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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1) : 원녀일기

Lesley 2015. 3. 11. 00:01

 

   ◎ (콩쥐팥쥐전 + 춘향전 + 심청전) × (유쾌 + 상쾌 + 통쾌) = 원녀일기

 

  작년 12월, 종종 드나드는 블로그에서 단막극 프로그램 '드라마 페스티벌' 의 '원녀일기' 를 알게 되었다.

  '원녀일기' 라는 제목만 보면 '원한에 사무쳐 죽은 여자귀신 이야기' 일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조선시대 노처녀들의 사랑 찾기라고 했다.  원녀(怨女)란 말은 직역하면 '원한 맺힌 여자' 라는 뜻인데, 뜻밖에도 예전에는 노처녀나 과부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차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혼기가 넘도록 짝을 못 만났거나 혹은 만났던 짝과 사별한 사람은 한이 철철 넘쳐흐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여튼 공포물이나 로맨틱코미디물이나 전부 내 취향 아니기는 마찬가지라, 그냥 그런 드라마도 있구나 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그 드라마의 감상이 새로 올라온 것을 보니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콩쥐, 춘향, 심청 등 우리나라 고전소설 속 주인공들이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전소설의 내용을 유쾌하고 비튼 내용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날 밤에 당장 구해서 봤다. ^^


  좀 유치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로맨틱코미디물이라는 게 원래 그런 법이니 그런 부분은 넘어가고...

  한 마디로 '유쾌+상쾌+통쾌' 로 범벅된 단막극이다.  배경만 조선시대일 뿐, 사실상 현대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저 우리 고전소설 속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시대극 형식으로 만든 것 뿐이다.  고전소설 속 최콩쥐, 성춘향, 심청의 캐릭터가 현대적으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삼총사의 우정이 갈등을 넘어 더 탄탄해지고 각자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사연이 한바탕 신나게 펼쳐진다. 

 

 

 

  ◎ 칙칙한 조선시대의 발칙한 노처녀 삼총사

 

 

 

  콩쥐(김슬기)는 '문학소녀 + 말괄량이' 다.
  엄마는 동네에 소문난 미인이고 동생 팥쥐도 엄마를 닮아 예쁘건만, 콩쥐만 주근깨 가득한 못생긴 얼굴이다.  오죽하면 콩쥐 엄마가 분명히 친엄마가 맞는데도, 모녀가 너무 안 닮아서 계모라고 소문이 났을 정도다. (콩쥐가 못생겼다는 데 동의하기 힘들지만, 드라마 설정상 못생긴 것으로 나오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갑시다~~)

  거기에 성격까지 괄괄하고 입에는 '염병' 이라는 욕지거리를 달고 사니, 신랑감이 나타날 리 없다.  그래서 이제는 동네 아이들마저 떼지어 몰려와서는 원녀라고 놀려대는 판국이다.  그런 콩쥐 앞에, 드디어 콩쥐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멋진 남정네가 나타나는데...

 

  PS.

  양갈래로 땋은 머리에 얼굴은 주근깨 투성이고,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며, 남자들에게 틱틱거리면서도 은근히 낭만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콩쥐를 보아하니...  이 드라마 속 콩쥐는 '콩쥐팥쥐전' 의 주인공 콩쥐와 '빨강머리 앤' 의 주인공 앤을 섞어 만든 것 같다. (내 추측이 맞을 확률 95%...!)

  그리고 큰딸 콩쥐가 시집 안 간다고 속을 끓이던 콩쥐 엄마가, 딸이 외박했다는 것을 알고는 당황해하거나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장하다, 우리 딸~~ 어이구, 장해~~" 하며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에서, 완전히 빵빵 터졌다. ^^  

 


  춘향(서이안)은 '뛰어난 미인 + 불여우' 이다.

  춘향은 세 친구 중 미모가 가장 출중한데다가, 엄마 월매가 그 고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방을 운영하고 있어서 명문대가 아가씨 못지 않게 화려하게 꾸미고 다닌다.  기방 언니들에게 온갖 소리 들으며 자란 덕에 남자들 심리에 빠삭해서, 난다 긴다 하는 남자들을 전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물락거릴 지경이다.

