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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쿠(大奥) -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 오오쿠~영원~(大奥~永遠~)

Lesley 2015. 2. 12. 00:01

 

  오늘 소개할 일본 영화는 '오오쿠 ~영원~[에몬노스케・츠나요시 편](大奥~永遠~[右衛門佐・綱吉篇])' 인데, 그 전에 서론을 장황하게 써야 할 듯하다.

 

 

 

오오쿠란? / 드라마 오오쿠 시리즈

 

 

  '오오쿠(大奥)' 라고 하면, 한국의 일본 드라마팬들은 '칸노 미호(菅野美穂)' 주연의 2003년도 사극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는 '오오쿠 - 쇼군의 여인들' 이란 제목으로 방영했다.  일본에서도 꽤 인기를 끌어서 그 후로 '오오쿠 제1장''오오쿠 - 화의 란' 이란 프리퀄도 나왔다. (실존인물들을 내세운 사극에도 '프리퀄' 이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편과 세 번째 편이 첫 번째 편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 후속편이라고 하기는 좀 이상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나왔던 '오오쿠' 가 제일 괜찮았다.  본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오오쿠' 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되었 게 분명한 '오오쿠 제1장' 과 '오오쿠 - 화의 란' 은 '오오쿠' 보다는 재미가 덜 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음.)

 

  자, 그럼... 오오쿠라는 말이 자꾸 반복되는데, 오오쿠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 하면...

  오오쿠란, 일본의 마지막 막부인 에도 막부 시기에 쇼군의 처첩 및 첩 후보자(!) 등을 모아놓은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 여인들이 이루는 하나의 체계 혹은 집단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굳이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내명부(중전 + 후궁 + 후궁 후보자라 할 수 있는 궁녀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내명부는 국가의 주인이자 최고 통치자인 국왕의 처첩 등으로 이루어진 집단인데 반해, 일본의 오오쿠는 공식적인 최고 통치자인 일본의 국왕을 제치고 실질적인(!) 최고 통치자 노릇을 하는 쇼군의 처첩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게 다르긴 하지만...

 

  위에 소개한 오오쿠 시리즈는, 그런 오오쿠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부 쇼군과 그 처첩들간의 애정.질투.음모 등을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장희빈' 이나 '여인천하' 류의 사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 편의 오오쿠 시리즈 모두 달랑 11회분으로 이루어져서, 우리나라 사극에 비해서 좀 더 속도감이 있고 내용도 탄탄하다.  즉, 우리나라 사극처럼 처음에는 멀쩡하다가 뒤로 갈수록 축축 늘어지게 된다든지, 인기가 있다고 원래 100부작이었던 것을 엿가락처럼 마구잡이로 늘여서 150부작으로 만들어 용두사미로 끝나게 한다든지... 그런 일이 없다는 뜻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오오쿠'

 

  

  이 글 앞머리에 소개한 칸노 미호 주연의 오오쿠를 재미있게 본 후, 만화방에서 우연히 오오쿠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발견했다.

  '앗, 그 드라마가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것이었어?' 하면서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그 만화책을 펼쳤는데...  만화책 처음 부분에 나온 설명이 뭔가 심상치 않더니만,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허걱~~' 하게 되었다.  왜냐 하면, 드라마 오오쿠와 큰 줄거리는 같은데 남녀 역할이 뒤바뀐 채로 나오기 때문이다..! -0-;;  

 

  그 만화책은 일본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 의 작품이다.

  만화책과 담을 쌓고 살아서 그 사람이 누군가 의아해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주지훈과 유아인 등이 나왔던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의 원작 만화를 그린 작가가 바로 요시나가 후미다. ^^  즉, 요시나가 후미가 그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라는 만화책이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서 먼저 영화가 만들어졌고 몇 년 후에는 한국에서도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요시나가 후미가, 위에 소개한 드라마 오오쿠를 무척 재미있게 보고서 그것을 소재로 만화를 그렸다.

  단, 전체적인 줄거리는 드라마 오오쿠의 내용 그대로 나가되, 남자들이 괴질에 걸려 줄줄이 죽어나가는 통에 여성들이 남자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설정이 붙는다.  그 기발한 아이디어로 남녀의 역할을 완전히 뒤집어서, 일종의 대체역사물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 역사 속 굵직한 사건들은 남녀가 뒤바뀐 채로 적당히 변환(?)되어 나타난다는 게 또 특이하다.

