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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 민란의 시대 - 감동을 받기에는 부족한, 하지만 개성 넘치는 영화

Lesley 2014. 8. 26. 00:01

 

  8월 초,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군도 : 민란의 시대' 를 봤다.

  사실, 딱히 끌리는 영화는 아니었다.  군도(群盜, 떼도둑)라는 제목에 걸맞게 등장인물들이 떼로 나오는 것을 보니, 5월에 본 '역린' 의 그 어수선한 스토리 구성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도 서부영화 스타일이라는 평에,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해괴한 퓨전영화가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모처럼 영화관에 간다고 들뜬 친구에게 영화 선택권을 줬더니, 하필이면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봤다. 

  그...러...나...!  기대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봐서 그럴까?  의외로 재미있게 봤다.  '민란의 시대' 라는 부제에 걸맞는 진지함이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민초의 아픔이나 도도한 시대의 흐름 같은 진지한 쪽을 생각하며 보면, 실망하기 딱이다.  하지만 독특한 스타일의 오락영화 한 편을 생각하고 본다고, 꽤 괜찮은 선택이다. 

  

 

 

 

 

1. 독특한 개성이 넘치는 영화

 

 

  ◎ 아름답고 멋진 영상

 

  영화를 보기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몇몇 평처럼, 서부영화 느낌이 물씬 난다.

  나중에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분명히 촬영장소는 전부 우리나라건만, 영화에서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캘리포니아 또는 20세기 초반 중국의 만주벌판처럼 보인다.  화면이 전체적으로 세피아 색깔을 띠고 있고, 황토빛 먼지 휘날리는 배경이 여러 번 나오며, 몇몇 배경음악도 서부영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시대에, 엄연히 사람인 노비보다도 훨씬 비쌌다는 말을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도둑이라니... (지금으로 치면 벤츠나 BMW 몰고 다니는 도둑들? ^^)  영락없는 서부영화 속 악당들 또는 일제시대 만주의 마적떼 분위기다.

  다만, '황야의 무법자' 같이 거친 영상의 서부영화를 떠올리면 안 된다.  21세기에 만든 영화답게 달려가는 말발굽에 무럭무럭 일어나는 흙먼지나, 사람들 머리 두건이나 옷에 덕지덕지 붙은 땟자국조차,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그만큼 영상미가 뛰어나다.

 

  그리고 최고의 악당 조윤(강동원)의 액션씬은 영상미가 그냥 뛰어난게 아니라 화려하다.

  물론 배우도 이 영화를 위해 무술 연습을 많이 했을테고, 또 고난도의 액션은 스턴트맨이 대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저리 가라 수준의 화려한 카메라 연출에, 좀 과도하도 싶을만큼 휘날리는 꽃잎(벚꽃잎? 혹은 매화잎?) 속에서 칼 휘두르는 조윤의 모습은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기존의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우선 진한 서부영화 분위기는 드라마 '추노' 의 초반부와 임청하 주연의 영화 '신 용문객잔' 이 연상된다.  추노 1회에서 추노꾼으로 일하는 세 남자가 도망 노비들을 붙잡는 곳도 만주 한복판의 여각 같은 느낌이 폴폴 풍겼더랬다.  신 용문객잔이야, 아예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사막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마성(!)의 미모를 지닌 조윤이 흩날리는 꽃비 속에서 대결을 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했던 드라마  '한성별곡 正' 속 장면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을 '이 영화 저 드라마 가리지 않고 좋은 것은 몽땅 베꼈네' 라고 받아들일지, 혹은 '다른 여러 작품 속 화려한 기법을 적절히 섞어 소화해냈구나.' 라고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 다큐멘터리 기법(?)


  보통의 영화는 나레이션이 나와도, 영화 전체 분위기 또는 배경을 알려주는 차원에서 영화 초반에 잠깐 나오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나레이션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온다. ^^;;  그래서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지 뭔지 모르겠다는 불평어린 반응도 제법 있다.  또한 나레이션 때문에 극의 흐름이 뚝뚝 끊겨 짜증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내용이 산만해지지 않도록 감독이 잘도 머리를 썼구나 싶었다.

