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규보(李奎報) 시문(2) - 청자송(靑瓷頌) 또는 녹자배(綠瓷杯)

Lesley 2012. 11. 25. 00:02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천하제일 비색청자(天下第一 翡色靑磁)' 라는 고려청자 전시회를 관람했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서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 의 시를 하나 소개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여름에도 이규보의 시를 포스팅한 적이 있어서, 뜻밖의 장소에서 이규보의 시를 다시 접하니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  국립중앙박물관의 '천하제일 비색청자(天下第一 翡色靑磁)' (http://blog.daum.net/jha7791/15790938)

     이규보(李奎報) 시문(1) - 절화행(折花行) (http://blog.daum.net/jha7791/15790906)

 

 

  고려청자 전시회에 내걸린 시답게, 이규보가 지은 이 '청자송(靑瓷頌)' 또는 '녹자배(綠瓷杯)' 는 고려청자에 관한 시다.

  이 시는 학창시절 국사책에 꼭 한번씩 언급되었던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렸다.  다만, '청자송' 또는 '녹자배' 라는 제목은 후세 사람들이 이 시의 소재가 청자(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녹색 자기 술잔임. ^^)라서 적당히 붙인 것일 뿐, 원래는 따로 제목이 없는 듯하다.

 

 

 

靑瓷頌(청자송) / 綠瓷杯(녹자배) 

 

                                          - 李奎報(이규보) -

 

 

 

 

 

落木童南山 (낙목동남산)  나무를 베니 남산이 헐벗게 되고

 

放火烟蔽日 (방화연폐일불을 지피니 연기가 해를 가리네.

 

陶山綠瓷杯 (도산녹자배)  산록빛 자기 술잔을 구워

 

揀選十取一 (간선십취일열 중에 골라 하나를 취하네.

 

瑩然碧玉光 (영연벽옥광)  밝게 푸른 옥이 빛나니

 

幾被靑煤沒 (기피청매몰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던가.

 

玲瓏肖水精 (영롱초수정영롱함은 맑은 물을 닮았고

 

堅硬敵山骨 (견경적산골)  단단함은 바위와 대적할 정도라네.

 

迺知埏塡功 (내지연전공)  흙을 이긴 솜씨 이제야 알겠으니

 

似借天工術 (사차천공술)  하늘의 재주를 빌려온 듯하구나.

 

微微點花紋 (미미점화문)  희미하게 꽃무늬 찍었는데

 

妙逼丹靑筆 (묘핍단청필묘하게 정성스런 그림같네.

 

 

 

 

  인터넷에 떠다니는 해석을 옮겨오되, 내 생각에 좀 어색해보이는 단어 몇 개와 어미 정도만 고쳤는데, 한문에 조예가 깊지 않아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우선,  堅硬敵山骨(견경적산골)의 山骨을 바위로 해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직역하면 '산의 뼈' 니까 바위를 그렇게 비유했다고 해도 맞는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제일 곤란한 것은, 맨 마지막 구절인 妙逼丹靑筆(묘핍단청필)이다.  이 부분은 아예 통째로 해석이 안 된다. ㅠ.ㅠ  인터넷에 떠다니는 여러 해석을 보면 전부 '묘하게 정성스런 그림같네' 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丹靑筆(단청필)은 '단청처럼 울긋불긋 화려한 그림'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지만, 逼(핍)이란 글자는 인터넷과 옥편을 다 뒤져봐도 '다그치다' 는 뜻 밖에 없다.  逼의 뜻을 어떻게 새겼기에 妙逼丹靑筆(묘핍단청필)에 대해서 '묘하게 정성스런 그림같네' 라는 해석이 나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시는 분이 이 포스트 보신다면, 댓글로 설명 좀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ㅠ.ㅠ)

 

  하지만 이런 해석상의 불가사의(?)를 한쪽에 밀어놓는다면, 이 시 자체는 무척 마음에 든다.

