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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Whiplash) - 미친 선생! 미친 제자! 미친 재즈!

Lesley 2015. 4. 4. 00:01

 

※ 이 영화는 지금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음.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쓰지 않으려 애썼고(특히 마지막 부분), 또한 줄거리를 미리 알고 봐도 별 문제 없을 영화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 무너져도 영화 줄거리 미리 알고 싶지 않다.' 는 사람이라면 뒤로가기 버튼을 누를 것을 권하겠음.

 

 

포스터부터 뭔가 심상치 않게 생겼음.

 

 

 

  얼떨결에 본 영화

 

  지난 주에 친구에게 끌려가(!) 영화 위플래쉬(Whiplash)를 봤다. 

  친구가 갑자기 전화해서는 그 날 저녁 씨네큐브에서 위플래쉬라는 영화를 보자는데, 나는 그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어떤 장르이며 어떤 배우가 나오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 왈 "나도 몰라.  그냥 기분전환하고 싶어서 영화 보려는데 시간 맞는 게 그것 밖에 없어." -.-;;  친구가 아는 거라고는 이 영화가 음악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더욱 동하지 않았다.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물랑 루즈' 나 '오페라의 유령' 등 뮤지컬 영화는 나와 궁합이 안 맞음.)

  내가 시큰둥해 하자, 친구는 씨네큐브에서 저녁 8시 이후로 하는 영화 중 마음대로 골라보라고 선택권을 넘겼다.  하지만 씨네큐브라는 곳이 상영관이 달랑 두 곳 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포털에서 영화 시놉시스를 읽어 보니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일 뿐 뮤지컬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 결국 이 영화로 낙찰했다. 

 

 

 

  기대 이상이었던 영화 - 천재적인, 그러나 광기에 휩쌓인 스승과 제자

 

  그렇게 친구를 위해 봉사활동(!)하는 셈치고 본 영화인데, 의외로 재미있게 봤다.

  영화 내용을 한 줄짜리 공식으로 정리하자면 "(대놓고 광기를 부리는 교수 + 내면에 광기를 지닌 학생)Ⅹ멋들어진 드럼 연주" 다.  유명한 음악대학의 1학년 학생인 앤드류(마일스 텔러, Miles Teller)가 그 학교 최고의 교수인 플렛처(J.K. 시몬스, J.K. Simmons)에게 발탁되면서 벌어지는 사연을 담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 어두운데도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은 것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지만 성격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재능은 뛰어나지만 성격은 엉망인 두 천재가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서, 서로에게 번갈아가며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어퍼컷을 날리며 쉴 새 없이 엎치락 뒤치락 한다.  이 사람이 한 방 제대로 먹였구나 싶으면 곧 저 사람이 반격에 나서고, 결국에는 저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로군 하고 생각하면 이번에는 이 사람이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반격에 나선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영화치고 내용 전개가 속도감 있는 편이고, 거기에 빠른 박자의 드럼 연주까지 어우러져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드럼 연주는 재즈를 모르는 내가 들어도 굉장했음!) 

 

  플렛처는 뛰어난 재능과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닌, 재즈 분야 최고의 교수다.

  그래서 이 학교의 재즈 전공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플렛처의 밴드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앤드류는 우연히 만난 플렛처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플렛처의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음악가로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간 밴드가, 알고 보니 지옥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였다...!

  플렛처의 교육 방식이라는 게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몰아쳐서 잠재된 천재성을 끌어내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몰아친다는 말의 뜻이 그저 '과도한 연습을 시키는 것'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예 '학생들의 인격을 무시한 채 수시로 폭언을 일삼는 것' 이다.  플렛처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극심한 경쟁심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자기 학생들을 극한 정신적 상태로 몰아넣어, 그 상황에서 버텨내는 학생만을 키워내고 그렇지 못 한 학생은 패배자 취급하며 밴드에서 쫓아내버린다.  다시 말해서, 1명의 천재를 키워내기 위해서 나머지 99명을 낙오시키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다.  

 

  앤드류는 얼핏 보면 소심하고 얌전해 보이는 학생이지만, 사실은 플렛처처럼 성격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가정환경 탓인지 대인관계가 정말 건조하다.  친구가 적은 게 아니라 아예 없다!  음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게 된 건지, 아니면 친구를 사귀지 못 하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풀기 위해서 음악에 푹 빠지게 된 건지...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친구가 없어도 별 상관 없다." 고 말할 정도로 그런 생활에 익숙해졌다. (친구가 없어 외로워 하는 것보다, 친구가 없는 상황에 완전히 익숙해진 상황이 더 심각해 보임.)

  그렇게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어보지 못 한 탓에, 사람 사이의 배려랄까 처세술이랄까 하는 부분에서 매우 서툰 모습을 보인다. (현실 속에서 '재수 없는 인간' 이란 소리 듣기 딱인 성격임.)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자기 때문에 악보를 잃어버린 드럼 메인 연주자 앞에서 일말의 망설임이나 죄책감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나서지를 않나, 자기 쪽에서 먼저 접근해서 사귀게 된 여자친구에게 '성공한 음악가가 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해서 너를 만날 수 없고, 너처럼 꿈 없는 여자랑 사귀는 건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 는 이유를 대며 이별을 선언하지를 않나...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플렛처보다 앤드류가 더 무서운 인물이다. 

