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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견환전(後宮甄嬛傳) - 모두가 피해자이며 가해자였다.

Lesley 2014. 2. 23. 00:01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새해 첫달 초순까지 약 2주일 동안, '후궁견환전(後宮甄嬛傳)' 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열심히 몰아봤다.

  나로서는 몇 년만에 본 중국 드라마인데, 2011년에 중국에서 방영할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TV, 유튜브, 다운로드 등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 드라마를 즐긴 이들이 제법 있다. (영어자막 깔린 유튜브 영상으로 76회분을 다 봤다는 용자도 있음!  귀로는 중국어, 눈으로는 영어! -0-;;)


  우리나라 드라마로 치면 '여인천하' 에 해당하는 궁중 여인들의 암투극이다. (단, 여인천하보다 훨씬 짜임새 있음.)

  그런데 여인천하에 비해서 훨씬 많은 후궁이 등장하는 통에 초반에는 누가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다. (중국이 인구가 정말 많기는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  그런데 그 많은 후궁들의 사연이 그물의 씨줄날줄처럼 짜임새 있게 연결되고, 등장인물의 성격이 모두 입체적이며 개성이 뚜렷하다.  또한 드라마 곳곳에 복선과 반전이 적절히 놓여있어서, 궁중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권모술수가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는 게 일품이다.   

 

 

왼쪽부터 화비, 심미장, 견환(주인공), 안릉용, 황후.

(그 밖에 비중 있는 후궁이 십여 명, 몇 회만 나오는 후궁이 대여섯 명임. 즉, 여자가 떼로 나옴...! -.-;;)

 

 

 

1. 대략적인 내용

 

 

  청나라 옹정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76회짜리(한 회당 40분 정도) 사극인데,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다만, 옹정제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는 해도, 역사상의 인물을 많이 변형했거나 또는 가상의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등 정통사극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 앞부분 : 주인공 견환의 입궁에서 출궁까지 (궁중여인들의 제1차 대전, 견환의 첫사랑)

 

  귀족 집안의 딸인 '견환' 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낸 '심미장'후궁 선발시험(?)에서 만나 친해진 '안릉용' 과 함께 후궁이 되어 입궁한다.

  이 조숙한 아가씨는 궁중의 삶이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으로는 삭막하고 무섭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에, 후궁으로 뽑히지 않기를 원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황제가 직접 견환을 뽑았다...!  나중에야 드러나지만 견환이 '순원황후'와 무척 닮았기 때문에, 순원황후가 세상을 뜬지 2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순원황후를 잊지 못 하는 황제의 눈에 든 것이다.

 

  순원황후는 황제가 즉위하기 전인 친왕 시절에 맞이했던 부인이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훗날 남편이 황제로 즉위한 후에 순원황후로 추증되었다.  황제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르고, 아무리 많은 후궁을 거느려도, 첫 부인인 순원황후를 잊지 못 한다.  얼핏 생각하면,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의 절절하고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같다.  하지만 황제가 순원황후를 잊지 못 하는 것은, 황제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견환을 비롯한 궁중 여인들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자세한 사연은 나중에 저 아래에서 설명하겠음.)  

 

  견환, 심미장, 안릉용 및 기타(!) 새로운 후궁들이 황후전에 처음으로 모인 날, 내명부 실세인 '화비' 가 등장한다.

  원래는 황후가 내명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지만, 말 그대로 원래 그렇다 뿐이지 실상은 그렇지 않다. -.-;;  실제로는 권세 있는 가문 출신이며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 하고 있는 화비가 내명부를 쥐락펴락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참(!) 후궁들과 신참(!) 후궁들이 황후전에서 상견례(?)를 끝낸 후, 화비가 신참내기 후궁 하나를 심하게 처벌해 불구로 만들어버린다.  겉으로는 내명부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 후궁이 줄서기에 너무 몰두해서 무심코 화비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보복성 처벌!)  게다가 새로 뽑힌 후궁 중에 황제의 총애를 받을만한 이가 여러 명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힘을 과시해서 잠재적 경쟁자들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경고성 처벌!) 

  견환은 그렇잖아도 후궁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화비의 잔인함을 보고 궁 생활의 살벌함에 질린 나머지, 병을 핑계로 황제와 동침하는 것을 피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예측불허라, 몇 번의 우연과 황제의 작업(?)이 이어져, 결국에는 견환과 황제가 이어진다.

  죽은 순원황후를 꼭 빼닮은데다가 고전문학에 해박하며 뛰어난 정치적 식견까지 갖춘 견환에게, 황제는 완전히 반해 버린다.  그래서 견환에게 '완완' 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준다.  문제는, 이 완완이 원래는 황제가 순원황후를 부르던 애칭이었다는 점이다. (이 황제란 사람 도대체... -.-;;)

  견환은 견환대로, 자신을 아껴주고 자신과 함께 문학과 음률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황제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황제를 사랑('love' 라는 뜻의 사랑이 아니라 '네 번째 남자(四郞)' 라는 뜻의 사랑임. ^^;;)이라고 불러서, 황제에게 더욱 총애를 받게 된다.  견환 입장에서는, 황제가 선대 황제의 네 번째 아들이라서, 자신에게 애칭을 붙여준 황제에게 자신도 그런 애칭을 붙여준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예전에 순원황후도 황제를 사랑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황제는 더욱 견환을 순원황후의 대용품 비슷하게 여기게 된다. -.-;;

 

 

  이 드라마 앞부분의 주요 스토리가 바로 '견환 대 화비' 의 일전이다...!

 

  화비는 그 동안 자신이 독차지했던 황제의 총애가 견환에게 쏠리자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내명부에서는 자신의 똘마니(?) 후궁들과 함께 견환 3총사(견환, 심미장, 안릉용)를 괴롭히고, 조정에서는 막강한 권력를 갖고 있는 오라버니에게 견환의 아버지를 공격하게 한다.  견환은 처음에는 총명함과 인내심으로 화비의 공세를 적당히 피한다.  하지만 화비의 괴롭힘 때문에 그만 첫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사실, 유산에는 다른 사연도 더 있지만, 패쓰~~!)

 

  첫아이를 유산한 일은 견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다.

  선량하고 순수한 견환은 입궁한 이래, 황제와의 사랑과 심미장 및 안릉용과의 우정에 만족하며 조용히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제는 화비에게 복수하겠다며 궁중암투에 발을 담그게 된다.  게다가 견환을 아끼면서도 여전히 화비 역시 아끼는 것 같았던 황제가, 사실은 화비 오라버니의 지나치게 강한 권력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견환은 황제에게 화비의 오라버니를 숙청할 계책을 귀띔해주면서, 자신은 화비의 참모 노릇을 하던 또 다른 후궁 '조귀인' 을 포섭해서 화비의 죄상을 전부 폭로하게 한다.

