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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펀 블랙(Orphan Black) - 독특한 1인 다역 드라마

Lesley 2014. 11. 25. 00:01

 

  지난 6월이었던가, 7월이었던가, 지인의 소개로 오펀 블랙(Orphan Black)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시즌1이 방영되었고 올해 시즌2가 방영되었다는데, 나는 지난 여름에야 그런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이 드라마를 소개해 준 지인도,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 드라마를 본 친구도, 모두 이 드라마가 독특하고 재미있다고 칭찬했다.  특히, 주인공 1인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아 드라마를 끌어가는 것이 대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마침 바쁘기도 했고, 또 클론(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니 다소 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장독 속에 김치 꼭꼭 넣어두는 식으로 묵히고 또 묵혀뒀다가, 지난 9월 하순에야 겨우 보게 되었다.  한 시즌 당 10회 밖에 안 되어 가볍게 시간이나 때우자는 식으로 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 과연 듣던대로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캐나다 배우 타티아나 매슬래니(Tatiana Maslany)가 1인 다역을 맡고 있음.

(사진 출처 : 구글에 떠다디는 것을 그냥 퍼왔음. -.-;;)

 

 

 

  ◎ 줄거리

 

  드라마의 줄거리 중 앞부분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새라(타티아나 매슬래니)는 한 마디로 말해서, 그냥 되는대로 사는 펑크족이다. ^^;;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추측해 보건대, 원래 고아 출신으로 위탁가정에서 자랐다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냈던 것 같다.  20살 전후의 어린 나이에 딸을 낳고 미혼모가 되었는데, 그 딸을 무척 사랑하기는 하지만 딸을 안정적으로 키울만한 책임감이나 신중함은 부족한 편이다.  마약판매상 똘마니 역할이나 하는 남자친구를 사귀는가 하면, 딸을 자신의 수양어머니에게 맡긴 채 1년 가까이 찾아가지도 않고 연락도 안 하는 행보를 보였으니...

 

  그런데 딸을 만나러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오던 날, 새라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자살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별안간 자신과 똑같은 사람과 마주치고 그 사람이 바로 자기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기까지 했으니, 충격으로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일텐데...  우리의 주인공 새라는 아주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라서, 그 와중에도 자살한 여자의 가방을 훔친다. -.-;;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죽은 여자의 집까지 찾아가는 대범한 짓을 저지른다.  마침 새라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친구에게서 벗어나 딸을 데리고 도망칠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원래 앞뒤 생각 안 하고 행동부터 하는 무모한 성품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죽은 여자의 신분을 도용해 그 여자가 은행에 예금해 둔 거액의 돈을 빼돌리려 한다.  

  그러데 일이 계속 꼬이면서 돈을 갖고 떠나지 못 하고 자살한 여자, 즉 베스(이 배역도 타티아나 매슬래니...)의 행세를 하게 된다.  전과자이며 떠돌이인 세라가 경찰관인 베스 행세를 하면서 좌충우돌 하는 부분은, 이 드라마의 코믹 요소 중 하나다. ^^

 

  그런데 새라가 베스의 삶을 살면서, 점점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다.  

  별안간 베스와 똑같이 생긴(당연히 새라와도 똑같이 생긴) 독일 여자가 접근한다.  그 독일 여자는 새라를 베스라고 생각하며, 새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새라의 눈앞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다.  이제 새라는 거액의 돈을 챙기기는커녕, 까딱하면 그 독일 여자의 살인범으로 몰릴 지경이 된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베스가 생전에 연락을 취했던 두 여자와 연락을 취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들 모두 같은 유전자로 태어난 클론이었다...!  그들은 최근까지 자신들이 클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 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총에 맞아 죽은 독일 여자를 통해, 유럽 각지에 살고 있던 클론들이 누군가에게 줄줄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동시에 아직 무사한 클론 중 일부에게서 불치병이 발생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베스는 경찰관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이용해, 자신들을 노리는 범인을 추적하는데 큰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베스가 갑자기 자살을 하면서, 이 클론 클럽(?)에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

  결국, 베스의 돈을 훔칠 생각이나 하던 새라가 베스의 임무를 떠맡게 된다.  이 때부터 새라는 베스와 연락하던 두 사람, 즉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진화생물학도 코지마(물론, 타티아나 매슬래니 ^^), 남편과 두 남매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전업주부 앨리슨(당연히, 타티아나 매슬래니!)과 함께 음모를 파헤치게 된다.

