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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24회~34회) - 꽃이 피려면 누군가는 거름이 되어야 한다.

Lesley 2014. 6. 27. 00:01

 

  ※ 이 드라마는 지금 48회까지 방영되었는데, 이 포스트는 24회에서 34회까지 본 후에 쓴 것임.

 

  먼저번에 드라마 정도전의 1회에서 23회까지를 한데 뭉뚱그린 감상문을 올렸다. 

  ☞ 정도전(1~23회) - 오래간만에 보는 수준 높은 정통사극(http://blog.daum.net/jha7791/15791078)

 

  원래는 24회에서 고려가 멸망하는 40회까지를 한 포스트로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위화도 회군 시기에서 고려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워낙 많은 사건이 나와서, 도무지 한 포스트로 정리할 수 없었다.  또 그 많은 사건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변하고, 등장인물들 서로간의 관계가 변하는 것도 다루어야 하고...

  그래서  위화도 회군 시기에서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즉위 시기까지를 다룬 24회에서 34회까지로 토막을 내기로 했다.   

 

 

  이번 포스트의 부제로 붙인 '꽃이 피려면 누군가는 거름이 되어야 한다.' 는 문구는, 사실 이 드라마 2회에서 공민왕이 이인임에게 했던 말이다.

  노국공주가 세상을 뜬 후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공민왕이,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를 등용하여 다시 정치 쇄신에 나서기로 한다.  동시에, 새 정치에 걸림돌이 될 이인임에게 그만 조정에서 물러나라고 종용한다.  그 때 공민왕이 이인임에게 했던 말이 "꽃이 피려면 누군가는 거름이 되어야 하지 않겠소?" 였다.

  다시 말해서, 고려의 더 나은 미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이인임이라는 구시대의 인물은 권력을 내려놓고 은퇴하는 방식으로 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압력을 넣은 것이다. (이런 때 쓰는 말이 바로 토사구팽...!)  물론 이인임은 스스로가 화려한 꽃이 되기를 원했지, 다른 꽃을 위한 거름 노릇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은밀히 반격에 나서서 공민왕 시해를 방조 내지는 조종하게 된다.  

 

  그런데 극중에서 공민왕이 의도했던 바는 결코 아니었지만, '꽃이 피려면 누군가는 거름이 되어야 한다.' 는 말은 조선 개국과 고려 멸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즉,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활짝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고려라는 낡은 시대는 거름으로 썩어 새 시대의 양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드라마 정도전의 작가가 조선 개국과 고려 멸망을 의미하는 뜻으로  위의 대사를 공민왕에게 준 것이라면, 이 작가는 몇 수 앞을 내다보며 대본을 쓰는 천재작가다. (그게 아니라면, 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것 뿐이고... ^^)   

 

 

  

1. 위화도 회군

 

 

  ◎ 공요군, 반정군으로 변하다.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고하면서, 고려 조정은 최영의 주도로 요동정벌을 결정한다.

  그러나 요동정벌은 결국 불발로 그친다.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공요군(요동 공격 군대)이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비록 고려가 쇠퇴의 길로 들어선지 한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500년 가깝게 이어온 힘으로 힘들게나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위화도 회군은, 겨우 운신하던 중환자 고려를 아예 식물인간 상태로 몰아가게 된다. 

 

 

(위) 원래 목적지인 북쪽의 요동이 아닌, 남쪽의 개경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공요군.

(아래) 공요군이 회군한다는 소식에 경악하는 우왕과 최영.

 

 

  그런데 요동정벌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왕과 최영이 결정적인 실수를 했으니, 최영이 후방에 남게 된 일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최영도 요동으로 떠나야 했다.

  요동정벌은 당시 고갈되었던 고려의 국력을 밑바닥까지 긁어모아 준비한 군사계획이었다.  다시 말해서, 실패할 경우 나라가 그대로 망할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부담을 내포한 일이었다.  게다가 공요군 중에는, 요동정벌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조정의 명령 때문에 마지못해 참여하게 된 이들이 제법 있었다. (일반 병사들이야 말 할 것도 없고, 지휘관들마저 그러했으니...)

  그래서 나라의 명운을 건 요동정벌을 직접 챙길 겸, 요동정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섞인 공요군을 감시하며 독려도 할 겸, 70세도 넘은 최영이 직접 공요군을 지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만일 최영이 공요군을 이끌고 떠났더라면, 최영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그것이 평생 전쟁터를 누빈 최영의 마지막 출정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정.말.로. 공요군을 이끌고 떠났더라면 말이다. 

