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양만리(楊萬里)의 하야추량(夏夜追凉)

Lesley 2013. 8. 20. 00:01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

  이번달 초만 해도 '지긋지긋한 장마가 도대체 언제 끝나려나, 습도 높아 끈적끈적한 장마보다는 차라리 기온이 높더라도 햇볕 쨍쨍한 게 낫겠다.' 했다. (물론 지난달부터 장마철 같지 않은 장마철을 겪으며 폭염에 시달린 남부지방 사람들이 듣기에는, 배부른 소리 같겠지.. -.-;;)  그런데 이제는 폭염 때문에 못 살겠다고, 차라리 장마철이 다시 왔으면 하고 바라고 있으니, 참...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양만리(楊萬里)라는 중국 시인의 시 한 수를 우연히 발견했다.

  양만리는 남송시대 사람인데, 남송 4대 시인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다.  풍경의 특성과 변화를 잘 포착해서 생생하게 묘사했고, 상상력과 해학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했다고 한다.  평생 동안 2만 수의 시를 지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현재는 4,200여 수가 전해진다고 한다.

 

 

 

夏夜追凉(하야추량)

여름밤에 서늘함을 구하다

 

                                 - 楊萬里(양만리) - 

 

 

夜熱依然午熱同 (야열의연오열동)

밤 더위는 여전히 한낮 더위 같은데,

 

開門小立月明中 (개문소립월명중)

문 열고 나가 잠시 달빛 속에 섰네.

 

竹深樹密蟲鳴處 (죽심수밀충명처)

대나무숲 깊은 곳에서 벌레가 우는데,

 

時有微凉不是風 (시유미량불시풍)

가끔 느껴지는 미약한 서늘함은 바람이 아니로구나.

 

 

 

  이번에 알게된 양만리의 시는, 요즘 같은 무더운 계절에 딱 맞는 시다.

  역시, 시인이 괜히 시인이 아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여름 더위에 질려 "더워 죽겠다." 라는 말이나 입에 달고 사는데, 시인의 입을 거치니 한여름 밤의 무더위도 근사하게 표현되니 말이다. ^^

  특히, 마지막 구 時有微凉不是風(시유미량불시풍 : 가끔 느껴지는 미약한 서늘함은 바람이 아니구나.)의 微凉(미량 : 미약한 서늘함)은 '대자연의 평온함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느낌' 을 의미한다는데...  나는 저 마지막 구를 보고 '그래, 한국이나 중국이나, 현대나 옛날이나, 여름밤에 부는 바람은 다 똑같지.  잠깐은 시원한 것 같은데 결국 더운 바람이잖아.' 같은 생각이나 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