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순신(李舜臣)의 진중음(陳中吟)

Lesley 2016. 6. 5. 00:01


  곧 다가올 현충일을 기념하는 뜻으로 우국충정을 주제로 하는 시를 한 편 올려보려 한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지은 진중음(陳中吟)이라는 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교과서에 실린 이순신 장군의 시는 '한산도가(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시)'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 교과서에는 진중음도 함께 실려있다고 한다.




陳中吟(진중음)

진중에서 읊다.



                   - 李舜臣(이순신) - 



天步西門遠(천보서문원)

임금의 행차는 서문으로 멀어지고


君儲北地危(군저북지위)

왕자들(임해군과 순화군)은 북쪽 땅에서 위태롭다.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

외로운 신하가 나라를 걱정할 날이며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

장사가 공훈을 세워야 할 때로구나.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바다에 한 맹세,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산에 한 맹세, 풀과 나무조차 알아준다.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

원수 오랑캐를 모두 무찌를 수 있다면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

비록 죽음일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노라.




  첫 번째 및 두 번째 구절은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된 위급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임금의 행차가 서문으로 멀어지고' 라는 구절은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겨우 16일만에 조선 국왕인 선조가 수도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난을 떠난 것을 묘사한다.  그리고 '왕자들은 북쪽 땅에서 위태롭다.' 는 선조의 아들들인 임해군과 순화군이 각각 함경도와 강원도로 군사들을 모으려고 갔다가 왜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사건을 말한다.

  참고로 임해군과 순화군이 포로가 된 것은 싸우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두 왕자 모두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이라서, 나라를 지킬 군사를 모아오라고 보냈더니 백성들에게 횡포나 부리는 등 물의만 일으켰다.  그러다가 반란을 일으킨 백성들 손에 붙잡혀 왜군에게 넘겨진 것이다. (무책임하게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못난 왕이나, 그 난리 북새통에도 백성을 괴롭힌 못된 왕자들이나... -.-;;) 


  세 번째 및 네 번째 구절은 사람들에게 나라를 위해 일어설 것을 독려하는 부분이다.

  '외로운 신하가 나라를 걱정할 날이며' 라고 하여, 평소 왕에게 인정받지 못 하고 소외되었던 신하일지라도 나라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장사가 공훈을 세워야 할 때로구나.' 라고 하여,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에 나가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 번째 및 여섯 번째 구절은 자신을 포함한 우국지사들의 뜨거운 마음을 읊고 있다.

  '바다에 한 맹세,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와 '산에 한 맹세, 풀과 나무조차 알아준다.' 라고 하여 반드시 외적의 손에서 나라를 지켜낼 것을 맹세한다.  여기에서 바다와 산은 그저 물리적인 바다와 산이 아니라, 조국의 강토를 빗댄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걸고 삼천리 금수강산을 반드시 지켜내겠노라고, 바로 그 금수강산에 대고 맹세한 것이다.  그 맹세가 어찌나 절절하고 굳은지, 바다 속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있는 풀과 나무까지 그 진심을 알아줄 정도다. 

 

  일곱 번째 및 여덟 번째 구절에는 죽음을 각오한 이의 비장함이 흐른다.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왜군을 물리치겠다는 절절함이 '원수 오랑캐를 모두 무찌를 수 있다면' 과 '비록 죽음일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노라.' 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 마지막 두 구절은 정말로 실현되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은 자기 나라로 퇴각하는 왜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노량해전), 왜군이 쏜 탄환에 맞고 전사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이 시를 지은 뜻과 상관없이, 시를 읽다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세월이 흐르면 무언가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터지던 그 시절이나, 임진왜란에서 수백 년이 지나 벌어진 6.25 동란 때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평화로운 시기에 부귀영화 누리던 정치인들은 전쟁이 터지자 수도의 백성(혹은 국민)을 내팽개친 채 후다닥 도망쳐버리고, 평화로운 시기에 별로 대접 못 받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켰다.

  저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양반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니 뭐니 하며 어마어마한 의무를 자발적으로 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자기 지위에 부과되는 법적 의무와 그 지위로 인해 받는 월급 수준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는 졌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서, 최소한 밥값 정도는 하라는 말입니다, 이 양반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