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거인 - 삶의 무게에 짓눌려버린 17세 소년의 이야기

Lesley 2014. 12. 12. 00:01


  11월 말에 한국영화 '거인' 을 봤다.  
  근래 한국영화 중 이만한 것을 못 본 것 같다.  어두운 내용이라 어떤 사람들은 싫어할 것 같지만, 나에게는 내용도 등장인물들의 연기도 모두 만족스런 영화였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마치 내가 주인공의 절박한 상황에 처하기라도 한 듯 눈물 흘려가며 봤는데...

 

  그렇게 주인공의 심정을 절절히 느껴가며 영화를 본 것이 뜻밖의 부작용을 낳았다.

  '불특정다수의 사람이 드나드는 영화관'(즉, 그 무렵 유행하던 감기 옮기 딱인 장소)에서 눈물 닦느라 계속 손으로 눈을 비빈 게 화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이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그저 영화 보면서 눈물을 흘린 탓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잠을 자면서도 감은 눈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지더니만...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눈의 통증 + 온몸의 근육통 +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올 정도로 심하게 부어버린 목 + 줄줄 흐르는 콧물(밤에는 호흡곤란 일으킬 정도의 코막힘으로 변신~! ㅠ.ㅠ) + 시도 때도 없이 발작처럼 나오는 재채기' 의 복잡한 증세를 보이는 무.서.운. 감기에 걸린 상태였다. (영화 때문에 감기 걸리기는 난생 처음... -.-;;)

 

 

최근 들어 이만큼 인상적인 영화 포스터를 본 적이 없다...

 

 

  '거인' 의 포스터가 무척 인상적이다.

  작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러시안 소설' 의 포스터, 그리고 90년대 미국영화인 '흐르는 강물처럼' 의 포스터와 함께, 내가 뽑은 '멋진 포스터 TOP 3' 에 들어갈만한 포스터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도 그랬지만, 영화관에 가서 큼직한 크기로 보니 더욱 그랬다.

  포스터에 담긴 '세상에 거꾸로 내던져진 소년의 모습' 이 바로 이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 내용을 한 장의 포스터 속에 잘도 함축해 놓았다.  게다가 흑백으로 된 포스터라니...  저 소년이 사는 세상이 다채로운 빛깔로 가득찬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스산한 곳이라는 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사는 게 숨이 차요.' 라는 문구까지... (포스터계의 삼위일체를 이룬 포스터...!)

 

  그런데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가 황당하게도 '착각' 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김태용' 이다.  아주 당연하게, 현빈과 탕웨이 주연의 영화 '만추' 를 감독했던, 그리고 올해 탕웨이와 국제결혼한 일로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김태용 감독인 줄 알았다.  그래서 '김태용 감독의 신작이 나왔구나.  그럼 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지.' 했는데...  알고 보니 이 김태용 감독이 그 김태용 감독이 아니라고 한다. -.-;;  만추의 김태용 감독은 1969년생인데, 거인의 김태용 감독은 2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1987년생이다.
  내가 생각했던 감독이 아니라고 해서 안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보고 온 이가 괜찮은 영화라고 했고, 또 무엇보다 저 포스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착각으로 이 영화에 관심 갖게 된 것도 다 인연이다.' 하는 심정으로 봤다. ^^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세상 모든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절대적이고 끈끈한 것으로 부모-자식 관계를 든다. 

  특히나 '내리사랑' 이란 말처럼,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 보다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이 훨씬 크고 깊다고 여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 그런 통념이 반드시 통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자식 양육에 책임감을 느끼는 부모는 어디까지나 '대다수의 부모' 일 뿐 '모든 부모' 는 아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몇 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 '케빈에 대하여' 와 묘하게 겹친다. ☞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http://blog.daum.net/jha7791/15790921)  '케빈에 대하여' 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자식을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짐스럽게 생각하는 부모를 소재로 하고 있다.  다만, '케빈에 대하여' 가 주로 자식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 하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전개되는데 비해, '거인' 은 무책임한 아버지 때문에 삭막한 삶을 사는 자식의 입장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다르다.

