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봉구황(鳳求凰) / 탁문군(卓文君)의 백두음(白頭吟)

Lesley 2016. 2. 15. 00:01

 

  오늘 소개할 두 편의 시(그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이기도 함)는 봉구황(鳳求凰)백두음(白頭吟)이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을 지은 사람은 한 쌍의 부부다.  남편이 봉구황을, 아내가 백두음을 각각 지었다.   

 

  그런데 두 시 중 봉구황(鳳求凰)을  알게된 계기가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중국 드라마 량야방(琅琊榜) 이다.

  이 랑야방이라는 드라마에서, 봉구황은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덫의 일부로 쓰인다.  봉구황이 복수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수를 위해 짜놓은 판에 특정인물을 등장시키기 위한 전조로 나온다.  

  그런데 드라마만 봐서는 봉구황이 나오는 장면이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칠현금으로 연주하는 봉구황을 들으며 리양장공주라는 인물이 눈물을 흘리고, 그 남편 녕국후 사옥은 표정이 굳어서 아내를 쳐다본다.  하지만 어째서 두 사람이 봉구황을 듣고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리양장공주에게는 결혼하기 전에 따로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는데(이 부분은 드라마에도 나옴.), 그 남자가 봉구황을 연주하며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이 부분이 드라마에 안 나옴.)  즉, 리양장공주에게 봉구황은 옛 사랑의 상징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남편이 꾸민 음모에 걸려들어, 억지로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원작소설에는 있다는 이 내용이 어째서 드라마에서는 빠졌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드라마 속 사연을 찾겠다고 그렇게 인터넷을 뒤지며, 또 다른 작품인 백두음도 알게 되었다.

  랑야방 때문에 봉구황을 알게 되었는데, 봉구황 때문에 다시 백두음을 알게 되었다. (줄줄이 알사탕? ^^)  요즘 랑야방에 대해서 포스팅 중인데, 이왕 랑야방에 대해서 쓰는 김에 랑야방 때문에 알게된 이 시도 소개해보려 한다.  


 

  자, 서론이 길었고 지금부터 본론 시작~~!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중국 전한 시대 촉군, 즉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쓰촨성) 출신의 문인이다.
  글재주가 대단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부(賦)를 잘 짓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황제인 경제(전한 제6대 황제)가 어째서인지 부를 싫어해서, 사마상여는 재주를 펼치지 못 하고 미관말직만 전전했다.  나중에는 아예 중앙조정을 떠나 양이라는 지방의 제후 효왕에게 의탁했다가, 그 효왕이 세상을 뜨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
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탁왕손(卓王孫)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탁왕손은 사마상여의 고향인 촉군 사람인데, 철광업으로 큰 재산을 모아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부호가 되었다.  그런 탁왕손이 그 지방의 명사들을 불러 연회를 열면서, 글재주 좋다고 소문난 사마상여도 초대한 것이다.

  역시 연회에 초대받은 그 지방 태수가 강권해서, 사마상여는 초대받은 문객 중 제일 먼저 금을 타며 시를 읊게 되었다.  금의 연주도 시의 내용도 매우 훌륭해서 연회에 참석한 사람 모두가 크게 감탄했다.

 

  이 시가 바로 '봉이 황을 구하다' 는 뜻의 봉구황(鳳求凰)이다.

  우리가 흔히 봉황이라고 부르는 상상 속 새는, 사실은 수컷인 봉(鳳)암컷인 황(凰)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수컷인 봉이 암컷인 황을 구한다고 했으니(여기에서 '구하다' 는 구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찾는다는 의미임.), 결국 봉구황은 남자인 사마상여가 자신의 배우자가 되어줄 여자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나 이제 솔로 탈출하고 싶어요~~  나와 결혼할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식의 시를 가사 삼아서 곡을 붙여 부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위에 중국드라마 랑야방 이야기에 썼듯이, 리양장공주의 정인이었던 남자가 이 곡으로 리양장공주에게 사랑 고백을 했던 것이다. 

 

 

 

봉구황(鳳求凰)

봉이 황을 구하다


                 

                    - 司馬相如(사마상여) - 

 

 

(1절)

 

鳳兮鳳兮歸故鄕 (봉혜봉혜귀고향)

봉이여, 봉이여, 고향으로 돌아왔구나.


