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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클럽(The Bang Bang Club) - 사진기자의 치열한 삶, 그리고 윤리의식

Lesley 2015. 5. 2. 00:01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나흘에 걸쳐 서울 시네큐브에서 '언론영화콘서트' 가 열렸다.

  시민들에게 언론의 기능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언론에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다.  그런데 행사 이름이 '언론영화상영회' 가 아니라 '언론영화콘서트' 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를 상영하면서 언론계 종사자 또는 해당 영화의 감독 등이 하루에 한 명씩 게스트로 초대되어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질문도 받는 시간을 따로 갖는다.

  언론영화콘서트 중 2010년도 영화 뱅뱅클럽(The Bang Bang Club)을 상영한 4월 30일 행사에 당첨이 되어서, 친구와 함께 다녀왔다.  포털에 뜬 영화 시놉시스를 보고 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저 무료(!)로 영화 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화도 괜찮았고 오마이뉴스의 이희훈 사진기자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했던 설명 역시 유익하면서도 재미있었다.

 

 

 

 

 

 

  ◎ 줄거리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백차별정책)가 그 수명을 다해가던 1990년대 초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렉 마리노비치(라이언 필립), 케빈 카터(테일러 키취), 켄 오스터브룩(프랭크 라우텐바흐), 주앙 실바(닐스 반 자스벨드) 등 4명의 사진기자는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위험한 곳을 찾아가 보도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해진다.  나중에 어떤 신문에서 이들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뱅뱅클럽' 이란 별명을 붙여줬고, 그 후로 언론계에서는 이들을 뱅뱅클럽이라고 부르게 된다. (뱅뱅은 총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즉, 뱅뱅클럽은 총알이 난무하는 위험지역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무리라는 뜻임.)

 

  뱅뱅클럽 멤버 중 가장 신참인 그렉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렉은 아직 애송이 사진기자지만, 조금 전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마을로 혼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정도의 배짱을 보인다.  그렇게 찍은 생생한 사진 덕분에, 이미 유명했던 나머지 3명에게 합류하게 된다.

  처음에 그렉은 끔찍한 광경을 보며 몸서리 치기도 하고, 업무가 끝난 후에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차츰 칼이나 창 같은 원시적(!)인 무기는 물론이요, 총과 박격포까지 동원되며 처참한 시신들이 널려있는 곳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사진을 찍는 생활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한 때 자신이 뱅뱅클럽의 나머지 3명을 우러러 봤듯이, 이제는 다른 사진기자들에게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된다.

 

  뱅뱅클럽 멤버 4명 중에서,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퓰리처 수상자가 2명이나 나온다...!

  처음에는 그렉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폭력사태 속에서 몸에 불이 붙은 채 살해당하는 사람을 찍은 사진으로 수상한다.  그러더니 그 다음에는 케빈이 수단의 난민 캠프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를 찍은 사진으로 수상한다.

 

  퓰리처상을 받게된 것은 사진기자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렉과 케빈 모두 칭송과 함께 비난도 받게 된다.

  우선 그렉의 사진은, 백인정권의 이간책으로 같은 흑인들을 공격하는 줄루족이 살해당하는 광경을 담은 것이었다.  그래서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백인정권과 그에 영합하는 줄루족을 옹호하는 사진을 찍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렉이 받은 비난이 그나마 나은 편이고, 케빈의 사진은 더 큰 논란과 비난을 일으키게 된다.  케빈이 찍은 사진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오랜 굶주림으로 처참하게 말라 죽어가는 어린이와, 그 어린이가 죽으면 먹이로 삼으려고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독수리를, 함께 찍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을 두고 '그런 상황이라면 사진이나 찍을 게 아니라 일단 아이부터 구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 는 윤리적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그렉의 사진은 유혈사태가 벌어진 와중에 그렉 스스로도 목숨의 위협을 받아가며 찍은 사진이라, 왜 피해자를 돕지 않았느냐는 비난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임.)

 

  그렇잖아도 케빈은 뱅뱅클럽 멤버 중 정신적으로 가장 불안한 상태였다. 

