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이었던가 이번 달 초였던가...
하여튼 종각의 영풍문고에 갔다가 遠近秋光一樣奇(원근추광일양기)라고 써진 액자가 걸린 것을 보았다. 고사성어 같은 건가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봤더니, 서산대사(임진왜란 때의 승병을 이끌었던 바로 그 서산대사 휴정)가 지은 시의 한 구절이었다. 지금이 가을인데, 마침 이 시도 가을에 관한 것이라 소개해볼까 한다.
다만, 계절만 생각하면 이 시가 지금 포스팅하기 알맞지만, 시 속의 풍경은 지금의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
올해는 봄부터 시작한 가뭄이 가을이 되도록 풀리지 않아, 나무들도 메마른 나머지 이 시기에 마땅히 보여야 할 예쁜 색깔을 제대로 못 내고 있다. 게다가 9월 말까지만 해도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10월이 되자 마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갑자기 추워져서, 이제는 단비가 내린다 해도 단풍이 들기는커녕 나뭇잎이 다 지게 생겼다. -.-;; 안타깝지만 올해는, 시 속에 나오는 단풍 풍경을 상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할 듯하다.
그리고 전에 포스팅한 장초(蔣超)의 산행영홍엽(山行詠紅葉)도 가을 정취를 읊은 시인데, 두 시의 느낌이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 장초(蔣超)의 산행영홍엽(山行詠紅葉)(http://blog.daum.net/jha7791/15790949)
장초의 시는 온 산에 든 단풍과 푸르디 푸른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다. 그에 비해 서산대사의 시는 작가가 승려이기 때문인지, 단풍의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는 그 아름다움 속에 깃든 평화로움에 방점을 찍었다는 느낌이다.
賞秋(상추)
가을을 음미하다.
- 西山大師(서산대사) -
遠近秋光一樣奇 (원근추광일양기)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가을빛은 한결같이 빼어난데
閒行長嘯夕陽時 (한행장소석양시)
석양질 때 한가로이 거닐며 휘파람 길게 부네.
滿山紅綠皆精採 (만산홍록개정채)
온 산이 붉고 푸르러 모두 아름다우니
流水啼禽亦說詩 (유수제금역설시)
흐르는 물도 지저귀는 새도 역시 시를 읊는구나.
서산대사(西山大師)의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와 가도(賈島)의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http://blog.daum.net/jha7791/15790475)
장초(蔣超)의 산행영홍엽(山行詠紅葉)(http://blog.daum.net/jha7791/1579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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