수험생 여러분, 이 드라마 보면서 역사 공부하시면 큰일납니다~~)  이 드라마가 명품 드라마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완성도가 훌륭하다는 뜻이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드라마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시대적 배경이 조선 후기이건만 '장외투쟁' 이니 '분식회계' 니 하는 현대적인 단어가 출몰(!)한다.  대신들끼리 어떤 일로 논쟁을 벌이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뭔일이 터지기만 하면 매번 장외투쟁이나 하고!" 라고 소리치며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은 현대 국회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을 꼬집는 듯해서 정말 웃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화려한 영상에만 혹해 재미로 볼 드라마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 속 상황이, 드라마 방영 시기를 전후한 우리나라 상황과 많이 겹치기 때문이다.  수원 천도 논란(드라마) - 신행정수도 건설 논란(현실), 신해통공으로 인한 시전상인들의 반발(드라마) - 독과점 규제에 대한 재벌들의 반발(현실), 사대부도 군역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사대부의 반발(드라마) - 고위층의 병역 기피 문제(현실) 등등... 

  결국 이 드라마는 정조 시대의 사건에 현대의 상황을 절묘하게 버무려놓은 퓨전사극이다.  제작진의 의도는 정조 시대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 방영 당시의 우리 상황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이다.  시청자들도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바닥을 기는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게시판은 대박 드라마 못지 않게 뜨거웠다.  이 드라마를 본 소수의 사람들이 당시 대통령(노무현)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서로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어가며 입씨름을 벌이곤 했다. 

 

 

 

  ◎ 수준 높은 오프닝 - 감각적이면서 드라마 주제를 잘 함축하고 있는 오프닝

 

  메인 포스터 뿐 아니라 오프닝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거친 느낌의 질감과 붉고 파란 색깔의 강렬한 대비, 오프닝곡 중간에 삽입된 여러 번의 비명 소리, 많은 장면을 짧은 시간에 빠르게 이어붙여 만든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  마치 락이나 헤비메탈의 뮤직비디오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까지 현대극과 사극 모두를 통틀어서 이런 멋진 오프닝을 본 적이 없다...!

  다른 드라마를 볼 때는 처음 한두 회 정도나 오프닝을 본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을 절약하려 오프닝은 건너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오프닝을 꼬박꼬박 챙겨본 걸로도 모자라, 나중에는 아예 본 내용은 안 보고 오프닝만 따로 보기도 했다.  그만큼 멋진 오프닝이다.

 

 

 

 

  강렬한 영상으로 된 오프닝 마지막 부분에는, 오래되어 낡은데다가 습기까지 찬 듯한 벽지 느낌의 화면이 펼쳐진다. (바로 위의 이미지)

  그 화면 위로, 메인 포스터처럼 '한성별곡' 이란 거친 붓글씨의 제목이 나오면서,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역시 누군가의 피가 흩뿌려진다.  마치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결코 행복하고 따뜻한 결말을 맞지 못 할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가장 큰 핏자국 속에 들어있는 正이란 한 글자는, 아무리 암담하고 처절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그리고 놓아서도 안 되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한성별곡 正의 오프닝은 시각적으로도 훌륭하지만, 내용이나 구성도 탄탄하다.

 

  오프닝이라는 게 길어봤자 얼마나 길겠나...

  그런데 그 오프닝 전체도 아니고 오프닝 끝의 겨우 몇 초(바로 위에 보이는 벽지 느낌의 화면이 나오는 몇 초의 순간)를 잘 활용했다.  이 드라마는 매주 두 편씩 방영했는데 매주의 첫 번째 방영분(즉, 홀수 회차)의 오프닝 끝부분에서 등장인물의 대사가 하나씩 나온다.  그리고 그 대사는 전부 이 드라마의 주제 또는 드라마 속 상황을 잘 함축하고 있다.  

 

  1회 오프닝 -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얻을 수 있을까?"

 

  1회 오프닝에서는 여주인공 이나영(김하은)의 대사가 나온다.

  아버지가 역모를 꾀해 집안이 망하기 전, 이나영은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이라는 조선사회의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언젠가는 모든 차별이 없어지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낙관했다.  부유하고 지체 높은 집안의 외동딸로 행복하게 살던 시절이라, 아직 세상의 무서움과 부조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력은 있으나 신분제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고 분노하는 양만오(이천희)에게, 두 눈을 반짝이며 희망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얻을 수 있을까?" 

 

  비록 이나영이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상황에서 한 말이기는 했지만,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은, 그래서 이 드라마 첫회 오프닝에 나올 자격이 충분한 대사다.

