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 Like Father, Like Son)

Lesley 2015. 1. 18. 00:0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 Like Father, Like Son)' 는 오래간만에 본 일본영화다.

  포털 사이트에 뜨는 시놉시스만 보면, 정말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생아 시절에 병원에서 뒤바뀐 두 아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기른 정과 낳은 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모...  이미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질리도록 많이 접한 소재다. -.-;;

  하지만 똑같은 재료를 써도, 요리사 솜씨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지닌 음식이 나오는 법이다.  원래 다큐멘터리 연출자였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은 이 식상한 재료로 멋진 음식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너무 담백한 나머지 밋밋하다는 느낌만 들지만, 계속해서 씹다 보면 은은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그런 음식 말이다.  

 

 

 

 

 

  ◎ 내 아들이 친자식이 아니라니!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는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을 사는 젊은 가장이다.

  우선 공적인 삶을 보자면, 도쿄의 일류 건축회사를 다니며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사적인 삶을 보자면, 사내커플로 만난 예쁘고 다정한 아내 '미도리(오노 마치코)' 와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귀여운 아들 '게이타' 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알고 보니, 게이타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료타-미도리 부부의 아이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출산한 '사이키(릴리 프랭키)'-'유카리(마키 요코)' 부부의 아이와 바뀌었다는 것이다.

 

  병원 측의 주선으로, 양쪽 집안 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료타-미도리 부부는 친아들 이름이 '류세이' 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사이키-유카리 부부 역시 자기네 친아들이 게이타라는 이름으로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병원 측에서는, 그런 일을 겪은 집안 대부분이 아이들을 원래대로 바꿔서 친자식을 키우는 쪽을 선택한다면서, 어차피 바꿀거라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한다.  하지만 양쪽 부부 모두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아직은 친자식에 대해 실감도 안 나고, 반드시 아이들을 맞바꿔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자신들의 친자식이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일단은 양쪽 집안이 정기적으로 만나 어울리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 아직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 한 료타

 

  두 가족이 만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호적인 목적' 에서였다.

  각자의 친자식과 친해지면서, 아이들을 맞바꿀지 어떨지를 결정하기 위함이다.  또한, 양쪽 집안이 같은 사건의 피해자니, 병원에 소송을 제기할 때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남이 거듭되면서, 미묘한 갈등이 생긴다.

  두 가정이 경제적인 면에서나 정서적인 면에서나 차이가 심한 탓도 있지만, 그런 차이가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사실, 두 집안의 아내끼리는 성격이나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데도, '같은 아픔을 공유한 엄마'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친해진다.

  문제는, 우리의 주인공 료타다.  정작 사이키는 료타에 대해서 특별히 좋고 싫은 감정이 없는 듯한데, 료타 혼자서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불태운다. ^^;;

 

  얼핏 보면, 료타는 요즘 세상이 원하는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 의 표본이다.

  외모가 남에게 빠지기를 하나, 행동거지가 너저분하기를 하나, 능력이 없기를 하나... 정말이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다.  이 경쟁 심한 세상에서, 회사의 엘리트 사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당연히, 처자식을 털끝만큼도 고생시키지 않는 '능력 있는 가장' 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흠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해 보이는 료타가, 내면적으로는 다소 메말라있다.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감정적인 면에서 무척 서툴다는 뜻이다.  즉, 사회생활도 꽤 했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 한 상태다.

  사람들에게 언제나 깍듯이 예의를 차리지만, 그것은 '착하고 예의 바른 사람' 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어서 남들에게 오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욱 예의를 갖추는 사람' 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즉,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람들과의 교류에 의식적으로 애쓴다는 인상을 준다.  간단히 말해서, 인맥관리 차원에서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료타는 계모 밑에서 성장했다.

  계모는 료타에게 최선을 다 하며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료타는 여지껏 '어머니' 란 호칭을 쓰지 않을 정도로 계모에게 마음을 열지 못 했다.  또한, 자신을 계모와 엮어주는 존재인 아버지에 대해서도 모순된 감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병원에 대한 소송 문제로 만난 변호사 친구는, 료타에게 '파더 컴플렉스' 가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영화 속에서 단편적으로 나오는 이런저런 단서를 종합했을 때, 료타는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친어머니를 만나지 못 하게 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 동시에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여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등이 뒤엉킨 상태로 성장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겉으로는 능력이 탁월하고 처세에도 능숙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감정에도 솔직하지 못 하고 타인과 진심으로 교류하는 데에도 서툰 성격으로 자란 것이다.

