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라는 이 항목이,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의 작품으로 채워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 ^^
이규보는 10살도 되기 전에 신동으로 소문날 정도로 뛰어난 문학적 재능 때문에 유명하기도 했지만,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최씨 무신정권에 야합한 어용관료 또는 어용문인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대몽항쟁 중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최씨 무신정권을 지지한 것이라는 평도 있다고 한다. (후자라면, 5.16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듯? -.-;;)
하여튼... 또 다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가 시작하는 이 시기에, 이규보의 작품 중에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 줄만한 시가 한 편 있어서 올려보려고 한다. 이 사람의 정치적 행적과 사상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간에, 이 사람 작품 중에는 내 마음을 끄는 것이 여러 개 있는데, 이 시 또한 그러하다.
詠井中月(영정중월)
우물 속 달을 노래하다
- 李奎報(이규보) -
山僧貪月色 (산승탐월색)
산속 스님이 달빛을 탐하여
幷汲一甁中 (병급일병중)
(우물에 비친 달을) 병에 (물과) 함께 길었다.
到寺方應覺 (도사방응각)
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았으니
甁空月亦空 (병공월역공)
병을 비우면 달 또한 없어지는 것을...
이규보가 어린 시절부터 유학 뿐 아니라 도교나 불교에도 심취했었다고 하더니, 이 시에서는 도교와 불교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시는 당시 집권세력(그것도 엄연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집권한 세력)에 협력하며 비교적 평탄한 관직 생활을 했던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덮어놓고 '눈 가리고 아웅이다', '유한계층의 교만함이다.' 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존재들이지, 풀잎에 맺힌 새벽 이슬만 먹으며 사는 고상한 존재가 아니다. 모두들 그렇게 이 복잡다난한 세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문득 지난 일을 뒤돌아보며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지, 혹시라도 다른 방식의 삶을 택했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는가... 어쩌면 이규보도 현실과 이상 속에서 고민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고민 속에서 모든 것이 다 덧없구나 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시의 문학적 가치가 이 사람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후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즉, 이규보란 인물의 행적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 시는 시대로 따로 평가해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규보(李奎報) 시문(1) - 절화행(折花行)(http://blog.daum.net/jha7791/157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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