  결국, 화비의 친정은 몰락하고 화비는 유폐되었다가 자살한다.  이렇게 견환이 복수를 끝내고, 앞으로는 견환의 앞날에 찬란한 햇살만 비치겠구나 하는 순간에...

 

 

  '화비' 보다 더 무서운 적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바로 '황후' 다...! @.@

 

  알고 보니 황후야말로 내명부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다.

  황후는 화비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발톱을 숨기고 숨을 죽이며 살았다.  그저 '후궁들을 공평하고 자애롭게 대하는 국모' 의 모습과 '첩인 화비에게 눌려사는 가엾은 조강지처' 의 모습만 보이면서...  또한 화비를 견제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으로 견환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견환으로 하여금 화비를 쳐내게 하더니, 이제는 자신이 견환을 쳐내려 한다. (이것이야 말로, 이이제이...!)

 

  황후는 순원황후와 자매지간이라(이 사연도 나중에 저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여기에 또 황제의 막장스러운 과거가 있음.), 순원황후와 황제의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황제가 견환에게 완완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제가 견환을 견환 그대로가 아닌 순원황후의 그림자로 보고 있음을 간파한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견환과 황제 사이를 이간질한다.  황후의 계책에 말려든 황제는, 견환이 감히 순원황후와 맞먹으려 들었다고 오해하며 분노한다.  이 때에야 견환은 비로소 황제가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순원황후의 흔적을 찾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견환은 황제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을 지경이 된다.

  그러던 중 견환이 다시 임신했음이 밝혀져서, 황제는 견환을 다시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이제는 견환 쪽에서 황제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견환은 공주를 낳아, 평소 선량하고 경우 바르며 궁중암투에 휩쓸리지 않던 고참 후궁 '경빈' 에게 양육을 부탁한다.  그리고 자신은 출궁해서 절에서 불제자로 살기로 한다.

 

 

  ◎ 중간부분 : 견환의 출궁에서 재입궁까지 (견환의 두 번째 사랑)

 

  중간부분이 이 드라마에서 제일 재미없어서, 건너뛰어가며 봤다. -.-;;

  견환이 비록 화비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권모술수에 눈을 뜨기는 했어도 아직은 순수한 면이 더 많다.  그런 견환이 본격적으로 독하게 변하는 과정을 설명하려고, 이 중간부분의 사연을 넣은 것은 알겠다.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이다. 

  절에서 지내게 된 견환이 못된 비구니들에게 구박받으며 온갖 고생 다 하다가, 진작부터 견환에게 관심을 보이던 황제의 이복동생 '과군왕' 과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두 사람은 눈물의 이별을 하고, 견환은 다시 황제에게 돌아가게 된다. (황제는 이복자매를 번갈아가며 아내로 맞이했고, 견환은 이복형제를 번갈아가며 사랑하고, 이 커플 왜 이러나... -.-;;)

 

  이 중간부분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것은, 과군왕이란 인물이 드라마의 전체 분위기와 너무 동떨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 앞머리에 썼듯이, 이 드라마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펼치는 박진감 넘치는 권모술수를 다루고 있다.  즉, 등장인물들이나 사건들이나 모두 사실적이다. 

  그런데 견환이 인생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 때 따뜻하게 감싸준 과군왕은, 하이틴 로맨스소설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다. (한 마디로 '백마 탄 왕자님' -.-;;)  형의 여자였던 견환만 사랑하고, 견환을 위해서라면 황족이라는 지위도 재산도 다 버리고 이름 없는 촌부로 숨어 살 각오가 되어 있고, 결국 드라마 끝부분에서는 견환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사랑 밖에 난 몰라' 를 과군왕의 테마곡으로 정해줘야 할 판국이다. -.-;;

 

  어쨌거나 과군왕과의 사랑은 타이밍이 기막히게 어긋나버린 탓에 끝장나버리고, 이제 견환은 노회한 음모가로 변신한다.

  화비를 몰아낼 때도 권모술수를 쓰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는 화비가 견환의 아이를 유산시키고 견환의 친정을 몰락하게 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복' 이었다.  또한, 화비가 먼저 공격을 했기에, 견환은 어디까지나 '방어적인 차원' 에서 대응했다.  하지만 이제는 뱃속에 든 군왕의 아이들(쌍둥이)을 황제의 아이라고 속이는 엄청난 짓을 벌인다.

 

  그런 견환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 화장의 변화다.

  앞부분에서는 견환의 순수한 모습을 나타내주듯이 화장을 연하게 했는데, 이 중간부분을 거쳐서 재입궁하게 되면서 무척 진한 화장을 하게 된다.  앞부분에서는 본인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기에, 맨얼굴이 그대로 비치는 연한 화장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중간부분을 거쳐 성격과 생각이 크게 변화한 후에, 뒷부분에서는 남들에게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면 가식적인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얼굴에 가면을 쓰듯이 진한 화장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 뒷부분 : 견환의 재입궁에서 마지막까지 (궁중여인들의 제2차 대전, 최후의 승리자가 된 견환)

 

  이 드라마에서 뒷부분이 제일 흥미진진하다.

 

  우선, 견환이 뱃속의 아이들(남녀 쌍둥이)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음모가로 각성(!)했다.

  순수했던 예전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심미장에게나 보일 뿐이다.  겉으로는 여전히 황후에게 깎듯이 예의를 갖추고 안릉용을 여유있게 대하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을 무너뜨릴 틈을 호시탐탐 노린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원래 화비처럼 처음부터 적이었던 사람에게는 적대감만 느낄 뿐이지만, 황후와 안릉용처럼 친분을 나누다가 적으로 돌아선 사람에게는 적대감 뿐 아니라 배신감까지 더해져서 더 큰 원한을 품게 되는 법이니까...

 

  세 사람을 중심으로 한 궁중여인들간의 이런저런 음모와 기싸움이 다 흥미로웠지만, 견환이 낳은 아들(쌍둥이 중 하나)이 황제의 친자식이 맞는가 하는 의혹이 터지는 부분은 최고였다!

