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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의 마중(歸來 / Coming Home) - 문화대혁명의 광기에 휩쓸린 부부애

Lesley 2014. 10. 17. 00:01

 

  지난 주말, 기분이 꿀꿀하다는 친구의 번개요청으로 갑자기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본 영화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한 '5일의 마중(중국 원제는 歸來)' 이다.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여름이나 겨울에 봤더라면 잔잔하면서도 먹먹한 감정을 좀 옅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감이 주홍색으로 익어가고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해가는 지금 보기에 딱 맞는 영화다. 

 

 

 

두 포스터에 각각 씌여있는 문장이 이 영화의 줄거리를 잘 함축해 놓았음.

'그대,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요...' / '옆에 있는 나를 그녀가 기다립니다'

 

 

  장예모(張藝謀) 감독에 공리(鞏俐)진도명(陳道明) 같은 연기력 출중한 배우들까지 더해진 조합이라면, 그 장르나 내용이 뭐든 간에 믿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시나, 이 3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시대에 휩쓸려 상처투성이가 된 한 부부의 이야기를, 이 영화는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놓는다. 

 

 

 

1. 5일의 마중 - 원제와는 다르지만 뜻은 잘 살린 한국어 제목

 

 

  이 영화의 원제는 '(집으로) 돌아오다' 라는 뜻의 '귀래(歸來)' 인데, 한국에서는 '5일의 마중'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이 '5일의 마중' 이란 제목이 나를 헷갈리게 했다.  '5일 동안 (남편을) 마중나간다' 는 뜻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5일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며 벌어지는 사연을 담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매월 5일에 (남편을) 마중나간다' 는 뜻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수입사가 영화 제목을 엉터리로 지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적절하게 붙인 제목이다.  영화의 큰 줄거리인 '아내가 오랜 세월 동안 매월 5일만 되면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안고 기차역으로 남편을 마중나간다' 는 사연이 '5일의 마중' 이란 제목에 잘 녹아있으니 말이다.

 

 

 

2. 단순한 줄거리 +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된 영화

 

 

  전체적인 줄거리는 정말 단순하다.

  중국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사건이었던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를 무척 아끼는 부부가 생이별 하게 된다.  무려 20년만에 겨우 재회했지만, 아내는 그 동안 심인성 기억상실증을 앓게 되었다.  그래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편을 알아보지 못 한다.  남편은 어떻게 해서든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만, 번번히 실패할 뿐이다.

  아내는 바로 옆에 남편을 두고도, 계속해서 매월 5일만 되면 기차역으로 남편을 마중 나간다.  남편은 남편으로서가 아닌 제3자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의 곁을 조용히 지키게 된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줄거리도, 공리와 진도명이라는 명배우들이 연기하니 전혀 뻔하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두 배우 모두 중국의 국민배우라 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이며, 동시에 해외에도 많이 알려진 배우들이다.  두 배우의 세밀한 표정 연기와 온갖 감정을 담은 눈빛 연기가 단순한 줄거리에 살을 적절히 붙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간단한 줄거리를 갖었으면서도, 동시에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었다.

 

 

  공리의 기억상실증 연기는 일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기억상실증이 정형화된 요소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식상한 기억상실증이라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또 시작이네~' 라는 느낌과 '너무 안타깝다.' 라는 느낌으로 갈린다.  공리의 기억상실증 연기는 당연히도 후자에 속한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차를 타주겠다고 한다.

  사실은 남편을 알아보지 못 해서, 그저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다.  아내는 차를 타던 중 문득 행동을 멈춘다.  그 짤막한 사이, 자신이 왜 차를 타고 있는 건지 잊은 것이다.  그러더니 찻잎을 담아놓은 깡통의 뚜껑을 들고서 어리둥절해 한다.

  기억상실증이나 치매를 소재로 하는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서 그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작은 머리의 움직임이나 시선의 이동만으로도, 관객에게 '도대체 왜 내 손에 이 물건이 들려있는 거지?' 라는 의아함과 당혹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아내의 기억상실증이 진행되면서, 남편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하게 된 장면도 인상적이다.