  몇 달 전 개봉한 영화 '역린' 에서도 군도만큼이나 여러 사람의 사연이 나온다.  그리고 그게 그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되어 버렸다.  겨우 2시간 정도 밖에 안 되는 영화에 여러 사람의 사연을 전부 집어넣으려니, 그 중 누구의 이야기도 제대로 펼치지 못 하고 영화가 끝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의 과거지사를 나레이션으로 처리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토해놓는다.  그래서 역린이나 이 영화나 상영시간은 비슷하고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데, 이 영화는 역린처럼 내용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느낌이 훨씬 덜하다. (물론 역린에 '비해서' 그렇다는거지, 그래도 내용이 산만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많은 모양임. ^^;;)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의 반응이다.

  그 친구는 나레이션을 개그요소(!)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장면과 안 어울리게 튀어나오는 나레이션에 당황했다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그런데 그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서 '아, 이 나레이션 웃으라고 만든거구나~~' 하는 생각에 웃으며 즐겼다고 한다. ^^;; 

 

 

 

2. 두 주인공, 하정우와 강동원

 


  ◎ 하정우 - 쌍칼과 인연이 깊은 배우

 

  등장인물이 떼(!)로 나오는 이 영화에서 그래도 주인공격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정우(도치 역)다.

  하정우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외모가 아닌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배우로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까.  그 보다는 이 영화 속에서 하정우가 쓰는 무기 때문에 영화 중간에 빵빵 터질 뻔한 사연을 쓰려 한다.

 

  내가 하정우라는 배우를 처음 본 것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무인시대' 에서였다.

  그 때만 해도 하정우가 무명 배우라, 조연 중에서도 비중이 낮은 역할을 맡았다.  다름 아닌,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세 번째 집권자였던 이의민(이덕화)의 셋째 아들 역이었다.

  그런데 이의민의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망나니짓을 많이 하고 다녀서,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을 '쌍칼' 이라고 부르며 욕을 했다.  처음에는 드라마상의 설정인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고려사에 정말로 그 두 망나니를 쌍칼(雙刀子)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쌍칼은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불량배의 별명으로 쓰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예를 들면, 쌍칼형님 식으로 암흑세계에서는 철수와 영희만큼 흔한 이름...)  그 쌍칼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은 별명인 줄 몰랐다. ^^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서 하정우가 들고 나오는 무기가 바로 쌍칼이다...!

 이 영화에서 하정우가 맡은 역할인 돌무치(나중에 '도치' 라는 이름으로 바뀜.)는 원래 백정이다.  당연히 고기 자르는데 쓰는 칼(중국집 주방장이 쓰는 큼직한 사각형칼)을 다루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지리산 도둑떼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손에 익은 그 식칼 두 자루를 무기로 쓰게 된다.

  무인시대를 안 본 관객이라면, 돌무치가 그저 백정 출신이라 푸줏간용 칼을 쓰나 보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인시대 속 하정우의 별명을 기억하는 나 같은 관객에게, 이것은 뜻밖의 개그요소였다. ^^ 

 

    

  ◎ 강동원 - 요사스러운 미모와 새하얀 도포가 잘 어울리는 냉혈한 / 이 영화 최고의 수혜자

 

  이 영화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편이다.

  그런데 영화에 후한 평을 내린 관객들 대부분이 여성 관객이고, 그 여성 관객들이 그런 반응 보이는 이유가 강동원(조윤 역)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런 경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강동원이란 배우의 팬도 아니고 큰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영화가 끝났을 때 내 머리 속에 남은 것은 강동원의 이미지 뿐이었다.  하정우를 비롯하여 이경영과 조진웅 등 대단한 출연진들이 있건만, 강동원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배우들의 존재감이 전부 날아가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강동원의 연기력이 나머지 배우들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사실, 영화 전체의 완성도 문제를 떠나서, 배우들의 연기는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훌륭했다.  다만, 조윤의 캐릭터가 무척 강렬했고, 강동원의 이미지가 그 조윤의 캐릭터와 워낙 잘 어울려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강동원이 출연한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이번 작품을 빼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과 '초능력자' 가 전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세 영화 모두에서 강동원은 악역이면서 무척 불행한 인물로 나온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에서는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인생이 꼬여 얼떨결에 살인죄를 저지른 사형수로 나온다.  그리고 '초능력자' 에서는 특이한 능력 탓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무서운 범죄자가 된 청년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이 영화에서는 대단한 세도가 아버지와 비천한 기생 사이에서 태어나 애정결핍과 박탈감으로 비뚤어져버린 '조윤' 이란 역할로 나온다.