  폭력과 살인이 수시로 벌어지는 험한 현장에서 심한 압박감을 느껴서, 마약을 복용하는가 하면 반복되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파산 상태라 집세는커녕 전화비조차 내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큰 상을 받은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 하고 비난만 잔뜩 받게 되자, 더욱 흔들리게 된다.  엎친 데 덮친다고, 뱅뱅클럽의 리더 격인 켄이 사진을 찍던 중 총상을 입고 죽는 일까지 터진다.  그러자 케빈은 더 이상 버티지 못 하고 자살한다.  

 

  영화는, 그렉과 주앙이 케빈의 무덤을 다녀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근황을 알려주는 자막으로 끝난다.   

  그렉과 주앙은 그 후로도 세계의 여러 위험지역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퓰리처상까지 받았던 그렉은 이제 사진기자 일을 그만 두었고, 주앙은 (비록 자막에 명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듯하다. 

    

 

 

  ◎ 케빈 카터의 사진 - 언론(기자)의 직업의식과 윤리의식의 충돌, 그리고 주앙의 반론  

 

  이 영화의 '공식적인 주제'(?)는 언론(또는 기자)의 윤리의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인터넷 포털에 뜬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봐도 그렇고, 언론영화콘서트의 자료를 봐도 그렇고, 이희훈 사진기자의 발언을 들어도 그렇고, 전부 그 쪽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실제로 케빈의 사진 때문에 불거진 논란은 '기자의 직업의식과 윤리의식의 충돌' 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로 지금까지 회자되곤 한다.   

 

 

 

'수단의 소녀' 혹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 로 널리 알려진 케빈 카터의 사진.

(1993년 퓰리처상 수상작.)

 

 

  영화 속에서 케빈은 훌륭한 사진이란 어떤 사진이냐는 질문을 받고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진' 이라고 대답한다.

  사진을 보는 이에게 그저 '와~~ 멋진 사진이다!' 라는 감탄만 자아내는 게 아닌, '어째서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라는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야말로 훌륭한 보도사진이라는 뜻일 것이다.  케빈의 대답은 보도사진의 목적 혹은 기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더없이 좋은 모범답안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케빈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수단의 소녀'(혹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는 지구촌에 그런 의문을 충분히 제기한 사진이다. 

  그 동안 사람들은 신문의 글이나 뉴스의 앵커 목소리로만 아프리카의 기아 상황을 접했다.  아프리카에 굶주린 이가 많다는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부분이 그 상황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진정으로 실감하지는 못 했다.  그런데 저 극적인 사진 한 장이 다른 대륙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율을 불러일으켰고, 그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기아 대책에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케빈의 사진이 도덕적 비난까지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 죽어가는 아이를 봤으면 일단은 그 아이를 살리도록 노력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살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좋은 사진 찍겠다고 카메라나 들이댔으니...  그래서 이 사진이 발표된 뉴욕타임즈와 케빈의 집으로 비난의 전화와 편지가 빗발쳤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아이를 돕지 않았다고 비난 받는 것 외에도 '이슈가 되는 사진을 건지려고 일부러 굶주린 아이를 데려다가 그런 장면을 연출한 것 아니냐?' 는 의심까지 받았다고 한다.  또한 퓰리처상의 수상작 선정 기준에 대한 논란도 생겼다.  즉, 명색이 언론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이라는 퓰리처상인데, 그저 큰 이슈가 되는 사진이기만 하면 비윤리적인 상황에서 찍었더라도 아무 상관 없이 상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란이었다. 

 

  그런 비난과 논란 속에서, 케빈은 퓰리처상을 수상한지 불과 석달 만에 33살의 젊은 나이로 자살했다.

  다만, 사진 때문에 비난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살한 것은 아니고, 위의 줄거리에서 언급한대로 당시 케빈은 여러가지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정신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무척 힘들어 하던 중에, 사진 때문에 받은 비난이 겨우 버티던 정신을 무너뜨렸던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케빈이 부당하게 비난을 받았다며, 케빈의 입장을 해명 내지는 옹호해주는 반론이 있다.

 

  바로 뱅뱅클럽 멤버 중 한 명인 주앙이 한 증언이다. 