  물론 드라마 속 친자 감별법이라는 것은 정말 황당했다.  아버지와 아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피를 물 속에 넣어서, 피가 서로 섞이면 부자지간이 맞고 피가 섞이지 않으면 부자지간이 아니라니, 이 무슨... -.-;;  하지만 청나라 시대 사람들이 ABO식 혈액형과 그에 따른 혈액형 유전을 알았을 리 없으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

  후궁들이 견환편과 기귀인편(기귀인편의 배후세력은 황후)으로 나뉘어, 어지간한 법정 드라마 뺨 칠 수준으로 서로를 추궁하고 반박하는데, 살벌하면서도 감탄스러웠다. (특히 견환편의 경빈은 어찌나 말을 잘 하던지, 당장 대형 로펌에서 수석 변호사 노릇해도 될 정도...!)  그리고 소위 친자 감별법이라는 피검사 결과가 뒤집어질 때마다, 황제와 견환의 얼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은 상반된 표정이 극적으로 나타나는데, 드라마를 보는 내 몸이 다 긴장될 정도였다. ^^;;    

 

  그리고 새로 임신한 태아를 이용해서 황후를 몰락시키는 장면은, 이제 견환이 순수한 시절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 같았다.

  아무리 조만간 자연유산 될 수 밖에 없는 태아라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아이다.  그런데 어차피 유산될거라며, 차라리 시간을 맞춰 유산시켜 황후의 탓으로 돌리자는 계획이라니...!  처음 입궁했을 때, 아니, 출궁해서 온갖 고난을 다 겪던 시절만 해도, 견환이 그런 독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 맞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견환은 황후를 무너뜨린 후에 자신을 그렇게 변하게 한 황제와도 끝을 본다.

  다 죽어가는 황제에게, 자신이 낳은 쌍둥이와 심미장이 낳은 딸이 모두 황제의 핏줄이 아니라고 잔인하게 속삭인다.  그러나 막상 황제가 배신감에 치를 떨다 죽었을 때, 그 방을 나와 "황제께서 붕어하셨다!" 라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외친다.  견환에게 황제는 첫사랑이었지만 자신을 배신한 사람이고, 동시에 마지막 사랑인 과군왕을 죽음으로 몰아버린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게 애증으로 얽혀있던 황제와의 인연이 끝난다.

 

 

  황제가 세상을 뜬 후 견환이 다음 황제를 세우는데, 여기에서 견환의 정치인으로서의 모습 및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황제의 이복동생(돈친왕? 항친왕? 사람이 너무 많아서 헷갈림. ㅠ.ㅠ)은, 견환이 어린 친아들을 다음 황제로 즉위시켜 권력을 잡으려 할 것이라 의심한다. (아마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임.)

  하지만 견환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친아들 대신 양아들을 즉위시킨다. (이 양아들은 원래 황제와 어떤 궁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견환의 재입궁 때 견환의 신분세탁(?)을 위해 견환이 낳은 자식으로 처리되었음.)  그것도 모자라, 정작 자신의 친아들(사실은 황제의 핏줄이 아니라 과군왕의 핏줄인, 그 쌍둥이 중 한 아이)은 과군왕의 양자로 만든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양아들이 훌륭한 황제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점, 친아들이 황제가 되어 온갖 궁중 음모에 휘말리는 것을 꺼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탁월한 선택이다.

  일단, 국가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10살도 안 된 친아들보다는 이미 장성한데다가 영리하기까지 한 양아들을 즉위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

  더구나, 견환은 자신의 친아들을 죽은 과군왕의 양자로 입적시켜서 양아들의 잠재적 정적을 없애주기까지 한다...! (양아들에 대한 배려를 보면, 시쳇말로 견환이야말로 진정한 '대인배' 라 할 수 있음!)  황제는 생전에 여러 아들 중 견환의 친아들을 가장 아껴서, 그 아이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니 막 황제로 즉위한 양아들 입장에서는, 견환의 친아들인 이복동생이 좀 껄끄러울 수 밖에 없다.  당장이야 이복동생이 어려서 별 문제 없지만, 세월이 흘러 이복동생이 어른이 되면 황위를 둘러싼 골육상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견환은 친아들을 과군왕의 양자로 삼아 황위계승권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은근히 훗날의 일을 걱정하는 양아들을 안심시킨다. 

 

  또한 이것은 한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결정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두 남자에 대해, 예의와 도리를 다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자신의 친아들을 새 황제로 즉위시킬 것이다.  또 드라마 후반부에서 볼 수 있는 견환의 권력과 위상을 보면, 견환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다. 

  하지만 견환은 나중에는 미워했으나 한 때는 사랑했던 황제에게, 황제의 진.짜. 핏줄이 황제의 뒤를 이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물론, 황제가 생전에 그 아들이 미천한 궁녀 소생이라며 무관심하게 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참 얄궂은 일임.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과군왕에게도, 과군왕의 친아들을 돌려준 셈이 된다.  (원래 과군왕의 친아들인 아이를 과군왕의 양아들로 만드는 기묘한 형식을 취하긴했지만... ^^;;)

 

  그렇게 황실의 다음 세대 일을 정리한 후 견환이 지친 몸을 누이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2. 애매모호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

 

 

  이 드라마의 묘미는, 중심인물들 대부분이 '피해자' 이며 동시에 '가해자' 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주요 스토리는, 순진하고 낭만적인 성품을 지녔던 주인공 견환이 온갖 풍상을 겪으며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궁중여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궁중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인 이가 알고 보니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이나, 피해자가 그 상처로 인해 다시 가해자로 탈바꿈 하는 과정도, 만만찮게 흥미롭다.

 

 

(1) 화비

 

  화비는 이 드라마 앞부분에서 최고의 악역이다.

 

  화비는 황제가 즉위하기 전부터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게다가 친정이 원래도 쟁쟁한 집안이었는데, 오라버니가 황제 즉위에 큰 공을 세운데다가 여러 번 전쟁에 나가 연승을 거두기까지 했으니, 이제 친정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다.  그러니 원래도 오만방자한 성품이었는데, 이제는 황제 말고는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궁녀와 환관은 물론이고, 다른 후궁들, 심지어 화비보다 지위가 높은 황후조차, 화비 눈에는 모두 하찮은 존재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궁 안 사람들이 가문, 개인적 친분,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무리로 갈려있건만, 화비를 싫어한다는 점에서는 모두들 같다.  심지어 화비와 같은 무리인 조귀인까지도 사실은 화비를 싫어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렇게 모두에게 미움 받는 것도 대단한 능력인 듯... -.-;;)

 

  하지만 천하를 다 가진 것 같은 화비에게도 커다란 고민이 있으니, 오랜 시간 황제에게 총애를 받았건만 아이가 없다는 점이다. 

