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장초(蔣超)의 산행영홍엽(山行詠紅葉)

Lesley 2012. 12. 21. 00:22

 

 

  청나라 때의 시인 장초(蔣超)산행영홍엽(山行詠紅葉)이란 시다.

  사실, 이 시는 몇 년 전에 아직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을 때 한 인터넷 벗님의 블로그에서 봤던 시다.  하지만 그 때는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장초인 줄 몰랐다.  공교롭게도, 그 블로거가 요즘 젊은 세대치고 한문에 관심이 많아서 종종 자신이 창작한 한시를 블로그에 올리곤 했다.  그래서 으레 이 시도 그 블로거가 직접 지은 시겠거니 하며 감탄했더랬다.  그런데 알고보니 지은이가 따로 있는... ^^

 

  사실, 이미 눈까지 몇 차례 쏟아진 지금에 와서 단풍에 대한 시를 올리는 것은 좀 이상하다.

  하지만 지난 번에 단풍에 관한 포스트 올린 김에 연달아 올려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시에 어울리는 계절까지 기다리려면 앞으로 10개월은 기다려야 할테니 말이다. ^^

☞ 마지막 단풍 / 역시 나는 '길치+방향치'다...! ㅠ.ㅠ (http://blog.daum.net/jha7791/15790948)

 

 

 

山行詠紅葉 (산행영홍엽)

산길을 걸으며 단풍을 노래하네

 

                                      - 蔣超 (장초) -

 

 

誰把丹靑抹樹陰 (수파단청말수음)

누가 단청을 (푸른) 나무그늘에 칠했나?

 

冷香紅玉碧雲深 (냉향홍옥벽운심)

맑은 향내 나는 붉은 옥, 푸른 빛 구름에 깊이 박히었네.

 

天公醉後橫陀筆 (천공취후횡타필)

조물주가 취한 후에 붓을 휘둘러

 

顚倒春秋花木心 (전도춘추화목심)

봄 가을의 꽃과 나무를 바꿔놓았구나.

 

 

 

  항상 그렇듯이, 이 한시의 해석을 올리면서도 인터넷에 떠다니는 해석본을 참조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게 찾아낸 해석본 중 내 생각에 자연스럽지 못 하다 싶은 단어나 몇 개 고치고서 올린다.  하지만 이번 시는 인터넷에 주르르 나오는 해석본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대대적인 공사'(과연? ^^)를 했다.

 

  물론 시라는 것이 원래 문학 장르 중에서도 함축미가 유독 강하고, 또한 외국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시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의역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본 "녹음에다 단청 칠 그 누가 했나? / 파란 하늘 흰구름 속 붉은 구슬 향 머금었네 / 조물주가 술에 취해 붓 휘어잡고 / 가을을 봄으로 그렸음일레라." 라는 해석본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금 심했다는 느낌이 든다.  해석만 놓고 본다면야 흠 잡을 데 없이 멋지지만, 원문과 해석을 대조해보면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특히 두번째 연과 네번째 연은 의역이 지나쳐서 원래의 뜻에서 좀 많이 비껴났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이라는 것은 번역된 문장의 자연스러움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원문의 뜻을 얼마나 충실히 살렸는가 라는 게 내 생각이어서 말이다. ^^;;

 

  그리고 이 한시 중 첫번재 연 '丹靑抹樹陰' 에서, 'ba(把)자문' 이라고 하는 현대 중국어의 문장형식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

  아마도, 우리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중국시가 당나라 등 아주 먼 옛적의 시인데 비해, 이 시는 현대에서 가까운 청나라 때의 시라서 이 시 속의 문법이 현대 중국어 문법과 많이 가까운 모양이다.  중국어 초급반 시절에 'bei(被)자문' 과 너무 헷갈리는 통에 내 머리를 쥐나게 만들었던 'ba(把)자문' 과 이런 식으로 해후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冷香紅玉碧雲深' 라는 두번째 연이다.

  땅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불타오르는 가을의 청명한 하늘에 떠오른 붉은 해를 '맑은 향내 나는 붉은 옥' 으로 비유한 것도 운치있고, 새파랗게 높기만 한 가을 하늘에 피어난 뭉게구름을 '푸른 빛 구름' 으로 비유한 것도 멋지다. ^^

 

  또한, 비록 두번째 연만큼은 아니지만, 세번째 연과 네번째 연도 마음에 든다.

  색색으로 물든 단풍을 봄날 활짝 핀 온갖 꽃에 비유해서, 조물주가 술에 취한 상태로 붓을 휘두른 탓에 봄에 피어야 했을 꽃과 나무가 가을에 피어난 것으로 보다니, 이래서 시인의 눈은 보통 사람의 눈과 다른가 보다.  나 같은 사람은 예쁜 단풍을 보고 감탄을 하기는 해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만불이 서서히 져가는 가을의 꽃과 나무를 연결지어 생각하지는 못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