  주앙은 케빈이 수단에 갈 때 함께 갔는데, 훗날 일본 기자 아키오 후지와라가 그 때의 일에 대해서 주앙을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케빈과 주앙은 UN평화유지군과 함께 비행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30분간 착륙해서 수단인들에게 옥수수를 배급하게 되었고, 그 동안 두 사람은 근처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어떤 부부가 옥수수를 받기 위해서 잠시 자식들을 뒤에 남겨두고 비행기쪽으로 갔다.  그 때 그 부부의 자식들 중 어린 딸의 뒤편으로 독수리가 날아와 앉았고, 카터는 그 사진을 찍은 후에 독수리를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주앙의 증언대로라면, 케빈은 사진 찍는데만 정신이 팔려 아이를 나 몰라라 한 게 아니라 아이를 노리던 독수리를 쫓아냈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혼자 버려져있었던 게 아니라 근처에 부모가 있었으니, 케빈 보고 곧 독수리의 밥이 될 아이를 위해 아무 일도 안 했다고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주앙의 증언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주앙 역시 뱅뱅클럽 멤버로서 오랫동안 케빈과 동고동락한 사이다.  그러니 비난 속에서 죽은 케빈의 명예 회복을 위해, 일부러 케빈에게 유리하게 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영문 위키피디아의 케빈 카터 항목을 보면, 주앙의 증언으로 케빈의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저 케빈에 대한 당시의 비난여론을 먼저 설명하고서, 그 밑에 주앙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러이러 하다고 덧붙인 정도로만 나온다.

  그리고 이 영화는 뱅뱅클럽에 관한 책에 기초해서 만든 영화다.  그런데도 영화 속에서는 케빈의 입장을 옹호해주는 사연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케빈이 사진 찍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통에, 사람들에게 더욱 의심을 사고 비난을 받았다고 나온다.  즉, 영화만 보자면, 케빈은 자기 행동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전혀 생각 안 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붓자 당황한 나머지 자꾸 말을 바꿔가며 변명을 해서(즉, 거짓말을 하려니 앞뒤가 안 맞아 자꾸 말을 바꿀 수 밖에 없어서) 더 파렴치한 인간으로 찍힌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어느 정도의 각색을 거쳤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즉, 영화감독이 기자들의 윤리의식에 관해 좀 더 강렬하고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의도로, 케빈의 입장을 옹호해줄만한 증언에 기초한 내용을 일부러 배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케빈 카터가 위의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한 판단은, 지금으로서는 각자 알아서 할 수 밖에 없다.

 

 

 

  ◎ 사진기자의 치열한 삶, 그 속에서 무뎌지는 윤리의식과 인간성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주제가 '기자의 윤리의식과 직업의식의 충돌' 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케빈의 사건을 통해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는 한데, 그것은 부주제(?)랄까, 좀 더 부차적인 이야기 같다.  그보다는 '끔찍한 현장 속에서 기자들의 윤리의식(혹은 인간성)이 차츰 무뎌져가는 변화의 과정' 이 더 정확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엎어치나 메치나 라고, 그게 그 소리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리의식이 직업의식과 충돌하는 딜레마 그 자체를 다루는 것과, 인간의 잔인성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을 자꾸 접하면서 원래는 강했던 윤리의식이 차츰 사라져가는 변화를 다루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4명의 뱅뱅클럽 멤버 중에서도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가 그렉인데, 영화는 그렉이 분쟁지역 전문 사진기자로서 끔찍함에 익숙해지고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앞부분에서 그렉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렉은 이미 한바탕 사람을 죽여서 잔뜩 흥분한 흑인들이 흉기를 들고 자신을 둘러싸자,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는 사진을 찍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폭행하고 칼로 내리치는 것을 말리기도 하고 결국 그 사람이 온몸에 불이 붙어 죽는 것을 보고 충격으로 얼어붙기도 한다.  그런 끔찍한 광경을 봤던 충격 때문에,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 PTSD 비슷한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보일만한 반응이다.

 

  그랬던 그렉이 매일 같이 처참한 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 점점 변해간다.

  줄루족에게 살해당한 갓난아이의 끔찍한 시신 앞에서, 오열하거나 분노하기 보다는 침착하게 사진을 찍는다.  물론 아직은 감정이 완전히 무뎌지지 않아 슬픈 눈빛을 보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영화 앞부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더구나 사진 찍는데 빛이 부족하다며, 갓난아이의 시신을 보고 덜덜 떨며 우는 여자친구에게 시신 가까이에 전등을 가져다 대라는 요구까지 한다.

