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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라이크 베컴 (Bend It Like Beckham)

Lesley 2014. 8. 1. 00:01

 

  올해 들어서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 을 다시 봤다. (4월에 어지간히 써놓았던 포스트를 이제야 마무리해서 올리는... ^^;;)

  개봉한지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 정작 개봉했을 때는 전혀 관심 갖지 않았다.  내가 원래 스포츠와 담 쌓고 사는 사람이라서, 축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내 관심권 밖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개봉하고 몇 년이 지난 후에 TV에서 방영해주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뜻밖에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너무 유쾌한 영화여서, 나중에는 다운받아 한 번 더 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어쩌다 보니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자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유쾌함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왕 다시 본 김에 포스팅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     

 

 

 

 

 

 

1. 주제의식 있는 영화, 그러나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영화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꽤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분위기가 너무 밝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어떤 종류의 차별이든, 하여튼 차별을 다루는 영화의 분위기는 많이 어둡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름' 과 '틀림' 을 구별하지 못 하는데서 비롯되는 온갖 종류의 차별과 편견을 다루는 영화이건만, 너무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다...! ^0^  

  우선, 영화 속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모두 재미있고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게다가 영국 영화인데도 등장인물 상당수가 인도 사람들이라 그런지, 인도영화처럼 시종일관 신나는 음악이 깔린다.

  

 

  ◎ 남녀 차별 - "어느 집에서 하루 종일 공이나 차는 며느리를 원하겠니?"

 

  주인공은 영국의 두 고등학생 '제스(파민더 나그라)''줄스(키이라 나이틀리)' 다.

 

  제스는 영국에 사는 인도계 이민자 집안의 두 딸 중 작은딸이다.

  그런데 제스에게는 그 또래 여학생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남성적인 운동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또 축구에 소질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제스의 부모는 작은딸이 축구를 하는 것을 반대한다.  아무리 영국에서 오래 살았다지만, 결국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문화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인도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부모에게, 남자 관중들이 다 쳐다보는 가운데 자기네 딸이 허벅지가 드러나는 반바지 입고서 뛰어다니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딸이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직업을 갖고, 집에서 조신하게 신부수업도 받다가, 장차 괜찮은 인도계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제스는 부모 몰래, 인도계 남자아이들이 공원에서 하는 축구경기에 뛰어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줄스는 백인 집안의 외동딸인데, 여자 축구팀 선수로 활동 중이다. 

  그러니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식구들 눈을 피해 축구를 하는 제스의 처지를 생각하면, 줄스는 천국에 사는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줄스 아빠가 선머슴 같은 딸을 응원해주는 데 비해, 엄마는 딸이 축구를 하는 것을 은근히 싫어한다.  줄스의 엄마는 인도계 이민자 집안에 비해 개방적인 서구 문화권 사람이라 그런지, 제스의 부모처럼 노골적으로 반대하지는 못 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딸이 예쁜 옷을 입고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는 '여자다운 행동' 을 하기를 바란다.  

 

  두 소녀는 원래 모르던 사이였는데, 만나자마자 친한 사이가 된다.

  줄스는 제스가 축구에 재능이 있음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기가 뛰는 여자 축구팀에 들어오라고 제의한다.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두 소녀는 오래 사귄 친구처럼 절친한 사이가 된다.  

  

 

  ◎ 인종 차별 - "버스 정류장에서 영국놈이랑 키스했다며!" / "축구리그에서 뛰는 인도선수는 없소!"

 

  그 또래 소녀들이 다 그렇듯이 제스와 줄스도 길거리에서 서로의 어깨를 치고 깔깔거리며 수다를 떤다.

  자동차 한 대가 그 옆으로 지나간다.  공교롭게도 자동차 안에는 제스 언니의 약혼자 부모, 즉 예비 사돈 부부가 타고 있다.  제스와 줄스를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입에 파리가 대여섯 마리는 들어갈 정도로 입을 딱 벌리는 예비 안사돈... ^^

 

  제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제스에게 몰리는데 뭔가 좀 심상치않다.  언니는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원망스레 쳐다보고, 부모님은 쩔쩔매고 있다가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예비 사돈 부부는 노골적으로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집안 분위기가 그 모양이 된 것은 예비 사돈네가 파혼을 선언했기 때문인데, 그 이유가 기막히다.