  사실, 황제가 즉위하기 전에 화비가 한 번 임신했는데 유산했고, 그 후로는 임신하지 못 했다.  화비의 오라버니는 자기들 남매의 부귀영화가 영원토록 이어젔으면 하는 욕심에서, 화비의 임신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화비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성격과는 별도로,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한 여인으로서 황제의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쨌거나 화비가 임신 문제로 울컥해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드물게 화비의 인간다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화비는 과거에 자신이 유산한 것이 선배(?) 후궁인  '단비'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단비가 가져온 탕약을 먹은 후 유산했으니 그런 의심을 할만도 하다.  그러니 그 불 같은 성미에 어디 가만히 있겠는가...  복수 차원에서 단비에게 영원히 불임이 되는 약을 강제로 퍼먹이고(-0-;;), 임신 문제로 울분이 치솟을 때마다 단비의 처소에 쳐들어가서 한바탕 뒤집어 놓는다.  단비는 단비대로 억울해하며, 언젠가는 화비에게 복수하겠노라 속으로 칼을 갈며 그 수모를 견딘다.

 

  그런데 화비의 유산 사건에는 한 가지 큰 비밀이 있다.

  알고 보니 단비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탕약을 화비에게 건내주었을 뿐이다.  그 탕약에 손을 써서 화비를 유산시킨 사람은 황제와 태후(황제의 생모)였다...! @.@ 

  황제가 온갖 말썽을 다 부리는 화비를 유독 총애한 것은, 화비란 여자에게 푹 빠져서가 아니었다.  선대 황제에게는 아들이 많아서 후계자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지금의 황제는,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재력도 대단한 화비 친정의 도움을 절실히 원했다.  즉, 황제는 화비 친정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는 '정략적인 목적' 에서, 화비를 가까이 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는 법이라, 화비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후계자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잖아도 화비 친정의 세력이 엄청나서 부담스러운데, 지금의 황제는 그 세력을 더 키워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황제는 어머니인 태후와 의논해서, 남몰래 화비를 유산시킨 것이다.  아직 황제가 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시절에, 자신이 황제가 된 이후의 상황을 미리 생각하며 공신들의 발호를 막을 계략을 꾸민 것이다.  이 황제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다 물리치고 승리자가 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여자 무진장 밝히는 호빵맨처럼 생긴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최종 보스급 인물이었음!)

  

  게다가 또 한 가지 엄청난 비밀...

  황제가 수많은 여인 중 오직 화비에게만 하사하는 특별한 향이 있다.  비단이니 장신구니 하는 것들이야 이 후궁 저 후궁 모두 하사받지만, 그 향은 오직 화비만이 하사받는다.  그러니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향을 화비가 특별한 총애를 받는 증거로 여긴다.  화비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서, 다른 후궁들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후궁들을 자기 처소에 집합(?)시킬 때마다 그 향을 엄청나게 피워댄다. (정작 다른 후궁들은 그 향이 너무 진해서, 화비 처소에 다녀오면 머리가 아프다고 투덜투덜... ^^;;)  

  그런데 알고 보니, 화비 전용인 그 향에는 불임(!)을 유발하는 성분이 잔뜩 섞여 있었다...!  과거에 황제와 태후가 화비를 유산시켰다지만, 화비가 아직 젊으니 다시 임신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임신할 때마다 계속 유산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예 임신 자체를 막으려고 '황제가 이렇게 너만을 사랑한다' 는 명분을 앞세워 그런 무서운 향을 하사한 것이다. -0-;;

 

  결국, 드라마 앞부분에서 모든 이에게 가해자였던 화비가, 황제와 태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피해자였다. 

  화비는 죽기 직전에야 자신이 황제에게 정략적으로 이용당했음을 깨닫는다.  견환의 폭로가 사실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차마 그 끔찍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과거를 회상하는 화비를 보면, 그 못된 화비가 처음으로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화비가 임신을 했을 때, 황제는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울적해 했다.  화비는, 황제가 태아를 너무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이미 두 아들(황후가 낳았으나 요절한 아들, 순원황후가 사산한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어서, 자신의 뱃속 아이도 잘못 될까봐 노심초사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황제에게 아무 걱정 말라고, 자신은 반드시 건강한 아들을 황제에게 낳아주겠다고 위로하기까지 했다. (이 일을 회상할 때 화비의 눈빛이라니...! ㅠ.ㅠ)

  그런데 알고 보니, 황제가 울적해 한 것은 화비 뱃속의 아이를 염려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핏줄이기도 한 그 아이를 없애려니 양심의 가책을 느낀 탓이었다. -.-;;  

 

  한 가지 덧붙이자면, 불임 문제에 있어서는 화비도 피해자지만, 그래도 제일 큰 피해자는 단비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화비에게 탕약을 전해줬다가, 화비의 손에 불임약 한 사발 강제로 마시게 되고, 그 후에도 툭하면 화비에게 온갖 행패 다 당하고... ㅠ.ㅠ  황제와 태후가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들의 음모 때문에 단비가 화비에게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미안해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다만, 두 사람은 그냥 미안해하기만 할 뿐, 단비의 억울함을 풀어줄 생각은 절대로 안 한다. -.-;; 

 

 

(2) 황후

 

  드라마 뒷부분 최고의 악당이었던 황후...!

 

  앞부분에서 중간부분으로 넘어가면서 황후의 실제 모습이 드러났을 때만 해도, 화비보다 황후가 더 사악하게 느껴졌다.

  화비는 차라리 대놓고 '나는 악당이오~~' 하고 떠벌리는 솔직함(?)이라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황후는 무슨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한 척을 하면서, 뒤로는 온갖 음모를 다 꾸몄다. 

  게다가, 화비는 스스로도 유산의 아픔을 겪어서인지, 다른 후궁이 임신하면 그 후궁을 질투하고 괴롭히기는 해도 태아를 해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해치지 않고 어른만 해쳤다고 해서 '그래도 네가 쟤보다 낫네~' 하는 것도 참 웃긴... -.-;;)  그런데 황후는 그렇지 않다.  황제에게 후궁이 그렇게 많은데도 자녀가 적었던 것은, 알고 보니 황후가 임신한 후궁들을 은밀하게 유산시킨 탓이었다. -0-;;

 

 

  하지만 이런 악랄한 황후에게도 나름 기막힌 사정이 있었으니...

 

  황후는, 황제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죽은 순원황후와 이복자매간이다.