 

  주인공 '영재(최우식)' 는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일반적으로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혹은 부모가 있어도 어떤 사정이 있어서 위탁가정에 맡긴 경우다.  하지만 영재는 특이하게도 스스로 집을 나와 위탁가정에 들어왔다.  '책임감도 없고 능력도 없는 아버지' 와 '책임감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어머니' 와 사는 게 너무 싫어서 제발로 위탁가정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영재의 나이가 차서 조만간 위탁가정을 나가야 한다.  하지만 영재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서 다소 비굴하게 굴면서까지 수양부모의 비위를 맞춘다.  그러나 영재가 아무리 눈치를 보며 애써도, 수양아버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제 그만 나가라는 식으로 영재를 압박한다.  엎친 데 덮친다고, 영재의 아버지는 빈말로라도 '이제 그만 집에 들어와 함께 살자.  식구끼리 같이 살아야지.' 라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영재의 동생마저 그 위탁가정에 떠맡길 궁리를 한다. -.-;;

 

  영재는 수양부모와 그 지역 성당의 신부에게 장차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영재가 신부가 되려는 이유는 결코 신앙심이 두터워서가 아니다.  그 위탁가정이 성당에서 보조를 받고 있고 수양부모도 천주교 신자다.  그러니 자신이 신부 지망생이라고 하면, 비록 나이가 찼어도 모두가 자신을 특별히 여기며 위탁가정에 좀 더 머물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17세의 영재가 생각하기에는, 자기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만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저는 신부가 되고 싶어요.' 라는 말이다. 

  다행히 그 작전(?)이 수양어머니나 신부에게는 어느 정도 통한다.  하지만 수양아버지는 다르다.  수양아버지는 남보다 통찰력이 있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가 그런 꼼수(!)를 많이 쓰며 살아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는 식으로 알아챈 건지, 하여튼 영재의 속셈을 꿰뚫어 본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재 보고 위탁가정에서 나가라는 뜻을 비춘다.  

 

 

  가정 -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오히려 사라질까 무서운 애증의 대상

 

  그런데 다른 관객들에게는 어땠는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영재가 자기 집에 갖고 있는 감정이 약간의 반전으로 다가왔다.

 

  포털에 소개된 이 영화의 시놉시스와 영화 초반부의 상황만 보면...

  영재는 다른 가정처럼 평범한 행복과 안식을 찾을 수 없는 집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다시는 안 돌아올 생각으로 위탁가정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영재는 자기 발로 위탁가정을 찾아갔을 정도로 집을 지긋지긋해 하면서, 모순되게도 그 지겨운 집이 아예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버지가 영재의 동생까지 위탁가정으로 밀어넣으려 한 일로, 영재가 무의식 속에 눌러놓았던 그 두려움이 터져나온다. 

   우선, 그렇잖아도 위탁가정에서 눈치를 보며 사는 영재에게, 동생까지 떠맡게 될 지 모른다는 상황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부모가 세상을 뜬 것도 아니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건만, 어째서 영재가 동생까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사실은 영재 스스로도 아직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17살짜리 아이일 뿐인데 말이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든 영재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숨이 턱턱 막힐 노릇이다.

  그리고 동생마저 집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이제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심까지 느끼게 된다.  사실, 이것이 영재를 지독한 절망감에 빠지게 한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영재가 어찌어찌 하여 위탁가정에서 더 살 수 있게 된들, 영원히 그 곳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언젠가는 위탁가정을 나가야 하고, 그 때 갈 곳이라고는 집 밖에 없다. (비록 엉망진창인 집일지라도...)  그런데 그 엉망진창인 집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동생이 그 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동생마저 집을 나오게 되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지쳐버린 어머니가, 아무런 미련 없이 이혼할 게 뻔하다.  그러면 영재의 집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참 모순된 감정이다.

  평범하지 못 한 집에 질려서 뛰쳐나왔는데, 그 집이 사라지는 게 너무나 무섭다니...  하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모두, 얼핏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그런 양가적인 감정을 종종 느끼지 않던가...  특히 혈연으로 이어진 부모-자식 관계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서로를 싫어해도 그 관계를 부정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관계이기에, 서로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기 쉬운 듯하다.     

 

 

  영재와 범태 - 현실적인 태도(혹은 비굴한 태도) VS. 무모한 태도(혹은 솔직한 태도) 

 

  '범태' 는 위탁가정에서 영재와 룸메이트로 지내고 있는 동갑내기다.

  범태 아버지도 아들에게 부모 노릇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영재 아버지처럼 '막 나가는 부모' 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비록 상황이 안 좋아 아들을 위탁가정에 맡기기는 했지만 아버지도 여건만 된다면 범태를 데려가고 싶어 한다.  범태 역시 하루 빨리 위탁가정을 나가 아버지와 지내기를 바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재네 집처럼 부모-자식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방에서 몇 년이나 함께 산 영재와 범태가 수양부모에게 보이는 태도는 180도 다르다.

  그렇게 두 아이의 태도가 갈리는 것은, '돌아갈 곳' 이 있느냐 아니냐(혹은 '돌아갈 곳' 이 있다고 믿느냐 아니냐)는 차이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지금 머무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은, 좋은 싫든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 계속 있어야 한다.  

