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규보(李奎報) 시문(6) - 요화백로(蓼花白鷺) / 여뀌꽃은 어떤 꽃?

Lesley 2014. 4. 26. 00:01

 

  작년에 인터넷 연재 소설 하나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조선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데,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한동안 열심히 봤다.  그 소설로 얻은 뜻밖의 수확이 있으니, 바로 이규보가 지은 요화백로(蓼花白鷺)라는 시다.  '여뀌꽃과 백로' 라는 뜻이다.

  현대의 우리가 조선시대 시조를 감상하는거나, 조선시대 사람이 고려시대 이규보가 지은 시를 감상하는거나, 후세 사람이 옛날 시를 감상한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고려시대 시를 보게 되니, 괜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

 

 

 

蓼花白鷺(요화백로)

여뀌꽃과 백로

                                     - 李奎報(이규보) -

 

 

前灘富魚蝦 (전탄부어하)

앞 여울에 물고기와 새우가 많아

 

有意劈波入 (유의벽파입)

(백로들이) 물결을 가르고 들어갈 생각을 했네.

 

見人忽驚起 (견인홀경기)

(그러나) 사람들을 보고 갑자기 놀라 일어나

 

蓼岸還飛集 (요안환비집)

여뀌꽃 언덕에 다시 날아와 모였다네.

 

翹頸待人歸 (교경대인귀)

목을 빼고 사람 돌아가기를 기다리는데

 

細雨毛衣濕 (세우모의습)

가랑비에 날개 깃이 젖고 있네.

 

心猶在灘魚 (인유재탄어)

마음은 오히려 여울 물고기에 있건만

 

人道忘機立 (인도망기립)

사람들은 (백로들이 물고기와 새우를 잡을) 기회를 노리는 것을 잊고 서 있다고 말하네.

 

 

  이 시는,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일의 본질은 못 보고 겉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비판(혹은 야유? ^^)한다.

  시 속에 나오는 백로는 앞 여울에 있는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으려다가, 사람이 나타나서 놀라 여뀌꽃 언덕으로 후퇴(?)한 상태다.  그래서 사람들이 돌아가기만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 다시 여울로 가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을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백로가 가랑비에 날개 깃털 적셔가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 녀석이 이제 물고기와 새우 잡아먹는 기회 잡으려던 욕심을 다 버리고 저렇게 우아하게(?) 서 있구나." 하고 말한다.

  백로 입장에서는, 명색이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들이 눈치없게 구는 것에 속이 터져, 사람들 머리를 부리로 마구마구 쪼아주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  자기는 사람들이 얼른 떠나기만 바라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 좋을대로 해석하고 떠들어대면서 떠날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이 시에 나오는 '여뀌꽃' 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꽃인가 해서 찾아봤다.

  사실, 이 시를 발견한 그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세상에 여뀌꽃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

 

 

 

여뀌 중에서도 '개여뀌' 라 불리는 종류임.

※ 출처 : 오마이뉴스 기사 http://media.daum.net/culture/life/newsview?newsid=20060918151811117

 

 

 

이쪽은 그냥 '여뀌' 임. ^^

※ 출처 : 오마이뉴스 기사 http://media.daum.net/culture/life/newsview?newsid=20060918151811117

 

 

  요화백로를 알게 된 소설에서도, 위의 사진의 출처인 기사에서도, 모두 나와있는 사실인데...

  여뀌꽃은 평범한 꽃이 아니라, 가벼운 독성 수준의 매운 맛을 품고 있는 꽃이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어차피 농사에 방해되는 잡초이기도 한 여뀌꽃을 없앨 겸, 여뀌꽃을 물에 뿌려 물고기를 그 매운 맛에 기절(!)시키는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그 소설에서도 여뀌꽃을, 물고기들을 잠시 정신 놓게 하는 용도로 썼다.

  숙종은 왕권 강화에 대한 의지는 강하지만 아직 어려서 정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능구렁이 같은 조정 신하들을 어찌 다루어야 하나 고민한다.  그러자 권모술수에 능한 김석주가 나서서 강경책을 쓸 것을 슬그머니 권한다.  그런데 김석주는 자신의 뜻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그게 바로 여뀌로 물고기를 기절시키는 것이다.

  김석주는 숙종이 지켜보는 앞에서, 여뀌꽃을 짓이겨 물고기밥에 섞어 연못에 뿌린다.  물고기떼가 앞다투어 밥에 달려들었다가 밥 속의 매운 여뀌꽃 때문에 기절해서, 배를 위로 드러낸 채 물 위로 둥둥 떠오른다.  신하들에게 굴복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승부할 생각도 말고, 그럴듯한 떡밥 속에 날카로운 속임수를 넣어 신하들을 한꺼번에 쓸어내버리라는 뜻을 보인 것이다...!

 

  여뀌꽃의 무서움을 알고 나니, 요화백로 속 백로가 왜 하필이면 여뀌꽃 언덕에 서 있었나 하며, 좀 섬뜩한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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