  나중에는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현장에 나가서도, 그저 욕지거리나 내뱉으며 투덜대기만 할 뿐 두려워하는 빛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예 한 술 더 떠서, 콜라를 마시고 싶다며 언제 다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큰길을 가로질러 뛰어가 콜라를 사오는 패기(!)까지 보인다. (준전시상태에서 콜라를 사는 사람이나 콜라를 파는 사람이나... -.-;;)

 

  좋게 말하자면, 두려움에 떨던 애송이가 씩씩한 사나이로 변했다고 할 수 있는데...

  나쁘게 말하자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어야 하는 감정(두려움, 슬픔, 분노)을 차츰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허구한 날 끔찍한 광경만 보다 보니, 스스로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 방어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 하면 케빈처럼 정신불안을 겪게 될테니까)  하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그렉이 인간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렉 다음으로 비중이 높았던 케빈은, 그렉의 모습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이다.

  케빈은 퓰리처상을 받게된 일로 기자회견에 참석했을 때, 사람들에게서 "사진 속 아이는 결국 어찌 되었느냐?" 혹은 "왜 그 아이를 구하지 않았느냐?" 는 비난 어린 질문을 받게 된다.  위에 쓴 주앙의 증언은 접어두고, 영화 속 케빈은 듣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뻔뻔스럽고 비인간적으로 들릴만한 대답을 한다. (케빈의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이에 대한 언급은 피한 채 "중요한 건 내 사진이 담고 있는 의미다." 라는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은, 케빈이 '나는 사진기자니까 문제의식 있는 좋은 보도사진을 찍으면 됐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자 아연해 한다.  하지만 이 때 케빈의 표정을 보면, 사람들이 어째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 그런 격앙된 반응 혹은 기막히다는 반응을 보이는지 정말로 모르는 것 같다...!  다른 뱅뱅클럽 멤버들보다 항상 더 예민하고 불안해 보였던 케빈은, 자신의 예민한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감정의 문을 닫았던 것 같다.  그렇게 냉혈한으로 보일 만큼 감정을 최대한 차단하려 했건만, 결국에는 "나는 살인, 시체, 분노, 굶주림의 고통, 다친 아이들, 방아쇠를 함부로 당기는 미치광이, 경찰, 사형집행자의 생생한 기억에 잡혀있다." 라는 문장이 들어간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택했으니...

 

 

 

  ◎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이간책 - 남아프리카 공화국판 이이제이? 

 

  이건 영화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것인데, 처음 알게된 사실이라 빼놓을 수가 없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시피 하다.

  그저 학창시절 사회나 세계사 과목과 미국영화 '파워 오브 원' 을 통해서, 원래 흑인의 땅이었던 곳에서 엉뚱하게도 백인이 주인 행세를 하며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악명 높은 흑백차별정책을 펼쳤다는 것 정도나 알 뿐이다.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위해 투쟁하다가 오랜 세월 투옥되었던 넬슨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결국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여러 번 나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살육전은, 백인과 흑인 사이의 분쟁이 아니라 흑인들 사이의 분쟁이다...! 

  놀랍게도 같은 흑인들끼리 백주대낮에 칼과 창과 총으로 서로를 죽이는 일이 반복된다.  흑인들이 두 편으로 갈린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와 백인정권의 이간책 때문이다.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를 지지하는 흑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기 위해 백인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 백인 상점의 물건을 사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런데 줄루족(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 부족 중 다수에 속하는 부족이라고 함.)은 힘든 살림살이에 백인 공장에서라도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지, 넬슨 만델라가 생활비를 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발한다. (영화에서는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흑인 부족들 사이에서도 수백 년에 걸친 복잡한 갈등이 있다고 함.)  

 

  그리고 백인정권은 흑인 사이의 갈등을 이용해서, 자신들에게 비교적 고분고분한 줄루족을 밀어준다.

