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의 시를 벌써 12번째 블로그에 올린다.
그 동안 이규보의 시를 소개하면서 몇 번이나 쓴 말이지만, 이규보 이 아저씨는 정말로 고려시대 1급 주당이었나 보다. 이규보가 얼마나 술을 마셔댔으면, 이규보의 아들마저 아직 젖니도 갈지 않은 나이에(즉, 요즘 같으면 이제 유치원이나 다닐 나이에) 술을 마셨다. -0-;; 어린 마음에, 술이라는 게 얼마나 맛이 있으면 아버지가 저렇게 자주 마실까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라는 말처럼, 이규보 스스로는 말술을 마셨으면서 막상 어린 아들이 술을 마시자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시로 풀어 남겼다. (이규보 아저씨, 이런 시 지을 시간에 차라리 금주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텐데요? -.-;;)
兒三百飮酒 (아삼백음주)
아들 삼백이가 술을 마시다.
_ 李奎報(이규보) -
汝今乳齒已傾觴 (여금유치이경상)
네가 지금 젖니를 지니고(즉, 젖니도 안 간 어린 나이에) 이미 술잔을 기울이니
心恐年來必腐腸 (심공년래필부장)
조만간 반드시 창자가 썩을까 내 마음이 두렵구나.
莫學乃翁長醉倒 (막학내옹장취도)
너의 아비 취하는 모습 배우지 말지니
一生人道太顚狂 (일생인도태전광)
일생 동안 사람들이 (네 아비에게) 크게 미쳤다고 했다.
一生誤身全是酒 (일생오신전시주)
일생 동안 몸 망친 게 전부 술 탓인데
汝今好飮又何哉 (여금호음우하재)
너도 지금 술을 좋아하니 어찌한단 말이냐.
命名三百吾方悔 (명명삼백오방회)
삼백이라 이름한 것을 이제와 후회하니
恐爾日傾三百杯 (공이일경삼백배)
네가 매일 삼백 잔을 마실까 두렵구나.
시 속에 나오는 이규보 아들의 특이한 이름에는 한 가지 사연이 있다.
이규보가 오세문이란 지인에게서 300운짜리 시를 받고, 답례차 자신도 300운짜리 시를 지었다. 한자 300개로 시를 지으라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각 행의 맨 끝에 나오는 운만 300개나 될 정도라면 그 시가 얼마나 방대한지 알만 하다. 아무리 고려시대 문인을 대표할만한 이규보라고 해도, 그런 시를 지으려면 오랫동안 머리를 쥐어짜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런 어려운 시를 완성하던 날 아들이 태어났다. 그래서 300운짜리 시를 지은 날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뜻으로, 아들에게 삼백(三百)이란 이름을 붙여주게 된 것이다. (다만 삼백이란 이름은 어디까지나 아명이고, 아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 정식 이름을 따로 지어줬다고 함.)
그런데 이 재미있는 시에는 슬픈 후일담이 있다.
삼백이가 어린 나이에 아버지처럼 술을 배우는 둥 엉뚱한 재롱을 피우더니,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이규보가 이 시를 지었을 때는, 어린 자식이 벌써 술을 마시는 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죽은 후에는, 이 시를 볼 때마다 죽은 자식의 추억이 떠올라 괴로워 했을 것이다.
이규보(李奎報) 시문(11) - 동일여객음냉주희작(冬日與客飮冷酒戱作)(http://blog.daum.net/jha7791/1579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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