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만신 - 무속과 현대사 / 씨네코드 선재 - 삼청동의 독립영화관

Lesley 2014. 3. 3. 00:01

 

  지난 주에, 조만간 개봉할 예정인 '만신' 시사회에 다녀왔다.

  사실, 내가 만신 시사회에 응모했는지 어땠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첨 소식 알리는 문자 받고서야 '아, 이 영화 시사회에도 응모했었지!' 하고 기억해냈다.  여기저기 다 응모하면 무언가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묻지마 응모' 를 했더니, 이런 일도 생긴다. ^^;;

 

 

 

 

  만신이라는 영화 제목을 봐도 알 수 있고, 위의 포스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무당을 소재로 한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속을 하늘 높이 띄어주거나 무속을 전도(?)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아직도 생존해 있는 '김금화' 라는 유명 무당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며, 우리나라의 복잡다난했던 현대사를 슬쩍 훑어보는 영화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김금화가 살았던 약 80년의 세월 동안, 무속에 대한 평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극과 극을 달렸다.  영화는 그런 우리의 현대사 속 무속을,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결합된 독특한 형식으로 담담히 서술한다.  

 

 

씨네코드 선재는 저 위풍당당한 건물의 지상이 아니라, 지하(사진 오른쪽 경비실 옆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음.)에 있음. ^^;;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하기 전에, 이 날 시사회가 열렸던 '씨네코드 선재' 에 대해 잠깐 쓰자면...

  서울 시내에 있는 독립영화관 중 씨네큐브는 여러 번 이용해봤고, 인디스페이스는 딱 한 번 가봤다.  하지만 씨네코드 선재는 씨네큐브나 인디스페이스만큼 교통편이 편리하지 않아서, 그런 영화관이 있는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야 처음으로 가봤다.

☞  광화문 인디스페이스(http://blog.daum.net/jha7791/15790968)

 

  씨네코드 선재의 위치는, 서울 강북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정독 도서관' 바로 맞은 편이다.

  전철을 이용할 경우,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가 덕성여고를 지나 좀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위에 썼듯이, 5호선 광화문역 근처에 있는 씨네큐브나 인디스페이스만큼 교통이 편리하지는 않다.  대신, 아기자기한 작은 음식점이나 카페, 각종 가게들이 즐비한 삼청동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물론 짐이 많은 사람 또는 불편한 신발을 신은 사람에게는, 전철역에서 제법 떨어진 위치가 짜증스러울 뿐이겠지만... ^^;;)  

 

 

영화 끝난 후 관객과의 시간을 가진 박찬경 감독. (오른쪽 남자)

 

 

  ◎ 영화는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독특하다.

  

  형식적으로는, 연출 방법이 다른 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먼저,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섞어놓았다.  다큐멘터리 부분은, 실존인물이며 이 영화 속 주인공이기도 한 '김금화' 가 직접 출연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픽션 부분은, 김새론(유년시절의 김금화), 류현경(내림굿을 받는 시기의 김금화), 문소리(그 후의 김금화) 등 배우들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다큐멘터리 부분과 픽션 부분이 번갈아가며 나오기도 하고, 아예 김금화와 배우들이 같은 장면에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 중간에 무속화를 이용한 연출이 여러 번 나온다.  예를 들면, 원래 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파도치는 바다, 바다 위의 배, 배 위의 사람들을 각각 따로 떼어내어 입체감을 주는 식으로 화면을 채우는데, 정말 독특하다.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 ^^;;)

  그리고 한국영화인데도 자막이 나오는 장면이 제법 된다.  주인공인 김금화가 황해도 출신이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 귀에는 선 황해도 사투리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김금화의 굿 장면에서는, 빠르게 읊조리는 사설이나 무가 때문에 더욱 알아듣기 힘들어서, 자막이 반드시 나온다.  제주도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 말고, 한국영화인데도 자막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

 

 

  내용적으로는, 무당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무당 그 자체만을 다루고 있지 않고 시대적 배경에 중점을 둔다.

 

  김금화라는 유명한 만신의 인생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시대적 배경인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를 훑는다.