  그래서 드라마판 오오쿠 시리즈를 보고서 이 만화를 보면 정말 복잡한 기분이 된다.  드라마 오오쿠를 본 사람이라면, 쇼군이 방울복도에 들어설 때면 방울복도 양쪽으로 길게 늘어앉은 화려한 차림새의 여인들이 마치 야구경기장에서 각 팀의 팬들이 파도타기(!) 하듯이 순서대로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면이 여자 쇼군이 등장하며 남자들이 줄줄이 파도타기 하는 버전(!)으로 만화책 속에 등장하니, 한편으로는 너무 황당한데 또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이 만화책 도대체 뭐지?  작가가 히로뽕이라도 맞고서 이 만화 그렸나봐!' 하며 멍한 기분으로 보다 보니, 어느새 몰입해서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  그리고 그 후로 다음 권이 발매될 때마다 열심히 읽게 되고, 그렇게 5권 아니면 6권까지 읽었던 것 같다. (지금은 몇 권까지 나왔으려나?)

 

  만화책 오오쿠의 세계관(?)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에도 막부 시절 일본에 적면포창(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물집으로 가득차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음.)이란 원인도 모르고 약도 없는 전염병이 돌게 된다.   그 병은 특이하게도 남자, 그 중에서도 젊은 남자들이 주로 걸린다.  걸렸다 하면 열 명 중 아홉 명은 죽고, 어찌어찌 해서 겨우 살아남는다 해도 얼굴이 끔찍하게 변해버린다.  그 병이 유행하고 수십 년이 지나자, 남자 숫자가 그 전보다 10분의 1로 줄어버렸다.  남자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고, 또 병에 걸리지 않은 소수의 남자들은 후손을 생산하는 일에만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 남자들이 맡았던 사회적 역할은 여자들이 맡게 된다.

  그렇게 남녀역할이 뒤바뀐 상태에서, 일단 에도 막부 8대 쇼군 시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다가 그 8대 쇼군이 오오쿠 내에 비밀리에 전해내려오는 기록을 통해서 과거의 사연을 접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3대 쇼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그 다음 쇼군들 순서대로 차례로 펼쳐진다.    

 

 

  그런데 만화 속 세계관이 상당히 그럴 듯하다.

 

  여자들은 원래 남자가 맡았던 역할을 대신 맡게 되면서,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그 전에는 누리지 못 했던 권력을 쥐게 된다.

  하지만 체력적인 면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뒤쳐진다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 숫자가 줄어들면서 일본의 국방력이 약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외국이 일본의 국방력 약화를 눈치채고 침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이 여인천하라는 사실은 대외비가 된다.  즉, 외국 사신이나 상인들과 접할 때에는, 마치 일본이 다른 나라처럼 남자들이 사회생활의 중추인 것처럼 꾸민다.

  막부가 쇄국정책을 펼치게 된 이유도 기독교 박해니 뭐니 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실제로는 일본이 여자만 우글거리는 나라라는 게 서양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남녀역할이 바뀌면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나름의 애환이 생긴다. 

  사회를 지탱하려면 계속해서 아이들이 태어나야 하는데, 여자는 넘쳐나고 남자는 모자라다.  그러니 가뜩이나 부족한 남자들이 혹시나 적면포창이나 그 밖의 사망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까 해서, 남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  농사도, 장사도, 정치도 전부 여자가 도맡아 하고, 남자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특정한 직업 없이 살게 된다.  얼핏 생각하면 남자들에게는 마냥 천국 같은 시대인 것만 같은데, 그건 또 아니다.  후손 생산을 위한 종마(!) 취급을 받게 되면서, 먹고 살만한 집 출신이 아닌 다음에야 남자들이 사실상 매춘 비슷하게 돈을 받고 대리부 역할(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씨내리 노릇)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로 몰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사회 중추가 되면서 여자들 지위가 크게 향상된 것도 사실이지만, 곤란한 점도 생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남녀성비가 안 맞아 저소득층 남자들이 결혼하기 힘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다만, 우리는 여자가 부족한 상황인데 이쪽은 남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그 현상이 뒤집어져 나타난다.  즉,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엄청난 지참금을 들이는 게 가능한 부유한 계층 여자들만 정식으로 남편을 맞을 수 있게 된다.  가난한 대다수의 여자들은 돈을 주고 남자를 임신용(!)으로 잠시 빌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       

 

 

 

만화 '오오쿠' 를 원작으로 하는 첫 번째 영화 : 오오쿠 남녀역전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만화 오오쿠가 2010년에 영화화 되었다.