 

  타인에게 냉랭하면서도 타인의 관심이나 애정에 민감한 료타의 모순된 모습은, 여러 차례 나온다.

 

  영화 초반부에서, 미도리는 료타의 옛 동료가 어찌 지내는지 묻는다.

  그 동료는 무슨 사정으로 사직을 한 모양인데, 료타는 떠난 사람에게까지 관심을 갖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미도리의 말을 들으면, 료타는 그 동료와 제법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떠났다는 이유로 무관심해질 정도로, 료타는 그 동료를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하기 위해 적당히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집안 식구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날, 료타가 사이키에게 질투심 비슷한 감정을 보이는 것도 그렇다.

  료타의 친아들 류세이는 유전적으로는 사이키와 완전한 남인데도, 똑같은 버릇(빨대 끝부분을 치아로 마구 씹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것을 알게된 순간, 료타는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류세이에게 아직 혈육의 정을 느끼지 못 하는데도 막상 류세이가 사이키와 꼭 닮은 행동을 보이자, 류세이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사이키에 대한 질투심이랄까, 그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결국, 상대쪽 부모의 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두 아이를 모두 키우겠다면서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무례한 소리를 했다가 얻어맞기도 한다. -.-;;

 

 

 

  ◎ 게이타 - 작은 새 같이 순수하고 감수성 풍부한 아이  

 

  게이타는 사내아이치고 무척 순하고 조용한 성품이다.

  아마도, 항상 엄격한 규칙과 예의를 강조하는 료타의 양육방식 때문에 그런 성격으로 자랐을 것이다.  동시에 친아버지 사이키의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품을 물려받은 탓인지, 료타 같이 활활 불타오르는 승부욕이나 성취욕이 없다. 

 

  그런 게이타의 성격은 어린이 피아노 대회에서 잘 드러난다.

  게이타는 그 대회에서 어설픈 솜씨를 보인 후, 자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다른 아이를 질투하기는커녕 참 잘 친다고 감탄한다.  어지간한 어른 같으면 '샘을 낼만도 한데 순수하게 남의 능력을 인정해주다니, 참 착한 아이구나.' 라고 기특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료타는 그런 게이타의 순진함과 느긋함이 못마땅하다.  남자로서의 패기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문제로 료타 부부가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아내 미도리는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낸다.  게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막 알게 되었을 때, 료타가 무심코 했던 말을 지적하며 따진다.  료타는 "역시 그랬었군." 이라며, 마치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 결국 사실로 드러난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미도리는, 료타가 평소에도 게이타가 자신만큼 우수하지 못 한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는 뜻 아니냐며 비난한다.  오랫동안 속에 눌러왔던 게 분명한 아내의 말에, 료타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 한다.

 

  게이타는 비록 뛰어난 아이는 아지지만, 대신 속이 깊고 다정다감한 아이다. 

  사실은 피아노에 별 재능도 흥미도 없지만, 싫다는 소리 한 번 안 하고 피아노 연습을 했다.  게이타에게 피아노는, 아빠와의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항상 회사일로 바빠서 아들과 놀아주는 일이 별로 없는 료타가, 가끔 아들과 함께 피아노를 치는가 하면 아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고 또 아빠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 피아노 학원을 꾸준히 다녔던 것이다.

  미도리는 고이 기른 게이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나머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둘이서만 가자." 고 말한다.  그 때에도 게이타는 "아빠는?" 이라고 묻는다.  그 만큼 어린 게이타에게 아빠란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보통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집은 어린 아들이 아빠를 더욱 좋아한다.  

 

  그렇게 아빠의 애정에 목말라 있는 게이타가, 그만 료타 부부의 말다툼을 엿듣게 된다.

  자신이 부모의 친아들이 아니며 평소에도 아빠의 눈에 결코 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당연히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게이타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 태도로, 료타가 시키는대로 사이키네 집으로 간다. 