 

  그런데 공요군의 출발이 임박한 때에 돌발상황이 터졌다.

  다름이 아니라, 우왕이 최영을 자기 곁에 붙들어 놓은 것이다...!  최영과 떨어지게 되면, 자신도 아버지 공민왕처럼 암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공민왕 시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최영은 제주도에 가서 '목호의 난(제주도의 몽골인 목동들과 그에 호응하는 제주도 사람들이 공민왕의 반원친명 외교정책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 을 진압하고 있었다.  '고려 최고의 무장인 최영이 공민왕 옆에 버티고 있었더라면, 감히 그 누구도 공민왕을 시해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라는 게 바로 우왕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최영이 자신의 곁을 떠나 요동으로 떠난다면, 자신 또한 공민왕처럼 살해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왕의 불안한 즉위 과정과 역시 불안한 권력 기반을 생각했을 때, 우왕이 그런 두려움을 가질만도 했다.  

 

  최영이 먼저 떠난 공요군에 합류하려고 우왕을 설득하던 중에, 공요군을 이끌고 압록강의 위화도까지 간 이성계가 회군을 요청하는 상소를 보낸다.

  고려의 군사력 대부분을 끌어모아 만든 공요군, 다시 말해서 사실상 고려군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군대가 왕명을 거부하려는 낌새를 보인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최영은 서둘러 위화도로 가서 상황을 수습하려 한다.

  하지만 고려의 주력군이 조정의 명령을 따르려하지 않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우왕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래서 우왕은 최영을 보내 군부의 불온한 기운을 잠재우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최영에게 더욱 매달리며 자기 옆에서 한 발자국도 못 떨어지게 한다.  최영이 어떻게든 우왕을 설득하려 애쓰는 사이, 결국 공요군은 회군을 단행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당시 고려 군부와 조정에서 최영이란 인물이 차지하고 있던 엄청난 위상을 생각했을 때...

  만일 최영이 처음부터 공요군을 지휘했거나, 혹은 나중에라도 위화도로 가서 공요군을 설득하여 장악했더라면,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요동정벌의 승패를 떠나서, 어쩌면 위화도 회군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위화도 회군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들, 고려왕조의 멸망도 막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성계가 이끌고 온 공요군의 습격으로 개경 안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고...

(동영상으로는 상당히 스펙터클 했는데, 작은 사진으로 보니 그 박진감이 별로 살아나지 않는... ㅠ.ㅠ)

 

 

  최영의 개성 방어군과 이성계의 공요군 사이에 벌어진 개성 시가전은 정말 굉장했다...!

  지금까지 여러 사극을 봤지만, 이 만큼의 전투장면은 본 적이 없다.  어지간한 사극의 전투장면에서는, 군사들이 싸우는 부분은 짤막하게 몇 번 보여주고 몇몇 중요한 장군들의 활약 위주로 나간다. (그래야 단역배우들 숫자를 대폭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테니까... -.-;;)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수백명은 되어 보이는 군사들의 전투 장면을 길게, 그리고 헬리캠을 이용해서 공중에서의 시각으로 넓게 보여준다.

  앞으로 다른 사극을 만들 제작진들에게, 이 전투장면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다.  어지간히 애를 써서 만들어봤자 "에이~~ 전에 했던 정도전에 나온 전투장면만 못 하네." 식의 평가를 받기 쉬울테니 말이다.

 

 

  ◎ 능력은 있으나 위험을 감지 못 한 최영 / 위험은 감지했으나 능력을 갖추지 못 한 우왕

 

  이성계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최영과 우왕, 이 두 사람이 이성계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 드라마에서 최영은 공요군이 출정하기 전에 이성계를 축출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성계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점을 미리 감지하지 못 했다.  반대로 우왕은 이성계에 대해 진작부터 강한 경계심과 거부감을 품고 있었지만, 이성계를 쳐낼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원래 모든 것을 다 갖춘 이는 없고, 무언가 하나를 갖추면 다른 하나는 갖추지 못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영과 우왕 모두 이성계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하나씩을 갖추지 못 해, 결국 두 사람이 같이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되었다는 점은 참 얄궂은 일이다.

 

 

결국 개경 시가전은 이성계 측의 승리로 끝나고, 고려왕조의 멸망도 돌이킬 수 없게 되는... 

 

 

  최영은 이성계가 두 번이나 회군 요청을 한 것을 괘씸하게 생각하면서도, 이성계란 사람에 대한 믿음은 거두지 않는다.