  정말이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녀역할을 뒤집은 만화가 튀어나왔을 때만 해도 '이 정신 나간 수준의 기발한 상상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했지만, 그 기발한 상상력을 담은 매체가 다름 아닌 '만화책' 이기에 말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 줄이야...!  일본 드라마나 영화 중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것을 여러 편 봤지만, 충격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위에서 몇 번 언급한 남자들의 파도타기(!)가 흑백그림으로 종이 위에 펼쳐질 때와, 화려한 칼라그림으로 화면 위에 펼쳐지는 것은, 보는 사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2010년판 오오쿠 남녀역전(원제는 그냥 '오오쿠' 지만, 남녀역할이 그대로 나오는 드라마판과 구별하기 위해 뒤에 일부러 '남녀역전' 을 덧붙였다고)은 일본에서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렸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일단, 그런 황당한(?) 내용의 영화가 처음이라 사람들이 호기심에 줄줄이 영화관으로 가지 않았을까...  또한,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 모두 무척 시원시원하면서 속 깊은 캐릭터고, 영화 내용도 전체적으로 유쾌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나는 오락영화 한 편 보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봤을 것 같다.

 

 

 

만화 '오오쿠' 를 원작으로 하는 두 번째 영화 : 오오쿠 ~영원~

 

 

  드디어 여기부터가 오늘 포스트의 본론이다...! 

 

 

  ◎ 흥행실적은 저조했지만, 나에게는 매력적인 영화

 

  만화 오오쿠를 원작으로 한 두 번째 영화는 2012년에 '오오쿠~영원~(大奥~永遠~)' 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원제는 '오오쿠 ~영원~[에몬노스케・츠나요시 편](大奥~永遠~[右衛門佐・綱吉篇])' 인데, 너무 기니까 그냥 '오오쿠~영원~' 으로 하겠다. (참고로 기다란 원제에 나오는 '에몬노스케' 와 '츠나요시' 는 남녀 주인공의 영화 속 이름임.)

  이 영화가 2010년도에 나온 영화의 속편이기는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오히려 앞시대의 일을 다루고 있다.  원작인 만화의 1권이 제8대 쇼군 시대를 다루고 있고 4권은 5대 쇼군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2010년도 영화가 1권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2012년에 나온 이 영화는 4권 및 5권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2권 및 3권은 영화가 아닌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데, 거기까진 손을 안 댄 상태라 이 포스트에서는 그냥 넘어가겠음. ^^;;)

 

  그런데 '오오쿠~영원~' 은 전편만큼 성공하지는 못 했다고 한다.

  이것 역시 내 추측일 뿐이지만, 전편에 비해 영화 분위기가 많이 어두워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전편은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였고 해피엔딩이었다.  황당하리만큼 상상력 넘치는 내용에 명랑 에너지까지 더해지는 게 전편의 매력이었을 것이다.  다음넷 영화 메뉴에서 전편에 대한 한 줄 평 중에 '골 때린다고 욕하면서 끝까지 보게 되는 거 이거 머지?' 라는 게 있던데,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 평을 쓴 사람과 비슷한 기분으로 전편을 즐겼을 것 같다. ^^

  거기에 비해 이 '오오쿠~영원~' 은 내용이 음울한데다가 결말마저 새드엔딩이다.  그것도 여운이 남는 새드엔딩이 아니라, 허무하기 짝이 없는 새드엔딩... -.-;;  전편처럼 '비록 비현실적이지만 유쾌한 내용' 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영화관에 들어갔을 관객들이라면, 뒤통수 한 대 제대로 맞은 기분으로 '아니, 이건 또 뭐래?' 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흥행실적이 별로였다는 이 영화를 꽤 재미있게 봤다.  

