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라는 연도가 아직도 낯설게만 느껴지는데, 벌써 2015년이 다 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감흥이 없던 '세월이 빠르다' 는 말을, 이제는 몸으로 실감하는 중이다. 다행히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 역시 그렇다. 이 친구 저 친구 할 것 없이 눈가에 잔주름이 생겼네, 흰 머리카락이 나네, 지성이라 고민이었던 얼굴 피부가 이제는 건조해졌네, 전에는 가볍게 앓던 감기를 이제는 1주일 이상 호되게 앓게 되었네 하며 야단이다.
나도 몇 년 전부터 나이가 들어간다는 걸 느낀다. 전에는 추운 날씨에 두툼한 옷을 입으면 그저 따뜻해서 좋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커다란 반달곰 한 마리가 어깨에 무등 탄 것처럼 어깨가 무겁게 느껴져서, 어지간하면 외투 없이 추운 상태로 있는 쪽을 택하게 된다. -.-;; 그리고 전에는 한겨울에도 실내에서는 양말을 안 신었는데, 이제는 여름에도 어지간하면 양말을 신어야 찬 기운이 안 느껴져서 편하다. (늙었네, 늙었어~~~ ㅠ.ㅠ)
저 멀리 떠나가는 젊음을 기리는(?) 뜻에서,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청춘부재래(靑春不再來 : 청춘은 다시 오지 않네)라는 시를 소개하려 한다.
이규보란 시인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드날리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오점을 남기기도 한 사람이다. 출세를 위해서 최씨 무신정권에 영합했기 때문에 후세에 어용문인의 이미지를 강하게 남겼다. 최씨 무신정권의 두 번째 집권자 최이를 찬양(!)하는 내용의 시 일부분을 본 적이 있는데, 읽는 내가 쑥스럽고 민망할 지경으로 최이의 행적을 칭송해 놓았다.
이규보 스스로도 자신의 처신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규보는 자신의 뛰어난 재주에 대해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차라리 이규보가 재주도 자의식도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면 권력자에게 빌붙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겠지만, 자존심과 자긍심이 넘쳐 흐르는 사람이기에 자기 처신에 대해 갈등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가 언제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년에 자기 인생을 회고하며 그런 씁쓸함을 담아낸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靑春不再來 (청춘부재래)
청춘은 다시 오지 않네.
- 李奎報 (이규보) -
未覺靑春忽晩年 (미각청춘홀만년)
청춘을 깨닫지 못 했건만 문득 노년이 되었고
不迎白髮首來先 (불영백발수래선)
백발을 맞이한 적 없건만 (백발이) 머리에 먼저 왔네.
今懷往跡何非恥 (금회왕적하비치)
이제와 지난 자취 생각하니 어찌 부끄럽지 않을까.
當盡餘生筆墨傳 (당진여생필묵전)
마땅히 남은 생을 다 하여 글로 전하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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