  먼저번에 올린 첫 번째 정도전 감상문에도 썼다시피, 최영은 뛰어난 무장이며 청렴결백한 관료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복잡미묘한 심리와 정치의 생리에 대해서는 어두운 편이다.  ☞ 정도전(1~23회) - 오래간만에 보는 수준 높은 정통사극(http://blog.daum.net/jha7791/15791078)

  요동정벌에 반대했던 이성계를 공요군의 주요 지휘관으로 임명했다는 것부터가, 최영의 정치적 패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성계가 당시 아무리 유능한 무장이었다고는 해도, 결국에는 그 유명한 사불가론(혹은 사대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정벌을 완강히 반대했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공요군의 주요 지휘관 자리에 앉혀놓았으니, 공요군은 처음부터 반란군으로 변할 가능성을 안고 출정한 셈이다. 

 

  어쩌면, 최영 스스로가 사리사욕이 없고 융통성 없을만큼 꼿꼿한 성격이라, 타인의 야심에 민감하지 못 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결국, 자신의 사고의 틀 안에서 타인이나 세상만사를 판단하기 마련이다.  평생을 나라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전장을 누비며 살아온 최영으로서는, 자신처럼 고려의 신하이며 전우이기도 한 이성계가 군사정변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게 아닐런지...  엄청난 권세를 누리며 사리사욕을 채웠던 이인임조차, 감히 군사정변을 꾀하지는 못 했다.  그러니 자신과 함께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웠던 전우이며 아들 같이 아끼는 후배이기도 한 이성계가, 설마하니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던 듯하다.    

  최영은 파국을 맞은 상황에서야, 과거에 이인임이 이성계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경고했던 것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내 진즉 이인임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 이런 천추의 한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뼈아프게 내지르며...

 

 

  그런데 최영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하기만 한 우왕은, 의외로 이성계를 제대로 꿰뚫어봤다. 

  우왕은 과거 명덕태후와 이인임이 이성계를 바라봤던 것과 비슷한 시선으로 이성계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성계를 굳게 믿는 최영에게 답답함을 토로한다.  "대체 장인(최영)께서는 어찌 그리 이성계를 믿는 것입니까?  원나라에서 귀화한 부원배의 후손입니다!  광평군(이인임)을 제거하기 위해 몇 년을 그 당여로 위장했던 전력도 있잖습니까?  이성계는 결코 믿을 자가 못 됩니다."

  우왕은 임금으로서도 무능했고, 한 개인으로서도 행실이 엉망인 인물이다.  하지만 살벌한 환경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사람 보는 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에게 해를 끼칠 인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눈' 은 상당히 높다.

 

  드라마 속 우왕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타인에 대한 의심으로 잔뜩 뭉쳐있어서,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는 매우 민감하다.

  우왕은 가족 누구에게서도 정을 받지 못 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 반야와는 어린 시절에 생이별했고(반야는 이 드라마에 아예 등장하지도 않음.), 아버지 공민왕은 죽은 노국공주만 생각하며 어린 아들에게 별 관심을 안 준 것으로 보이며, 할머니 명덕태후는 우왕이 신돈의 자식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우왕을 냉랭히 대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드디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나 싶더니, 그 아버지가 갑자기 살해당했다..!  그 후로 10살의 나이에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왕위에 올라, 권신 이인임에게 휘둘리게 되었다.  게다가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출생을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열등감과 모멸감을 곱씹으며 자라야 했다.

  이쯤 되면 한 인간으로서나,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나, 제 구실을 하는 것이 더 특이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왕은 의혹에 쌓인 자신의 혈통과 불안정한 권력 기반 때문에, 자신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오로지 생존본능 하나만 키웠던 듯하다.  그래서 우왕은 이성계가 위험인물이라는 것을 논리적인 판단이 아닌, 그저 본능으로 알아챘던 것 같다.

 

  문제는, 우왕이 이성계의 위험성은 충분히 느꼈지만, 그 위험성을 제거할 생각은 못 한 채 그저 불안해하기만 했다는 점이다. 

  우왕은 이성계를 두려워하고 의심하면서도, 이성계를 공요군에서 배제시키자고 최영에게 적극적으로 제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영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공요군을 진정시키겠다며 떠나려 할 때에는, 오히려 최영의 발목을 잡기까지 했다.

  그렇게 두려움에 질려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하지 못 한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스스로의 왕위와 목숨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우왕이 죽고 몇 년 되지 않아 500년 가까운 세월을 이어온 고려왕조가 최후를 맞게 되었으니 말이다.