  가령 흑인들끼리 충돌할 때면 아프리카 민족회의 지지파인 흑인들 위주로 체포하고, 줄루족이 아프리카 민족회의 지지파를 공격할 수 있도록 총기류를 지원해주고, 아예 무력분쟁 현장에 군인들을 파견해서 노골적으로 줄루족을 엄호하며 아프리카 민족회의 쪽 흑인들에게 총격을 퍼붓는다.  그야말로 남아프리카 공화국판 이이제이(以夷制夷)인 셈이다.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 못된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잘못된 정책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국민들을 이간질해 싸움을 붙여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한 후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처럼 뒤쪽으로 빠지는 짓 말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장기판 위의 말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모른 채, 같은 피해자끼리 치고받는 사람들의 모습에 입맛이 썼다. 

 

 

 

  ◎ 유쾌하고도 유익했던 오마이뉴스 이희훈 사진기자의 설명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20~30분간 이희훈 기자의 보도사진 감상과 설명이 있었다.

  처음에는 영화나 빨리 보여주지 이건 또 뭔가 했는데, 뜻밖에도 유쾌하고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희훈 기자는 '언론영화콘서트' 라는 행사 취지에 맞게, 우리 사회의 병폐를 담아낸 사진들을 보여주며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다소 어색하고 썰렁한 농담을 섞어가며 설명을 하여, 영화를 보기도 전에 심각한 사진으로 인해 많이 가라앉을 뻔한 분위기를 적당한 수준으로 띄우기도 했다.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이희훈 기자가 다소 눌변이라 오히려 관객들이 더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왼쪽) 씨네큐브의 언론영화콘서트 입장표 배부처.

(오른쪽) 형편없는 폰카로 찍어서 얼굴조차 안 보이는 이희훈 사진기자.

 

 

  이희훈 기자가 보여준 사진은 작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사건들을 촬영한 것들이다.

  1. 국무총리 후보가 되었다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욕만 잔뜩 먹고 낙마한 문창극.

  2. 서울 강남의 판자촌이라는 구룡마을에서 벌어졌던 화재.

  3. 여의도 쪽방촌의 모습.

  4. 작년에 가장 큰 사건이었던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팽목항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모습들.

  5. 소위 땅콩회항사건으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나 한류스타보다 더 유명해져버린 조현아.

 

  그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문창극을 찍은 사진들이다.

  보통 보도사진 하면 순간의 장면을 정확하고 깔끔하게 찍어낸 사진, 즉 '기록' 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문창극 관련 사진들은 다른 보도사진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기록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예술을 위한 사진이라는 느낌이었다.  마치 문창극 및 그 주위의 공무원들과 그들을 둘러싼 다른 기자들 모두가, 이희훈 기자가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일부러 포즈를 취해주기라도 한 것 같다.  그만큼 참 절묘하게도 찍혔다. 

 

 

  하지만 이희훈이라는 이름 석자를 모르는 절대다수의 사람들도 작년에 한두 번은 봤을만큼,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사진이 따로 있으니... 

 

 

 

댓글이 수천 개가 달라붙고, 많은 패러디를 양산해냈던 문제의 사진...!

 

 

  땅콩회항사건의 주인공이 기자들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눈만 치켜뜨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다.

  그렇잖아도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던 조현아에 대한 이미지를, 아예 지하로 뚫고 내려가게 한 사진이다.  그래서 당시 일각에서는 마녀사냥 논란이 일기도 했다.  즉, 조현아의 행동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사진을 찍는 각도나 순간에 따라 누구나 저렇게 소름끼치게(!) 찍힐 수 있는 법인데, 저 모양으로 찍힌 사진을 풀어 조현아가 악마라도 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땅콩회항사건이 일으킨 범국민적 분노를 생각했을 때, 그런 의견은 극소수였음. -.-;;)

 

  하지만 그 후에 조현아 측이 검찰조사나 재판과정에서 취한 태도나 발언 내용 등을 보면...

  기자들 앞에서 크게 반성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던 그 모습은, 그저 법적 처벌을 피하고 국민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저 한 장의 사진은 조현아의 본모습을 100마디 장황한 말이 아닌 한 순간으로 설명해 준 대단한 사진이다.  이희훈 기자가 조현아의 본모습을 알고서 그것을 널리 알릴 생각으로 작정하고 저런 사진을 찍었든, 혹은 어쩌다가 우연히 저런 재미있는(?) 모습을 포착해서 찍었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