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이다.
깊어만 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한시를 한 수 소개하려 한다. 두목(杜牧)이 지은 추석(秋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 두 가지...!
먼저, 이 시를 지은 두목은 절대로 '산적 두목' 또는 '해적 두목' 의 그 두목이 아니다. -.-;; 그저 우연히 성이 두(杜)고 이름이 목(牧)일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수업시간에 두목이 산적 두목이나 해적 두목을 뜻하는 것이냐고 선생님께 질문한 아이가 있었다. (그 학생은 결코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진지하게 질문한 것임. ^^) 두목은 중국 당나라 말기의 시인이다. 그런데 마침 세계사 시간에 당나라 말기에는 여기저기에서 반란과 민란이 터져 심한 혼란이 계속되었다고 배우던 중이었다. 그러니 그 학생 딴에는 두목에게 진짜 이름이 따로 있는데, 반란이나 민란을 일으킨 어떤 무리의 우두머리 정도 되는 사람이라서 두목이라는 별명 또는 호칭이 붙은 줄 알았던 것이다. (사춘기 소녀의 풍부한 상상력... ^^)
그리고 '추석' 이란 제목은, 한자를 그대로 풀이한 '가을 저녁(秋夕)' 이란 뜻이다. 공교롭게도 명절인 음력 8월 15일 추석과 한자가 완전히 같지만, 이 시에서는 명절 추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가을 저녁이 주는 '선선하면서 풍요로운 한적함' 같은 느낌과는 다르게, 이 시는 궁원시(宮怨詩)에 속한다.
궁원시는 말 그대로 궁 생활을 원망하는 내용의 시다. 즉, 궁중여인들이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 못 하고 평생 궁 안에 갇혀 삭막하게 살아야 하는 운명을 한탄하고 원망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한국에도 궁원시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궁녀가 있었으니, 설사 그런 장르는 없더라도 궁녀의 기구한 삶을 노래하는 시나 산문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그런 작품을 모를 뿐... ^^;; 그런데 중국에서는 궁원시라고 따로 모아서 이름 붙일 만큼, 궁녀들의 기구한 삶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지은 듯하다. 두목은 물론이고 이백, 백거이, 왕유, 유우석 등 다른 유명한 시인들도 궁원시를 지었다.
秋夕(추석)
가을 저녁
- 杜牧(두목) -
銀燭秋光冷畵屛 (은촉추광냉화병)
은촉의 가을빛은 그림 병풍에 차갑게 드리우는데
輕羅小扇撲流螢 (경나소선박류형)
아름다운 비단 부채로 떠도는 반딧불을 치고 있네.
天際夜色凉如水 (천제야색량여수)
하늘 보이는 계단의 밤빛은 차갑기가 물과 같고
坐看牽牛織女星 (좌간견우직녀성)
(홀로 계단에) 앉아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네.
이 시는 궁원시답게, 전체적으로 외로움과 무료함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시의 주인공은 어떤 궁녀다.
은촉(단순히 은으로 만든 촛대란 뜻이 아니라, 은색을 띤 매우 정교하게 만든 화려한 촛대를 말함.)이니, 그림 병풍이니, 비단부채니 하는 사치스런 물건이 줄줄이 나온다. 그것은 주인공이 사는 곳이 화려한 궁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한여름 무더위도 물러나 기분 좋게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이 궁녀는 부채로 반딧불이나 쫓아내고 있다.
겉으로는 호화롭기만 한 궁궐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의 삶은 무료하기만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궁녀는 부채로 반딧불을 치는 일을 소일거리 삼아 시간을 보낼 정도다.
또한, 가을 저녁에 등장한 부채는 이 시 속에 나오는 궁녀의 처지를 암시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부채는 원래 여름에는 유용하게 쓰다가, 날씨가 서늘해지는 가을이 되면 쓸모 없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이 궁녀는, 전에는 황제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이제는 다른 여인에게 총애를 빼앗긴 채 궁궐 한 구석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3연과 4연은 궁녀의 외로움을 강하게 보여준다.
밤빛이 차갑기가 물과 같다는 말은, 이미 서늘한 초저녁을 지나 추위가 느끼지는 깊은 밤이 되었음을 뜻한다. 남들은 모두 자는 시각인데, 이 궁녀만 잠을 못 이루고 혼자서 자기 처소 밖에 있는 계단에 앉아 있다. 그리고 밤하늘에 떠있는 견우성과 직녀성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상징하는 것은 명백하다. 견우와 직녀처럼, 이 궁녀도 적막한 생활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혹은, 1년에 겨우 한 번 만나면서도 서로를 잊지 못 하는 견우와 직녀를 생각하니, 한 때는 황제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이제는 잊혀져버린 자신의 처지가 너무 처량한 것이다.
사극을 볼 때면 가끔 드는 생각인데, 옛날 궁녀 제도는 너무 비인간적인 것 같다.
물론, 그 시대에 비인간적인 제도가 어디 그것 하나 밖에 없겠느냐만은... 그리고 그 시대의 관념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이라는 사람 한 명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게 너무 당연했다고 하지만은... 그래도, 그 많은 여자들을 꼭 궁 안에 가둔 채 살게 해야만 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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