 

 

 

2. 신진사대부의 분열 / 역성혁명을 추구하면서 괴물로 변한 정도전

 

 

  ◎ 전제개혁 - 갈라서는 스승과 제자

 

  우왕이 사실상 폐위된 후, 요동정벌과 회군 문제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이었던 이들이 반목하기 시작한다.

  먼저  위화도 회군에서는 뜻을 함께 했던 군부가, 이성계가 이끄는 무리와 조민수가 이끄는 무리로 갈린다.  그리고 조정의 신진사대부 역시, 이색이 이끄는 온건파와 정도전이 이끄는 강경파로 나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조민수와 이색이 손을 잡게 된다.  그리고 다른 왕족을 다음 왕으로 옹립해야 한다는 이성계 일파에 맞서서,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창왕이 즉위해서, 첫 번째 승부는 이성계 일파의 패배로 끝난다.

 

 

  이성계 일파와 반 이성계 일파의 두 번째 승부이며 결정적인 승부는, 바로 전제개혁 문제에 대한 것이다.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전제개혁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는데, 개혁의 구체적인 수준을 두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부딪치게 된다.

  이색이 이끄는 온건파는 토지 소유자를 명확하게 해서, 토지겸병(한 토지에 대해 권세 있는 여러 사람이 불법적으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농민은 이중 삼중으로 소작료를 바쳐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됨.)을 막자고 한다. (1전1주제, 一田一主制)  권력자들이 농민을 착취하는 일만 막아도, 농민들의 삶이 훨씬 윤택해질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정도전이 이끄는 강경파는 20세기 공산주의 국가에서 실행한 수준의 엄청난 농지개혁안을 주장한다.  즉, 고려의 모든 사전(개인이 소유한 토지)을 혁파해서 몰수한 후, 그 토지를 농민들에게 가족 숫자대로 공평히 나누어 줄 것을 주장한 것이다. (계민수전, 計民授田)  당시 고려 사회의 모순이 너무 심각해서, 백성들이 착취당하는 것을 막는 것 정도로는 민생고를 해결할 수 없으니, 토지제도를 아예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실제로 당시 강경파가 조정에 내놓았던 개혁안은, 정도전의 계민수전안이 아니라 조준의 토지 개혁안이었다.

  정도전 등의 강경파는, 온건파에게 나라를 망치는 과격한 무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과격한 무리' 가 보기에도 정도전의 계민수전안은 지나치게 과격해서, '한결 덜 과격한' 조준의 개혁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계민수전보다는 온건한 조준의 개혁안만으로도 고려 조정은 난리가 났고, 결국에는 조준의 개혁안에서 더 후퇴한 '과전법' 으로 결론이 났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정도전의 계민수전안과 비슷한 수준의 토지 개혁이 여러 나라에서 실현되었을만큼, 계민수전안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섰던 것이었다.

  드라마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또한 정도전의 파격적인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현대인이 보기에도 급진적인 계민수전 카드를 쓴 것 같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정도전이 경천동지할 수준의 계민수전안을 내놓은 것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겠다는 순수한 의도 말고도, 장차 역성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판짜기의 목적도 있다.

  우선, 아군과 적군을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서다.  즉, 계민수전안에 대해서 조정 신하들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보고, 역성혁명을 위해 같은 편으로 포섭할만한 인물과 역성혁명을 위해 제거해야 할 인물을 확인하려 한 것이다.

  또한, 역성혁명을 위해 민심을 끌어모으고, 정적인 온건파를 고립시키기 위해서다.  정도전 스스로도 당시 상황에서는 계민수전을 관철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 강경파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나눠주려 애쓴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줘서, 민심을 얻으려는 것이다.  동시에 온건파는 백성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훼방놓은 이기적인 무리가 되는 셈이니, 백성들의 지지를 잃게 되는 것이다. 

 

 

스승 이색, 오랜 시간 함께한 동문들과 인연을 끊은 정도전. 

 

 

  전제개혁 문제는, 스승-제자 사이였던 이색과 정도전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계민수전안에 대해 반대하여 정도전의 적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바로 정도전의 스승과 동문들이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한 말처럼,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출신은 제각각이다.

  정도전의 스승 이색처럼 권문세족 출신이기도 한 유학자들은, 과격하고 근본적인 개혁에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동서고금 어떤 사회에서나, 기득권층은 결과를 알 수 없는 급격한 개혁보다는 다소의 모순이 있어도 사회가 안정되는 쪽을 중요시하는 법이다.  또한 권문세족 대부분이 대지주이기 때문에, 급격한 토지개혁이 이루어지면 잃게 되는 것이 많다.