  세상을 옳게 바꾸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그러한 개혁에 앞장섰던 이들은 차례로 피를 뿌리며 죽어간다.  그러니, 차라리 눈 감고 귀 막고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게 속편할 듯하다.  하지만 모든 이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부조리한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계속 소망하고 행동에 나서야만 마침내 그 소망한 바를 얻게 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첫회에 처음으로 나온 이 대사는,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라는 대사와 절묘하게 이어진다. (이 드라마를 만든 감독의 연출력, 정말 정말 정말 대단하다...!)

 

  3회 오프닝 - "모두가 만족하는 최선의 선택이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어느 한 쪽이 우선하는 차선만이 가능하다."

 

  3회 오프닝에서는 정조(안내상)의 대사가 나온다.

  정조는 자신이 죽을 뻔한 상황에서 박상규(진이한)가 보인 우유부단한 태도를 질책하면서, 모든 정치세력과 모든 계층을 만족시키는 정치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토로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최선의 선택이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어느 한 쪽이 우선하는 차선만이 가능하다."

 

  여러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사다.

  이 대사가 나오게 된 사건만 생각하고 본다면, 어차피 두 정치세력이 상생하는 것은 틀렸고 또한 두 정치세력 사이에서 어설프게 중립을 지킬 수 없는 노릇이니, 차라리 냉정하게 한쪽을 버리고 다른 한쪽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전체의 내용을 놓고 보면, 아무리 좋은 개혁이라도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고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는 게 불가피함을 지적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5회 오프닝 - "심한 종기는 탕약으로 해결되지 않소.  환부를 째고 뿌리를 뽑아 없애야만 치유될 것이오."

 

  5회 오프닝에서는 다시 정조의 대사가 나온다.

  반대파를 자기 등에 난 종기에 빗대어, 지금까지 반대파에게 취했던 온건책을 강경책으로 바꾸겠다는 의중을 내비치는 대사다.  "심한 종기는 탕약으로 해결되지 않소.  환부를 째고 뿌리를 뽑아 없애야만 치유될 것이오."  즉, 개혁에 반대하는 무리를 대화와 설득으로 포용하려 했으나 도무지 통하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피를 보는 한이 있어도 개혁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7회 오프닝 - "철새떼야 계절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오는 것이니까."

 

  7회 오프닝에서는 영의정 심민구(김기현)의 대사가 나온다. 

  심민구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막으려는 보수파의 우두머리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정국에서 한 수 앞을 헤아릴 줄 아는 안목을 지니고 있고,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데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는 나름대로의 소신도 갖고 있다.  그래서 개혁파와 정쟁을 벌이면서도 개혁파를 완전히 찍어누르는 극단적인 상황만은 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말하자면 온건 보수파 혹은 중도 보수파라 할 수 있다.

 

  심민구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바람직한 정치인은 아니지만,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고단수라는 것이 7회 오프닝 대사로 새삼 드러난다.

  정조가 세상을 뜬 후 심민구 쪽 당파 사람들은 우두머리격인 심민구와 의논도 하지 않고, 앞다투어 새로운 권력자에게 달려가 빌붙는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심민구는 그들에게 분노하지도 않고 비웃지도 않는다.  마치 '너희가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지.' 하는 것 같은 느긋한 태도로 한 마디 할 뿐이다.  "철새떼야 계절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오는 것이니까." 

  씁쓸한 대사지만 오프닝에 나오는 대사 중 현실을 가장 많이 반영한 대사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씁쓸한 결말을 암시하는 대사기도 하다. 

 

 

 

  ◎ 1회와 2회 - 스산한 시작과 대비되는 화려한 영상미 / 현실을 노골적으로 반영한 내용

 

  이 드라마가 결코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1회 앞부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드라마는 사대부 계층 사람들로 이루어진 듯한 어떤 비밀결사의 회합으로 시작된다.  회합에 참석한 이들은 '殺而救國(살이구국 : 살인으로써 나라를 구한다.)' 이란 글로 앞으로 일으킬 음모를 앞두고 결속력을 다진다.  즉, 이 비밀결사는 나라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장차 피바람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살벌하게 시작되는 내용과 별도로, 1회와 2회에 종종 나오는 과거 회상씬의 영상미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드라마 속 시점으로부터 6년 전에, 박상규(진이한)와 이나영(김하은)이 종종 데이트(?)를 즐기던 장면들이다.  도대체 이 드라마 야외촬영장소 섭외자가 누군지,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곳으로만 잘도 골랐다.  두 사람이 새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아래 돌다리를 건너는 장면, 불어오는 바람에 드넓은 초원의 긴 풀이 한쪽으로 휘어지는 사이를 걸어가는 장면, 한쪽으로는 새빨간 꽃들이 피어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성벽이 있는 길을 말을 타고 가는 장면 등등... 
  촬영장소 자체도 멋지지만, 그 장소를 담아낸 영상은 또 어찌나 훌륭하던지...  아무래도 이 드라마의 PD와 촬영 담당자는 모두 탐미주의자(!)인가 보다.