  플렛처는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언제나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최소한 플렛처를 피할 기회라든지 혹은 플렛처에게 당할(!)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앤드류는 '그저 소심한 녀석이군.' 정도의 인상만 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경계심도 품지 않게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근조근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리거나, 아니면 아예 맹수처럼 돌변해서 달려든다.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닌 것 같지만, 타인 입장에서 보자면 '그저 얌전한 샌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보통 음흉한 게 아니네.' 식으로 보일만하다. 

 

 

(왼쪽) 온몸에서 독재자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플렛처. (보라, 저 강렬한 눈빛을...!)

(오른쪽) 스승과는 닮은 듯 다른 듯한 광기를 품고 사는 앤드류.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드럼을 연주할 정도...!) 

 

 

 

  멋진 결말, 그러나 앞으로도 평행선을 이어갈 사제지간

 

  잔뜩 뒤틀린 성격의 두 천재는, 서로를 몰아치고 서로에게 자극받으며 정신없이 내달린다.

  플렛처는 자신이 앤드류의 잠재성을 눈치채고 밴드로 불러들였으면서도, 그리고 자기가 앤드류를 메인 드럼 연주자로 발탁해놓았으면서도, 계속해서 '그 자리가 영원히 네 자리일 거라고 믿는 거냐?' 는 식으로 앤드류를 압박한다.  앤드류의 자리를 위협할만한 경쟁자를 불러들이지를 않나, 앤드류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분명할 앤드류의 가정사를 모든 밴드부원 앞에서 들먹이지를 않나...

  하지만 플렛처가 앤드류에 대해 미처 몰랐던 게 하나 있었으니, 앤드류는 플렛처가 생각하는 것처럼 찌질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찌질이는커녕 오히려 플렛처만큼이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한 번 폭발하면 물불 못 가리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결국에는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무리해가며 드럼 스틱을 잡은 앤드류, 그런 앤드류가 연주를 망쳤다고 무지막지한 비난을 퍼부은 플레처, 그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그 충돌로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음악가의 길' 에서 낙오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

  지금까지 빠른 박자의 드럼 연주처럼 정신없이 달려왔던 영화치고는 끝부분이 너무 평범하고 뻔하게 흘러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금은 달라진 듯했던 플렛처가 반전을 일으킨다.  반전이라고 해서 영화 '식스 센스' 에 나오는, 영화 보던 이들이 한꺼번에 숨을 멈추게 되는 충격적인 반전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역시 그러면 그렇지.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데 플렛처가 변할 리가 없지.' 라는 느낌에 가까운 반전이다.

  하지만 앤드류도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영화 속에 나온 플렛처의 제자 중 유일하게 스승에게 정면으로 맞섰던 사람이 바로 앤드류 아니던가...  플렛처에게 뒤통수 제대로 맞고 그대로 무너지는 것 같던 앤드류가 상황을 완전히 뒤짚어 버린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직전, 두 사람은 처음으로 '우리가 통했네.' 하는 눈빛으로 미소를 주고 받는다.

  영화 내내 광기에 물들어 엎치락 뒤치락 했던 두 사람이 최초로 공유한 정신적 교감이다.  하지만 내가 감히 장담하는데, 영화가 끝난 후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두 사람은 또 다시 물고 뜯는 사이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영화 막바지에서 나눈 교감이, 두 사람이 나눈 최초이며 동시에 최후의 교감일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간 후로 두 사람은 또 다시 '서로를 정신없이 몰아치고 긁어대고 서로의 뒤통수를 쳐대는 뒤틀린 사제지간' 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어째서냐고?  플렛처와 앤드류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까!

  플렛처의 옛 제자 션의 죽음에 관한 사연에서 볼 수 있듯이, 플렛처는 자기 교육 방식의 어두운 면은 결코 보지 않는다.  중요한 건 오직 하나, 자신의 그 극단적인 방식 덕분에 몇몇 천재 음악가가 탄생했다는 것 뿐이다.  플렛처는 자신 때문에 앤드류가 그 동안 겪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결코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기 덕분에 앤드류의 천재성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났다는 것에 뿌듯해하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앤드류 역시 플렛처에게 존경심이나 애정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애증' 조차 느끼지 못 할 것이다.  오직, 끔찍한 혐오감과 반드시 눌러버리겠다는 투지 정도의 감정이나 느낄 것이다.  앤드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재능을 마침내 만인 앞에서 선보이게 된 것은 그저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 덕분이지, 플렛처에게 고마워할 일은 결코 아니다.  앤드류에게, 플렛처는 그저 자기 잘난 맛에 날뛰는 '미친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테니까.  

 

 

 

  사람들이 이 영화를 교육 관련 영화로 보고 있다고?  이게 무슨...! 

 

  영화를 보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찌 봤는지 스마트폰으로 몇몇 리뷰를 찾아봤는데...