  여기에서 료타가 타인의 감정에 둔한 편이라는 게 또 드러난다.  료타는 게이타에게, 사이키네 집에 가서 그 집 부부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고, 이쪽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도 전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이른다.  보통 아이 같으면 갑자기 남의 집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말에 울고 불고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데 료타는 너무나 순순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이타를 보면서, 아이가 혹시 뭔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전혀 못 하는 듯하다. (이런 슈퍼 울트라 둔탱이 아빠를 봤나...! -.-;;)

 

 

 

  ◎ 류세이 - 주관이 뚜렷하고 의지력 강한 아이 

 

  류세이는 게이타와는 반대로, 무척이나 활발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아이다.

  사이키 부부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아버지 료타에게서 강한 주관과 의지를 물려받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료타의 지시에 대해서도, 게이타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위에 이미 쓴 것처럼, 게이타는 마음의 상처를 숨기고 료타가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류세이는, 이제부터 료타-미도리 부부를 엄마 아빠로 불러야 한다는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료타는 자기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그 상황을, 어린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해한다.  게다가 원래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지시할 때 자상하고 참을성 있게 설명해주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그냥" 이라는 말 하나로 밀고 나간다.  그러나 역시 료타의 핏줄이 맞기는 맞는지, 류세이는 자신의 고집이랄까 주관이랄까 하는 것을 꺾지 않고, 끝까지 "왜?" 라며 대답을 요구한다.

 

  류세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 속에서,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반항하기 시작한다.
  먼저, 엄마 아빠의 그림을 그린다며 사이키 부부의 모습을 그려서, 친엄마 미도리를 울린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 건반을 마구 눌러대서 항상 정숙함을 강조하는 료타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또한 이 당돌하고 영악한 아이는 은근히 료타의 자존심을 긁는다.  장난감 자동차가 고장나자, 저쪽 집에서 으레 아빠 사이키에게 고쳐달라고 했던 것처럼 이쪽 집 아빠인 료타에게도 고쳐달라고 한다.  그러나 수리 쪽으로는 재주가 없는 료타는 낑낑거리다가 포기하고, 새 것을 사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류세이는 혼잣말처럼, 그러나 류타 보고 들으라는 듯이 "집(사이키네 집)에 가면 파파(사이키)한테 고쳐달래야지." 라고 말한다.  마치 '그런 것도 못 고치는 사람이 무슨 아빠에요?' 하는 것 같은 도발이다.  사이키를 작은 전파사나 운영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은근히 깔보던 료타로서는, 큰 굴욕을 겪은 셈이다. ^^;;

 

 

 

  ◎ 간호사의 의붓아들 - 료타에게 키운 정의 끈끈함을 깨닫게 하는 아이

 

  두 아이가 태어났던 병원의 간호사가 사죄의 뜻이라며, 변호사를 통해 료타에게 돈봉투를 보낸다. 

 

  먼저 이 간호사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그저 실수로 두 아이를 바꿨다고 해도, 두 집안 사람들로서는 용서가 안 될 판국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아이들을 바꿨다...!

  미도리와 유카리가 그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이 간호사는 아이가 딸린 남자와 결혼해서 전처의 아들을 키우는 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마치 자기 혼자만 세상 불행 전부 떠안은 것 같은 우울한 심정인데, 능력 있는 남편 만난 덕에 특실에 입원해서 좋은 대우 받는 미도리를 보고 그만 억하심정을 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도리도 자신처럼 불행을 맛보라는 식으로, 두 아이를 바꾼 것이다! (그 간호사에게 아무 짓 안 했는데 졸지에 분풀이 대상이 된 료타-미도리 부부의 상황도 기막히지만, 미도리에게 분풀이하는데 휘말려 도구처럼 이용당한 사이키-유카리 부부네 상황은 또 뭐냐... -.-;;)

 

  그러니 료타 입장에서는, 간호사에게 그깟 돈 좀 받았다고 마음이 풀릴 리가 없다.

  간호사네 집을 찾아가 돈봉투를 돌려주며, 담담하지만 분노 가득한 말투로 질책한다.  그 간호사 때문에 자신의 가정이 엉망이 되었노라고...  물론 간호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쩔쩔매기만 한다.