 

  그리고 2회에 나오는, 이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화제가 되어 인터넷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정조의 대사...

 

  정조가 자신의 오른팔인 채승환(남일우)을 대사헌으로 임명하려 한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임명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관료들(물론 보수파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이들)이 시위를 벌이며 반대하고 나선다.  채승환이 고위직에 오르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정조가 채승환을 그 자리에 앉힌 후 본격적으로 천도를 추진할 생각임을 알고 반발하는 것이다.

  채승환이란 인물 자체에도 별 문제가 없고 임명절차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니, 반대는 하되 제대로 된 근거를 들어 반대하지 못 한다.  "그런 자를 굳이 고집하심은, 국법을 무시하고 전하의 뜻대로만 종사를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라는 막말에 가까운 억지를 부리며 반대한다.  채승환이 왜 대사헌 자리에 적당하지 못 한 인물인지 설명하지 못 하고, 그냥 그런 사람은 안 된다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인 것이다.

 

  이 때 대본에 나오는 정조의 대사는 "국법을 무시한다?  언로를 넓히고 직언을 자유롭게 하라 하였더니, 이쯤되면 막가자는 게로구나!" 다.

  하지만 방영된 드라마에는 "국법을 무시한다?" 라고만 나올 뿐이다.  대본상에는 있지만 드라마상에는 없는 "이쯤되면 막가자는 게로구나!" 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의 모임에서 했던 말("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을 살짝 바꾼 것이다.  한동안 인터넷에서 유행어가 될 정도로 유명했던 말이고, 지금까지도 가끔 회자되고 있다.

  원래도 이 드라마 속 여러 에피소드가 방영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의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사까지 쓸 경우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질 것 같아서, 제작진이 편집해버린 모양이다.  더구나 "이쯤되면 막가자는 게로구나!" 와 함께 편집된 대사가 "언로를 넓히고 직언을 자유롭게 하라 하였더니" 라니...  이쯤되면 정말 빼도 박도 못 한다.

 

  원래 언론의 자유란 것은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지배계층의 불법행위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 속의 언론은 본래의 책무를 내던지고 오히려 지배계층에 영합하곤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여론을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며(즉, 물타기), 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려는 자를 쳐내는 칼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위의 대사는 그러한 언론의 어두운 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 3회와 4회 - 오래간만에 보는 사극 속 '진짜' 궁궐 / 세 주인공의 과거 / 같은 곳을 향하나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

 

  놀랍게도 이 드라마에 나오는 궁궐은 진.짜. 궁궐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소품 하나하나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같은 퓨전사극이라도,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정체불명의 의상과 도구가 줄줄이 나오는 다른 허접한(!) 퓨전사극과는 격이 다르다.  그렇게 전체적으로 고증이 잘 되어 있다 보니, 다른 사극 같으면 처음부터 알아챘을 것이 분명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계속 지나치다가, 3회까지 보고서야 겨우 알아챘다. 

  바로 이 드라마에 나오는 궁궐이 실제 궁궐이라는 점이다....!  이게 어째서 놀라운 일이냐 하면,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극에서 진짜 궁궐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서 나온 사극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궁궐이다.

  지난 10여 년간 사극에서 궁궐이랍시고 나오는 것을 보면, 화성 행궁 같은 2류(!) 궁궐이거나 아예 세트로 지은 짝퉁(!) 궁궐이다. ㅠ.ㅠ  어렸을 때 봤던 '조선왕조 500년' 등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는 항상 진짜 궁궐이 나왔다.  그래서 소풍이니 사생대회니 해서 단체로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갔다가, 사극 촬영하는 모습을 본 적도 몇 번이나 있을 정도다.


  사극 속 진짜 궁궐의 소멸 현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전에 블로그에 소개한 적 있는 1998년도 사극 '대왕의 길' 만 해도 분명히 진짜 궁궐에서 촬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비운의 사극 '대왕의 길' - 탤런트 '김수미' 와 '이진우' 에 얽힌 추억(http://blog.daum.net/jha7791/15791125)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2000년대 들어서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늘어난 탓인 듯하다.  서울 시내 여러 궁궐님들께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외국인을 상대로 외화벌이(!)에 바쁘신 나머지, 사극 촬영에 협조하실 틈이 없는 모양이다. -.-;; 

 

  자, 이제 이야기를 드라마 내용으로 돌려서...