  강동원의 외모가 무척 깔끔하지만, 요즘 인기를 끄는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다.  그 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요사스런'(!) 미모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많이 맡게 되나 보다.

 

  그런 강동원 외모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장면이, 칼싸움을 벌이던 중 조윤(강동원)의 상투가 싹둑 잘려 산발이 되는 부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발이 아니라 그냥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게 된 것 뿐이다.  사실, 격렬히 싸우다가 적의 칼에 상투가 잘린 것인데, 마치 미용실에서 공들여 세팅한 것처럼 머리카락이 너무 단정하게 늘어뜨려져서 웃기기도 했다. ^^;;

  하여튼 그 장면에서, 그렇잖아도 어두운 계곡에서 많은 시체들이 널부러져있는 상황인데, 하얗다 못 해 창백하기까지 한 강동원의 얼굴 위로 긴 머리카락이 드리워지자 마치 처녀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길게 늘어진 머리 사이로 차가운 눈빛이 번뜩이는데, 음산함까지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강동원의 미모에 감탄하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에 안 어울리는 너무나 현대적이고 단정한 긴 머리에 그만 웃음이 나오는...  옆에 앉은 친구가 내 귓가에 "왜 저렇게 예뻐~~"  하고 소근거리는데, 목소리 속에서 하트가 뿅뿅뿅 10개는 튀어나오는 듯했다. ^^   참 기묘하게 무섭고, 동시에 기묘하게 우스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강동원 하면 잊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으니, 바로 '하얀색 도포' 다.

  바로 위의 사진처럼 처음부터 싸울 것을 생각하고 무장했을 때 빼놓고는, 영화 내내 하얀색 도포 차림으로 나온다. (순백색은 아니고 약간 누런색이 섞인 듯한 하얀색)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극 속 양반들은 최상류층(미행나온 국왕 혹은 세도가 사람들) 빼놓고는 수수한 하얀색 도포를 입고 나왔는데, 언제부턴가 사극 속 도포 색깔이 알록달록해졌다.  시청자들 눈에 예뻐보이라고 그렇게 한 모양인데, 당연히 고증 쪽으로는 꽝이다. ^^;; 

  그런데 강동원이 무늬 하나 없고 자수 하나 없는 하얀색 도포를 입고 나오니, 어찌나 신선하던지...   아마도 강동원의 미모를 더 돋보이게 하려고, 혹은 강동원의 냉정함과 잔인함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의도는 적중했다...!  잔인하고 차가운 조윤이란 인물에게 너무 잘 어울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 TV에서도 스크린에서도 거의 못 봤던 하얀색 도포를, 앞으로는 사극 속에서 종종 볼 수 있겠구나 하는...  하얀색 도포를 입고 칼이나 부채를 절도있는 동작으로 휘두르던 강동원 모습을 차용하는 캐릭터가 간간히 나오겠구나 하는...  ^^ 

 

 

 

3. 아쉬운 점

 

 

  ◎ 아기 - 영화 내용 중 가장 큰 구멍, 조윤이란 인물의 캐릭터를 망가뜨린 요소 

 

  내용상 아쉬운 점은 조윤의 조카로 나오는 아기에 대한 부분이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잃은 조윤이 돌무치에게 쫓기면서 손에서 놓지 못 했던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칼, 또 하나는 바로 아기.  그런데 막다른 길에 몰린 조윤이 왜 그 아기만은 데려가고 싶어했는지, 또 어째서 아기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는가 하는 부분이, 너무 개연성 없다.