  예비 사돈 부부가 제스와 줄스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황당한 오해를 한 것이다.  줄스는 여자치고 키가 큰데다가, 머리도 짧고, 여성스런 옷보다는 청바지나 청자켓 같은 옷을 즐겨 입는다.  간단히 말해서 무척 보이쉬한 스타일의 여고생이다.  그런데 예비 사돈 부부가 제스와 줄스를 보게 되었을 때, 하필이면 줄스의 뒷모습만 보고서 줄스를 남자로 착각한 것이다...! -.-;;  게다가 제스와 줄스를 보게 된 위치와 각도가 아주 오묘(?)해서, 두 소녀가 키스를 하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0-;; (물론 예비 사돈네의 눈에는 '두 소녀' 가 아니라 '인도계 소녀와 백인 소년' 으로 보였음.)

 

  그런데 인종 차별이란 것이, 반드시 백인이 유색인종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계 이민자 사회에서, 누군가 백인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간주된다.  그래서 예비 사돈네는 '대낮에 길거리에서 백인 남자과 키스를 하는 형편없는 딸' 을 둔 집안과 사돈을 맺을 수 없다며 파혼하자고 한다. -.-;; 

 

  언니는 파혼당한 게 제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홧김에 제스의 비밀(여자 축구팀 선수로 활동 중인 것)을 폭로한다.

  그렇잖아도 큰딸의 파혼으로 울적해하던 부모는, 작은딸이 부모를 속이고 축구를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엄마 입에서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는, 지극히 동양적인 신세한탄이 흘러나온다.

 

  여자 축구팀의 코치 '조(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가 찾아와, 제스가 축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제스의 부모를 설득하려 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제스 아빠가 딸이 축구하는 것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밝혀진다.  아빠는 그저 남녀 차별적인 생각으로만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과거 아프리카에서 지낼 때 뛰어난 크리켓 선수로 활약했지만, 영국으로 온 후로는 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 시절만 해도 인종 차별이 무척 심했기 때문에, 같은 팀의 백인 선수들이 인도계 이민자인 제스 아빠를 괴롭히며 모욕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자기 딸만은 그런 대우를 받지 않기를 바라기에, 딸이 축구하는 것을 더욱 반대한 것이다.

  조가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하려 하자, 제스 아빠는 조의 말을 끊으며 받아친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르냐고, 여전히 영국 축구리그에서 뛰는 인도계 선수는 없지 않느냐고...  

 

 

  ◎ 세대 차이 - "우리가 애들한테 안 해준 게 뭐가 있어요?"

 

  제스가 사촌네 집에 놀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독일로 축구경기를 떠났는데, 제스의 부모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는 두 딸의 일로 한숨만 푹푹 쉰다.

  제스의 일도 큰일이지만, 제스의 언니의 일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제스 언니는 예비 시부모의 파혼 선언에도 불구하고, 약혼자와 죽네 사네 하며 못 헤어지고 있다.  사실 그 남자는, 인도인 사회에서 결혼의 정석으로 생각하는 '중매' 로 만난 사람이 아니다.  두 젊은이가 양가 부모 몰래 연애를 한 것이다.  그리고 제스의 부모도 큰 딸이 몰래 남자를 만나고 있음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도 딸의 연인이 같은 인도계 사람이고 또한 괜찮은 집안의 남자이기에, 눈감아줬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큰딸은 파혼당했고, 작은딸은 계속해서 부모를 속이며 축구에만 목을 매고 있다.

  제스의 엄마는 남편에게 한탄한다.  자신들이 애들에게 안 해준 게 뭐냐고, 자동차에 컴퓨터에 사달라는 것은 다 사줬는데, 왜 이 모양이냐고...  남편도 아무 말 못 하고 한숨만 푹푹 쉰다.

 

  사실, 제스 집안의 상황은 우리나라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은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 했던 많은 것들(교육의 기회, 물질적인 풍요)을 자녀에게 제공해주려 애쓴다.  그리고 자녀가 그런 부모의 노력에 부응하여 큰 성취를 이루기를 바란다.  보통의 경우, 부모가 원하는 '성취' 란 우수한 학업 성적,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업,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과의 결혼이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와 자녀들이 원하는 행복이 어긋나는 경우가 제법 많다.  그래서 부모는 부모대로 '우리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러는거냐?' 하며 속상해하고, 자녀는 자녀대로 '내 인생 내가 원하는대로 살겠다는데, 왜 자꾸 말리는거냐?' 며 원망한다.    

 

 

  ◎ 동성애자 차별 - "줄스가 사랑하고 있어요, 여자랑!" 

 

  만나자마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던 제스와 줄스 사이에 큰 문제가 생긴다. 

  여자 축구팀의 잘 생긴 코치 조 때문이다.  사실은 줄스가 전부터 조를 짝사랑했다.  그런데 조는 새로 나타난 제스에게 관심을 보이고, 제스 역시 조에게 끌린다.  결국 이 일로 세 사람 사이에 금이 간다.