  콩쥐와 다르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남자 조건을 너무 따지느라 노처녀가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고르고 골라서, 부잣집 아들 이몽룡를 유혹해 연인이 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몽룡네 집이 쫄딱 망하면서 일이 꼬이는데...

 

  PS.

  춘향 역을 맡은 배우를 어디에서 봤다 싶었는데, 작년에 열심히 봤던 사극 '정도전' 에서 우왕의 비인 '근비' 로 나왔던 배우다. ^^

 

 

  청(채수빈)은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 + 꿋꿋한 소녀가장' 이다.
  세 친구 중 가장 순하고 차분한 성품을 지녔고, 시장에서 생선을 팔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똑순이다.  청은 가난 때문에 지레 혼인을 포기하고 노처녀가 된 경우다.

  어려서부터 은근히 좋아했던 이몽룡이 하필이면 친구 춘향과 연인이 되어 마음이 서글프기만 한데, 엎친 데 덮친다고 철딱서니 없는 아버지 심학규마저 말썽을 일으킨다.  아버지가 장님 흉내 내며 가짜 만병통치약 인당수(!)를 파는 다단계(!) 사기행각에 끼여들어, 딸의 운명을 위기로 몰아넣는데...

 

  PS.

  "혼인은 뭐 빈손으로 하니?  예단 400냥에, 잔치비 800냥에, 이바지 30냥에..." 에서 빵 터졌다.  아이쿠야~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돈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

 

 

 

  ◎ 너무 유쾌했던 고구마밭씬

 

  이 단막극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골라보라면, 3번이나 나오는 고구마밭씬을 들겠다.

  첫 번째, 한밤에 세 친구가 고구마밭에서 고구마 서리를 하다가 주인에게 들켜, 체면이고 뭐고 치맛자락 들쳐잡고 꺅꺅 소리치며 도망친다.  두 번째, 처음으로 남자와 데이트를 하게 된 콩쥐가 그 남자와 고구마 서리를 하다가 또 들켜서, 둘이 손을 맞잡고 도망친다.  세 번째, 의리녀 콩쥐가 빚에 팔려가는 청이를 구해 도망치느라, 인신매매범들에게 쫓기며 고구마밭 옆을 달린다.

  고구마밭 주인이 고구마 서리하는 범인을 잡으려고 쳐놓은 덫(도망치는 사람 발에 걸리게 밧줄을 설치해놓았음.)을 매번 뛰어넘는 주인공들 모습이 어찌나 발랄하고 상쾌해보이던지...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고구마밭씬에서는 신나고 요란한 팝송이 배경음악으로 깔려서, 그런 발랄한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내가 이 나이에 서울 근교 고구마밭으로 뛰쳐나가 고구마를 마구마구 서리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 

 

 

"염병! 튀어!"

"너희 얼굴 다 봤어!  야, 콩쥐, 춘향이, 심청이!  내가 모를 줄 알아!"

 

 

"이런 쥐새끼들!"

"염병! 튀어!"

 

 

"염병! 튀어!"

"잡아라!"

 

 

  ◎ 답답한 세상에서서 한숨 돌리기 위한 드라마

 

  이 드라마는 당.연.히.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서로 얽히고 설키며 잠시 동안 흔들렸던 삼총사의 우정은, 모든 일이 끝난 뒤에는 오히려 더 굳건해진다.  그리고 삼총사 모두 각자의 짝을 찾는데 성공한다.  드라마가 끝난 후 엔딩 타이틀이 지나가면서 보너스로 나오는 그 후의 짤막한 사연도 재미있다. (처녀시절에는 언제 노처녀 신세에서 벗어나냐고 한탄하던 사람이, 막상 기혼자가 되어서는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던 처녀시절이 훨씬 좋았다고 한탄하는...  기혼자들의 푸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  

  이 복잡다난하고 어수선한 세상에 진절머리가 났을 때, 비타민 음료수 한 병 마신다 생각하고 보면 딱인 단막극이다.  매일 뉴스에서 터져나오는 짜증나는 소식에 질리신 분들, 잠시 머리 식힐 겸 보시기를...! ^^

 

 

단막극(2) : 화평공주 체중 감량사(http://blog.daum.net/jha7791/15791174)

단만극(3) : 환향 - 쥐불놀이(http://blog.daum.net/jha7791/1579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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