  그리고 격동의 시대였던 우리 현대사의 여러 집권세력이 무속을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지도 보여준다.  80년이라는 세월은 김금화라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무척 길지만, 우리의 유구한 역사로 보자면 정말 짧은 기간이다. 그 80년의 세월 동안 무속에 대한 평가는 각 시대와 정권의 상황에 따라, 민간종교에서 미신으로, 다시 미신에서 전통문화로,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타듯이 요동쳤다.

 

  우선,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 때, 김금화가 처음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 전에는 무당이라고 천시당하기는 했어도, 최소한 목숨이 위태로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국군이나 인민군이나 모두 무당을 상대편의 스파이 취급하며 위협했다.

  결국 김금화는 고향 황해도를 떠나 바다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영화상에서는 정확한 이유가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알기로는, 공산주의를 앞세운 북쪽에서 무속에 대한 탄압이 거셌기 때문에, 한국전쟁 때 수많은 이북출신 무속인들이 월남했다고 한다.  남쪽이라고 무속인들 대접이 후했던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이라고 하기는 좀 우습지만, 이북 지역의 무속 관련 전통문화는, 정작 이북에서는 사장되다시피 했고 오히려 이남에서 어느 정도 맥을 잇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박정희 정권 때에는, 근대화와 경제 건설의 바람 때문에 무속인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먼저 정부 차원에서 새마을운동을 벌이면서, 우리 사회의 미신을 뿌리 뽑겠다는 명목으로 무속행위를 단속했다.  그래서 단속나온 경찰을 피해, 무속인들이 굿판 벌이다가 도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경제성장을 위해 서양의 문물을 급속히 받아들이면서 기독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외래종교인 기독교에게 민속신앙인 무속이 밀리는 일이 벌어졌다. 영화 속 상황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우상숭배를 막는다며 한창 굿하는 중에 찾아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

 

  전두환 정권 때에는, 그 전과는 다르게 무속의 위상이 높아지고 재평가 받게 된다.

  다만, 당시 정권이 순수하게 전통문화를 복원하자는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신군부라 불리우는 당시의 집권세력이, 박정희 정권과의 차별화 및 부족한 정통성을 보강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그 전까지는 낙후된 것으로 치부되던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데에 힘을 쏟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국풍 81' 라는 대규모 축제를 일으켜 무속을 비롯한 그 밖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일이었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박정희 시대에는 경찰과 기독교인들에게 쫓겨다녔던 김금화가 TV의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시대가 격동의 시대가 맞긴 맞는 모양임.  겨우 몇 년 사이에 미신의 앞잡이에서 전통문화의 전승자로 변신...! @.@)

 

 

 

  ◎ 진지한 영화 속, 의외의 웃음코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편이다.

  영화의 소재도 그렇고, 다큐멘터리 느낌 물씬 풍기는 것도 그렇고,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시사회 참석한 관객들이 한꺼번에 까르르 웃었던 장면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서해에서 하는 풍어제(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낚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비는 굿) 관련한 부분이다.

  연평도 해전과 천안함 사건 때문에 안전 문제가 우려되어, 풍어제가 몇 년 동안 중지되었던 모양이다.  김금화가 어떤 공직자에게 풍어제를 허가해줄 것을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금화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공직자가 그저 풍어제 허가업무 담당자인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그 남자 앞으로 '인천시장 송영길' 이라는 자막이 뜨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실, 특별히 우스운 장면이 아닌데도 나 역시 웃음이 터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

  차라리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처럼 모두가 다 얼굴을 아는 정치인이었다면, 관객들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성이 떨어지는'(?) 정치인이다 보니, 대부분의 관객이 그냥 이름 없는 공무원인가 보다 하며 무심히 보다가, 나름 중요한 인물이라고 드러난 순간 빵 터져버린 것 같다. ^^ 

 

  또 다른 하나는 김금화와 다른 무속인들이 한밤중에 굿을 벌이는 부분이다.