 

  그런데 이 삼각관계는 엉뚱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제스가 줄스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줄스네 집을 찾아가는데, 두 사람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오히려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런데 줄스 엄마가 우연히 그 말다툼을 엿듣게 된다.  이왕 엿듣게 된거라면 제.대.로. 듣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어쩌다가 중간 부분만 듣게 된다.

  그 결과, 줄스 엄마는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하게 된다.  줄스와 제스가 동성애 관계인데, 제스가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해서 싸움이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0-;;  줄스 엄마는 소중한 외동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차마 딸에게는 정말 동성애자가 맞는지 물어보지도 못 하고, 딸의 눈치만 보며 속을 태운다.  그리고 딸이 동성애자가 된 이유가 축구 같은 남성스런 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며, 평소 딸이 축구하는 것을 응원해줬던 남편을 은근히 타박한다. -.-;;

 

 

  ◎ 문화 차이 - "지금 축구를 포기하면 다음엔 또 뭐를 포기할 건데?"/ "부모님을 위한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아!"

 

  제스 언니의 결혼 문제가 어찌어찌 수습되어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결혼식날이 여자 축구 결승전날과 겹친다!

  조는 물론이고, 제스와의 앙금을 다 털어내지 못 한 줄스마저, 결승전에 참여하라고 제스를 설득한다.  미국의 여자 축구 스카우트 관계자도 오기 때문에, 어쩌면 미국 대학의 여자 축구팀에 뽑힐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제스는 그 좋은 기회에 선뜻 손을 뻗지 못 한다.

  개인의 꿈과 희망보다는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중요시하는 인도계 사회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이미 축구 때문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해서 부모를 실망시켰다.  얼마 전에 좋은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아 부모의 마음이 겨우 풀렸는데, 또 다시 부모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날은 가족 모두의 경사인 언니의 결혼식이다.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가족 모두의 행복인 언니 결혼식을 김 빠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스가 축구 대신 가족을 선택한 그 순간, 제스 아빠가 딸에게 축구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큰딸의 결혼식 내내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작은딸을 보니, 아빠 역시 마음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는 딸이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변호사가 되는 것이, 딸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딸의 친구가 딸에게 결승전에 가라고 권할 때, 딸이 부모님을 위한 날을 망칠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을 보며 마음을 바꾼다. 

 

  아빠의 허락을 받고 1:0으로 뒤지고 있는 경기에 뛰어든 제스는, 결국 팀을 우승으로 이끌게 된다!

 

 

  ◎ 세대 차이 + 문화 차이 - "레즈비언이 내 신발을 신고 있다니!" / "제스는 레즈비언이 아니라 펀잡사람이에요!"

 

  제스는 결승전을 멋지게 끝내고 돌아와 이제는 진심으로 언니의 결혼식을 즐기는데, 여기서 또 황당한 사건이 터진다.

  제스와 줄스는 결승전에서 손발 척척 맞춘 일로 완전히 화해한다. (운동 속에서 하나 되는 우리...! ^^)  그리고 이왕 화해한 김에, 줄스도 제스 언니의 결혼식에 가기로 한다.  문제는... 줄스와 제스를 동성애 관계로 오해하고 있는 줄스 엄마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 딸에게 속마음을 내색 안 하느라 속을 끓이던 이 아줌마, 자기 딸과 제스가 반갑게 포옹하며 서로의 뺨에 키스하는 광경을 보고 그만 이성을 저 멀리 태평양 너머로 내던져버린다. ^^;;  한달음에 제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굴 수 있느냐고 따진다!

 

  엎친 데 덮친다고, 줄스 엄마는 제스가 신은 신발을 보고 더욱 흥분한다.

  그 신발에는 사연이 있다.  제스 언니의 결혼식은 인도식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제스도 인도 전통복장으로 참석해야 한다.  마침 축구화가 필요했던 제스가 인도식 신발 살 돈으로 축구화를 사버렸다.  그리고 줄스 엄마에게 인도식 신발 비슷한 게 있어서, 줄스가 자기 엄마 몰래 제스에게 그 신발을 빌려줬다. 

  그런데 줄스 엄마가 그 신발을 보고는 그 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파르르 떨면서 "레즈비언이 내 신발을 신고 있다니!" 라고 외친다. ^^;;

 

  영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기까지만 봐도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를 지경인데, 또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할머니들(아마도 제스 집안의 친척들인 듯...)은 나이도 많은데다가 보수적인 인도 문화권에서 생활해서 새로운 문화에 어둡다.  그래서 줄스 엄마가 외친 '레즈비언' 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엉뚱한 반응을 보인다.