  세 주인공이 각자의 처지에 불만을 느꼈던,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자세히 나온다.

 

  세 주인공 모두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없다는 아픔을 갖고 있었다.

  박상규(진이한)는 뛰어난 학문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서얼 출신이라 재주를 펼치지 못 한 채 세상을 비관하며 술독에 빠져 살았다.  비상한 머리와 끈기를 지닌 양만오(이천희) 역시 노비라는 신분 때문에, 세상과 양반에 대한 울분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나영(김하은)은 명문가의 외동딸로 태어난데다가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아버지 덕분에 학문을 익히며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운, 얼핏 보면 세 주인공 중 가장 팔자 좋은 인물 같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신분이 높고 재주가 있어도 여자라는 점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세 사람은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기에,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어 한 자리에서 세상에 대해 논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 신분과 성별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사이가 된다.

 

  박상규나 양만오나 세상에 한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상규는 서얼의 신분이든 뭐든, 어쨌거나 높은 관직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비호라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 박상규의 한과, 가장 밑바닥 계층인 노비로 살아온 양만오의 한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세상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다르고, 잘못된 세상에 대해 내놓는 처방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둘 다 찬성하지만, 개혁의 수준과 범위를 놓고 부딪쳤다.  박상규는 양반부터 천민까지 전부 끌어안을 수 있는 온건하고 이상적인 개혁을 생각하지만, 양만오는 양반이란 무리를 백성을 등쳐먹는 악귀 같은 집단으로 규정하며 양반 계급을 타도하려는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나영의 존재도, 박상규와 양만오가 서로의 인물 됨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경원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이나영은 박상규와 서로 사랑하면서 양만오를 좋은 친구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양만오는 이나영을 한 여자로서 마음에 품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는 같아도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방법론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사실은, 이나영의 변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위에 이 드라마 오프닝을 설명하며 이미 쓴 것처럼, 이나영은 행복하게 살던 과거에는 모든 것을 낙관했다.  그래서 박상규와 양만오가 첨예하게 의견대립을 일으킬 때마다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려 애쓰면서도, 결국에는 박상규의 온건 개혁론 쪽에 동조했다. 

  하지만 역적의 딸이 되어 관비로 전락해 험한 세월을 보낸 후 밑바닥 삶이란 게 얼마나 비참한지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양만오 같은, 아니 어쩌면 양만오보다 더 과격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품게 된다.  이나영이 박상규와 재회했을 때 하는 말에는 그 동안 가슴에 쌓인 한이 절절이 맺혀 있다.

 

박상규 : "좋은 세상에 대한 소망을 한가득 품고 계시던 낭자가 아닙니까?  제게 좋은 세상에 대한 소망을 한가득 나누어주신 낭자가 아닙니까?"
(중략)
이나영 : "
세상이... 제가 알던 세상이 아니더이다.  노비가 되어 경험한 세상은... 양갓집 규수가 사는 세상이 아니더이다.  도련님께서야 아실 리 있습니까?  알아도 느낄 수 없겠지요.  타고 나지 못해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그 고통, 그 괴로움..."

 

  그리고 처음에는 개혁을 꿈꾸었더라도 그 뜻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양만오의 변화를 통해 세밀하게 묘사된다.

  자기 스스로 민초의 아픔을 겪으며 살았기에 민초들을 위한 세상을 부르짖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민초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민초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즉,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양반들의 기세를 꺾을 의도로, 자신을 따르는 시전 상인들에게 쌀을 시중에 내놓지 말고 매점매석하여 가격을 올릴 것을 지시한다.  그러한 방법으로 양반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간다는 점이다.

 

박행수 : "그게, 양반들 골탕 먹이는 건 좋은데, 덩달아 평민들까지 피해를 입게 되질 않나?"
양만오 :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독하게) "당분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박행수 : "아니, 상인의 힘으로 민초들의 세상을 열자는 양행수께서 그리 말을 하다니, 가당키나 한가?  폭리를 취해 백성들 등골 빼먹는 파렴치한 장삿꾼을 몰아내야 한다 뜻을 모은 우리 아닌가?"

공행수 : "그렇지!  당장 올라간 쌀값을 감당 못해 굶는 이가 나올 것이 뻔하네, 그럼... 이를 어쩌나?"

