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에 초복을 맞음으로써 올해의 삼복이 시작되었다.
삼복 더위가 견디기 힘든 것은, 그저 기온이 높아서가 아니라 습도까지 높기 때문이다. 기온만 높으면 햇볕을 피하고 움직임을 줄이는 것만으로 그럭저럭 견딜 수 있다. 그런데 고온다습한 삼복 때에는 그늘에 가만히 있어도, 몸 밖으로 배출된 땀이 제대로 증발이 안 되어 피부가 끈적끈적해지고 몸의 열기가 식지 않는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90년대 중반부터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열대야 현상, 그 열대야 현상이 제일 자주 나타나는 기간 역시 삼복이다. 낮에만 더운 거라면야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데, 밤에도 고온다습해서 편히 못 자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면 다음날은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하고 온몸이 축축 늘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한밤 내내 에어컨을 돌리자니, 머리가 띵~~ 해지는 냉방병에 걸릴 수도 있고 전기세 폭탄을 맞게될 수도 있다. ㅠ.ㅠ
그런데 삼복 더위로 괴로워하다가 겨우 한숨 돌리려던 참에, 방문약속도 없이 손님이 불쑥 찾아온다면 어떨까?
그 손님과 어지간히 친분 깊고 편한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정말 미치겠네! 그렇잖아도 더워 죽겠는데 저 사람은 왜 왔어?' 하는 짜증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더위에 벗어던졌던 옷도 찾아입어야 하고, 불청객이든 뭐든 손님은 손님이니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려면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몸을 움직이여 하고...
오늘 소개하려는 한시가 바로, 푹푹 찌는 삼복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 관한 것이다.
조선 제4대 왕인 세종 때부터 제9대 왕인 성종 때까지, 자그마치 6명의 임금을 섬겼던 정치인 겸 문인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삼복(三伏)이라는 시다. 불볕더위를 조선판 아이스티(?)로 어느 정도 떨쳐내고서 시원한 대나무 베개를 베고 막 잠들려던 참인데, 웬 불청객이 찾아와 계속 문을 두드려대니 애써 무시(!)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예의와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던 조선시대 선비에게도 삼복 더위에 찾아온 손님은 어지간히 귀찮았던 모양이다.
우리 모두 삼복 중에는 어지간하면 남의 집 방문을 자제합시다~~!
집주인의 웃는 얼굴이, 사실은 예의상 억지로 쥐어짜낸 가면일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
三伏(삼복)
- 徐居正(서거정) -
一椀香茶小點氷 (일완향다소점빙)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얼음을 조금 넣어
啜來端可洗煩蒸 (철래단가세번증)
마셔보니 과연 찜통더위 씻을만 하구나.
閑憑竹枕眠初穩 (한빙죽침면초온)
한가로이 대나무 베개에 기대어 편히 잠들려는데
客至敲門百不應 (객지고문백불응)
손님이 와서 문 두드리니 백번인들 대꾸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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