  '돌아갈 곳'(가정)이 조만간 산산조각 나게 생긴 영재는 필사적으로 수양부모에게 매달린다.  비굴해 보일 정도로 수양부모 눈치를 보며 가사를 돕고, 수양부모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자기보다 어린 다른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훈계(물론 수양부모의 뜻에 합치하는 훈계)를 하며 단속한다.   

  하지만 범태는 '조만간 돌아갈 곳' 을 두고 있어서, 수양부모의 이중적인 태도에 영재보다 솔직히 반응한다.  비록 대놓고 반항하지는 않지만, 수양부모가 신부 앞에서는 수양자녀들을 끔찍히 위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귀찮아 하는 것에 대해 '재수없다' 라는 속마음을 은연중 드러낸다.  그래서 수양부모와 얼굴 마주치는 것을 일부러 피한다든지, 성의있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알게 모르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게 수양부모에게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영재에게도, 어느 정도 경멸감을 내비친다.  영재는 그런 범태에게 기분 나쁘다는 티를 내지 못 한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 처지나 태도가 참 구차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변화무쌍한 법이라, 범태의 가출을 계기로 두 사람의 위치랄까 관계랄까 하는 것이 몇 번이나 뒤집히게 된다. 

 

  첫 번째 뒤집힘은, 범태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하게 되자 울적한 마음에 사고를 치고 위탁가정을 떠나면서 벌어진다.

  영재는 범태가 가출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말리기도 하고, 결국 가출해버린 범태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음성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방을 썼던 친구를 걱정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저 범태가 사라지면 위탁가정 안에서 자신의 처신이 더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

  그리고 막상 범태가 냉엄한 현실에 부딪쳐 위탁가정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 때는, 영재 쪽에서 차갑게 선을 그어 버린다.  범태가 막 가출했을 때만 해도 제발 돌아오라고 사정했던 영재다.  하지만 이제는 수양부모가 범태를 완전히 버렸음을 알고, 자기마저 수양부모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범태에게 등을 돌린다.

  그것도 '미안한데, 너를 도와줄 힘이 없다.' 식의 '예의 바른 냉정함'(?)이 아니다.  영재의 태도에서는 그런 냉정함을 넘어서서 우월감까지 풍겨나온다.  말투나 표정에서 '그 동안 네가 나를 무시했지만, 네가 아직 세상을 몰라 그 동안 그렇게 시건방지게 굴었던 거지.  봐라, 이제 너는 이 위탁가정에 머물 수 없는 꼴이 되었잖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머물고 있거든?' 하는 속마음이 노골적으로 풍겨나온다. 

 

  사실, 영재는 남의 처지를 걱정할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범태 입장에서 보자면, 오랜 시간 룸메이트로 지냈는데도 최소한의 의리도 안 보이는 영재의 태도가 너무 서운하고 괘씸하다.  그러나 영재 입장에서 보자면, 당장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 걱정이나 할 때가 아니다.  지금 영재에게 최고 지상과제란, 어떻게든 위탁가정에서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아이의 처지를 봤을 때, 영재가 좀 더 현실적으로 현명하게 행동한 것이 맞다.  범태가 영재의 비굴한 태도를 아무리 비난하고 수양부모에게도 싫은 티를 내봤자, 어차피 수양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다.  이꼴 저꼴 다 보기 싫다며 위탁가정을 뛰쳐나가더니, 결국에는 살길이 막막해져서 제발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아이치고 지나치게 머리 굴리는 영재의 모습이 싫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일 내가 영재와 범태를 만나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틀림없이 범태를 선택할 것이다.  범태가 비록 어른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인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겉과 속이 다른 아이는 아니니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영재 같은 아이는, 눈치 빠르고 싹싹한 점 때문에 자잘하게 신경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영재에게 깊이 감정이입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생존본능만 잔뜩 발달한 아이를 가까이 두는 것은 꺼림칙하다.  내가 자신의 생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어떤 식으로 돌변해버릴지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재가 운동화를 훔치는 것을 범태가 보게 되면서, 두 아이 관계가 두 번째로 뒤집어진다.    