 

 

 

  ◎ 5회와 6회 -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모 / 정조와 이나영 / 스러져가는 개혁의 꿈

 

  이나영은 자신을 부리는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자가 자신에게 어떤 일을 맡길 지도 모른 채, 의녀가 되어 궁궐에 들어간다.

  이나영 스스로는 '아무 죄 없는 아버지' 를 죽인 정조와 그 주위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노라 음모에 발을 담갔다.  하지만 음모를 기획한 자들에게, 이나영은 그저 장기판의 많은 말 중 하나일 뿐이다.  조 상궁이 "말하지 않았느냐?  쓸모를 다하면 필요 없어진다고." 라고 말했듯이 이나영을 대신할 말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이나영은 복수는 고사하고, 자신이 죽지 않을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도 급급하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정조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건강이 악화된 정조를, 우연과 필연이 결합된 상황 속에서 이나영이 여러 번 구해냈기 때문이다.  정조는 이나영을 무척 묘하게 대한다.  마치 이나영의 정체를 아는 것 같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이며, 한편으로는 이나영을 아끼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하는 듯한 모순적인 태도를 취한다.

  정조가 이나영에게 한 말은, 정조와 이나영 모두가 현실에서 맞닥뜨린 모순이며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갈등이다.  동시에 이 드라마 결말부에서 나오는 반전에 대한 복선이 된다.

 

정조 : "너도 내가 양위를 하면 중신들의 말대로 칼을 휘둘러 내 생부의 복수를 할 것 같으냐?"
이나영 : "비천한 계집이 어찌 그걸 알겠습니까?"
정조 : "무릇 아비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법..."

이나영 : "!"

 

정조 : (이나영을 누군가의 무덤에 데려가 절을 하게 한 후) "누구의 묘인지 묻지 않느냐?"
이나영 : (아무 말 없이 정조를 쳐다본다) 
정조 : "나의 벗이자, 스승이요, 또한 나를 죽이려 했던 자와 그가 아끼던 한 사람의 묘이다."  (무덤을 향해) " 나에게 힘을 주시오.  경과 함께 꿈꾸고 소망하던 세상이 바로 눈앞에 있소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모두 입체적인 캐릭터다.

  이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가, 조정 신하들을 단순하게 '정의로운 개혁파' 과 '사악한 보수파' 로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혁파는 개혁파대로, 보수파는 보수파대로, 각각 그 안에서 여러 파벌로 갈라진다.  그래서 인간군상들의 다양하고 이기적인 성질은 개혁파에서나 보수파에서나 모두 찾아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같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 하여 반드시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님을 일깨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정조의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는 보수파라도,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놓고 의견이 갈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정적을 찍어내려는 사람.  그리고 눈가리고 아웅 식이라도 절차를 밟아서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적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관용은 베풀려는 사람.  다만, 후자의 경우 고상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자신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이 나라가 나라 같은 최소한의 꼴은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또 다른 사극 '정도전' 에 나왔던, 권력욕은 넘치지만 권력의 속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고 자기절제에 철저했던 이인임을 떠올리게 한다.  ☞ 정도전(1~23회) - 오래간만에 보는 수준 높은 정통사극(http://blog.daum.net/jha7791/15791078)

 

홍만기 : "군사를 움직여야 합니다. 저들을 모조리 쳐낼 기회입니다."
심민구 : "명분이 있어야지, 명분이!  정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목을 치면 나라꼴이 뭐가 되는가?"

홍만기 : "대감?"
심민구 : "지나치게 억압하면 반발만 강해져서 오히려 상대를 결집시키네.  아무리 나약한 상대라도 적당히 행세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정치일세.  내가 치켜들 때도 상대가 수그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하는 법!"

 

  인간성의 복잡미묘함 때문에 같은 편이었던 이들이 갈리는 상황은, 개혁파 쪽에서도 벌어진다. 

  이나영은 자기 아버지 이 참판이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고 생각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그런데 이나영이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참판은 정조의 스승이며 동시에 정치적 동지였다.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 복수하겠노라 오랜 세월 칼을 갈아온 정조에게, 이 참판은 사적인 복수가 부질없음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그 복수심을 백성을 위한 개혁의지로 승화할 수 있도록 정조를 이끌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이 참판이, 조정을 뒤집어엎으려는 민란을 배후에서 지원했다!  즉, 이 참판은 억울하게 역적 누명을 쓰고 죽은 게 아니라, 정말로 역모죄를 꾀했다가 발각되어 죽은 것이다!


  정조와 이 참판은 개혁이라는 꿈을 함께 꾸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달랐다.

