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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사도세자, 혜경궁(3) - 사도 / 혜경궁 홍씨(DnC Live)

Lesley 2015. 10. 2. 00:01

 

  이 포스트에는 지금 개봉중인 영화 '사도' 의 줄거리가 나옴.

  사실, 사도는 우리 모두가 여러 사극을 통해 잘 아는 내용이라, 줄거리를 미리 알아도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음.  하지만 세상이 무너져도 줄거리를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이라면 뒤로가기 버튼을 살포시 눌러주시기를... 

 

 

  2015년은 사도세자-혜경궁과 무슨 인연이 있는 해인가 보다.

  지난 5월에 '혜경궁 홍씨(DnC Live)' 라는 영화를 봤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그리고 8월에는 사도세자에 관한 단막극 '붉은 달'이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 2015 사도세자, 혜경궁(2) - 단막극 '붉은 달'(http://blog.daum.net/jha7791/15791235)  그러더니 9월에는 혜경궁의 시아버지 영조와 남편 사도세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사도' 가 개봉했다.

  같은 해에 같은 소재를 다룬 영상물을 줄줄이 보게 된 것이다.  그 중 단막극은 이미 지난 번에 포스팅했으니, 이번에는 영화 사도와 혜경궁 홍씨(DnC Live)를 포스팅하려 한다.  두 영화는 누구의 시점에서 진행되는가 하는 점에서도 다르고, 형식도 다르다.  하지만 어쨌거나 같은 소재를 다룬 두 영화를 같은 해에 보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 두 영화를 한 포스트에 묶어 써볼까 한다.

 

 

 

 

 

  영화 속에 연극을 녹여보려 한 혜경궁 홍씨(DnC Live)

 

  '사도' 가 그냥 영화인데 비해서, '혜경궁 홍씨(DnC Live)' 는 연극 같은 영화다.

  혜경궁 홍씨(DnC Live)는 '혜경궁 홍씨' 라는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데, 특이하게도 영화라는 매체에 맞춰 원래의 희곡을 개작한 게 아니라 연극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  영화 제목 뒤에 괄호로 붙인 'DnC Live' 라는 영어단어가 그런 형식 내지는 장르를 의미하는 단어인 듯한데, 정확히 어떤 단어의 약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연극과 영화의 결합이라는 점이 혜경궁 홍씨(DnC Live)의 독특한 개성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가장 큰 약점일 수도 있다.

  영화는 영화대로의 개성이 있고, 연극은 연극대로의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관객과 연극 관객이 각각 영화와 연극을 감상하면서 기대하는 부분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연극과 영화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다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작품이 되어 버렸다.  영화팬이 보기에는, 영화의 장점(장소적 배경의 이동이 자유롭고, 여러가지 현란한 기술이나 편집을 볼 수 있고, 다채로운 배경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없어서 지루할 수 있다.  반대로 연극팬이 보기에는, 영화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연극만의 강점(지금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배우가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연극인 듯 연극 아닌 연극 같은 너~~♩♬ -.-;;)

 

 

 

  ◎ '시점 차이' 혹은 '등장인물의 비중 차이 - 영조와 사도세자 VS. 혜경궁과 정조 

 

  두 작품 모두 1990년대 후반 들어 유행한 '사도세자가 개혁을 꿈꾸다가 보수적인 노론의 덫에 걸려 살해당했다' 는 음모론을 배제한 정통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가 비슷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위에 쓴대로 혜경궁 홍씨(DnC Live)의 형식이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영화가 누구의 시점에서 진행되는가' 혹은 '두 영화의 등장인물이 겹치지만 어떤 등장인물의 비중이 더 높은가' 하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도는 임오화변(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영조와 사도세자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다.

 

  영화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가있던 8일 동안 벌어진 일과 과거의 일이 번갈아 교차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영화 속 시점이 교차될 때 현재 인물(성인역 배우)의 얼굴과 과거 인물(즉, 아역 배우)의 얼굴이 겹치며 화면이 바뀌는데, 양쪽의 외모가 무척 흡사한 게 인상적이다.  아역 배우를 캐스팅할 때 성인역을 맡을 배우의 얼굴과 싱크로율 높은 것을 주요기준으로 삼은 모양이다.  

 

  영조-사도세자의 관계는 사도세자의 유년기까지만 해도 원만했는데, 사도세자가 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영조는 좋게 말하면 교육열이 높고 자식에게 관심이 많은 아버지였고, 나쁘게 말하면 성급하고 독선적인 아버지였다.  유년기까지만 해도 매우 똑똑해보였던 아들의 학습수준이 점차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치치게 되자, 아들을 과도하게 질책하며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낸다.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가 별일 아닌 문제로 불같이 화를 내는 게 이해되지도 않고, 또한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사정없이 깎아내리는 아버지에게 반발심도 품게 된다.