 

  새라, 코지마, 앨리슨 이 세 사람이 타티아나 매슬래니가 맡은 9인(!)의 역할 중 가장 비중이 높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같은 유전자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외모는 똑같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성격은 완전 딴판이다.  그러면서도 세 사람 모두 어느 정도는 무모한 면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그렇게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세 사람이 운명 공동체로 묶여 좌충우돌하는 부분이 꽤 볼만하다.

 

  특히, 전업주부 앨리슨의 캐릭터가 제일 웃기다. (이 드라마 최고의 코믹 요소...! ^^)

  새라와 코지마 사이에는 '막 사는 펑크족' 과 '장래가 촉망되는 우수한 과학자' 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의외로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두 사람 모두 '과연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의문을 품고 있고, 서로에 대해서나 다른 클론들에 대해서나 자매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든 서로를 도우려고 한다.

  그에 비해 앨리슨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가정을 반드시 지키겠다' 는 일념 하나로, 클론 모두가 아닌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시하며, 다른 클론들에게 날카로운 반응과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그런 히스테릭하고 이기적인 캐릭터가 의외로 온갖 웃음을 선사한다.  꽤 진지한 장면에서도 앨리슨만 등장하면, 갑자기 드라마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심지어, 앨리슨이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을 방조한다든지 실수로 남편이 죽인 시체를 유기하는 심각한 장면에서조차 웃음이 터져나온다.  앨리슨이 등장하는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이 드라마 장르를 SF 스릴러가 아니라 코믹 드라마라고 해도 될 정도다. 

 

  어쨌거나, 이 세 사람이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이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클론들을 노리는 조직이 달랑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고, 그 조직들 상호간에 혹은 조직 내부에서 이합집산과 배신과 음모가 벌어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세 사람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이런저런 음모에 얽혀있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도대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 장르와 정체성이 다소 애매한 드라마

 

  위에서 설명한 줄거리로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의 장르는 일단 'SF 스릴러' 다.

  그냥 SF 스릴러라고 하지 안고, 굳이 앞에 '일단' 이라는 꼬리를 다는 이유는 장르가 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클론(복제인간)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SF가 맞는데, 시원하게 SF라고 단언하기에는 과학적인 요소가 너무 적게 나온다.  그리고 주인공과 그 '클론 자매'(?)들이 자신들 출생에 얽힌 비밀 및 자신들을 노리는 무리들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스릴러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세세히 뜯어보면, 스릴러치고 구멍이 숭숭 뚫린 편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정체성이랄까, 주제랄까, 그런 게 왔다갔다 하는 편이다.

  한 시즌 당 10회 밖에 안 되고 한 회 당 겨우 40분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인데, 시즌2에 들어서서 이야기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마 시청자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시즌1이 인기를 끌자, 앞으로 계속 제작하려는 생각에서 시즌2부터 스케일을 넓혔기 때문인 듯하다.  문제는 위에 이미 썼듯이, SF에 필요한 과학적인 요소라든지 스릴러에 필요한 촘촘한 구성이 약한 상태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투입하며 이야기 범위를 넓히려니, 내용이 좀 산만해지고 있다.  

 

 

 

  ◎ 모든 단점을 덮어버리는, 타니아나 매슬래니의 1인 다역 연기

 

  그렇게 몇 가지 단점을 지닌 드라마지만,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드라마의 주역이면서, 동시에 몇 개나 되는 조역도 맡고 있는 타티아나 매슬래니(Tatiana Maslany)이다.  1985년생이라는 이 캐나다 출신 여배우는, 캐나다 현지에서는 어떨런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생소한 얼굴이다.  하지만 9살에 뮤지컬 배우로 시작한 연기 공력(!)을 이 드라마에서 마음껏 발휘하는 중이다.

  

  사실, 1인 다역을 맡은 배우가 타티아나 매슬래니 혼자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1인 다역을 종종 접한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클론으로, 혹은 쌍둥이로, 혹은 자유자재로 변신 가능한 초능력자나 기계인간으로, 심지어 시간여행을 거쳐 다른 시간대에서 온 동일인물이이 동시간대에 함께 있는 모습으로, 우리는 1인 다역에 이미 익숙하다. 

  그런데도 타티아나 매슬래니의 연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드라마 속 1인 다역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1인 다역은 1인 2역이 가장 일반적이다.  하지만 타니아나 매슬래니는 오펀블랙에서 무려 1인 9역으로 나온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중 중요한 비중을 갖고 지속적으로 나오는 역할은 주인공 새라를 포함해서 5명이라는 점이다.  (물론, 5명 역할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나머지는 한두 회만 출연하는 단발성(?) 역할이다.