  정조는 강력한 왕권을 원동력으로 하는 국왕 중심의 개혁을 원했다.  하지만 이 참판은 일찍부터 청나라에 머무는 서양인들의 문물을 접하고 시대를 앞서는 사상을 품게 되어, 백성들이 주도하는 개혁을 원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 참판이 아무리 진보적인 인사라고 해도 백성들에 의한 정치를 꿈꾼다는 것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이쯤 되면, 이 참판이 원했던 건 그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참판 : "나라의 주인인 백성이 직접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제 신념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하."
정조 : "한 나라의 재상이 왕권을 부정하는 민란을 지원하다니!"
이참판 : "양이들의 역사처럼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것이 저였을 뿐입니다."

정조 : "나를 도와 왕권을 강력히 하고 경장을 실현시키는 것이, 더 옳은 길이지 않았겠소?"
이참판 : "조선 백성의 미래를 위하는 그 뜻이 같음은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하."
정조 : "한 때 내가 흠모해 마지않던 이 공의 마음 모르는 바 아니나, 그것은 너무도 먼 미래의 꿈!  아직은 그 때가 아니오.  조선의 현실을 직시했어야지요!"
이참판 : "전하, 현실은 늘 신념을 어둡게 하지요.  어찌 희생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서서히 죽어가는 정조는 깊은 회한에 젖는다.

  자신은 보다 나은 나라를 꿈꾸며, 사적인 원한은 접고 반대파마저 끌어안고 개혁의 길을 가고자 했다.  하지만 반대파를 포섭하기는 커녕, 뜻을 함께 하던 이들조차 지켜내지 못 하고 반대파의 공격 속에서 하나씩 잃었다.

  자신의 뜻은 분명히 백성을 위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그 좋은 세상의 수혜자가 될 백성은 오히려 왕이 공연한 짓을 벌여서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다고 비난한다.  백성을 위해 무언가 하고자 했으나, 되려 백성에게 비난받고 조롱받는 상황이라니...  참으로 우울한 일이지만, 역사 속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많은 개혁가들이 정작 그 개혁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 하고 오히려 비난과 조롱을 받은 일, 그런 모순되고 잔인한 상황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종종 있었던 일이다. 

 

정조 : "아귀처럼 이 복마전에서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고통 받는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조선을 만들겠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  허나 당쟁은 줄지 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은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는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신념이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이 안타까운 희생을 키우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나영아, 너라면 어찌하겠느냐..."

 

 

 

  ◎ 7회와 8회 - 푸른 솔을 찾아서 / 먼 훗날에 소망을 묻다.

 

  결국 정조는 죽음을 맞는다.

  이나영은 그 동안 정조를 곁에서 지켜보며 정조의 꿈과 인간적 고뇌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또한 자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미처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과거에 정조가 그러했듯이, 자신도 사적인 원한은 묻고 정조의 마지막 부탁을 수행하려 한다.

  정조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차라리 스스로 죽는 쪽을 택한다.  그런 정조가 남긴 마지막 승부수란, 자신이 죽고난 후에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을 맞을 조정에서도 절개를 지킬 푸른 솔을 찾아, 자신의 뜻을 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유지가 담긴 밀지를 이나영에게 주어, 그 푸른 솔에게 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비밀결사의 우두머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임팩트 강했던 장면!)

  바로, 평소에도 왕실의 위엄을 최우선시 했던 대비(정애리)가 우두머리이다.  대비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지만, 조정의 보수파와 뜻을 함께 하지는 않았다.  대비는 같은 지배 계급이라도 왕실과 일반 사대부 가문 사이의 격(!)을 확실히 구분하는 인물이다.  그런 대비 입장에서 보자면, 보수파든 개혁파든 결국에는 신하들일 뿐이니 모두 왕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 대비가 비밀결사 사람들에게 본모습을 드러내며, 서슬 퍼렇게 자신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해 천명한다. 

 

대 비 : "이제부터 이 나라 조선은, 태조대왕께서 나라를 세우실 때로 돌아갈 것이오.  굳건한 왕실을 바탕으로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종사를 튼실히 할 것이오.  공론정치를 핑계삼아 정쟁을 일삼는 붕당을 모두 혁파할 것이며, 적서의 차별을 분명히 하여 흔들리는 신분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며, 또한 난전을 일소하여 백성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것이오.  경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왕실을 돕기 바라오.  경들 모두가 천년 조선의 초석임을 잊지 마시오!"

