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규보(李奎報) 시문(8) - 단오견추천여희(端午見鞦韆女戱)

Lesley 2015. 6. 20. 00:01

 

  올해 6월 20일이 음력으로 5월 5일, 즉 단오다.

  마침 이규보(李奎報)의 시 중에 단오를 소재로 한 것이 있기에, 단오를 맞아 소개하려 한다.  바로 단오견추천여희(端午見鞦韆女戱)다.

 

  예전에는 단오라는 풍습이 여자들에게 더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이규보가 살던 고려시대야 그렇지도 않았지만,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의 외출이나 행동에 제한이 많았다.  남자들도 단오에 씨름을 즐기며 즐거워했겠지만, 여자들이 그네를 뛰며 즐거워하는 것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에게는 모처럼 합법적(?)으로 산에서 들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기회였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한바탕 그네를 뛰고서 땀에 젖은 머리와 몸을 창포물로 개운하게 씻어낸 다음에 수리떡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누다보면, 그 동안 자유롭지 못 하게 살며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端午見鞦韆女戱 (단오견추천여희)

단오에 그네 뛰는 여인들 놀이를 보고

 

 

                                              - 李奎報 (이규보) -

 

 

推似神娥奔月去 (추사신아분월거)

밀 때는 항아가 달나라로 달아나는 것 같더니

 

返如仙女下天來 (반여선녀하천래)

돌아올 때는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구나.

 

仰看跳上方流汗 (앙간도상방류한)

위로 뛰는 모습 고개 들어 바라보니 (아찔해서) 땀이 나는데 

 

頃刻飄然又却廻 (경각표연우각회)

눈 깜짝할 새 나부끼며 다시 돌아오는구나.

 

 

 

  전에 단오날 그네뛰기를 유학자들이 비판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 생각으로는, 여자란 그저 조신하게 집안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단오날에 그네 뛴다고 하하호호 웃으며 이리로 저리로 몰려다니는 것도 마뜩찮고, 또 그네 뛰느라 치마 펄럭이는 통에 속치마나 속바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도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특히나 두 사람이 마주보고 함께 그네를 뛰는 일명 '쌍그네 타기' 에는 더욱 질색팔색했다.  그네를 움직이느라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동작을 하는 것에서 성행위(!)를 연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런 비판을 가한 유학자들이야말로 음란한 사람들이라(음란서생? ^^) 쌍그네를 음란하게 보았던 게 아닐까 싶다.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면 순수한 놀이로만 보인다고, 이 엉큼한 양반들아...!)   

 

 

  서비스 차원에서 올리는, 이 시에 어울리는 그림 하나!

  이규보가 살던 시대에서 600년이 지나 활동한 화가 신윤복이 그린 단오풍정이다.  그림 가운데에 막 그네를 뛰려고 자세를 잡는 여인네를 주목하시라!  저렇게 속바지 다 드러내고 그네를 탔으니, 공자왈 맹자왈 하는 유학자들 눈에 얼마나 꼴보기 싫었을까...

  그런데 우습게도, 양반들이 질색했던 그네를 뛰려는 여인이, 이 그림 속에 등장한 여인 중에서 그래도 점잖은 축에 속한다.  냇가에 모여 씻는 여인들은 아예 웃통도 벗어부치고 치마도 허벅지까지 걷어올리고 있다.  머리에 보따리 이고 걷는 여인 같은 경우에는 저고리 아래로 가슴이 훤히 보인다.  어쩌면 유학자들이 정말로 질색한 것은 그렇게 맨살을 노출하는 것인데, 너무 예의 따지느라 차마 거기까지는 입에 담지도 못 하고 한 단계 아래의 속바지 노출만 문제 삼았던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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