 

  그 때, 간호사의 의붓아들(전처의 아들)이 나타나 료타와 계모 사이를 가로 막는다.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라며 당장 꺼지라는 말투로 말하는 료타에게, 아이는 도전적인 표정으로 턱을 치켜세우며 "상관있어요. 우리 엄마니까." 라고 말한다.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면 중학교 신입생 정도 밖에 안 될 솜털 보송보송한 아이가 말이다.  굳은 표정으로 아이를 내려다보던 료타가 문득 손을 올리자, 간호사는 자기 의붓아들을 때리려는 줄 알고 흠칫 한다.  료타의 입장에서 보자면 욱하는 마음에 한 대 치고도 남을 상황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료타는 아이 어깨를 몇 번 토닥여주더니 아무 말 없이 떠난다.  한 때는 계모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오히려 계모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음을 안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이 핏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과 정으로도 이루어진다는 것도 깨달은 것이다.

 

  료타는 차 안에서 혼자 생각에 잠겨있다가, 자신의 계모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어떤 설명도 붙이지 않고 대뜸 사과를 한다.  오히려 과거에 이러이러해서 미안했다라고 설명을 붙이지 않아서 더 강렬한 느낌이 드는 사과다.

  어지간한 영화 같으면, 그 장면에 이어 계모와 의붓자식 사이에 한바탕 눈물바람이 지나가는 장면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쭉 이어온 잔잔한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한다.  료타의 계모는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반응을 보인다.  료타와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다면서, 누가 연애를 했네 누가 성형수술을 했네 하는 이야기나 하고 싶다고 말한다.  즉, 계모라서 특별한 취급받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하게 지내는 다른 어머니와 아들처럼 지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료타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류세이와 친해지기 위해 평소 료타의 태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즉. 아이의 장난에 함께 장단을 맞춰주는 것)을 한다.  그런가 하면 생전 안 했던 캠핑까지 시도한다. (비록 대자연 속의 캠핑이 아니라 아파트 안에서의 캠핑 흉내내기 수준이지만... ^^)  그리고 자신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던 게이타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비록 핏줄이 닿지는 않았어도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고 진심을 담아 전한다. 

 

 

 

  ◎ 진정한 아버지가 되면서, 진정한 어른이 된 료타

 

  처음에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 주인공이 진정한 부성애를 깨닫게 된다는 뜻을 담은 제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영화에서 '아버지' 란 말에는 자식을 낳고 키우는 남자란 뜻 뿐 아니라, 진정한 성인 남자란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료타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어린 시절부터 가슴 깊은 곳에 꼭꼭 묻어두었던 스스로의 상처를 직시하게 된다.  그래서 낳은 정과 기른 정이 모두 소중함을 깨닫고, 친아들에게나 키운 아들에게나 진정한 아버지로 설 수 있게 된다.  동시에, 몸만 자란 상처투성이 고집센 소년에서, 마침내 성숙한 어른이 된다.

 

  그런 점에서, 료타가 게이타에게 여러 번 말한 '미션' 이란 말이 큰 의미를 갖는다.

  아이들을 완전히 바꾸기 전에, 양쪽 부부는 아이들을 주말에만 친부모 집에서 머물게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친부모네 집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게, 적응훈련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아직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게이타가 왜 사이키네 집으로 가야 하는지 어리둥절해 하자, 료타는 "게이타가 강해져서 어른이 되기 위한 미션이야." 라는 말로 납득시켰다. 

  결과적으로, 영화 속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료타 스스로에게도 '강해져서 어른이 되기 위한 미션' 이었다.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 때문에 료타가 억지로 모른 척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이제는 똑바로 바라보고, 정신적으로 한층 깊어져 진정한 아버지 및 어른이 되기 위한 미션 말이다.

 

 

 

  ◎ 사족 - 영화와 현실의 괴리

 

  다행히도, 영화는 따뜻한 결말을 보여준다.

  두 집안에서 이왕 바꾼대로 친자식을 키우기로 했는지, 다시 아이들을 바꿔서 지금껏 키우던 아이를 키우기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했든 간에, 두 집안 사람들이 서로 오가며 두 아이 모두와 부모-자식으로서의 끈을 계속 이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아이들이 신생아 때 병원에서 바뀐 실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일본에도 제법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언론보도로 접한 사례만 너덧 가지는 되고, 일본에서는 베이비붐 시기인 1960년대에 그런 사례가 몰려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나 일본에서나, 실제 사례는 이 영화처럼 훈훈한 결말을 맺지 못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정부 성모병원 사건이 가장 유명한 듯하다. (가장 극적인 사건이기도 했음.)