  그리고 황제가 아직 친왕이었던 시절, 황제에게 처음 시집온 사람은 순원황후가 아니라 황후였다.  그런데 여기서 족보가 좀 복잡해 지는 것이, 황후와 순원황후는 황제의 어머니인 태후의 친정 조카딸이기도 하다.  태후가 친정의 부귀영화를 위해, 친정 조카딸 중에서 미래의 황후가 될 며느리를 고른 것이다.  그런데 태후가 보기에, 적출인 순원황후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 온갖 암투가 피어나는 내명부의 안주인 노릇은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서출이지만 '훨씬 덜 착한'(-.-;;) 지금의 황후를 며느리로 고른 것이다. 

  다만, 황후가 서출이기 때문에 일단은 정실 부인이 아닌 첩으로 삼았다.  황후가 막 시집왔을 때, 황제는 서로 영원히 사랑하자며 옥팔찌를 선물해주는가 하면 "아들을 낳으면 정실 부인으로 삼겠다." 는 약속까지 했다.  그래서 황후는 임신을 하게 되자, 태어나는 아이가 아들이기만 하면 정실 부인이 될 수 있을거라고 무척 기뻐했는데...

 

  임신한 동생을 돌봐주려고 온 언니 순원황후를 보고, 남편이 그만 한 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처형에게 반한 제부라니, 요즘 시대 같으면 막장 드라마... -.-;;)

  결국 황제는 황후와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황후의 언니인 순원황후를 정실 부인으로 맞이했다.  황후는 서출로 태어나 이런저런 설움을 겪으며 자랐기에 정실 부인 자리를 간절히 원했고, 또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남편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언니를 정실 부인으로 삼고서 언니에게 사랑을 쏟아붓자, 크게 상심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다고, 황후가 낳은 아들이 어린 나이에 죽어버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순원황후가 임신한 것이 밝혀졌다.  황후가 어린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슬퍼할 때, 황제는 사랑하는 순원황후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너무 기쁜 나머지 황후만큼 첫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결국 황제가 문제다, 황제가...!)

 

  결국 그 동안 쌓인 분노와 한이 이 일로 폭발해서, 황후가 언니 순원황후를 죽여버렸다...! @.@

  순원황후는 아이를 사산하고 죽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동생이 탕약에 안 좋은 약재를 섞었기 때문에 태아와 함께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순원황후가 동생의 음모를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무언가 눈치챘지만 본의 아니게 동생의 자리를 가로채게 된 것이 미안해서 그랬는지, 죽어가면서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떤 경우에라도 동생을 아끼고 보살펴달라고...

  그래서 황후는 자기 손으로 죽인 언니 덕분에 그토록 원했던 정실 부인이 되었고, 황제가 즉위한 후에는 황후까지 되었다.  언니 덕을 본 게 그것만이 아니다.  나중에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을 때 "언니가 저를 그렇게 아껴줬는데, 만일 언니가 살아있었다면 폐하께서 저를 이렇게 박대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라고 언니 타령을 해서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

 

  그런데 황후가 언니 순원황후를 죽인 일에 한 가지 반전이 있으니, 태후는 그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후는 친정의 부귀영화를 위해, 반드시 친정 핏줄이 황후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두 조카딸 겸 며느리 중 하나가 이미 죽어버린 마당에, 나머지 하나를 살인죄로 처벌한다면, 황후 자리는 다른 가문 출신의 여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황후의 죄를 뻔히 알면서도, 그 일을 덮어버렸다.  태후와 황후가 같은 가문 출신이라 그런지, 둘 다 지독하다. -.-;;

  그런데 선배격인 태후보다 후배격인 황후가 한 수 위다. (청출어람인가? -.-;;)  황후의 악행이 점점 심해지자, 태후가 대놓고 황후의 죄를 추궁하게 된다.  하지만 황후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보이기는커녕, '내가 망하면 당신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하는 우리 친정도 끝장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나를 도울 수 밖에 없다.' 는 요지의 말을 하며 싸늘한 미소를 띤다.  무서운 시어머니 겸 고모를 협박하는, 더 무서운 며느리 겸 조카딸이다. -.-;;

 

 

(3) 안릉용

 

  안릉용도 황후처럼 피해자가 가해자로 진화(?)한 경우에 속한다.

  다만, 황후처럼 가해자 노릇을 하더라도 화끈한(!) 가해자 노릇은 못 하고, 그냥 허접한(!) 가해자 노릇이나 하다가 허망하게 인생을 끝냈다는 점이 다르다.

 

  안릉용은 다른 후궁들과 다르게 시골의 하급 관리 집안 출신이다.

  그래서 후궁 선발시험(?) 때는 명문가 출신 처녀들에게, 후궁이 된 후에는 다른 후궁들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한다.  게다가 미모나 재주도 별로라서 황제의 눈에 띄지 못 해, 후궁 동기생(?)들이 차례로 황제와 밤을 보낸 후에도 혼자만 덩그라니 남아 더 무시당한다.

  어디 그 뿐인가...  어찌어찌 해서 안릉용도 황제의 침소에 들게 되었다.  그런데 지나치게 긴장해서 덜덜 떨자, 황제 딴에는 배려해준다고 "너를 강제로 취할 생각은 없으니 다음 기회에 하자" 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 일이 소문이 나서, 얄미운 화비 일당에게 '미개봉 반납'(!) 이라는 뒷담화까지 듣는 신세가 된다...! (자막 번역 누가 한거냐, 미개봉 반납이라니...! -0-;;)

 

  그래도 견환과 심미장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어 겨우 버텼는데, 그 견환과 심미장과 틀어져버린다...!

  안릉용이 견환과 심미장의 호의를 이상하게 오해하며 비비 꼬아 생각하다가, 황후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안릉용은 두 사람이 자신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그저 불쌍하게만 여기며, 자신들의 우월한 환경을 은근히 자랑할 마음에 이런저런 물건을 나눠준다고 분개하며 앙심을 품었다.

  하지만 황후야말로 안릉용을 동등한 존재로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기본적인 의리는 지켜야 하는 아랫사람 정도로도 보지 않았다.  그저 견환을 해치기 위한 '유용한 도구' 로만 취급했다.  안릉용은 황후의 지시대로 무리한 짓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해져 간다.  하지만 이제 궁 안에서 자기를 받아주는 이가 황후 밖에 없기 때문에, 황후가 자신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황후 옆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다 잃고서, 황후가 순원황후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암시를 견환에게 던지고, 살구씨를 잔뜩 먹는 특이한 방법으로 목숨을 끊는다. (살구씨를 과하게 먹으면 죽는다는 드라마 속 설정, 정말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걸까?)