  나 역시 전체적인 완성도를 보자면, 2010년도판 영화가 이 영화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줄거리에 세세함이 부족해서 뭔가 좀 구멍이 났다는 기분도 들고, 끝부분이 상당히 허망하게 끝났기 때문이다. (다만 허망한 끝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한 것이, 이 영화의 원작인 만화 오오쿠의 5권 끝부분이 원래 허망함. -.-;;)  그런데 내용상의 약점 몇 가지를, 남녀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배우의 대단한 연기력이 다 덮어준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가 사극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다고 해서 정말 사극으로 보며 역사적 사실을 따지거나 해도 실망하게 될 거다. (이 영화는 엄연히 대체역사물이다 보니, 이 영화에서 역사성을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기는 함. ^^;;)  하지만 '고귀한 신분이지만 지독히 고독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린 이야기' 또는 '서로를 아꼈지만 그 아끼는 감정의 방향이 엇갈린 사람들의 비극' 으로 보자면 꽤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즉, 평생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인간으로서는 한 번도 행복하지 못 했던 여주인공이, 정신적으로 긴 방황을 거치다가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드는 때에야 마침내 행복을 맛보게 되지만, 그 행복은 허무하리만큼 짧게 끝났다... 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본다면 볼만한 영화다.   

 

 

  ◎ 토쿠코(츠나요시)와 에몬노스케 

 

  여자 쇼군 '토쿠코(본명은 토쿠코, 쇼군으로서의 공식적인 이름은 츠나요시)' 와 오오쿠의 총책임자 '에몬노스케'  사이의 세세한 감정 묘사가 괜찮았다. (여자 쇼군인 토쿠코 역을 맡은 '칸노 미호' 는 2003년도판 TV 드라마 오오쿠에서는 쇼군의 부인으로 나왔음.) 

 

  에몬노스케는 원래, 토쿠코의 남편이 첩(이 영화에서는 쇼군이 여자니, 첩은 당연히 남자... ^^;;)을 견제할 생각으로 불러들인 첩 후보(!)다.

  훌륭한 학식, 날카로운 통찰력, 뛰어난 외모를 다 갖추었건만, 그만 잘못된 시대에 허울만 좋은 공가(귀족)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유료 대리부'(!) 비슷한 생활을 하며 살아야 했다.  차라리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차피 그렇게 살았으니 최고 권력자인 토쿠코를 유혹해서 부귀영화 누리는 것을 좋은 기회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 의지와 재주를 갖고 있는 이 청년은 자신의 처지에 심한 굴욕감을 느끼고 있고,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강한 열망에 불타고 있다.

  그래서 토쿠코의 첩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그 대신 토쿠코에게 오오쿠의 총책임자 직위를 받는데 성공한다.  아직 만난 적도 없는 토쿠코의 성격과 취향을 비상한 머리로 재빨리 간파해서, 토쿠코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과 배포에 대해 강한 인상을 주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토쿠코의 변덕스런 마음에 운명이 좌우되는 첩 자리보다는, 토쿠코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가신으로서 높은 지위를 얻는 게 훨씬 안정적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두 사람의 첫만남에서 에몬노스케는 토쿠코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다만, 그 냉철한 머리로 좀 더 길게 안정적으로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찾고 선택한 것이다.  또한 오오쿠에 들어오기 전 생계를 위해 여자들을 상대해야 했던 경험 때문에, 여자와 성적으로 얽히는 데 질린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토쿠코와 '남자와 여자' 의 관계가 되기 보다는 '주군과 가신' 의 관계로 남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토쿠코 또한 그런 에몬노스케의 마음을, 에몬노스케의 행동이나 눈빛 등에서 어느 정도는 눈치챘던 것 같다.

 

  토쿠코는 젊은 시절부터 나이들어서까지 많은 이 남자 저 남자와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 이유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최고 권력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절제함과 방탕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후계자를 바라는 절박감과 그런데도 후계자가 안 생기는 것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기도 하다.  토쿠코는 지독한 파더 콤플렉스에 빠져있기 때문에, 자신이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염원을 외면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했다.

  에몬노스케가 과거의 경험 때문에 여자들에게 질려있는 것처럼, 토쿠코 역시 여러 남자를 자기 침실로 끌어들이는 생활에 마음 속으로는 염증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스스로를 창녀와 다를 바 없다며 자괴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다만, 에몬노스케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으니, 에몬노스케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꿔보려 하는 의지가 강하지 못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신의 상황을 타개할 시도를 못 하고, 아버지나 그 밖의 주위 사람이 부추키는대로 되는대로 막 산다. 