遨遊四海求其凰 (오유사해구기황)

사해(온 세상)를 돌아다니며 황을 구하고자 하였더냐.


時未遇兮無所將 (시미우혜무소장)

때를 만나지 못 하여 얻은 바 없더니


何悟今夕升斯堂 (하오금석승사당)

오늘 저녁 이 곳에 오를 줄 어찌 알았겠느냐.


有艶淑女在閨房 (유염숙녀재규방)

아름다운 여인이 규방에 있으나


室邇人遐毒我腸 (실이인하독아장)

방은 가까워도 사람은 멀어 내 애간장이 타는구나.


何緣交頸爲鴛鴦 (하연교경위원앙)

어떤 인연을 맺어야 원앙이 되며


胡頡頏兮共翶翔 (호힐항혜공고상)

어찌 힘을 합쳐야 함께 높은 하늘로 날아오를까.

 

 

(2절)


凰兮凰兮從我捿 (황혜황혜종아서)

황이여, 황이여, 나를 따라 둥지를 틀어다오.


得托孶尾永爲妃 (득탁자미영위비)

부탁하노니 나와 혼인하여 영원토록 짝이 되어다오.


交情通體心和諧 (교정통체심화해)

정 나누고 몸 통하여 마음이 화합하면


中夜相從知者誰 (중야상종지자수)

깊은 밤 서로 좇아 친해진다 하여도 그 누가 알겠느냐.

 

雙翼俱起翻高飛 (쌍익구기번고비)

두 날개 함께 펴고 높이 날아올라


無感我思使於悲 (무감아사사어비)

나로 하여금 슬픈 생각하지 말게 해다오.

 

 

 

 

 

  그런데 연회 주최자인 탁왕손에게는 탁문군(卓文君)이라는 재색을 겸비한 딸이 있었다.
  탁문군은 16살에 시집을 갔다가 불행히도 몇 년 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와 지내고 있었다.  이 탁문군이 연회석에서 좀 떨어진 곳에 숨어서 사마상여가 봉구황을 부르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사마상여의 풍모와 재주가 소문으로 듣던 것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만 첫눈에 반해버렸다...! (아이고~~ 일났네, 일났어~~!)

  그런데 사마상여 역시 탁문군의 미모와 재주에 대해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연회가 끝난 후 탁문군의 몸종에게 부탁해서, 자신이 탁문군을 연모하고 있음을 탁문군에게 알리게 했다.  아마도 봉구황은 처음부터 탁문군을 타겟(!)으로 한 시였던 듯하다. (요런 엉큼한 녀석을 보았나~~!)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며칠 후도 아니고 다음 날도 아니고, 바로 그 날 밤 함께 도망쳤다. (헉~ 번갯불에 콩 구워 먹겠소!!! @.@) 
  그런데 사마상여는 벼슬을 지낼 때에도 한직을 전전하는 처지라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한직조차 없는 상태라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술집(!)을 열었다.  생계를 잇기 위해서, 대부호의 딸로 호의호식하던 탁문군은 술상 차리는 일을 맡고, 미관말직이라도 엄연히 벼슬을 지냈던 사마상여는 설거지를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나중에는 사정이 풀렸다.

  탁문군의 아버지 탁왕손이 두 사람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탁왕손은 딸과 사마상여가 자기들 멋대로 야반도주해서 결혼한 게 너무 괘씸한 나머지, 엄청난 부자인데도 두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모른 척 했다.  하지만 친구의 충고를 듣고 마음을 바꾸어 딸과 사위를 돕게 되었다.

  게다가 사마상여의 관운까지 틔였다.  새로 즉위한 무제(흔히 한무제라고 하는 전한 제7대 황제)가 사마상여가 예전에 지은 자허부(子虛賦)를 읽고 감탄해서, 사마상여를 조정의 요직에 발탁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인간의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한 법이다.  사람이 출세를 하면 힘들었던 시절을 잊고, 그 시절에 옆에 있어준 사람에게도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마상여 역시 막상 출세하게 되자, 탁문군과 술집을 내어 함께 가난을 헤쳐나갔던 것도 잊고, 장인 탁왕손에게 이런저런 지원을 받은 것도 잊었다.  그리고는 젊은 첩을 들일 궁리를 하며 탁문군을 냉랭히 대했다.  그러자 탁문군은 백두음(白頭吟)이란 시를 지어 남편의 절개 없음을 비판했다.