  반대로 정도전이 이끄는 이성계 일파에 속한 유학자들은, 지방의 향리 집안 또는 신흥무인 집안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  권문세족이 장악한 고려에서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고려 사회를 뜯어고치겠다는 의욕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애초에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개혁으로 인해 잃을 것도 적어서, 과격한 개혁에 선뜻 찬성할 수 있었다. 

 

이색 : "똑똑히 들어두거라.  정치는 부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정도전 : "스승님께서는 지키십시오!  소생은 부술 것입니다!  권문세가로서 스승님께서 전국에 소유하신 농장들과 함께 말입니다!
이색 : "가거라!  너와 나의 사제의 연은 이것으로 끝이다!"
정도전 : "바라던 바입니다."

 

  스승 및 동문들과 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일은, 정도전에게 심적 타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평판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시대의 스승-제자는 지금보다 훨씬 중요한 관계였다.  더구나 유학을 공부한 이들 사이에서 스승-제자는 부모-자식만큼이나 절대적인 관계였다.  아무리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스승의 뜻을 어기고 스승과 절연까지 한 일은, 정도전의 도덕적 평판에 큰 타격을 줬다. 

 

  또한 스승과 동문들과 의절한 일은, 아래 나오는대로 정도전이 정치적 괴물로 변하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정도전이 귀양살이를 통해, 이미 현실적이고 냉철한 성격으로 변하기는 했다.  그래도 위화도 회군 전에는, 그런 성격의 변화가 어떤 현실적인 영향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그 동안 쭉 야인생활을 했으니 현실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능력이 없었음.)

  하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후원으로 높은 관직에 올라 본격적으로 역성혁명을 위한 토대를 닦으면서, 자신의 대의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철저히 숙청하는 잔인함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특별한 교분이 없는 조민수야 말할 것도 없고, 오랜 세월 동안 동고동락했던 스승이나 동문들마저도 숙청하게 된다.  시쳇말로 흑화한 것이다.     
 

 

  ◎ 이인임의 저주 - 첫 번째 괴물과 두 번째 괴물의 마지막 만남

 

  이인임이 죽을 무렵 정도전이 찾아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상의 설정이다.

  하지만 정도전이란 캐릭터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아주 적절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 죽어가는 몸으로, 그 무서운 통찰력을 이용해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퍼붓는 이인임.

 

 

  정도전은 은원이 확실한 성격이라, 작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았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뒤끝 작렬하는 성격... -.-;;)

  드라마 속 이 사건은 정도전의 그러한 잔인하고 집요한 면을 잘 보여준다.  정도전이 이인임으로 인해 10년 가까이 온갖 고생하며 살았다고는 하지만, 이제 이인임은 권세도 재물도 다 잃고 머지않아 죽을 초라한 늙은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도전은 굳이 이인임을 찾아가 차가운 비웃음과 함께 속삭인다.  "알려드릴 것이 있어 왔소이다.  저승 가는 길조차 마음 편히 가시면 아니 되지 않습니까?  당신의 시신이 한 줌의 흙이 되기 전에 새 왕조가 들어설 것이오.  저승에서나마 당신의 고려가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시오." 라고...

 

  하지만 이인임 역시 정도전 못지 않은 독종이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 중에서, 정도전의 비범함과 위험성을 제일 먼저 알아챘던 사람이 바로 이인임이다.  그런 무서운 통찰력을 지닌 이인임이기에, 이인임이 정도전에게 퍼붓는 저주는 그저 원한 맺힌 악담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이인임의 저주는 장차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예언이 되는 것이다.

 

정도전 : "당신 때문에 유자의 몸으로 역성혁명을 꿈꾸는 괴물이 되었소이다.  그것만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인임 : "그대는 아직 괴물이 아니오.  지금은 이상향을 꿈꾸는 순진한 선비일 뿐!  허나 이제 진짜 괴물이 되겠지.  정치에서 괴물은 과도한 이상과 권력이 합쳐질 때 탄생되는 것이니까!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외다.  내 저승에서나마 똑똑히 보겠소이다, 삼봉."

 

  자신의 욕심을 위해 고려를 썩어문드러지게 했던 이인임이 첫 번째 괴물이었다면,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대의를 위해 인간미를 잃어가게 되는 정도전은 두 번째 괴물인 셈이다.  