 

 

다음넷에 뜨는 오펀블랙 츨연진 목록을 보면 참 재미있음.

등장인물의 이름은 제각각인데, 그 여러 배역을 맡은 배우 이름은 오직 하나... ^^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 1인 다역은 단기적이다.

  그러나 오펀블랙에서는 타티아나 매슬래니 혼자서 5명분의 연기를 하는 일이 몇 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즌1 및 시즌2에서 계속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드라마에서는 주연 배우가 차지하는 출연 비중이 30~40% 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타티아나 매슬래니가 혼자서 주역에 조역에 몽땅 맡아 북 치고 장구 쳐야 하기 때문에 출연 비중이 70%가 넘어간다. ^^;;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새라, 코지마, 앨리슨 세 사람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있다.

  드라마상에서는 겨우 10분도 안 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 한 장면을 위해 무려 17시간(!)이나 촬영을 했다고 한다!  유투브에 뜬 메이킹 필름을 봤는데, 타티아나 매슬래니가 세 사람 역할을 차례로 한 번씩 맡아서 대역과 함께 연기를 한다.  그 후에 그 세 사람의 역할을 대역 없이 허공에 대고 혼자서 다시 연기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편집해서 겨우 10분 남짓한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성격도 제각각, 생활환경이나 옷차림에 대한 취향도 제각각, 발음이나 말투도 제각각인 세 사람을 동시에 연기하는 일은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17시간이나 이 사람 역할을 했다가, 저 사람 역할을 했다가...  만일 나처럼 정신력 약한 사람이 오펀블랙의 주인공이 된다면, 연기하다가 다중인격장애 같은 것을 앓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타티아나 매슬래니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의 애매모호한 성격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좀 갈릴 듯하다.

  등장인물들의 정신세계가 다소 4차원적이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즉, 미국 드라마 '덱스터(Dexter)' 나  '라이프(Life)' 류의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던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도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 드라마를 강.력.히. 추.천.하.겠.다...!

 

 

 

  ◎ 기타

 

  시즌2에서 한국 관련한 내용이 잠깐 나오는데, 제작진이 한국과 대만을 잘 구별 못 하는 것 같다. -.-;;

 

  문제의 장면은, 악역인 '베스 차일즈'(이 사람도 타티아나 매슬래니가 연기함. ^^)가 해외업체 사람들과 만나는 부분이다.

  베스를 만나 중요한 업무 처리를 하려고, 정장을 차려입은 동양 남자들이 줄줄이 회사로 온다. 그런데 그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중산복(대만에서는 '중산복' 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인민복', 한국에서는 보통 '공산당옷' 이나 '김정일옷' 으로 알려진 바로 그 옷. -.-;;)을 입고 있다.  그 중산복 때문에, 나는 그 동양 남자들이 대만 업체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그 전에 베스가 한국에서 온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라는 말을 하면서,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산복을 본 순간, 자막을 제작한 사람이 한국과 대만을 실수로 바꿔 적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베스와 그 동양 남자들이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 허리를 굽혀서 인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미국인인 베스는 상대방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동양식으로 인사한 것임.)  '대만이나 중국에는 요즘 저렇게 허리 굽혀서 인사 안 하는데...' 라고 의아해하며 봤는데...  통역을 맡은 사람이 베스의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장면이 나온다...! -.-;;  즉, 그 중산복 입은 할아버지가 포함된 일행은 한국 업체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이 중산복이라니, 이거야 원...

  하긴 한국 사람들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 하기는 마찬가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사실, 우리나라 드라마 '기황후' 에서 몽골족 황제가 한족의 옷차림 및 머리모양을 하고 등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저 정도는 양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기는 함. -.-;;)  그래도 우리나라 관련된 장면의 고증이 황당하니,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헛웃음도 나온다.

 

 

  그리고, 새라의 수양어머니 역할로 나오는 배우가 어쩐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튜더스(The Tudors)' 에서 헨리 8세의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 왕비(아라곤의 캐서린)로 나왔던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마리아 도일 케네디(Maria Doyle Kennedy)' 다.  배우의 인상도 원래 좀 강한 편인데, 이 드라마에서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은근히 비밀과 카리스마에 싸인 역할을 맡았다.  시즌2의 마지막 장면을 보니 시즌3가 이 사람의 정체에 따라 흘러갈 것 같던데, 시즌3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