 

  언뜻 들으면 전부 맞는 말처럼 들린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백성들을 위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워 권력투쟁이나 일삼는 붕당을 없애고, 제도권 밖의 상인인 난전을 일소하겠다니 말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명분일 뿐, 실제로는 언론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공존을 무너뜨리고 거대 상인들에 의한 독과점을 묵인하겠다는 이야기다.  간단히 말해서 반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개혁이 실패함으로써 오히려 그 전보다 보수적 색채가 더 강해진 것이다.

 

  이나영이 정조의 밀지를 찾아내는 장면도 이 드라마 명장면 중 하나다.

  정조는 죽기 직전 "밀지 속에 나의 마지막 소망을 담아, 내 나라 조선에 숨겨놓았다." 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겼다.  밀지를 직접 이나영에게 주거나 밀지의 행방을 명확히 알려줄 경우, 밀지가 반대파 손에 먼저 들어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밀지를 찾으려 전각 안을 둘러보던 이나영의 눈에 문득, 병풍으로 만든 곤여만국전도(17세기 초반에 서양 선교사 아담 샬과 명나라 관리들이 그 시대의 천문.역법.지리 지식을 망라하여 함께 만든 세계지도임.)가 들어온다.  몇 년 전 아직 행복했던 그 시절, 이나영과 박상규가 함께 서양 학문을 공부하면서 살펴보고 꿈을 키웠던 바로 그 지도다.  이나영은 밀지를 '내 나라 조선' 에 숨겼다는 말이, 바로 그 지도 속 조선 부분에 밀지를 숨겼다는 뜻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눈물 어린 눈으로 천천히 지도에 손을 뻗으며 말한다.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이 장면은 깊은 함의가 담긴 대사도, 연출도, OST도, 배우 연기도, 뭐 하나 버릴 게 없었음...! ㅠ.ㅠ)

 

  목숨을 걸고 정조의 마지막 명을 수행하려는 이나영을, 박상규가 막아선다.

  박상규는 그 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개혁파고 보수파고 간에 정치에 관련된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되었다.  그래서 정조의 유지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미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이나영이 다시 위험한 상황으로 뛰어드는 게 싫다.  하지만 이나영은 자신도 두렵다 하면서도, 그 동안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한다며 많은 이들을 죽였으니 그들에게 사죄하기 위해서라도 정조의 마지막 명을 수행하겠노라 말한다.

 

  이나영이 박상규에게 눈물로 한 말이, 옆에 있던 양만오의 마음을 움직인다.

  양만오는 거상이 되면서 초심을 잃고,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양반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이나영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이나영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곁에 두려 애썼다.  그런 양만오가 이제 이나영의 애정을 일방적으로 갈구하는 게 아니라, 이나영이 가려는 위험한 길에 함께 하겠노라 나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대해 원한과 분노만 쌓아두었던 양만오가 희망이란 것을 품게 된 것이, 바로 이나영 덕분이었다.  양만오에게 이나영이 그토록 소중했던 것은, 그저 남녀간의 정리 때문만이 아니라 암담한 세상에서 이나영으로 인해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나영의 절절한 말을 듣고, 이나영을 자신의 곁에 두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힘들게 일구어낸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이나영을 돕기로 한 것이다.  

 
양만오 : "제가 아씨를 모시겠습니다!"
박상규 : "과연... 시전 총행수 자리까지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인가?" 

양만오 : "장사는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허나..." (말은 박상규에게 하지만 시선은 이나영을 향하며) "아씨께서는 지금 이 순간 도움을 필요로 하십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이나영 : (아무 말도 못하고 놀라움과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양만오를 쳐다보는) "..." 

박상규 : (답답하고 안타까운 나머지 소리지르는) "장사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하는 것이다!  모르는가?"

양만오 : "두려움에 떤다면, 어찌 모든 것을 걸 수 있겠습니까?"  

 

  어찌어찌하여 박상규까지 동참해서 천신만고 끝에 정조의 밀지를 전하지만, 결국 헛된 노력이 된다.

  예상치 못 했던 인물이 예상치 못 한 방법으로, 정조의 유지를 받들 신하를 해쳤기 때문이다.  한때는 정의감을 불태우던 개혁적인 인사가, 막상 권력을 잡고나니 오히려 기득권과 야합하는 일...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변절자로 인해, 세 사람이 목숨을 걸고 전한 밀지 속 정조의 꿈은 허무하게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나영과 박상규는, 양만오가 자기 목숨을 내버릴 각오를 하고 시간을 벌어주며 피신시켰건만 결국 목숨을 잃는다. 

 

  많은 적을 물리치고 기어이 살아남아 뒤따라온 양만오가 두 사람의 시신 앞에서 절규한다.