  앞부분에서는, 청자를 만드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면 '안 봐도 비디오'! ^^)  산이 헐벗을 정도로 나무를 베어내어, 연기가 해를 가릴 정도로 자욱하게 피어나도록 가마에 불을 때서, 자기를 구워냈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자기라고 해서 다 취하는 것이 아니라, 10개 중 가장 우수한 1개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릴 정도로 품질 유지에 각별히 공을 들였음을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중간부분에서는, 청자의 자태에 찬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밝게 벽옥빛으로 빛나는 청자는 맑은 물처럼 영롱하고 바위처럼 단단하다. 

  뒷부분에서는, 자기를 만들어낸 솜씨가 너무 신묘해서 하늘의 재주를 빌어온 듯하며, 자기 표면의 문양이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 같다고 감탄하는 내용이다. 

 

  내가 학창시절 내내 '교훈적이지만 재미없는 글 쓰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던 이규보 선생...!

  알고보니, 무척 낭만적인 분인 듯하다. ^^  위에 링크 걸어놓은 '절화행' 이라는 시도 그렇고, 이 시도 그렇고, 모두 내 마음에 쏙 든다.  이왕 고려시대에 관심 갖게 된거, 앞으로 이규보의 작품을 몇 개 더 찾아서 올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규보(李奎報) 시문(1) - 절화행(折花行)(http://blog.daum.net/jha7791/15790906

이규보(李奎報) 시문(3) - 영정중월(詠井中月)(http://blog.daum.net/jha7791/15790912)

이규보(李奎報) 시문(4) - 슬견설(蝨犬說)(http://blog.daum.net/jha7791/15790950)

이규보(李奎報) 시문(5) - 백주시(白酒詩)(http://blog.daum.net/jha7791/15790957)

이규보(李奎報) 시문(6) - 요화백로(蓼花白鷺) / 여뀌꽃은 어떤 꽃?(http://blog.daum.net/jha7791/15791047)

이규보(李奎報) 시문(7) - 방엄사(訪嚴師)(http://blog.daum.net/jha7791/15791068)

이규보(李奎報) 시문(8) - 단오견추천여희(端午見鞦韆女戱)(http://blog.daum.net/jha7791/15791204)

이규보(李奎報) 시문(9) - 미인원(美人怨)(http://blog.daum.net/jha7791/15791184)

이규보(李奎報) 시문(10) - 청춘부재래(靑春不再來)(http://blog.daum.net/jha7791/15791183)

이규보(李奎報) 시문(11) - 동일여객음냉주희작(冬日與客飮冷酒戱作)(http://blog.daum.net/jha7791/15791145)

이규보(李奎報) 시문(12) - 아삼백음주(兒三百飮酒)(http://blog.daum.net/jha7791/15791255)

이규보(李奎報) 시문(13) - 죽부인(竹夫人)(http://blog.daum.net/jha7791/15791256)

이규보(李奎報) 시문(14) - 동일여승음희증(冬日與僧飮戲贈)(http://blog.daum.net/jha7791/15791325)

이규보(李奎報) 시문(15) - 방서(放鼠)(http://blog.daum.net/jha7791/15791382)

이규보(李奎報) 시문(16) - 고열(苦熱)(http://blog.daum.net/jha7791/15791417)

이규보(李奎報) 시문(17) - 신축정단(辛丑正旦)(http://blog.daum.net/jha7791/15791452)
이규보(李奎報) 시문(18) - 사인혜선(謝人惠扇)(http://blog.daum.net/jha7791/15791509)

이규보(李奎報) 시문(19) - 설중방우인불우(雪中訪友人不遇)(http://blog.daum.net/jha7791/15791546)

이규보(李奎報) 시문(20) - 일일불음희작(一日不飮戱作)(http://blog.daum.net/jha7791/15791578)

이규보(李奎報) 시문(21) - 동백화(冬栢花)(http://blog.daum.net/jha7791/15791617)

이규보(李奎報) 시문(22) - 치통(齒痛) https://blog.daum.net/jha7791/1579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