 

  두 사람은 첫만남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철저히 주군과 가신으로 행동했다.

  무분별한 사생활로 사람들 입질에 오르는 토쿠코지만, 에몬노스케에 대해서만은, 에몬노스케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눈치 채고도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때까지 수많은 남자에게 그러했듯이 침실로 끌어들였거나 혹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으로 간주하고 처벌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몬노스케는 신을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다른 남자들처럼 권력과 부를 위해서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철저히 충성스런 신하로서의 본분을 지켰다.  그런 에몬노스케의 태도에, 무의식적으로 신뢰와 함께 편안함을 느꼈던 게 아닐까... (어찌 생각하면, 90년대 한국 드라마 '모래시계' 속 고현정이 이정재에게 느꼈을 것 같은 그런 감정? ^^) 

 

  두 사람은 노년기에 접어들어서야 겨우 이어진다.

  평생 동안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성을 상대했던 했던 두 사람이다.  그런데 초로의 나이가 되어서야 아무런 목적 없이 진심 하나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토쿠코가 에몬노스케에게 가려고 방울복도를 지나는 장면은 연출이 참 좋았다.  처음에는 고귀한 신분에 어울리게 평소에 그러했듯이 천천히 걷다가, 에몬노스케에게 좀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점점 속도를 올리고, 나중에는 화려한 예복을 벗어던진 채 달려간다.  자신을 짓눌렀던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예복을 벗고 달리는 모습은, 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상징인 듯하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행복은 너무 짧게 끝난다.  토쿠코는 평생 자신을 휘어잡았던 두 사람(아버지와 요시야스)에게서 겨우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권력자가 아닌 평범한 여자로 보아준 남자에게 달려갔지만...  지병이 있던 에몬노스케는 이미 조용히 운명한 뒤였다.

 

 

  ◎ 토쿠코(츠나요시)와 아버지

 

   토쿠코(츠나요시)와 그 아버지의 관계도 무척 흥미로웠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는,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된 일본 드라마 '하얀 거탑' 에서 주인공의 장인으로 나왔던 배우 '니시다 토시유키')

  아버지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  그리고 딸 또한 어머니를 일찍 잃고 아버지의 애정만으로 자란데다가, 특수한 환경의 사람이다 보니 주위에 사적으로 마음을 트고 지낼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다.  감정적인 부분만 놓고 보자면, 애정이 넘치는 이상적인 부녀 사이다.

  문제는,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 뒤틀려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딸에게 후계자 생산을 독려한다.  분명히 딸을 위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토쿠코가 아이를 낳지 못 하면 토쿠모의 이복자매가 낳은 딸(아버지에게는 연적이며 정적인 사람의 손녀)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딸이 아이를 낳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딸의 침실로 남자를 밀어넣는다.  정작 딸은 그런 생활 속에서, 자괴감과 절망감으로 시들어가고 있는데...

 

  아버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을 끌어낸다.

  오오쿠 안의 남자들로 하여금 딸의 눈에 들도록 외모를 꾸미고 학문을 익히게 독려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찌 보면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지만, 또 어찌 보면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식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자식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부모...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자식을 밀어붙여, 결국에는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부모...  사실 이런 부모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 나라에서도 저 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유형의 부모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아버지가 노인 특유의 어린 아이 같은 고집으로 똘똘 뭉치고 가벼운 치매까지 걸린 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그런데 저승길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은 나이가 되어서까지, 이제는 자신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딸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려 든다.  그런데 그 집요함에, 질리는 느낌과 함께 어쩐지 서글픈 느낌도 묻어난다.  토쿠코가 이미 폐경기를 맞아 임신이 불가능한데 아버지는 여전히 딸에게 임신 타령을 한다.  토쿠코는 그런 아버지에게 기막힘과 측은지심을 함께 느끼며, 광기 어린 태도로 웃어댄다. (이 장면에서 칸노 미호의 인기력 정말 짱~~!) 

 

  영화 막바지에 나오는 토쿠코와 아버지의 결별은 서글프면서도 후련하다.  