  한 할머니는 "레즈비언이라고?  제스는 3월생이니까 물고기 자리(Pisces) 아닌가?" 라고 한다.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별자리 이름으로 착각한 것이다. -.-;;  또 다른 할머니는 레즈비언(Lesbian)이란 말이 레즈비아(Lesbia)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며 "우리 제스는 레즈비언이 아니라 펀자비(Punjabi, 펀잡 사람)이에요!" 라고 항의하기까지 한다. -0-;;

 

 

  ◎ 내 자식만 아니면 상관없어. - "나는 동성애자에게 아무 편견 없단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줄스가 자기 엄마를 잡아끌고 허겁지겁 자리를 뜬다.

  마구 흥분해서 정신없이 차를 몰던 줄스 엄마는, 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서야 자신이 큰 오해를 했음을 깨닫는다.  딸이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자, 눈물로 젖어있던 줄스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데... ^^;;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줄스가 엄마의 오해를 풀어준 후, 쿨한 신세대답게 "그런데 내가 정말로 레즈비언이라도, 그게 또 어때서?" 라고 묻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딸이 동성애자라고 믿고서 절망에 빠져있던 줄스 엄마 입에서 나오는 말인즉슨, "당연히 상관없지!  나는 동성애자에게 아무 편견 없단다!" -0-;  즉, 줄스 엄마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동성애자라도 상관없다.  그저 내 딸만 동성애자가 아니면 된다.' 라고 할 수 있다. ^^;;

  이 부분은 정말 우스우면서도 참 현실적이다.  사실, '내 자식만은 아니면 상관없지, 뭐.' 라는 사고방식 가진 부모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 희망 - 미래에는 모든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겠지...

 

  영화는 유쾌했던 분위기를 마지막까지 끌고 나가며, 온갖 차별과 편견이 넘치는 이 세상에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두 소녀는 원했던대로 미국 대학의 축구팀으로 나란히 스카우트 되어,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그리고 제스의 아빠가 비록 당장은 백인인 조를 딸의 남자친구로 받아들이지는 못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의 관계를 묵인해주는 모습을 보인다. 

  제스 아빠가 딸의 축구 활동을 그렇게 반대했었는데, 결국 대학 축구팀 입단을 허락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딸과 조의 관계도 인정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모든 종류의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2. 기타

 

 

  ◎ 동양인과 서양인의 노화 차이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훨씬 젊어보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뻔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영화 속에서 제스와 줄스는 모두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그러니 영화 설정상으로는 두 사람의 나이가 같거나 혹은 겨우 1살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스와 줄스를 비슷한 또래로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여배우의 나이 차이는 무려 10살이나 된다...!

  제스 역을 맡은 '파민더 나그라(Parminder Nagra)' 가 1975년 생이고, 줄스 역을 맡은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 가 1985년생이다. -0-;;  영화가 개봉된 2002년을 기준으로, 키이라 나이틀리는 고등학생 역에 걸맞는 17세다.  하지만 파민더 나그라는 무려 27세다.  하지만 20대 후반에 접어든 그 나이에도, 정말 고등학생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그냥 동안이 아니라 미친 동안이라고 할 수 있음. ^^)

 

 

  ◎ 슈팅 라이크 베컴의 '조' 가 튜더스의 '헨리 8세' 라고? @.@

 

  영화 속에서 두 축구 소녀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축구코치 조 역을 맡은 배우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Jonathan Rhys Meyers)' 다.

  이 배우가 미국 드라마 튜더스(The Tudors)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잔인하고 음흉하지만 동시에 카리스마 넘치는 그 헨리 8세 역을 맡은 사람이,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코치 조 역을 맡은 그 배우라니...!  두 역할의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미처 알아보지 못 했다가, 나중에 배우 프로필을 보고야 알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배우에게는 조 역보다는 헨리 8세 역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조 역은 선량하고 따뜻한 캐릭터다.  그런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얼굴선과 눈매가 워낙 날카롭게 생겨서,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차라리 헨리 8세 같은 '나쁜 남자' 역할이 더 맞는 것 같다. ^^;;

 

 

  ◎ 어째서 '벤드 잇 라이크 베컴' 이 아니라 '슈팅 라이크 베컴' 이지?

 

  이 영화는 한국에서 '슈팅 라이크 베컴' 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하지만 원제는 'Bend It Like Beckham' 이다.  이 제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영화 수입사에서 꽤나 골머리 앓았다고 한다.  원제를 감칠맛 나게 우리말로 번역하는 게 곤란했기 때문이다.  '베컴처럼 바나나킥 차기' 라는 뜻이라는데,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처럼 원어의 발음만 따와서 '벤드 잇 라이크 베컴' 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 분명하다. ('베컴처럼 구부리기' 로 생각할 사람이 많을 듯... ^^;;)  그래서 원문 그대로도 아니고 번역문도 아닌, 제3의 제목을 창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