  두 번째 괴물 정도전은 첫 번째 괴물 이인임이 과거에 자신을 숙청하는데 썼던 방식으로, 스승이고 동문이었던 온건파를 쳐내기 시작한다.  누구는 모친의 3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과거 시험관 직책을 맡았다는 이유로, 또 누구는 왜구에게 잡혀갔다가 귀환한 왕족에 대해 사적인 자리에서 뒷담화를 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온갖 일을 꼬투리 삼아, 동문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을 가한다. 

 

 

(위) 정도전이 동문들을 숙청하는 것을 어째서 말리지 않느냐며 이성계에게 따지는 정몽주.

(아래) 정도전이 이인임을 닮아가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하륜.

 

 

  훗날 이방원과 손을 잡게 되는 하륜도, 정도전이 젊은 시절의 올곧고 순수했던 모습을 잃고 이인임처럼 변했음을 지적한다.

  정도전도 결국에는 사람인데, 예전에 함께 공부하고 정을 나누었던 동문들에게 없는 죄를 자백하라며 고문하는 일이 마음 편하지는 않다.  그래서 일을 빨리 끝낼 생각으로, 옥에 갇힌 동문들을 찾아가서 그만 혐의를 인정하라고 권한다.  혐의를 인정하면 유배형 정도로 끝내주겠다고 회유하면서.

  이 때 하륜이 정도전에게 말한다.  정도전이 이인임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고...  결코 빈정대거나 분노하는 말투가 아니라, 오히려 딱하다는 느낌마저 묻어나오는 말투다.  "그간 누누이 느껴온 것이지만, 사형은 참 많이 변하셨습니다.  갈수록 누구를 닮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사형이 그토록 싫어했던 사람 말입니다.  알고는 계십니까?"  말싸움으로는 결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정도전이, 이 때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표정만 굳힐 뿐이다.

 

 

 

3. 폐가입진(廢假立眞) - 정몽주의 고육지책

 

 

  ◎ 정몽주 - 고려말 최고의 충신? 혹은 기회주의자?

 

  폐가입진이란 '가짜를 폐하고(廢假) 진짜를 세운다(立眞)' 는 뜻이다.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의 아들이라는 설에서 나온 주장이다.  만일 우왕이 정말로 신돈의 아들이라면, 우왕의 아들인 창왕 역시 신돈의 손자가 된다.  그렇다면 신씨인 창왕은 왕씨의 나라 고려에서 왕이 될 자격이 없는데도 왕위에 앉아있는 셈이 된다.  그러니 가짜 왕인 창왕을 폐하고, 왕씨 혈통이 확실한 사람을 진짜 왕으로 옹립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고려왕조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 것으로 알려진 정몽주가, 뜻밖에도 폐가입진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상당수 사람들이, 조선 개국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다' 라고 주장한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조선 개국 세력 뿐 아니라, 망해가는 고려왕조에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친 정몽주까지,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후손이라며 폐가입진을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정몽주가 충신의 표본으로 과대평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즉, 훗날 정몽주의 학풍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사림들이, 자신들의 사상적 조상이 되는 정몽주를 고결한 인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몽주가 상황에 따라서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했던 기회주의자 아니었냐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있다. 

 

  하지만 정도전이 폐가입진을 주장한 것을 고육지책으로 보는 견해도 유력하다.

  정몽주가 고려왕조 그 자체를 존속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우왕과 창왕을 버렸다는 것이다.  즉,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이 견해를 택해서, 고려를 위해 신하의 몸으로 자신의 왕을 희생시켜야 하는 정몽주의 고뇌를 생생히 그려냈다.

 

 

자신의 손으로 창왕을 가짜 왕으로 몰아 폐위시키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정몽주.

그런 정몽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복잡한 표정의 정도전.

 

 

  이성계 일파는 이제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고, 창왕이 이성계에게 선위하는 형식으로 무혈 역성혁명을 성사시키려 한다.

  흥국사에서 이 일을 논의하는 모임을 열었는데, 이성계와 정도전이 그 모임에 정몽주도 초청한다.  하지만 정몽주가 그 자리에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성계와 정도전은 물론이고 그 모임에 참석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몽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의외의 상황에 놀라면서도 혹시나 정몽주가 같은 편이 되려고 왔나 하는 기대의 눈빛을 보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정몽주가 어떻게든 선위를 막을 생각으로 온 게 아닌가 하는 경계의 눈빛을 보인다.

 

  그런데 정몽주의 입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말이 나온다. 

  정몽주는 창왕이 이성계에게 선위한다는 데 찬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위를 반대하며 모두들 신하로서 창왕을 끝까지 잘 모셔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  아예 창왕을 폐위하자고 나선다!  그리고 창왕 대신 다른 고려 왕족을 왕위에 올리자고 한다. 