  과거에 운동화 절도범으로 몰렸던 범태로서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헛웃음이 나온다.  어떻게든 위탁가정으로 돌아가려 하는 자신을, 영재가 노골적으로 귀찮아 했던 것만으로도 배신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이 운동화 도둑으로 몰리는 동안 진범인 영재는 옆에서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영재 쪽에서 범태를 붙들고 눈물로 사정을 하며 돈까지 찔러준다.  그 장면에서, 영재가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가서 앞으로 두고 두고 저 일로 범태에게 끌려다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어렵게 수양어머니와 신부의 환심을 샀던 영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범태가 입을 열어 사실을 폭로하면 자신이 위탁가정에 계속 머물 수 가능성이 다 날아가게 생겼으니,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거꾸로 영재가 범재의 범죄행각을 목격하면서, 두 아이의 관계가 세 번째로 뒤집힌다.

  범태에게 협박당해 심란해하던 영재는 우연히, 범태가 위탁가정의 다른 아이들을 꾀어내어 자동차 털이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자 영재는 경찰에 신고전화를 하고, 범태는 경찰에게 체포되어 끌려간다.  영재에게는 커다란 고민거리 하나 해치우게 된 천우신조의 일이다.  물론 영재도 범태를 자기 손으로 경찰에 넘겼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눈물 어린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면, 영재 역시 후련하다는 감정보다는 죄책감을 더 많이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경찰에 신고할 때 영재가 썼던 휴대폰이 아이폰(!)이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웬 아이폰 하며 황당해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꼭 비현실적이라고 볼 일은 아니다.  영재가 훔쳐냈던 운동화(위탁가정에 기부물품으로 들어온 것)도 전부 잘 알려진 상표의 제품들이다.  또, 영재가 자신의 위탁가정 생활에 호기심을 나타내는 동생에게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그게 다 부자들이 쓰다가 버린 것들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니 그 아이폰이 반드시 새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영재가 한 말처럼 '부자들이 쓰다가 버린' 중고품일 수도 있다. 

 

 

  영재와 윤미 - 가난한데다 삭막하기까지 한 가정 VS. 가난하지만 화기애애한 가정

 

  신부가 영재에게 소개해 준 대학생 누나 '윤미' 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간 수재다.

  윤미가 하는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윤미의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의 모습이나 식당이 위치한 곳을 봐도 그렇고, 윤미네 살림은 실제로도 넉넉하지 못 한 듯하다.  그래서 신부는, 윤미를 롤모델 삼아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신부가 되라는 뜻으로, 윤미를 영재에게 소개해준 것이다.  

 

  하지만 윤미의 환경과 영재의 환경은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윤미 어머니는 딸에게 고운말보다는 비속어를 더 많이 쏟아붓는 사람이지만, 험한 입과는 다르게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  장난으로 시비를 거는 척하는 딸의 밥그릇에 고기를 얹어주는 태도에서도, 딸과 나란히 앉아 야채를 다듬으며 보이는 환한 웃음에서도, 이 가정이 비록 가난하기는 해도 모녀간의 사이는 돈독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영재는 윤미를 찾아 갔다가(아마도 윤미에게만은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듯...), 차마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한다.  그저, 자신과 자기 부모와는 너무 다른 윤미 모녀의 모습을 식당 밖에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자해 + 인질극 소동 - 너무 작위적이고 신파스럽다고?

 

  지인 중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있는데, 끝부분에서 영재가 일으키는 '자해+인질극' 소동이 이 영화의 약점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용이 사실적이라고 느꼈고, 또 자신이라도 충분히 영재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공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잘 나가던 영화가 그 부분에서 갑자기 일일드라마처럼 작위적이고 신파조로 흘러서, 당황했다는 것이다.  자해와 인질극 모두 민감하고 자극적인 사건인데, 그 두 가지 사건이 함께 벌어져서 그렇게 느낀 듯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상황이 갑자기 급박하고 험악하게 변한 게 충분히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배우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숨긴 채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차라리 배우라면 연기가 원래 그 사람의 일이고, 또 일이 끝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훨씬 낫다.  하지만 영재는 그냥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항상 수양부모나 신부의 눈치를 보며 착한 아이의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쌓이는대로, 원했던 결과(위탁가정에서 계속 머무르기)가 나타나기나 한다면 그래도 좀 낫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아버지란 사람이, 영재가 피를 말려가며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왔던 탑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결국, 영재는 동병상련의 처지인 룸메이트를 팔아가면서까지 겨우 지켰던 가면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스스로 내던지고 만다.

  아버지에게 악을 쓰고,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고,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뻔했던 윤미를 인질로 삼아 칼을 들이댄다.  하지만 영재를 그런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아버지는 영재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영재 탓만 한다.  그리고 수양아버지는 '그러면 그렇지.  내가 말했잖아, 너 같은 놈이 꼭 뒤통수 친다고.' 하는 듯한 냉랭한 눈빛을 던질 뿐이다. 