 

  그렇잖아도 빗나가던 부자관계는 대리청정으로 악화일로를 달리게 된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제왕학을 확실히 가르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사도세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우려는 의도에서, 15살이 된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다.  대리청정 첫날에 사도세자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겠노라 신하들에게 천명하며 사도세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하더니, 곧 그 말을 뒤집는다.  즉, 아버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사도세자가 소신대로 일을 처리하자, 곧장 끼어들며 왜 그렇게 처리하느냐고 질책한다.  그러자 사도세자는 영조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 못 하고 영조에게 의향을 묻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의 일도 혼자 처리하지 못 하느냐고 역정을 낸다. (이래도 뭐라고 하고 저래도 뭐라고 하고, 도대체 어쩌라고~~~ -.-;;)   

  아들에 대한 기대치와 욕심이 앞서는 영조 입장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치의 미묘함과 위험성은 생각 안 하고 교과서적으로만 일을 처리하는 게 너무나 한심하고 못마땅하다.  반대로 사도세자 입장에서는,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고 무엇을 어떻게 해도 질책만 하는 아버지 때문에 분노가 치미는 수준을 넘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주위상황도 부자관계의 악화에 일조한다.

  먼저, 사도세자를 감싸주던 인원왕후와 정성왕후가 비슷한 시기에 승하해버린다.  그나마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해주던 사람이 세상을 떳으니, 이제 부자가 충돌해도 말려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훗날의 정조)이 우수한 학업능력과 의젓한 몸가짐으로 영조의 눈에 들면서, 본의 아니게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더욱 갈라놓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완전히 실망했으면서도 후계자가 될 아들이 사도세자 하나 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도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줘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어린 세손의 총명함을 보니, 사도세자를 건너뛰고(직설적으로 말하면 '사도세자를 버리고') 세손에게 곧장 왕위를 넘겨도 되겠다는 마음을 품게된 것이다.  아버지에게 사랑과 인정을 못 받는 울화로 몸부림치던 사도세자는, 어린 아들에게까지 질투심과 위협을 느끼는 구차하고 딱한 처지가 된 것이다.

 

  사도세자는 이런저런 일로 울화가 쌓여 점점 심한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다가, 마침내 아버지를 죽이겠다며 날뛸 지경이 된다.

  세자가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자, 세자의 생모 영빈도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된다.  만일 세자가 정말로 영조를 살해한다면, 세자 혼자만 역적이 되어 죽는 게 아니라 세손까지 역적의 자식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영빈은 세손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자기 입으로 영조에게 아들을 처분하라 고변한다.    

  그러자 그 때까지는 세자 편에 서있던 세자의 처가(혜경궁의 친정)마저 등을 돌린다.  세자의 장인 홍봉한은 더 이상 일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세손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영빈의 뜻에 찬동하며 세자를 포기한다.  그리고 홍봉한이 어쩔 수 없이 세자를 포기한 것과는 달리, 한 치 건너 두치라고 홍봉한의 동생 홍인한은 그 와중에도 권력을 위한 튼튼한 새 동아줄 찾는 식으로 정순왕후와 그 친정 쪽에 접근한다.   

 

  그렇게 주위의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서 굶주림과 더위로 7일을 몸부림치다가 죽는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뒤 8일째 되던 날,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확인하고 잠시 시신을 만지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종사를 위해 큰일을 했다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듯이 개선가를 울리며 환궁한다.   

 

 

  그에 비해, 혜경궁 홍씨(DnC Live)는 임오화변이 벌어지고 수십년이 흐른 후에 혜경궁과 그 아들 정조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다. 

 

  혜경궁 홍씨(DnC Live)도 사도처럼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2015 사도세자, 혜경궁(1) - 한중록(정병설 번역본)(http://blog.daum.net/jha7791/15791236)

  다만, 이 영화 속 현재는 혜경궁이 환갑을 맞아 아들 정조와 함께 수원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간 때다.  그리고 과거는 혜경궁이 사도세자와 막 결혼해서 궁에 들어간 때부터 사도세자가 죽는 때까지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DnC Live)란 제목에 걸맞게 혜경궁 시점에서 쓴 한중록 내용을 따른다.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등 정치적인 부분이 나오는 장면 빼고는, 영화 사도와 크게 다른 내용은 아니다.  특히, 한중록을 미리 읽고 혜경궁 홍씨(DnC Live)와 사도를 본 관객이라면 더욱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줄거리건만, 사도는 '보통의 영화' 고 혜경궁 홍씨(DnC Live)는 '연극 같은 영화' 라는 점 때문에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혜경궁 홍씨(DnC Live)는 연극 무대 위에서 진행되다 보니, 사도만큼 배경과 장면이 자주 바뀌지 못 하고 등장인물도 최소한으로 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혜경궁 홍씨(DnC Live)가 한중록과 100% 같은 것은 아니다.