  목사와 그 목사를 따르는 여러 신자들이 굿판으로 우르르 몰려와 찬송가를 부르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또 웃음이 터져버렸다.  인천시장이 등장한 장면이 좀 뜻밖이라 웃음이 나왔다면, 이 장면은 너무 뻔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던 듯하다.

  사실, 일부 과격한 기독교 신자들이 남이야 어떻게 쳐다보든 말든 아무 장소에서나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것은, 굿판이 아니더라도 시내 또는 전철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아마도 자신들은 무척 진지하게 하는 행동이겠지만, 종교가 없는 이들 또는 타종교를 믿는 이들 눈에는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하는 광경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하나의 정형화된 요소, 즉 클리셰가 되어 버렸을 정도니...

 

 

 

  ◎ 감독과의 대화 시간

 

  영화가 끝난 후, 감독이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또 관객들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이 104분짜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들인 제작기간이, 무려 3년이라고 한다...! @.@  박찬경 감독은 그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촬영한 것을 되도록 많이 살리고 싶어서, 처음에는 3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영화를 개봉할 생각이 있긴 한거냐?" 는 말을 듣고, 104분짜리로 만들었다고... ^^;;  그래서 감독 스스로는 꼭 넣고 싶었지만 삭제할 수 밖에 없었던 장면에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그리고 "굿과 연기는 많이 비슷한 면이 있다." 는 감독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굿에 대해서는,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한국민속문화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배운 적이 있었다.  굿에는 제의적인 요소 뿐 아니라 축제 비슷한 오락적인 요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오락적인 요소' 라는 부분에 대해 기계적으로만 배웠을 뿐, 크게 실감하지는 못 했다.  왜냐 하면 굿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전설의 고향' 류의 전설을 소재로 하는 사극 또는 궁중암투를 소재로 하는 사극 속에 나오는 굿 장면이기 때문이다.  즉, 굿이라고 하면,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해서라든지 큰 재난을 없애기 위해서라든지 하는 식으로 상당히 무겁거나 섬칫한 분위기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 나오는 굿을 보면, 판소리 한 마당이 연상된다.  굿 참가자들끼리 미리 정해둔 대사를 주고 받는가 하면, 구경하는 사람들 반응을 살펴가며 즉흥적으로 떠올린 듯한 대사도 한다. (이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말하는 애드리브? ^^)  또 성적인 행위를 익살스럽고 과장된 몸짓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장구나 꽹과리를 치던 이들과 굿을 하던 무당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굿에 제의적인 요소가 섞여있다는 점을 뺀다면, 연기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독이 무속을 억압했던 두 시대, 즉 일제시대와 새마을운동 시기를 비교한 것도 흥미로웠다.

  일제시대보다, 오히려 새마을운동 시기에 무속이 더 큰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은, 자신들의 전통신앙은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고 떠받들면서(소위 '신도' 라고 하는...), 한국의 전통신앙은 미신으로 치부하고 억압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식민지배하는 이민족의 정책이었기에, 우리 민족이 그에 대해 반감을 느낀 탓에 그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오히려 이민족인 일본보다 더 철저히 무속을 억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학시절 한국민속문화 수업 시절에는, 성리학이 자리 잡은 조선시대와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시대를 거쳐 무속의 세가 많이 꺾였다고 배웠다.  그런데 오히려 새마을운동이 무속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는 감독의 견해는, 나로서는 무척 신선했다.   

 

 

 

  ◎ 문소리와 영화 '나탈리' 관련 사건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공교롭게도 이 영화 주연 중 한 명인 '문소리' 관련 기사를 스마트폰을 통해 읽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인터넷에 '문소리 섹스 동영상' 이라는 이름으로 동영상을 유포하고 있어서, 문소리 측에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이, 그 동영상은 '나탈리' 라고 하는 영화 속의 베드신이라고 한다. -.-;;  즉, 어디까지나 실제 상황이 아닌 영화 속 장면일 뿐이고,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 동영상에 나오는 여자는 문소리가 아닌 다른 여자 배우라는 점이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별 사람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버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더러운 방법으로 멀쩡한 사람에게 치욕감 줘가며 돈을 벌고 싶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