 

 

  안릉용이 견환 및 심미장과 척을 지게 된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 원인은, 견환 및 심미장과의 관계가 너무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견환과 심미장의 사정이 훨씬 좋다 보니, 두 사람이 안릉용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안릉용도 처음에는 고마워했지만, 그 상황이 반복되자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정말 좋은 뜻에서 한 말인데 꼬아서 듣게 되고, 별 것 아닌 일에도 혼자 안 좋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차츰 견환과 심미장에게 억하심정을 품게 되고, 결국에는 황후의 편이 되어 두 사람을 해치는데 한몫 하게 된다.

  이런 안릉용의 심리적 갈등과 그에 따른 태도 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인간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발생해서 결코 오래 가지 못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사 안릉용이 견환 및 심미장에게 열등감을 품지 않았다 한들, 마지막까지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릉용과 두 사람 사이가 일방적인 것은, 물질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감정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두 사람이 안릉용과 친해진 것이, 그들끼리 성격이 잘 맞는다든지 어떤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서가 아니다.  안릉용이 다른 후궁 후보생(?)들에게 봉변을 당할 때, 견환이 나서서 도와줬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일방적이었음.)

  어린 시절부터 언니 동생 하며 함께 자란 견환과 심미장 사이에는, 많은 추억과 활발한 감정적 교류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과 안릉용 사이에는, 화비에게 찍혔다(!)는 점 빼고는 공통점이 없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안릉용과 잘 지내던 때조차, 안릉용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고 때때로 과격한 말을 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안릉용이 황후의 편이 되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견환과 심미장 쪽에서 안릉용의 어둡고 예민한 성격을 점점 버거워하며 멀리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원인은, 안릉용의 가정환경이 최악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안릉용네 친정은 콩가루 집안이고, 안릉용 아버지는 딸의 앞날에 걸림돌만 되는 인물이다.

  견환과 심미장의 친정은, 비록 화비의 친정 만큼 어마어마한 집안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후궁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무엇보다 부모가 딸자식 앞날을 걱정하며 알아서 잘 처신하는 사람들이라, 친정 식구들 때문에 속 터질 일은 없다.

  그에 비해, 안릉용의 아버지는 딸의 인생에 털끝만큼도 도움이 안 된다.  안릉용의 아버지는 원래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아내가 죽어라 자수를 놓아 팔아서 모아준 돈으로 하급 관리가 되었다. (즉, 벼슬자리를 돈 주고 샀음. -.-;;)  하지만 말단관리라도 되어서 좀 먹고 살만해지자, 젊은 첩을 몇 명이나 들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 시대가 원래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데...  문제는, 새로 들인 첩들과 함께, 자신을 위해 무리해가며 자수 놓느라 장님이 되다시피 한 늙은 조강지처를 구박했다는 점이다. (이런, 하이힐 뒷굽으로 밟아 죽일 놈을 보았나...!) 

 

  안릉용의 아버지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아내를 구박하는 것도 모자라, 딸의 인생까지 엉망으로 만든다.

  후궁이라고 다 같은 후궁이 아니다.  친정의 뒷받침이 어느 정도 있어야, 궁 안에서 기를 펴고 살 수 있고 황제에게 총애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안릉용의 아버지는 그런 지원을 해줄만한 형편도 아니면서, 자신의 출세를 위해 딸을 궁궐로 밀어넣었다.  그래서 안릉용은 허구헌 날 대단한 집안 출신 후궁들에게 굴욕을 겪으며 살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안릉용도,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런데 그 때마다 아버지란 사람은, 군수물자를 착복한다든지 어마어마한 양의 뇌물을 받는다든지 하는 대형사고를 친다.  그래서 안릉용은 힘들게 얻은 총애를 잃고,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져 발버둥치게 된다. (성공하려면 본인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위에 발목 잡아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음. -.-;;)

 

 

(4) 순원황후

 

  이 드라마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순원황후다.

 

  순원황후에 대해서는, 이 포스트 맨 윗부분과 황후 부분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워낙 중요한 인물이라 따로 항목을 빼서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순원황후는 이미 20년도 전에 세상을 뜬 사람이고, 하다못해 회상씬으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에서 그 존재감이 엄청나다.  황제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문제... -.-;;)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순원황후는 대충 다음과 같은 사람이었다.

  명문가 출신으로, 출중한 미모를 갖춘데다가, 양귀비의 경쟁자였던 매비가 만들었다는 경홍무라는 춤을 매비보다 더 잘 추었으며, 피리 연주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였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바느질 솜씨도 으뜸이었고, 화장하는 센스도 뛰어나서 눈썹을 멋지게 그리는 법도 발명(?)했으며, 마음씨까지 비단결 같아서 아랫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이쯤 되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질린다는 느낌이 드는... -.-;;)

 

 

  순원황후는 이토록 완벽한 나머지, 절대로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한다.

 

  우선, 황제가 지금까지도 순원황후와의 추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다.

  순원황후가 저 세상으로 떠나간지 20년이 지났건만, 황제는 여전히 순원황후가 만들어놓았던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 지경이니, 말 다 했다. -0-;;  그리고 견환이 황후의 음모로 순원황후의 대례복을 입었을 때, 황제는 "설사 모르고 입었어도 어쨌든 순원황후의 옷을 입은 것은 죄다!" 라고 했다.  그토록 총애했던 견환이고 일부러 입은 것도 아니건만 무슨 대역죄인 취급할 정도로, 황제에게 순원황후는 누구도 범접해서는 안 되는 여신 같은 존재다.

 

  후궁들도 순원황후에 대한 황제의 유별남을 잘 알기에, 황제 앞에서 순원황후 이야기가 나왔다 하면 난리도 아니다.

  "순원황후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크나큰 덕을 베푸셔서..." 라든지 "순원황후께서 경홍무를 추시면, 마치 하늘의 선녀가 하강한 듯 하여..." 식의 칭송을 입에 침이 마르게 늘어놓는다.  이게 정말 우스운 것이, 황제의 여인들 중에서 원로급(!)인 황후와 단비를 제외하면, 모두들 순원황후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  황후와 단비 이외의 내명부 여인들은 모두 순원황후가 세상을 뜬 후에야 입궁했기 때문이다.  본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해, 자기 눈으로 본 것마냥 낯 간지러운 칭송을 해야 하는 후궁들도 참 고생이 많다. -.-;;

 

  황후가 순원황후로 인해 겪은 일은(비록 순원황후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위의 황후 항목에 자세히 썼으니 패쓰~~!

 

  그리고 황후와는 달리 순원황후를 만난 적도 없으면서, 순원황후와 얽혀서 큰 피해를 본 사람이 바로 견환이다.