  토쿠코가 이복자매의 딸을 후계자로 선언하자, 예상했던대로 아버지는 그 결정에 반대한다.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를 대며 반대하는 게 아니다.  생떼 쓰듯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아버지의 행동이야말로 대여섯 살 먹은 아이 같은데, 마치 대여섯 살짜리 딸을 타이르듯 딸의 뺨을 감싸고 안 된다고 속삭이는 게 참 얄궂다.  하지만 아버지 말이라면 언제나 한 수 접어줬던 토쿠코가, 이 때는 아버지의 손을 떼어내며 결별을 선언한다. 

  영화상에서 토쿠코의 나이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전에 폐경기를 겪었다는 대사가 나온 것을 보면, 아버지와 결별하기로 했을 때 아무리 젊게 잡아도 40대 중반일 것이다.  딸은 그 나이가 되어서야, 아버지에게 항상 순종하는 착한 딸의 모습이 아닌 단호한 권력자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40을 훌쩍 넘은 나이에야 비로소 아버지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을 한 것이다.

 

 

  ◎ 토쿠코(츠나요시)와 요시야스

 

  '요시야스' 는 오오쿠의 실세로 토쿠코의 최측근이다.

  그런데 요시야스가 토쿠코에게 품은 감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요시야스는 어린 시절부터 상전으로 모신 토쿠코에게 충성심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위험한 수준의 독점욕도 간직하고 있다.  이 부분이 좀 아쉬운 게, 요시야스의 감정이 그저 동성애적 감정은 아닌 것 같은데(토쿠코를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 사이의 사연이 단편적으로 애매하게 나와서 뭐라고 확실히 말하기가 곤란하다.

  하여튼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는 요시야스라서, 토쿠코가 에몬노스케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 노골적으로 분노하고 질투심을 드러낸다.  도쿠코가 남자에게 별 감정 없는 상태라면야, 수십 명의 남자를 침실로 끌어들이던지 말던지 상관 없다.  하지만 육체관계가 없더라도,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각별한 감정을 각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심정인 것 같다.

  에몬노스케가 오오쿠 총책임자로 막 임명받았을 때 에몬노스케와 인사 겸 기싸움(!)을 벌이는데, 그 장면에서 요시야스가 뿜어내는 독기가 정말 엄청나다.  특히, 에몬노스케 앞에 버티고 서서 내려다보던 장면에서는, 무표정한 요시야스 얼굴에 햇볕이 비치며 얼굴에 음영이 진하게 드리우는데 무슨 공포영화 속 귀신처럼 무서워 보였다. ㅠ.ㅠ   

 

  그리고 요시야시는 토쿠코의 아버지와 내연의 관계로 나온다. 

  얼핏 생각하면, 자신이 모시는 상전의 아버지와 그런 관계라니 무척이나 막장(!)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요시야스와 토쿠코의 아버지 두 사람이 토쿠코에게 보이는 강한 집착을 보면, 두 사람의 그런 관계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두 사람 모두 토쿠코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며, 권력과 부를 잡기 위해서 도쿠코에게 달라붙은 게 아니라 도쿠코라는 사람 그 자체에게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같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이기도 함.  부와 권력을 위해서 권력자에게 달라붙은 것이냐, 권력자에게 달라붙다 보니 부와 권력이 생긴 것이냐 하는...)

  어쨌거나 두 사람 모두 적어도 '의도' 만 놓고 보면, 토쿠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착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이 내연의 관계로 동맹(!)이 되어 토쿠코를 영원히 자신들에게 묶어놓으려 한다.  참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도쿠코를 위한다며 평생을 바친 셈인데, 결국에는 두 사람이 함께 도쿠코의 인생을 제멋대로 휘어잡고 불행하게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시야스 역을 맡은 배우가, 알고 보니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에 나온  '오노 마치코' 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 Like Father, Like Son)(http://blog.daum.net/jha7791/15791118

  처음에는 이 배우를 못 알아봤다.  원래도 사람 얼굴 잘 기억 못 하는 편인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는 현대극이고 이 영화는 사극이다 보니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완전히 달라서 못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두 영화 속에서 맡은 배역의 인상이 180도 다르다 보니, 미처 알아보지 못 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에서는 온화하고 다정한 아내이자 엄마 역이었는데, '오오쿠~영원~' 에서는 차갑고 절도 있고 집착 강한 무서운 여인네로 나오다 보니... ^^;; 

  영화 후반부에서 토쿠코가 아직 쇼군이 되기 전 미혼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회상 속에 요시야스도 젊은 모습으로 나온다.  아직 순진무구한 소녀 같은 표정이 남아있던 요시야스의 얼굴을 보고서야, 요시야스 역을 맡은 배우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에서 주인공의 아내인 미도리 역을 맡은 배우임을 알았다.