  정몽주는 우왕과 창왕이 모두 신씨라면서, 창왕이 애초에 정통성이 없는 가짜 왕인데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위를 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를 펼친다.  즉, 정도전과 이성계가 선위라는 방법을 택한 이유가 권력 승계의 정당성 때문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래서 창왕이 가짜 왕이라고 주장하여, 이성계가 창왕에게서 정당하게 선위받을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이성계 : "성씨를 지킨다는 게 선생한테는 목숨보다 더 귀하단 말이우까?"
정몽주 : "군왕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군왕의 성씨는 사람의 골수와 같은 것입니다.  왕씨가 망하면 고려가 망하는 것!  소생 고려 이외의 조국에서 일각이라도 숨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성계 : "이런 개떡 같은 나라가 그렇게도 좋수까?"
정몽주 : "못난 부모라고 외면하면, 그것을 어찌 자식이라고 하겠습니까?  못난 부모라서 더 애착이 가고 가슴이 아립니다."

 

 

"포은과 독대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소.  이 사람의 임금이 되고 싶다, 포은만큼은 내 신하로 만들고 싶다, 반드시..."

 

 

  아이러니하게도, 정몽주 때문에 선위 계획이 틀어진 일로, 이성계와 정도전은 오히려 정몽주에게 더 깊이 매료된다.

  원래도 두 사람은 정몽주를 무척 아껴서, 어떻게든 정몽주를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했다.  그런데 충성과 절개를 목숨처럼 여기는 정몽주가, 왕을 몰아내는 불충한 짓을 저질렀다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 쓰면서까지 고려를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정몽주의 그 엄청난 충성심과 희생정신을 보니, 정몽주란 인물이 더욱 더 욕심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계는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으면서도, 다른 고려왕족을 옹립하자는 정몽주의 의견에 순순히 찬성해준다.  정몽주를 같은 편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야망은 잠시 접어두고 정몽주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정몽주가 주장한 폐가입진은 다 꺼져가던 고려왕조의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고려 왕실 사람들에게는 배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왕실 최고 어른인 정비와 어린 창왕의 생모인 근비는, 정몽주에게 절절하게 배신감을 토로한다.  두 사람은 정몽주가 창왕을 위해 이성계를 잘 설득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정몽주가 갑자기 폐가입진의 명분을 내세우며 창왕 폐위에 앞장서고 나섰으니,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다.  더구나 우왕과 창왕이 신씨로 규정되어 버렸으니, 이제 두 왕이 비참한 운명으로 몰릴 것은 뻔한 일이다.

 

  정몽주는 정비와 근비 앞에서는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자손이라며 모진 소리를 내뱉지만, 막상 창왕이 끌려나가자 자책감으로 눈물을 쏟아낸다.

  항상 충성을 강조하던 정몽주로서는, 자신이 모시던 왕을 자신의 손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끔찍한 고통이다.  하지만 어리고 심약한 창왕을 앞세워서는, 도무지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맞서 고려를 지켜낼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을 모질게 먹고 창왕을 폐위시켰다.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한 말처럼, 그 날이 정몽주 인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다. 

 

 

  ◎ 우왕의 비참한 죽음 - 왕우(王禑)? 혹은 신우(辛禑)?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이 즉위한 직후, 우왕과 창왕 모두 죽임을 당한다.

  우왕 다음에 누구를 왕위에 올릴 것인가 하는 문제로 조정이 두 편으로 갈라졌을 때, 이색은 창왕을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 정도전이 겨우 아홉살 밖에 안 된 자질 없는 어린 아이를 옹립하려 하느냐고 따지자, 이색이 반문했다.  "군주의 자격에 있어, 적통보다 더 중요한 자질이 있다더냐?" 

  이색의 말처럼 왕조 시대에는 왕의 자격 중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적통이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혈통(왕족)과 명분(적장자로 태어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왕에게 세자 책봉을 받는 식으로 후계자로 인정받는 것)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왕이 될 수 없다.  혈통과 명분을 갖추지 못 한 자가 왕이 되면, 그것은 반역일 뿐이다.  그런데 우왕과 창왕 모두 신돈의 후손으로 몰렸으니,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폐가입진의 논리대로라면, 두 사람은 신씨이면서 감히 왕씨의 나라 고려의 임금 노릇을 했던 엄청난 죄인일 뿐인데...

 

 

광기 어린 태도로, 자신이 왕씨의 자손이라는 증거라며 화상자국을 내보이는 우왕.

 

 

  야사에서는, 우왕의 겨드랑이에 용의 비늘이 있었다고 한다.