  아내는 남편을 마중 나가면서,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혹시 서로를 못 알아보고 엇갈릴까봐, 남편 이름을 커다랗게 쓴 팻말을 들고 나간다.  그런데 어느 날 팻말의 글씨가 빗물에 지워지자, 새로 팻말을 만들게 된다.  이 때 아내는 새 팻말에 남편 이름을 쓰다 말고 고개를 갸웃 하더니,  빗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 먼저번 팻말을 들어올린다.  그리고는 빗물에 흘러내린 글씨를 응시하다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대고 남편의 이름을 어설프게 몇 번이나 써본다.

  그토록 오랜 세월 애태우며 기다렸던 남편의 이름조차 잊게 된 기막힌 상황인데, 공리는 그런 아내의 상황을 너무 담담하게 연기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비극적이었다.  

 

 

  자신을 잊은 아내의 곁에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수시로 오가는 표정을 보여주던 진도명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표정이나 행동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그 시대 남자답게 기쁨이나 절망을 대놓고 드러내지 못 하고 억누르려고 애쓴다.  하지만 눈빛이나 목소리를 통해, 남편이 느끼고 있는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이 제대로 전달이 된다.

 

  아내와 막 재회했을 때, 남편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아내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한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자, 재회의 기쁨으로 흥분한 남편의 눈에도 아내의 행동이 좀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기쁜 나머지 안경 너머로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뭔가 의아해 하는 눈빛을 보니, 역시 진도명이구나 싶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에서도, 진도명의 그런 세심한 표정 연기가 돋보인다.

  남편은 오지에 쫓겨나 있던 시절에, 어쩌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지도 모르는 아내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편지지조차 구할 수 없어서 포장지 한 구석, 포스터의 뒷면, 종이박스에서 찢어낸 조각 등 온갖 종이에, 영원히 부치지 못 할 수도 있는 편지를 쓴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토록 애닳게 썼던 편지를, 이제는 자신을 그저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친절한 이웃 정도로 생각하는 아내와 마주 앉아 직접 읽게 된 것이다.

  처음에 아내에게 편지를 읽어줄 때에는,  그 편지를 썼을 때의 감정이 새삼 북받치는지 애틋한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애틋한 눈빛은, 여전히 자신을 못 알아본 채 그저 편지의 내용에만 몰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다시 절망으로 바뀐다.

 

 

  그리고 기억상실증을 앓는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차츰 변하는 것을 보는 것도, 이 영화 감상의 포인트 중 하나다.

  처음에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못 알아 본다는 기막힌 상황에 충격을 받고 절망한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그 다음에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본다.  이미 집에 도착했으면서, 기차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 앞으로 나가 기차역에서 나오는 모습을 연출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아내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예전에 즐겨 쳤던 피아노곡을 다시 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옛날 사진을 어렵게 찾아내 아내에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방법이 하나씩 실패할 때마다 무척 실망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아내의 기억을 돌이키려 애쓰지 않게 된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도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을 못 알아본 채 끊임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의 곁을, 그저 묵묵히 지키며 살게 된다.     

 

 

 

3. 잔혹한 시대 속에서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

 

 

  얼핏 보면,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에 그래도 아내는 남편보다 편하게 살았던 듯하다. 

  대학 교수였던 남편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오지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가족들 얼굴을 보기는커녕 연락도 못 하고 살았다.  그에 비해 아내는 어쨌거나 원래 살던 곳에서 원래 하던 일(중학교 교사)을 하며, 딸을 옆에 두고 지냈다.

  하지만, 정말로 아내가 남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그건 결코 아닌 것 같다.  끌려가서 언제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던 쪽도 힘들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쪽도 역시 힘들었다.

