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규보(李奎報) 시문(4) - 슬견설(蝨犬說)

Lesley 2013. 9. 27. 00:01

  오늘은 학창시절 배운 이규보의 슬견설(蝨犬說)을 소개하려 한다.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하여튼 교과서에 실린 슬견설을 배웠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접한 이규보의 작품이었다.  이왕 이규보 시리즈를 연재(?)하는 김에, 학창시절 나로 하여금 하품만 씹어삼키게 했던 슬견설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조금이라도 더 깊어지기는 하나 보다.

  학창시절에 이 슬견설을 배울 때에는 그저 지겹다는 생각만 했다. -.-;;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인간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무엇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싫어한다' 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잊게 되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蝨犬說(슬견설)


                                                         - 李奎報(이규보) -



 客有謂予曰 : "昨晩見一不逞男子, 以大棒子椎遊犬而殺者, 勢甚可哀, 不能無痛心. 自是誓不食犬豕之肉矣."
(객유위여왈 : "작만견일불령남자, 이대봉자추유견이살자, 세심가애, 불능무통심. 자시서불식견시지육의")
손님이 나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 한 불량한 사내를 보았는데,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니, 그 형세가 너무 애처로와,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予應之曰 : "昨見有人擁熾爐, 捫蝨而烘者, 予不能無痛心. 自誓不復捫虱矣."
(여응지왈 : "작견유인옹치로, 문슬이홍자, 여불능무통심. 자서불부문슬의")

내가 그에 응답하여 말했다.  "지난번에 보니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거리는 화로를 끼고 앉아, 이를 잡아 태워 죽이는데, 저는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客憮然曰 : "蝨微物也. 吾見厖然大物之死, 有可哀者, 故言之. 予以此爲對, 豈欺我耶?"
(객무연왈 : "슬미물야. 오견방연대불지사, 유사애자, 고언지. 여이차위대, 기기아야")

손님이 허탈해하며 말했다.  "이는 미물입니다.  나는 커다란 대물의 죽음을 보고, 그것이 애처로와서, 그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와 같이 대꾸하다니, 어찌 나를 놀리는 것이입니까?" 


 予曰 : "凡有血氣自黔首于牛馬猪羊昆蟲螻蟻, 其貪生惡死之心末始不同. 豈大者獨惡死而小則不爾耶?
(여왈 : "범유혈기자검수우우마저양곤충루의, 기탐생오사지심말시부동. 기대자독오사이소즉불이야)
내가 말했다.  "무릇 피와 기운이 있는 것이라면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이나 땅강아지, 개미에 이르기까지,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어찌 큰 것은 죽기를 싫어하고, 작다고 해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然則犬與蝨之死一也. 故擧以爲的對. 豈故相欺耶. 子不信之, 盍齕爾之十指乎! 獨無指痛而餘則否乎?
(연즉견여슬지사일야. 고거이위적대. 기고상기야. 자불신지, 합흘이지십지호! 독무지통이여즉부호)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한 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로써 예를 들어 맞대응해 봤습니다.  어찌 그런 까닭으로 서로 놀리겠습니까?  당신이 믿지 못하겠다면,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 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는 안 아픕니까? 


 在一體之中無大小支節均有血肉, 故其痛則同. 况各受氣息者, 安有彼之惡死而此之樂乎?
(재일체지중무대소지절균유혈육, 고기통즉동. 황각수기식자, 안유피지오사이차지락호)

한 몸의 안에 크고 작고 할 것 없이 가지와 마디에 골고루 피와 살이 있어서, 그 아픔은 같습니다.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것인데, 어찌 저것은 죽음을 싫어하는데 이것은 좋아함이 있겠습니까? 


 子退焉, 冥心靜慮. 視蝸角如牛角, 齊尺鷃爲大鵬. 然後吾方與之語道矣."
(자퇴언, 명심정려. 시와각여우각, 제척안위대붕. 연후오방여지어도의)

당신은 물러가서, 깊고 평온한 마음으로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달팽이의 뿔을 쇠뿔로 보고, 메추라기를 대붕으로 나란히 여겨 보십시오.  그런 후에 나는 비로소 당신과 함께 도를 이야기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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