  설화에 의하면,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조상 중에는 서해 용왕의 딸이 있다.  그래서 고려 왕족들은 모두 용왕의 후손으로 간주되었고, 몸에 용의 비늘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이성계 일파에게 신돈의 아들로 몰린 우왕은, 죽기 직전 사람들 앞에서 윗옷을 벗어 겨드랑이에 있는 용의 비늘을 보였다고 한다.  이 야사는 우왕이 왕씨가 맞는데도 억울하게 신씨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는 민심에서 나왔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이 야사를 좀 더 처절한 비극으로 각색해서 보여준다.

 

  그렇잖아도 어려서부터 신돈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짓눌려 살던 우왕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우왕이 요동정벌을 결정한 것도 그런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인 것으로 나온다.  처음에 최영이 요동정벌을 주장할 때만 해도, 우왕은 너무 무모한 짓이라며 망설였다.  그런데 최영이 "전하께서 이러시고도 공민대왕의 아드님이라 하실 수 있는 것이옵니까!  승하하신 선왕께서는 전하의 보령이었던 시절에, 매국노 기철 일파를 처단하고 원나라를 몰아냈사옵니다!" 라고 외치자, 그 말에 자극을 받아 요동정벌을 결심한다.

  최영 입장에서야, 요동정벌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우왕을 설득하기 위해 한 말이다.  하지만 우왕 입장에서는, 아버지 공민왕과 그런 식으로 비교당하면 출생의 의혹으로 인한 오랜 상처가 욱씬거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로 공민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요동정벌(동녕부 정벌)을 단행했던 공민왕처럼 자신도 요동정벌을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신돈의 아들이라고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식적으로 신돈의 아들로 찍혀버렸다. 

  그러니 우왕이 평생 동안 마음 속에 쌓아온 열등감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버린다.  광기에 휩싸인 우왕은 인두를 시뻘겋게 달구어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마구 지진다.  몸에 화상을 내어, 고려 왕족의 표식이라는 용의 비늘 비슷한 자국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온 자에게 그 화상 자국을 보이며, 자신은 신돈의 아들 신우가 아니라 공민왕의 아들 왕우라고 처절하게 외친다.

  사실, 우왕 역을 맡은 박진우라는 배우를 보면서, 표정 연기가 과장되었다는 생각을 내내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 인상적인 연기력을 펼쳤다.   

  

 

"내 성씨를 바꾸고 아비를 갈아치운 놈들!  그 놈들에게 서해 용왕의 저주가 내릴 것이야..."

 

 

  사실, 우왕을 죽이러 온 자들은 우왕이 왕씨인지 신씨인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 망해가는 왕씨의 고려왕조 대신 새로 떠오르는 이성계 일파 쪽에 섰을 그들은, 그저 우왕을 죽이라는 명령만 수행하면 그만일 뿐이다.  그래서 우왕의 광기 어린 몸부림 앞에서 애처로움을 느끼기 보다는, 끔찍한 화상 자국에 눈살을 찌푸리기만 한다.  그런 무심한 이들 앞에서 우왕은 필사적으로 외친다.  "봐라!  이것이 내가 왕씨라는 증거이니라!  이게 서왕 용왕의 후손들이 갖고 있다는 용의 비늘이니라!  봐라, 이게 왕씨의 징표다!  이래도 내가 신우 같으냐!  내가 신돈의 아들인 것 같느냔 말이다!" 

  그렇게 우왕은, 자신이 왕우인지 신우인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역사의 수수께끼를 남긴 채 비참하게 죽었다.

 

 

"포은, 나는 자네와 싸우고 싶지 않으이.  모르시겠는가?"

"어떤가?  이제 싸워볼 마음이 좀 생기시는가?"

 

 

  우왕과 창왕이 폐위되고 죽임을 당한 후, 정몽주는 그 전과 완전히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그 동안은 오랜 벗 정도전이 고려왕조에 대한 반역을 꾀한다는 사실에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정도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 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정도전은, 정몽주로 하여금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원인을 제공했다.  자신이 모시던 왕을 자신의 손으로 폐위시킨 마당에, 정몽주로서는 이제는 더 이상의 미련도 망설임도 없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을 정적으로 돌리고 싶어하지 않는 정도전의 멱살을 잡고 선전포고를 한다. 

 

  사실, 우리 모두 정도전과 정몽주의 운명이 어떻게 결말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탄탄한 드라마가 누구나 다 아는 그 결말을 어떤 식으로 전개해나갈지, 기대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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