 

 

  아내, 그리고 아내로 대표되는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아내가 겨우 만난 남편을 못 알아보고 오히려 집에서 내쫓아 버리자, 관청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 중 여자 공산당 간부가 아내를 이해시키겠다고 나선다.  "동지는 당(중국 공산당)을 믿죠?"  아내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당에서 일하는 나도 믿죠?"  이번에도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그 간부는 문간에 서있던 남편을 불러 아내 앞에 세워놓고 말한다.  "내가 당의 이름으로 보장합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동지의 남편이 맞습니다." (참 기묘한 삼단논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

  그런데 앞의 두 질문에 대해 아내가 입으로는 순순히 긍정하지만, 그 눈빛에서는 어느 정도의 거부감과 체념을 엿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내는 당에 대해 믿음은커녕 적개심과 공포심만 느끼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무 죄 없는 자기 남편을 그 오랜 세월 동안 앗아갔던 당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서운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는 해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당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보복당한다는 공포심에 길들어져 있다.  그래서 아내는 공산당 간부의 질문에 순순히 긍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자세가 몸에 배인 아내이건만, 공산당 간부의 마지막 말에는 차마 긍정하지 못 한다.

  눈물 어린 눈을 불안하게 이리로 저리로 돌리며 입술만 깨물 뿐이다.  아내가 보기에, 바로 앞에 서있는 사람은 분명히 자기 남편이 아니다.  아내 입장에서 보자면, 전에는 남편을 무지막지하게 빼앗아 갔던 당이, 이제와서는 남편 아닌 사람을 남편으로 받아들이라고 잔인하게 강요하는 꼴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닌데 왜 나를 속이려고 해요?." 라고 당당하게 따지지 못 하고 "저 사람은 팽씨 아저씨잖아요." 라고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한다.  그게 무시무시한 세월을 산 아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인 것이다.   

 

 

  딸이 옛날 사진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전부 도려내버린 일도, 그 끔찍한 시대의 편린 중 하나다.

 

  남편은 자신의 옛날 사진을 찾으려 한다.

  남편의 옛날 사진을 아내에게 보여주면 아내의 기억을 돌이키는 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고, 의사가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범을 아무리 뒤져도, 자신의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다.  이 부부의 외동딸이 앨범 속 사진에서 아버지의 얼굴이란 얼굴은 죄다 오려냈기 때문이다...!

  딸은 겨우 3살 때 아버지와 헤어져 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자란데다가,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를 반동분자로 고발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살벌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더구나 자신이 뛰어난 발레 솜씨를 지녔지만, 얼굴조차 기억 안 나는 반동분자 아버지 때문에 주연을 맡지 못 한다는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너무나 증오한 나머지, 아버지의 얼굴을 앨범에서 전부 도려낸 것이다.

 

  이제 딸은 눈물을 흘리며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후회한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한들 이제와서 사진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 사진들은 아버지 얼굴이 없어진 채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 가족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받았던 끔찍한 상처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결코 아물 수 없음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은, 주인공 가족 뿐만이 아니다. 

 

  우선, 아내의 친구가 겪은 사연이 있다.

  남편은 아내의 친구를 찾아간다.  혹시 그 집에는 자신이 찍힌 사진이 있지 않을까 하여 간 것이다.  다행히 젊은 시절에 두 집안의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사진을 못 구할까봐 마음 졸이던 남편은 사진을 얻게 되자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진작에 물었어야 할 그 집안 식구의 안부를 그제서야 묻는다.  "당신 남편도 잘 지내고 있죠?" 라고.  그러자 아내의 친구가 담담히 대답한다.  "그이는 자살했어요."

  자신의 남편이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자살했다고 말하는데, 그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슬픔이나 절망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떠올릴 뿐이다.  물론 남편의 죽음을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 사람도 수많은 날을 몸부림치며 보냈을 것이다.  야만의 시대는 주인공 부부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체적인 사연만 다를 뿐 각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팽씨라는 사람의 사연도 있다.

  팽씨가 무슨 짓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편이 머나먼 곳으로 끌려간 틈을 타서 아내에게 나쁜 행동을 한 것만은 확실하다.  아내가 남편을 팽씨로 착각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때는, 언제나 남편이 아내의 침대 곁에 있는 경우다.  즉, 남편이 아내의 침대 위에 있는 이불을 반듯하게 정돈해준다든지, 침대 위에서 잠든 아내가 추울까봐 담요를 한 겹 더 덮어주려고 한다든지 할 때면, 아내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흥분한다.