  일단, 한중록 외면의 줄거리는 충실히 따르되, 혜경궁-정조의 관계가 한중록에 묘사된 것처럼 마냥 화기애애하게 나오지는 않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한중록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행간에서 추측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갈등을 무척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즉, 혜경궁의 친정이 과연 사도세자 죽음에 책임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혜경궁과 정조가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인다.

  또한, 사도세자의 귀신과 늙은 혜경궁이 대화를 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왕실법도에 눌려 제대로 부부의 정을 나누지 못 한 회한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임오화변이 일어나던 때 남편을 포기한 혜경궁의 태도에 대해 부부간의 갈등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임오화변에 대한 정조의 태도를 놓고, 이미 죽은 사도세자와 아직 생존한 혜경궁의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음도 보여준다.

 

 

 

   ◎ 총평

 

  사도는 꽤 괜찮지만 동시에 밋밋한 영화다.

 

  사실은 안 보려다가 본 영화다.

  안 보려던 이유는, 송강호가 영조로 나온다고 해서다.  송강호의 연기력이 훌륭하다는 데야 감히 왈가왈부 할 수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송강호는 국왕 비주얼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 비주얼 같아서... ^^;;  그런데 여름에 개봉했던 영화 '베테랑' 에서 유아인이 악역을 너무 실감나게 연기하는 것을 보고, 유아인에게 반해서 이 영화를 봤다.

  막상 봤더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영화였다.  대본도 괜찮고, 배우들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으며,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갈 때의 편집도 매끄럽고, 요란하면서도 한이 느껴지는 음악(영화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나오는, 사도세자가 영조를 죽이겠다고 무사들을 이끌고 가던 장면에서 나오던 음악)도 좋았다.  특히 인원왕후의 승하 부분은 '한중록 내용 + 소론측 기록 + 대본작가의 상상' 을 잘 버무려놓아 인상적이었다. (한중록을 먼저 보고 이 영화를 봐야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요~! ^^)

 

  하지만 이런 괜찮은 영화에도 흠이 없지는 않으니...

  일단, 정조의 즉위식 다음에 나온 장면들은 몽땅 쳐내는 게 나을 뻔했다.  정조가 즉위식을 하면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정도에서 끝을 냈으면 깔끔했을텐데, 환갑을 맞은 혜경궁과 함께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간 정조가 춤을 추는 장면은 왜 넣은 건지...  넣었어도 짤막하게 넣었더라면 나았을텐데, 너무 길어서 갑자기 영화가 축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덧붙이자면, 그냥 동안도 아니고 미친(!) 동안 수준인 문근영(혜경궁 홍씨 역할)을 환갑 노인으로 분장해놓은 것은 너무 쇼킹했다. (주름살도 없이 그저 얼굴피부를 우둘투둘하게 보이게만 만들면, 그게 노인분장입니까? -.-;;) 

  그리고 영화 줄거리가 딱히 흠잡을 데는 없지만, 대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보니 밋밋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었다.  음식으로 치자면 쌀밥 같다.  태우지도 않고 설익지도 않은 잘 지은 밥이긴 한데, 밥이란 게 매일 먹는 것이다 보니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 없이 그냥 먹는 것이지 않나...  오히려 위에서 소개한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단막극 '붉은 달' 이 비록 전체적으로는 이런저런 흠이 있지만 참신한 느낌은 있었다.  

 

 

  혜경궁 홍씨(DnC Live)는 호불호가 확연히 갈릴 영화다.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한중록을 인상 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혹은 조선 영.정조 시대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큰 실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년에 연극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문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배우들도 하나같이 연기력이 출중했다.

 

  하지만 위에 몇 번이나 썼듯이 '연극 같은 영화' 이기 때문에, 내용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거부감 가질 관객이 많을 것 같다.

  굳이 연극 공연 그대로 영화로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  영화 스크린의 특성상 뒷자리에 앉은 관객도 연극 배우들 얼굴을 큼지막하게 볼 수 있다는 점 빼고는 무슨 장점이 있다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다면 원작인 연극으로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은 연극답게, 영화는 영화답게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음식을 먹어도 퓨전음식은 별로인데, 연극인지 영화인지 알 수 없는 작품은 좀... ^^;; 

 

 

2015 사도세자, 혜경궁(1) - 한중록(정병설 번역본)(http://blog.daum.net/jha7791/15791236)

2015 사도세자, 혜경궁(2) - 단막극 '붉은 달'(http://blog.daum.net/jha7791/1579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