  마침, 인터넷 매체에 영화에 관해 고정적으로 리뷰를 쓰는 두 평론가가 이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쓴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대충 훑고나니 당혹스런 기분이 들었다.  한 리뷰를 보면, 그 평론가와 평론가 주변 사람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제자의 가능성을 끌어내려는 스승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 로 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리뷰에서도, 이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속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우리의 교육현실을 투영해서 보기 때문이란 식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두 리뷰에 달린 댓글들 대부분이, 두 리뷰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거나 황당해하는 내용이었다.  대체적인 분위기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도대체 누가 이 영화를 그렇게 봤다는 거냐?' 다.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아, 이 두 리뷰를 보고 황당해하며 공감 못 한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

  물론 똑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하고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교육' 이라는 쪽으로 초점을 두고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이 영화를 누가 교육 쪽으로 해석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뭐, 특별한 분야에 종사하거나 혹은 특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육 쪽에 방점 찍고 영화 감상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스파르타식 재수학원의 운영자라면 '그래, 플렛처가 비인간적으로 굴긴 했지만 결국 앤드류한테서 천재성을 끌어내는데 성공했잖아!  역시 애들은 막 몰아치며 공부시켜야 명문대 가지.' 라는 '미친 공감'(!)을 할 수도 있다.  혹은 학창시절에 비인간적인 교사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플렛처 저 인간 보니 고등학교 때 수학 가르치던 그 미친 개가 또 생각나네!' 라며 이를 바득바득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우리의 빡빡한 교육현실의 어떤 부분을 떠올리기는 했을지언정, 그것을 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를, 광기에 사로잡힌 두 음악천재의 대결로 볼 수도 있고, 음악에만 몰입해서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던 두 천재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함께 최고의 연주를 이루어내고 화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물론 위에 썼듯이, 개인적으로는 두 주인공이 결코 화합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하나의 광기가 숨어있던 또 다른 광기를 이끌어내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해석들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두 주인공이 사제지간이고 영화의 주요 배경이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는 비인간적인 교육현실을 묘사한 영화' 라는 둥 '비록 과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제자의 잠재된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 준 스승의 이야기' 라는 둥,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교육을 주제로 한 영화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두 리뷰에 붙은 댓글들만 봐서는, 이 영화를 본 다른 많은 사람들도 도대체 그 리뷰를 쓴 평론가가 어째서 상당수 관객들이 이 영화를 훌륭한 스승을 다룬 감동적인 영화로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고... 

 

 

 

  최고의 장면

 

  누군가 나에게 이 영화 속 최고의 장면을 두 개만 골라 보라면, 다음 두 장면을 들겠다. 

 

  첫 번째, 메인 드럼 연주자 자리를 놓고 세 학생이 몇 시간에 걸쳐 드럼을 치는 장면.

  앤드류를 비롯한 세 명의 드럼 연주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말 그대로 온몸의 에너지를 쥐어짜면서 연기를 한다.  아무리 실제상황이 아닌 연기라지만, 세 배우 모두 그 장면 촬영 끝내고서 몸 안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세 학생 모두 메인 드럼 연주자 자리를 차지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드럼을 쳤다.  하지만 플렛처의 무지막지한 다그침이 계속 되면서, 나중에는 세 학생 모두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자신들이 왜 드럼을 쳐야 하는지 모르면서 미친 듯이 드럼을 두들겨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드럼 연주자 선발 때문에 복도에서 시간을 죽이는(!) 다른 학생들의 무료한 모습과, 머리는 땀으로 잔뜩 젖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 채 드럼을 두들기는 세 학생의 모습이 대비되어,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세 학생이 번갈아 가며 드럼을 칠 때, 플렛처는 한 사람당 넉넉하게 연주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한 학생에게 겨우 5, 6초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만 드럼을 치게 한 후 다음 학생에게 차례를 넘기는 식으로, 세 학생을 미친 듯이 뺑뺑이(!) 돌게 한다.  그래서 나처럼 재즈니 드럼이니 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 드럼 치는 장면만 반복되는 게 지겹다고 느껴지기는 커녕 오히려 온몸을 긴장한 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봤다.  

 

  두 번째,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화려한 드럼 연주.

  마지막 무대 장면은 두 번의 반전으로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한 동안 드럼 스틱을 잡지 않았던 앤드류가 그야말로 자기 영혼을 통째로 불태우며 두들기는 드럼 연주 덕분에 더욱 빛이 났다.  원래도 독립영화 관객은 일반영화 관객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율이 훨씬 높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경우 관객들이 모두 미친 듯한 드럼 연주에 취해서인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영화 속 음악이 재즈가 아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라고 했다.  아무래도 재즈가 두루 환영받는 장르의 음악이 아니니, 좀 더 대중적인 장르의 음악이었다면 이 영화의 흥행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음악을 재즈로 한 것은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재즈 그 자체가 아니라, 재즈 중에서도 색소폰이나 트럼본 같은 악기가 아니라 훨씬 동적인 느낌을 주는 '드럼' 을 중심으로 잡은 게 탁월한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재즈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이조차, 미친 듯이 질주하는 드럼 소리에 정신없이 영화에 몰입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