 

 

  ◎ 도쿠가와 츠나요시 시대의 살생금지령

 

  영화 속에서 토쿠코의 아버지의 주장으로, 토쿠코가 살생금지령을 내리는 에피소드가 있다.

  즉,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만 토쿠코가 임신할 수 있을 거라면서, 동물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동물을 못 죽이면 당연히 고기도 못 먹겠지... ㅠ.ㅠ)  특히 토쿠코가 개띠라는 이유로, 개는 동물 중에서도 가장 두터운 보호를 받게 된다. (만일 토쿠코가 용띠였다면 상상의 동물이라 보호할래야 보호할 수 없을테니, 살생금지령이 안 내려졌을 수도... -.-;;)

  토쿠코는 그렇게 해야 임신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기막혀 하지만, 역시나 아버지의 주장을 거부하지 못 하고 살생금지령을 내린다.  그렇잖아도 정치는 내던진 채 남성편력만 한다고 인기가 없었던 토쿠코였는데, 이 황당한 명령 때문에 토쿠코의 인기는 아예 바닥을 치게 된다.

 

  이 살생금지령 관련 에피소드가, 전체적으로 어두운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코믹한 사연이다.

  개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공고가 나자, 사람들이 그 공고를 보며 놀라고 당황해서 웅성거린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자가 옆을 보더니 비명을 지른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며 그 여자가 쳐다보는 방향을 보더니, 모두들 기겁하며 급하게 양옆으로 물러선다.  

  마치 모세의 기적으로 갈라진 홍해처럼 사람들이 양옆으로 비켜선 가운데, 개 한 마리가 입에 신발 한 짝을 물고 유유히 걸어온다.  조금 전에 개를 해치면 사형에 처한다는 공고를 봤으니, 행여나 실수로 개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 처벌받을까봐 모두 겁을 먹고 개에게서 물러난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겁먹은 사람들의 표정과 너무나 태평스런 개의 표정이 대비되어, 정말 웃김. ^^)     

 

 

  그런데 영화 속 코믹요소 정도로 보였던 이 살생금지령이, 놀랍게도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 -0-;;

 

  토쿠코의 실제 모델인 에도 막부의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물론 역사 속 도쿠가와 츠나요시는 여자가 아니고 남자임.)가 이 명령을 내렸다.

  영화 속 토쿠코처럼, 도쿠가와 츠나요시도 늦은 나이까지 후계자가 없어서 고민을 했다.  그래서 살생을 금지하면 그 공덕으로 후사를 보게 될 거라는 미신적인 생각에서, 그런 황당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런 무리수까지 두고도, 결국에는 토쿠코처럼 후계자 없이 사망했음.)

 

  자신이 개띠라는 이유로 개는 특별히 다른 동물들보다 더 보호했는데, 그 정도가 지나쳤다.

  개를 일부러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개가 병에 걸려 죽는 것조차 개주인 탓으로 돌려 처벌했다.  그러자 처벌받을까봐 겁이 난 개주인들이 너도 나도 개를 내다버려서, 온거리가 유기견으로 가득찼다고 한다.  그래서 유기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에도(현재의 도쿄) 근처에 엄청난 크기의 개농장 비슷한 것을 만들어, 거기에서 밥을 주고 치료도 해주며 보살폈다.  그 비용이 엄청나서 막부 재정에 무리가 갈 정도였다고 한다.  람 중에서도 끼니 못 챙기는 이가 많았던 시절인데, 개팔자가 사람팔자보다 훨씬 나은 셈이다.

  그리고 도쿠가와 츠나요시가 죽기 전까지, 개나 그 밖의 동물들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처벌받거나 혹은 처벌이 두려워 도망친 사람이 1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이건 뭐... -.-;;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보호받는 동물의 종류가 점점 늘어났고, 동물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범위 역시 넓어졌다.