  이 장면은 1990년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의 마지막 부분과도 겹치는 듯하다.  격동의 시대에 휘말린 한 여자와 두 남자.  두 남자는 그 여자를 사이에 둔 연적이며 정치적,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있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러니 결코 서로 통할 리 없는 관계로 보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이해했다.  결국 여자와 한 남자가 죽었을 때 살아남은 나머지 남자가 두 사람의 시신 곁을 지켰다.  그리고 무정한 세월을 견디며 계속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두 사람의 죽음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한성별곡 正의 이 장면은, 여명의 눈동자 마지막 장면의 오마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양만오 : (나레이션) "평생을 내 가슴에 품고 살았던 한 여인, 그 여인이 평생을 가슴에 품었던 한 사내를, 그 둘이 함께 품었던 작은 소망과 함께, 그 여인 곁에 묻었소.  나는 이제 그들과 함께 묻은, 그 소망을 잊을 것이오.  하지만 먼 훗날, 그들을 묻은 자리에서 싹이 나고, 그 싹이 온 세상을 뒤덮는 우거진 나무로 자라난다면, 나는 그 사내와 여인을 기억할 것이고, 어쩌면 다시 소망을 품어 볼 것이오."

 

  궁궐에서 어린 왕의 즉위식이 대비에 대한 충성맹세 의식처럼 치러지는 동안, 양만오는 월향(박상규를 짝사랑한 기생)이 화장한 뼛가루를 강에 뿌리는 자리에 함께 한다.

  서로 사랑했지만 이승에 있는 동안은 결코 맺어지지 못 했던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을 각각 사랑했던 또 다른 남자와 또 다른 여자.  서로를 사랑했던 남녀가 저승길을 떠나는데, 그들을 짝사랑했던 또 다른 남녀가 배웅해주는 기묘한 상황이다.


  그런데 박상규가 이나영의 일과 그 밖의 모든 일에 힘들어하며 방황할 때, 월향이 박상규와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을 했다.

  드라마 내용상으로는 월향의 임신 사실을 박상규는 죽는 순간까지 몰랐고, 월향 스스로도 박상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몰랐던 듯하다.  월향 뱃속의 아이는, 당장은 시들어버린 소망이 언제일지 모르는 먼 훗날에 어쩌면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월향 : (뼛가루를 강물에 뿌리다가 뒤에 선 양만오를 돌아보며) "인사를 올리시지요."  (양만오가 아무 말 없이 눈길을 돌리자) "이승에 남은 자가 저승으로 간 자를 질시하면 아니 되지요."  (양만오에게 다가가서) "멀리 가신다 들었습니다."  

양만오 : "어디든... 여기 조선이 아닌 곳으로 갈 것이네."  

월향 : "그러시군요."  

양만오 : "따라 나서겠다면, 내 기루 정도는 하나 열어줄 수 있네."   

월향 : "전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 아이에게 아비가 소망하던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혹여 이 아이가 그 세상을 보지 못한다 해도, 이 아이의 자식이 두 분 원하시던 그 세상에 살겠지요."  

양만오 : (눈물로 시뻘개진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부질없네..." 

월향 : "그리 한 번, 소망해 보는 겝니다."  

 

 

 

  ◎ 여운이 남는 엔딩 -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내내 훌륭한 연출을 보여줬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 장면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검은색은, 올바른 세상을 꿈꿨던 이들이 모두 죽어버린 세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떠한 암흑천지라도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소수라도 있기 마련이라, 어두운 화면 가운데에 붉은 색 正을 보여준다.  하지만 암흑의 시대에 정의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힘든 가시밭길이 될 게 뻔하다.  그래서 正자의 붉은 색은 선명하지 못 하고, 그 주위의 검은색에게 여기저기 침식당한 상태이다.  그러나 正은 그토록 고통받으면서도, 결코 어둠에 먹히지 않고 꿋꿋히 버티고 있다.

 

  그런 화면 위로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라는 이나영의 대사가 흐른다.

  이 대사는 정조가 죽어가면서 이나영에게 밀지를 부탁하며 말한  "밀지 속에 나의 마지막 소망을 담아, 내 나라 조선에 숨겨놓았다." 의 해답이며, 동시에 이 드라마 첫회의 오프닝에 나온 이나영이 말한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얻을 수 있을까?" 의 대답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가지로 실망스럽고 우울하기만 지금, 점점 냉소적이고 현실도피적으로 변해가는 우리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성별곡 正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 비극 속에 희미하고 자그마한 소망의 불씨만은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