  견환이 황제를 황제 그 자체로 사랑했던데 비해, 황제는 순원황후와 빼어박은 듯한 견환에게서 순원황후의 모습을 찾아내려 애썼다.  견환이, 황제에게 자신은 순원황후의 대용품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견환과 황제의 사랑은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견환과 황제와의 관계에서는 순원황후라는 존재가 독이었지만, 견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약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견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충성을 바친 '근석' 이라는 시녀가 있다.  근석은 과거에 순원황후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서, 견환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순원황후와 닮은 견환에게 호감을 느꼈다.  물론, 두 사람이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특별한 관계가 된 주된 원인은, 함께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동지애와 우정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만남에서의 좋은 느낌이라는 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또한, 견환의 까마득한 선배(?) 후궁인 단비(화비를 유산시킨 범인으로 몰려서, 화비에게 억울하게 동네북 취급당했던 그 단비)도 그렇다.  후궁 중 유일하게 순원황후의 얼굴을 알고 있던 단비라서, 견환을 처음 봤을 때 놀란 빛을 감추지 못 했다.  단비는 순원황후와 닮은 견환이라면 황제의 총애가 지극할테니, 자신을 잡아먹지 못 해 안달인 화비를 무너뜨릴 수 있을거라 믿는다.  견환은 견환대로 자신이 화비의 음모에 걸려 어린 공주를 해치려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을 때, 몸도 안 좋은 단비가 나서서 도와준 것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화비와 황후에게 대항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이 화비에 대해 공동전선(?)을 펼치게 된 것에, 죽은 순원황후가 한몫 한 셈이다.

 

 

(5) 황제

 

  황제야말로 이 드라마의 최고 악당이며, 동시에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새로운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다채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황제도 견환만큼이나 드라마 내용 전개에 따라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가 막 시작했을 때에는, 그저 이 여자 저 여자 전전하는 뚱뚱한 아저씨로만 보였다. -.-;;  그런데 몇 회 지난 후에는, 조정에서는 공신들 틈바구니에서 황권을 확립하려고 애쓰고, 내명부에서는 후궁들간의 암투를 누르려 고심하는, 제법 진지하고 고뇌에 찬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결국, 이 황제의 진짜 모습은 '아내와 어머니라는 두 여자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 한 사람' 이었다...!

 

  순원황후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은 이미 위에서 여러 번 언급했으니, 패쓰~~!

 

 

  그런데 드라마 뒷부분을 보면, 황제 스스로는 깨닫지 못 했지만, 어느새 견환을 순원황후의 그림자가 아닌 견환 그대로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황제는 후궁들의 정조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다.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시대에는 황제 뿐 아니라 다른 남자들 역시, 자신들은 여건(?)만 된다면 외도를 즐겼으면서, 자신들의 처첩이 외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 했으니까...  더구나 황제는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이기에, 후궁들의 정조 문제는 황제의 권위와 직결된다.

  그래서 어떤 후궁의 경우, 황제 스스로도 그 후궁이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죽여버렸다.  황제의 아들 쪽에서 혼자 열을 내며 그 후궁을 쫓아다녔을 뿐 정작 후궁은 결백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황제 자신과 황실의 권위를 위해서 그 후궁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견환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신의 이복동생 과군왕과 관계가 있다는 심증을 굳히고도 어떠한 처벌도 없이 궁에 둔다.

  물론 그 후로 견환을 대하는 게 이전 같지는 않고, 전에는 후궁들을 찾아도 어느 정도 절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최음제 비슷한 약까지 복용해가며 '막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견환에게 분노하면서도 결코 견환을 버릴 수 없는 마음에서 나온 정신적 방황인 듯하다.

  황제는 근본적으로 무척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자신의 자존심과 권위만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여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중요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황후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 황후에게 임신한 순원황후를 잘 돌봐줄 것을 기대하는 무신경함을 보였다.  또한 화비에게 총애의 선물을 빙자하여 불임을 유발하는 향을 내리는 음흉함도 보였고...

  그런 황제가 과군왕은 죽이면서 견환은 죽이지 않았다는 점, 죽어가면서 옛날처럼 사랑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점 등을 보면, 무의식 중에 견환을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견환의 마음은 이미 떠나버렸다는 것... 역시 인생은 타이밍... -.-;;)

 

 

  순원황후 말고도, 황제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또 있으니, 바로 황제의 생모인 태후다.

 

  황제와 태후, 이 모자는 정치적으로는 손발이 척척 맞지만 사적으로는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의 태후는 선대 황제의 후궁이었다.  선대 황제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이 벌어졌을 때, 선대 황후에게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선대 황후의 친정에서 지금의 황제를 밀어줬다.  지금의 황제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즉위하게 된 데에는, 화비의 오라버니와 함께 선대 황후의 남동생 '융과다' 의 공이 제일 컸다.  그래서 황제는, 실제로는 자신과 혈연 관계가 없는 융과다를 외숙부라고 부르며 우대해줬다.    

  그런데 사실은, 황제가 융과다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저,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겨우 즉위한 상황이라 황권이 아직 탄탄하지 못 해서, 분노를 참고 있었을 뿐이다.  황제가 융과다에게 원한을 품은 이유는, 과거에 자신의 어머니인 태후와 융과다가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그 일로 황제가 태후를 오랜 시간 냉랭하게 대하다가, 최근에야 겨우 모자 관계가 회복된 상황이다. 

  마침내 화비의 친정을 몰락시켜 황권이 강해지자, 황제는 다음 목표물인 융과다를 체포해서 감금한다.  태후가 융과다를 선처해 줄 것을 부탁하지만, 황제는 차갑게 거절한다.  태후는 융과다를 구할 수 없음을 알고, 황제가 손을 쓰기 전에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독살해버린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황제가 순원황후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데 일조했던 것 같다.