  처음에는 개, 고양이, 말, 소 등의 포유류만 보호했는데, 나중에는 닭이나 제비 같은 조류도 보호 대상이 되었다.  그 후에도 보호 대상이 추가되어서, 뱀, 쥐, 새우, 조개도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큰일 나게 되었다.  심지어 막부에서 어엿한 관직에 올라 근무하던 무사가 모기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귀양가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정말 말 다 했다.

  나중에는 동물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을 금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소에게 밭을 갈게 하고 말에게 짐을 나르게 하는 것 같은 행위조차 금지되었다. -.-;;  소와 말이 경운기나 화물차 같은 역할을 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그런 소와 말에게 일을 못 시키게 되었으니, 농업과 상업이 타격을 입어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도쿠가와 츠나요시는 세상을 뜨면서, 이 명령을 자기 사후에도 계속 시행하라 유언했다.

  하지만 도쿠가와 츠나요시가 세상을 뜨고 새로운 쇼군이 들어서자, 당연하게도 이 명령은 사문화되었다.  그리고 역시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새로운 쇼군의 조치를 두 손 들어 환영했다. 

 

 

  ◎ 한국 드라마 '정도전' 의 복습(?) - 맹자의 혁명론  

 

  작년 여름 내가 푹 빠져서 봤던 드라마 '정도전' 에서,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사상적 근거로 맹자의 한 부분이 나왔다.

  ☞ 정도전(1~23회) - 오래간만에 보는 수준 높은 정통사극(http://blog.daum.net/jha7791/15791078)

 

  정도전이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결심을 하며 읽은 맹자의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죽이고 나라를 세웠고, 무왕이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웠는데, 신하였던 자가 왕을 죽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아무리 임금이라도 인(仁)을 해치면 적(賊), 의(義)를 해치면 잔(殘), 잔적(殘賊)한 자는 임금이 아니다.'  그리고 소리내어 말한다.  "잔적한 임금을 죽이고 성이 다른 임금을 세우는 것, 그것은 패륜도 찬탈도 아니다."

  즉, 맹자에 의하면, 군주는 천명을 받아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인데, 만일 군주가 폭정을 펼치고 방탕한 길로 빠져들게 된다면 스스로 천명을 버린 것이니 더 이상 군주라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군주의 자격을 잃은 자는 보통 사람이나 다름이 없으니, 폭군을 죽이는 것은 군주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을 죽이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 폭군을 죽이고 새로운 군주를 옹립하는 것은 찬탈도 패륜도 아닌 정당한 행동이 된다.  

 

  그런데 맹자의 이 부분이, 남녀 주인공인 토쿠코와 에몬노스케의 첫만남에서 나온다.

  에몬노스케가 오오쿠의 남자들에게 맹자를 강의하고 있는데, 도쿠코가 갑자기 찾아온다.  토쿠코는 에몬노스케의 학식과 됨됨이를 떠볼 생각으로, 에몬노스케가 강의하던 맹자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본다.  그런데 그게 바로 위에 쓴 정도전에 나오는 부분이다. (영화 보다 말고 '앗, 저거 정도전에서 나온 거다!' 하며 흥분한... ^^)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에몬노스케는 태연한 표정으로 논리정연하게 대답을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잔뜩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쉰다.  그도 그럴 것이, 토쿠코는 쇼군으로서 정치를 살피는 일은 소홀히 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 에몬노스케의 대답은, 토쿠코처럼 쇼군답지 못 한 쇼군을 누군가가 죽이고 새로운 쇼군을 세우는 것은 죄가 아니라 정당한 행동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좋았고, 두 사람의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최고 권력자의 역린을 건드릴지 모르는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당당하게 대답하며 승부수를 던지는 에몬노스케나, 분노하거나 언짢아하기는커녕 오히려 에몬노스케의 학문 수준과 배포를 인정하고 오오쿠 총책임자로 임명한 도쿠코나, 모두 보통이 아니다.

   

 

  ◎ 기타 - 남녀 주인공을 부부로 이어준 영화

 

  이 영화에서 도쿠코 역을 맡은 '칸노 미호' 와 에몬노스케 역을 맡은 '사카이 마사토' 는 작년에 부부가 되었다...!

  이 영화를 함께 찍으며 연인이 되었다가 아예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사카이 마사토라는 배우는 이 영화로 처음 보아서 잘 모르겠지만, 칸노 미호의 경우 몇몇 드라마에서 보고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배우가 이 영화 제목(오오쿠~영원~)에 들어간 말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