  그저 자신의 침대 쪽으로 남자가 다가서기만 발작을 일으키는 여자...  그렇다면 그 여자가 무슨 일을 겪었을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남편 역시 팽씨란 사람이 아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 따질 생각으로 팽씨네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팽씨란 사람은 정부의 정보요원들에게 끌려가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앞뒤 사정을 보면, 그 팽씨란 사람은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승승장구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문화대혁명이 끝났으니 새로 집권한 개혁파에게 숙청된 듯하다.

  그런데 팽씨의 아내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낯선 이를 정보요원으로 착각하며, 자기 남편을 돌려달라고 울부짖는다.  팽씨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며 그 집을 찾아갔던 남편은, 처음에는 뜻밖의 상황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연민의 눈빛으로 돌아선다.  비록 그 팽씨란 자가 아내에게 한 짓은 용서할 수 없지만,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미칠 지경이 된 팽씨 아내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끌려간 동안 자신의 아내도 저랬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광기 어린 시대는, 그 시대에 반동분자로 몰렸던 피해자 뿐 아니라 반동분자를 색출해내던 가해자까지 삼켜버렸다.

 

 

 

4. 영화의 주제

- 잔혹한 시대에 피어난 아름다운 부부애? 아름다운 부부애도 뛰어넘지 못 한 잔혹한 시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다른 영화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 영화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른 느낌을 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관객들이 각자 판단하게 될 것이다. 

 

  우선,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만은 끝내 지켜낸 어떤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볼 여지가 높다.  아내는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 몇 발자국만 더 가면 잡을 수 있었던 남편과 눈앞에서 헤어져야 했던 절망감 등으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남편에 대한 기억 뿐 아니라,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조차 때때로 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5일에 기차를 타고 돌아오겠다던 남편의 편지 내용만은 결코 잊지 않는다.  그래서 매월 5일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남편을 마중하러 기차역으로 간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려던 모든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지만, 결코 절망에 빠져 아내를 떠나거나 하는 일 없이 아내 곁을 굳건히 지킨다.  이제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 한다고 슬퍼하거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인력거꾼 노릇을 하며 아내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고 자신의 이름이 써진 팻말을 아내 대신 들어준다. 

  그러니 '그 무서운 시대와 그런 시대를 만들어 권력자들조차 이 부부의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사랑만은 건드릴 수 없었다.' 를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에 상처 입으면서 애정만은 지킨 아름다운 부부' 의 사연이 아닌, '그토록 굳건한 애정을 지닌 부부조차 결코 극복할 수 없었던 시대의 아픔' 을 다룬 사연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인공 부부는 서로를 끔찍히 아낀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 굳건한 사랑도,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을 온전한 부부로 되돌리지는 못 한다.  아내는 바로 옆에 남편을 두고도 계속해서 남편을 기다린다.  그리고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려 했던 남편의 수고는, 영화 마지막까지 그 결실을 얻지 못 한다.

  물론, 다른 기억은 다 잊어가면서도 남편이 5일에 기차를 타고 오기로 했다는 사실 하나만은 절대 잊지 않고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 자신을 못 알아보는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남편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추측해 보면, 아마도 아내의 기다림은 아내가 세상을 뜨는 날까지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멀쩡한 자기 집을 둔 채 계속해서 작은 쪽방에서 지내며, 아내 곁에 남편이 아닌 제3자로만 머물렀으리라.

  두 사람의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두 사람은 다시 옛날처럼 한 집에서 제대로 된 부부의 모습으로 살 지 못 한 것이다.  

 

 

  이 영화를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겠다.

  첫째, 얼굴만 번지르르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 말고, 진.정.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

  둘째, 깊어만 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 즉 담담한 분위기와 절제된 대사와 풍부한 표정과 가슴 아픈 내용을 담은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

  셋째, 중국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주연 배우들 발음이 워낙 깨끗하고 대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라서, 중국어 학습자에게도 괜찮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