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규보(李奎報) 시문(11) - 동일여객음냉주희작(冬日與客飮冷酒戱作)

Lesley 2016. 1. 1. 00:01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또 다시 이규보의 시로 새해의 문을 열어보려 한다.

  이러다가 '설날은 무조건 이규보의 시...!' 가 내 블로그의 전통으로 자리잡을 듯하다. ^^

 

  '겨울날 손님과 찬 술을 마시며 장난삼아 짓다' 라는 뜻을 가진 冬日與客飮冷酒戱作(동일여객음냉주희작)라는 시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봐도 그렇고, 연말연시는 망년회와 신년회로 술 마실 일이 많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요즘에야 따끈한 술을 마실 일이 거의 없이 술 하면 당연히 차가운 술이 보통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술자리에서 종종 장난 삼아 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참 여러가지로 현대의 상황과도 상통하는 시 제목이다.

 

  그런데 옛날 옛적 문인이니 예술가니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술을 좋아했을까...

  이규보의 시 중에서 내가 아는 건 극히 일부이건만, 그 중 절반 가까이에 술 이야기가 나온다. -.-;;  이렇게 술 좋아하는 남편과 살려면 아내 되는 사람은 속 좀 터졌을 듯하다.  그런데 어찌된 모양인지 그런 시인이나 예술가에 얽힌 사연을 읽어 보면, 술독에 빠져 사는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아내만 예술을 이해 못 하는 한심한 사람으로 타박하는 분위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사연들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남긴 사람들은 거의 남자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여자들은 교육을 못 받아 글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술 좋아하는 남자들끼리 이심전심으로 편을 들어준 게 아닐까... ^^;;

 

 

 

冬日與客飮冷酒戱作 (동일여객음냉주희작)

겨울날 손님과 찬 술을 마시며 장난삼아 짓다

                                                

 

                                               - 李奎報 (이규보) -

 

 

雪滿長安炭價擡(설만장안탄가대)

장안에 눈이 가득 내려 숯값이 올라

 

寒甁凍手酌香醅 (한병동수작향배)

찬 병을 언 손으로 들어 향기로운 술 따르네.

 

入腸自暖君知不 (입장자난군지불)

(술이) 창자에 들어가면 저절로 따뜻해짐을 자네는 아는가 모르는가 

 

請待丹霞上臉來 (청대단하상검래)

기다려 보게나, 붉은 노을 얼굴에 올라올테니.

 

 

  이규보는 정말로 끔찍하게도 술을 사랑했나 보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사랑했을 수도... ^^;;)

  장안(물론 여기서는 중국의 옛 수도 장안이 아니라 고려 수도인 개성을 말함.)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숯값이 폭등해 난방을 못 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규보는 추운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손님과 함께 술을 마셨다.  따끈한 술을 마시며 그랬으면 그나마 말이 되는데, 찬 술을 마시면서 어쨌거나 술이 창자에 들어가면 몸이 따뜻해진다고 말한다. (현대 한국인들은 절대로 옛날 고려인 이규보 아저씨를 따라하지 마세요~~  춥다고 술 마시고 나돌아다니면 동사할 수도 있으니~~)

  찬 술이라도 마시면 몸이 저절로 따듯해진다는 말에 반은 어이없어 하고 반은 재미있어 하는 표정 지었을 손님에게, 이규보가 또 한 마디 한다.  잠시 기다리면 붉은 노을이 얼굴에 올라올 거라고.  물론 그 붉은 노을은 술기운으로 인한 홍조일 뿐, 절대로 몸이 따뜻해져서 올라오는 홍조가 아니다.  그래도 이규보는 술 몇 잔 마시고 붉어진 얼굴로 "그거 보라니까!  내 말이 맞잖아, 몸에 열이 오르잖아!" 하고 즐거워 하며 계속해서 마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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