  그렇잖아도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영재 인생에 털끝만큼도 도움이 안 되었던 아버지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아버지란 사람이 정말 영재 인생 최악의 수렁인 것처럼 보였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더 빠져들게 되는 수렁' 말이다.  문득, 올해 초에 봤던 중국드라마 '후궁견환전' 의 안릉용과 그 아버지의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흔히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니 뭐니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한 상황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자기만 죽어라 애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주위에 발목 잡아채는 사람이 없어야지...

 

 

  최우식 - 앞날이 기대되는 젊은 배우

 

  영재 역을 맡았던 배우는 '최우식' 이다.

  1990년 출생자라니, 이미 20대 중반에 들어선 배우다.  하지만 요즘 젊은 남자배우치고는 몸이 왜소한 편인데다가 얼굴도 워낙 앳되어 보여서, 영화 속 모습처럼 아직 고등학생인 아역배우인 줄 알았다.

  어려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긴 속눈썹인 듯하다.  내가 원래 다른 사람 외모에 무덤덤한 편인데, 그런 내 눈에도 최우식의 속눈썹이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훨씬 길다는 것이 들어왔다.  영재의 불안정한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그 긴 속눈썹을 불안하게 깜빡이는 장면이 자주 나와서, 배우가 실제 나이보다 더 어리고 연약해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최우식을 신인인 줄 알고, 경험도 없는 배우가 연기력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지난 몇 년 간 드라마에서 꽤 경험을 쌓은 배우다.  그리고 처음 보는 배우라고 생각했건만, 사실은 이미 드라마 두 편을 통해 본 적이 있는 배우다. (이 안면인식장애를 어찌하리요... ㅠ.ㅠ)
  우선 '뿌리 깊은 나무' 에서 소년 세종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겼던, 훗날 밀본의 우두머리가 되는 소년 정기준이 바로 최우식이었다.  그리고 '옥탑방 왕세자' 에서 졸지에 조선시대에서 21세기로 뚝 떨어진 세자를 모시는 내관으로 나왔던 이도 최우식이었다.  그나마 '옥탑방 왕세자' 속 내관의 모습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 맞다!  정말 그 배우구나!' 하게 된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 에서 어린 세종에게 '너는 아무 것도 못 해!' 했던 그 시건방진 녀석과 이 영화 속 심약한 영재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

 

  그리고 어째서인지, 영화를 볼 때에 최우식이 '김창환' 과 무척 비슷해 보였다.
  김창환은, 영화 '1999, 면회' 에서 IMF 시대를 맞아 집안이 어려워진 탓에 일찌감치 군복무를 시작한 '민욱' 역할로 나왔다.  드라마 '학교 2013' 에서는 학습장애를 앓고 있는 '영우' 역할을 맡기도 했고...

  나중에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 비교해 보니, 두 사람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에는 주인공이 김창환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최우식이 맡은 영재 역할이나 김창환이 맡았던 역할들이 모두 '10대 특유의 발랄함과 무모함이 범벅된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 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에 짓눌린 소극적인 캐릭터' 였기 때문일까?

 

 

  기타

 

  영화의 내용에는 별 불만이 없지만, 영화 제목이 어째서 '거인' 인지는 모르겠다.

  영화 포스터 한켠에는 '아픈 만큼 큰다 巨人' 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서 '거인' 이란 말은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속 그런 거인이 아님. ^^;;)  그 문구만 보면, 영재의 사연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고, 그 성장통을 겪으며 영재가 '보다 성숙한 인물'(거인)이 된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런 의미의 '거인' 이란 제목에 공감이 가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영화에 전체적으로 깔린 음울한 분위기를 봐도 그렇고, 하다 못해 마지막 부분에서 뭔가 따뜻한 미래를 암시하는 내용이 슬쩍 나오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이 영화가 더 큰 인물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보다는, 부모 잘못 만난 죄로 인생이 단단히 꼬여버린 아이가 앞으로도 암울하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즉, 영재의 인생은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꿈도 희망도 없다는 내용 같다. ㅠ.ㅠ 

 

  이 영화는 주로 인천의 차이나타운에서 찍은 모양이다.

  영화 속 지나가는 버스 겉면에 붙은 정류장 이름 중에 인천 지명이 나오기에, 인천을 배경으로 촬영했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영화를 계속해서 보니, 인천 중에서도 차이나타운 쪽이라는 게 보였다.  특히 내동교회를 봤을 때 속으로 '역시 차이나타운 맞네!' 했다. ^^  개발하고는 거리가 먼 옛스런 모습을 많이 간직한 곳이라,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찍기 적합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