 

  1980년대, 의정부의 성모병원에서 불과 하루 사이로 세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편의상, 한 아이를 A라고 하고, 쌍둥이로 태어난 두 아이를 B1(언니)과 B2(동생)라고 하겠다.  그런데 병원 측 실수로 A와 B2가 바뀌었다.  그래서 일란성 쌍둥이의 부모는, 두 딸의 외모가 다른 것을 보고 그저 이란성 쌍둥이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몇 년 후, 쌍둥이 아빠가 이발소에 가면서 B1을 데리고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이발소 주인이 B2를 키우게 된 아빠(즉, A의 친아빠)의 친구였다. (이런 드라마 같은 우연이...!)  손님이 친구 딸과 똑같이 생긴 아이를 데려와 자기 딸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이발소 주인은 친구 딸이 납치당했다고 생각해서 경찰에게 신고했다. (혹은 친구에게 전화했다고 했나? 이 부분은 가물가물...)  어쨌거나 그렇게 납치사건처럼 시작된 일이 드라마틱하게도 신생아가 바뀐 사건으로 판명났다.

  

  정성껏 키운 아이를 다른 집으로 보내야 하는 양쪽 부모 모두 큰 고통을 겪었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A였다.

  공교롭게도 A는 선천성 장애인이었다.  만일 A의 부모가 처음부터 A를 키웠더라면, 처음에는 슬퍼하고 좌절했을지언정 결국 자기 자식이기에 정을 쏟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아이를 키우다가 장애를 가진 친딸을 키우게 된 부모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했다.  결국 A의 친부모는 그 일로 가정불화를 겪다가 몇 년만에 이혼을 했고, A는 10살도 안 된 때부터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후일담이 있다.

  쌍둥이의 친엄마가, 자신이 몇 년 간 친딸로 알고 키웠던 A가 친부모와 헤어져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소문해서 A가 머무는 곳을 찾아내, 가끔 면회도 가고 서로 전화통화도 하며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키운 정이 낳은 정만큼 진하다는, 아니 어쩌면 낳은 정보다 더 진하다는 사례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던 해(2013년), 일본에서 한 사람의 기구한 사연이 보도되었다.

  

  1950년대 한 병원에서 두 남자아이가 같은 날 태어났는데, 그만 병원의 실수로 바뀌게 되었다.

  한 아이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고, 또 다른 한 아이는 생활보호대상자일 정도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80도 다른 가정 출신인 두 아이가, 같은 병원에서 같은 날 태어났다는 인연 하나로 그만 운명이 뒤바뀐 것이다.

 

  원래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났던 사람은, 부잣집 장남이 되어 좋은 교육을 받고 유복한 삶을 누렸다.

  그런데 부모가 세상을 뜬 후 형제들간에 유산상속 분쟁이 일어났다.  다른 형제들은 큰형이 식구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며, 어쩌면 큰형이 자신들의 핏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결과, 무려 60년(!)만에 그 사람이 그 집안의 친아들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런데 정말로 딱한 사람은, 원래 그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가난한 집 자식으로 살게 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원래대로라면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가난한 집에서 자라게 되면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평생 온갖 고생을 하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60세가 되어서야 자신이 뒤바뀐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어 한국돈 4억원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돈으로 60년간의 고달픈 삶을 되돌릴 수는 없고, 친부모도 이미 세상을 떠나서 만날 수 없다.  "원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병원이 내가 태어난 그 날짜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줬으면 한다." 는 말을 했다니, 그 사람의 분노와 한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속에서는 두 집안의 부모와 아이들 모두 마음고생을 단단히 하지만, 끝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 쓴 실제 사례 속 주인공들은 그렇지 못 했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결국 우리 현실에 기초한 내용이라는 말도 분명히 맞다. (온갖 막장요소가 특정 집안에만 몰려있어서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뿐...)  하지만 아무리 현실적인 영화라도 결국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은 아니라는 말 또한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