 

  조윤은 나주에서 재산으로도 권세로도 제일 가는 집안의 아들이다.

  문제는, 정실부인 소생이 아닌 기생 소생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적자가 없었던 탓에, 아버지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정실 소생의 이복동생이 태어나면서, 아버지의 사랑과 가문의 상속자라는 지위 모두를 잃어버리게 된다.  어린 마음에 그런 상황이 너무 억울해서, 이복동생을 해코지하려다가 들키고만다.  생모는 자기 일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기생한테서 태어난 천한 몸으로 동생까지 해치려고 한 인간말종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없는 자식 취급을 당하고...  이래저래 조윤은 능력은 탁월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복동생이 뜻밖의 일에 휘말려 비명횡사하면서, 조윤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

  이제 조윤에게 유일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이복동생의 아내, 즉 조윤에게는 제수가 되는 여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 밖에 없다.  만일 제수의 몸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그 아이가 적손이라는 이유로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  그래서 조윤은 세상빛도 못 본 그 아이를 그 어미와 함께 없애버리려 한다.

  하지만 어찌어찌 하여 아이는 무사히 태어나 도둑떼 손에 자라게 된다.  그리고 훗날 도둑떼의 은신처를 습격한 조윤은 우연히 그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발견한 후부터, 조윤이란 인물의 캐릭터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막상 아이를 발견해서는, 무슨 생각인지 살려둔다.  이래서야, 그 동안 그 아이를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았던 일이 어처구니 없을 지경이다.  그러더니, 도둑떼와 백성들이 함께 일으킨 민란으로 도망칠 때에는, 그 급박한 상황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  더구나 아이가 칼에 맞을 상황이 되자, 그 아이를 지키려다가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는다...!  이 조윤이란 사람, 갑자기 왜 이러는거냐...! 

  그 아이가 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죽이려 했고, 죽이는데 실패한 후에도 후환을 없애기 위해 계속해서 찾으려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해치려는 게 무서운 죄라는 점은 둘째 치고, 조윤의 절박한 처지와 잔인한 성격을 봤을 때는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게 차라리 말이 되는거다.  그런데 끝에서 이게 무슨 황당한 전개인지...

 

 

  ◎ 내 마음대로 바꿔본 결말

 

  문제의 그 아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 아이를 조윤의 아들인 것으로 설정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조윤의 제수가 아니라, 조윤이 불우했던 시절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만났던 여인이다.  가령, 조윤이 한양에서 무관으로 지낼 때, 기방을 드나들다가 만난 기생이라든지...  혹은 몰락한 양반 집안의 딸 하나를, 자신의 신분에 대한 울분 때문에 돈을 주고 사서 첩 비슷하게 데리고 살았다든지...  그러다가 그 여인이 임신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깜깜하기만 했던 조윤의 앞날에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이복동생이 죽은 이상, 일단은 조윤 말고는 가문을 이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 대단한 권세와 그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틀림없이 조윤의 미천한 출생만으로도 문제가 될테니, 그 밖의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기 주변을 깨끗이 청소해놓아야 한다.
  천한 기생 또는 몰락한 양반 집안 출신의 첩은, 이제는 조윤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그리고 천출이라서 아버지에게 아들 취급 못 받고 살았던 세월을 생각하면, 자신의 아이만은 제대로 된 집안의 여인과 정식으로 혼인해서 얻어야 한다는 욕심도 생기고...

 

  하지만 아이에게 일말의 죄책감 또한 느끼고 있다.
  어찌되었거나 자신의 핏줄인데다가, 따지고 보면 그 아이도 자신처럼 서자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처지 아닌가!  더구나 그 아이가 그렇게 태어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조윤의 탓이다.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아이에게 그대로 물려준 셈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문의 상속자가 될 욕심에 아직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이려 별 짓 다 하지만, 막상 태어난 아이를 안게 되었을 때는 기묘한 감정에 휩쌓이게 된다.  더구나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나니, 이제 이 세상에 남은 자신의 혈육이라고는 그 아이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목숨 하나도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 아이만은 데려가려 했고 또 목숨을 걸어가며 지키려 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면, 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