  황제 입장에서는, 생전에 자신에게 충실했던 아내의 모습이 어머니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죽은 순원황후에게 매달리게 되었던 듯하다.  또한 세상 여자들을, 순원황후처럼 남편만을 끔찍히 생각하는 지고지순한 여자, 태후처럼 유부녀의 몸으로 다른 남자와 사통하는 여자, 그렇게 극단적인 두 가지 형태로만 나누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다만, 태후와 융과다의 관계에 대해 황제가 마지막까지 몰랐던 반전이 하나 있으니, 태후는 융과다에게 '애정' 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애증' 을 품고 있었다...! @.@ 

  태후와 융과다는 젊은 시절에 서로 사랑해서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그런데 태후가 선대 황제의 후궁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자 융과다는 선대 황제가 하늘색을 싫어한다면서, 하늘색 옷을 입고 면접(?)을 보면 후궁으로 뽑히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융과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대 황제의 처남이기에, 태후는 융과다가 선대 황제의 취향을 잘 알고 있겠거니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태후가 덜컥 후궁으로 뽑혀버렸다.  알고 보니 하늘색은 선대 황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었고, 융과다는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하늘색 옷을 입고 가라고 한 것이다. -.-;;  당시, 융과다의 누이인 선대 황후는 아들이 없는 탓에, 내명부의 세력다툼에서 밀리고 있었다.  그러자 융과다의 가문에서는 선대 황후 쪽에 힘을 보태줄만한 사람을 후궁으로 집어넣기로 했는데, 그만 지금의 태후가 낙점되었던 것이다.  결국, 융과다는 가문을 위해서 사랑하는 여자를 배신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태후가 아들을 위해 사랑했던 남자를 죽여, 수십 년에 걸친 두 사람 사이의 애증을 끝낸다.  "당신이 내 인생을 망쳤듯이, 내가 당신 인생을 끝냈어요." 라는 말과 함께...

 

 

  황제와 많은 여인들의 관계가 참 아이러니해서, 머피의 법칙 같은 것이 보인다. 

 

  화비와 황후는 내명부 최고의 악녀들이지만, 최소한 황제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전반부 최고의 악녀 화비는, 누구에게나 안하무인이었지만 황제의 권위나 감정은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자신의 오라버니가 황제 앞에서 무례하게 굴 때 어쩔 줄 몰라했다.  화비의 오라버니는 황제를 권력에 다가서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지만, 화비는 황제를 정말 사랑하고 걱정했기 때문에, 오누이의 태도가 다른 것이다. 

  후반부 최고의 악녀 황후는, 보통의 아내라면 남편에게 실망하거나 분노할 상황에서, 그 실망과 분노를 다른 후궁들과 그 태아들에게만 쏟아부었다.  몰락할 때 황제에게 절규한 것처럼, 황제를 미워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을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제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두 여인에게 몹쓸 짓만 저질렀다.  화비는 권력을 위해 이용하느라 몰래 유산시키고 불임의 몸으로 만들었고, 황후에게 했던 영원한 사랑의 맹세와 아들만 낳으면 정실 부인으로 삼아주겠다는 약속도 다 깨뜨렸다.  

 

  단비는 좀 특수한 경우다.

  단비는, 황후나 화비처럼 황제를 사랑했다.  황제가 승하하자 그 슬픔으로 앓아누워버렸을 정도다. 

  문제는, 저 위의 화비 유산사건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황제가 태후와 함께 꾸민 일 때문에 엉뚱하게 단비가 유산사건 범인으로 몰려서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내용만으로는, 황제와 태후가 작정하고 단비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황제와 태후가, 단비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단비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셈이다.

  황제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단비가 마지막까지 몰랐다는 사실이, 단비에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다.  단비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황제가 항상 자신을 존중하고 여러 가지로 신경써줬다고 죽을 때까지 믿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기만하고 불행하게 한 남자를 아무 것도 모른 채 사랑했으니, 그게 과연 진정한 행복인지...    

 

  그 밖의 여인들의 경우는 다양하고 복잡한데, 황제에게 오만가지 정이 떨어져버렸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

  물론 다른 여인들도 처음에는 황제에게 애정을 느끼거나, 또는 애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시대 여자에게 요구되는 '성심을 다 해서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 는 의무와 도리에 충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황제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본성을 깨닫고, 황제에게 실망하거나 분노하거나 증오하거나 아니면 아예 무관심하게 되었다. (견환이나 녕귀인처럼, 실망+분노+증오+무관심을 몽땅 품은 여자도 있음. -.-;;)

 

  견환과 심미장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황제를 사랑했다.

  특히 견환은, 황제가 순원황후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애정을 느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애정이 상당히 비뚤어진 방식이었기에, 견환은 황제에 대한 마음을 거두고 그 마음을 과군왕에게 주게 된다.  그러다가 과군왕이 황제 때문에 죽은 후로는 아예 황제를 증오하게 되었다.

  심미장도 처음에는 황제를 진심으로 대했다.  그러나 황제의 마음이 너무 쉽게 변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황제에게 실망해서 무관심해진다.  그러다가 어려운 시절 자신을 도와준 다른 남자와 사통까지 하게 된다!  그나마 견환처럼 황제에게 증오심까지는 품지 않았다는 게, 심미장의 정신건강을 위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안릉용은 집안을 일으키고 스스로도 살벌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황제에게 매달리며 비위를 맞췄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황제가 황후와는 다른 의미로 자신을 도구 취급하는데 분노하며, 황제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항하게 된다. (황후는 안릉용을 '음모의 수단' 으로 썼고, 황제는 안릉용을 '인간 MP3 플레이어' 로 썼음.  황제 부부는 인간을 인간이 아닌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는, 정말 천생연분라 할 수 있음. -.-;;)

 

  경빈이나 흔상재는 황제를 깍듯이 대하면서도, 황제의 총애를 얻는 데는 무관심한 편이다.

  황제가 겉으로는 교양 있고 점잖게 행동하지만 사실은 변덕스럽고 잔인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했던 것 같다.  그래서 궁궐 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은 황제와 가깝게 지내되, 황제의 변덕이나 이기심에 다치지 않을 만큼 황제와 거리를 둔다.  즉, 황제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살벌한 궁궐에서 무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던 것 같다. 

 

  녕귀인은 약간 특수한 경우다.

  과군왕을 마음에 둔 상태에서 황제에게 선택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황제에 대한 애정도 없었고 의무 같은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  그러나 황제는 평생 동안 자신에게 철저히 예의를 갖추며 복종하는 여자들만 봤기 때문에, 녕귀인의 쌀쌀맞고 무례한 태도를 오히려 신선하다고 여기며 총애한다. (취향 한 번 독특하네... -.-;;)  그래서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데도, 최음제까지 열심히 먹어가며 녕귀인을 가까이 했다.  설마 그 녕귀인이 자신을 저 세상으로 보내버릴 거라고, 황제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0-;;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1. 중국 드라마, 특히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

  2. 딱히 중국 드라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멀쩡하다가 뒤로 갈수록 산으로 가는 요즘 드라마에 질린 사람.

  3. 작년에 방영한 한국 드라마 '황금의 제국' 처럼,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적절하게 복선이 깔려있으며 반전이 거듭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