 

 

 

白頭吟(백두음)

하얗게 센 머리를 노래하다.

 

 

                          - 卓文君(탁문군) -

 

 

皚如山上雪 (애여산상설)

(우리의 사랑이) 하얗기로는 산 위의 눈과 같고

 

皎若雲間月 (교약운간월)

밝기로는 구름 사이 달과 같았네.

 

聞君有兩意 (문군유양의)

듣자하니, 그대가 두 마음을 가졌다는데

 

故來相決絶 (고래상결절)

그것으로 서로 (인연을) 끊어버리려 하는가.

 

今日斗酒會 (금일두주회)

오늘은 많은 술을 함께 하지만

 

明旦溝水頭 (명단구수두)

내일 아침에는 개천가에 있으리.

 

躞蹀御溝上 (섭접어구상)

궁에서 나오는 개천을 배회하지만

 

溝水東西流 (구수동서류)

개천 물은 동쪽으로 흘러갈 터.

 

淒淒復淒淒 (처처부처처)

쓸쓸하고 또 쓸쓸해도

 

嫁娶不須啼 (가취불수제)

시집간 여자는 모름지기 울지 않는 법.

 

願得一人心 (원득일인심)

원하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

 

白頭不相離 (백두불상리)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이별치 않는 것이거늘.

 

竹竿何嫋嫋 (죽간하뇨뇨)

대나무 낚시대(남편의 마음)는 어찌 그리 한들거리며

 

魚尾何簁簁 (어미하사사)

물고기(남편을 유혹하는 돈, 권세, 여자)는 꼬리를 어찌 그리 흔드나.

 

男兒重意氣 (남아중의기)

사내는 뜻과 기개를 중히 여겨야 하거늘

 

何用錢刀爲 (하용전도위)

어찌하여 (그대는) 돈을 위해 행하는가.

 

 

 

 

  그런데 이 백두음에 대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해피엔딩이며 지극히 교훈적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전통적인 버전'(?)이다.

  이 버전에 따르면...  탁문군은 백두음을 종이에 적어 남편 사마상여에게 남긴 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백두음을 읽은 사마상여가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서, 첩을 들이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부부가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사마상여가 먼저 죽자, 탁문군은 백두음을 지을 정도의 빼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다시 남편을 위한 제문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새드엔딩이면서 훨씬 현실적인 버전이다.

  사마상여는 결국 첩을 맞아들였고, 남편에게 외면당한 탁문군은 비탄 속에 남은 생을 보냈다는 이야기다.  이 설을 지지하는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백두음을 지은 사람이 탁문군이 아니라 후세의 무명작가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백두음은 나무랄 데 없는 오언시인데, 중국 시가문학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사마상여-탁문군 부부가 살았던 전한시대에는 이 정도로 원숙한 오언시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두음은 후세의 어떤 사람이 사마상여-탁문군 부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지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백두음이 탁문군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사마상여-탁문군 부부의 사연이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윤색된 탓이라고 한다.  즉, 이 부부의 이야기가 당시 굉장한 스캔들이라 여기저기 소문 났는데(하긴 지금 같아도, 전국 몇 위의 엄청난 부잣집 딸이, 머리는 좋지만 가진 것 없는 청년과 야반도주해서 결혼했다고 하면 당연히 짜하게 소문날 것임. ^^;;), 소문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사람들 취향에 맞는 방향으로(즉, 좀 더 드라마틱한 방향으로) 내용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씁쓸하기는 해도 후자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진실은 당연히 중요한 것이지만, 적어도 문학작품을 읽을 때에는 윤색된 이야기를  그대로 둘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겠다고 깊게 파고들면, 진실은 알게될 수 있어도 감성은 와르르 무너진다.  백두음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 중 전자만 알았을 때는, 똑같이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닌 부부의 낭만적인 이야기로만 알았다.  그런데 후자의 이야기를 알게 되니, 이쪽이 진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산통(!)은 다 깨진다. -.-;;  유감스럽게도 진실이라는 게 반드시 아름다운 법은 아니니 말이다.

 

 

랑야방(琅琊榜) 20회~24회 - 녕국후 사옥의 몰락 / 적염군 사건의 진상(http://blog.daum.net/jha7791/15791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