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단만극(4) : 곡비(哭婢)

Lesley 2015. 6. 25. 00:01

 

곡비(哭婢) : 울기 싫어 웃으려 하는 소녀, 차마 웃을 수 없어 웃음을 잃은 청년

 

 

  '곡비(哭婢)' 는 먼저번 소개한 '환향 - 쥐불놀이' 와 같은 '드라마 스페셜' 시리즈다.

  다만, '환향 - 쥐불놀이' 가 2012년도 작품인데 비해, '곡비' 는 비교적 최근(2014년 3월) 작품이다.  '원녀일기' 와 '환향 - 쥐불놀이' 가 모두 괜찮았기 때문에, 내친 김에 다른 '사극 + 단막극' 도 보자며 찾은 게 바로 이 작품이다.  원래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하기 쉬운 법인데, 곡비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울기 싫어 웃으려 애쓰는 소녀(김유정)가 있다.
  세상을 뜬 소녀의 외할머니도 곡비(哭婢 : 초상이 났을 때 곡을 하는 노비 또는 노비는 아니지만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였고, 어머니도 곡비로 살고 있다.  소녀 역시 조만간 대를 이어 곡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소녀는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곡비만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  남이 죽었는데 왜 아무런 상관 없는 자신이 울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이 죽었을 때는 잘만 울던 어머니가 정작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던 게, 소녀의 가슴에 한으로 맺혔기 때문이다.

 

  도무지 웃을 수가 없어서 웃지 못 하는 청년(서준영)이 있다.
  청년은 반쪽짜리 양반이다.  이미 세상을 뜬 아버지는 지체 높은 양반이지만, 어머니는 사내들에게 술과 웃음을 파는 기생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앞날을 위해, 오래 전에 아직 어렸던 아들을 아버지에게로 보냈다.  하지만 청년은 천한 얼자라며 아버지의 가문에서 무시당하며 살고 있다.  가문의 장손인 이복형은 청년을 따뜻이 대해주지만, 외로움과 서러움이 가슴에 박혀버린 청년은 그런 형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 한다.  

 

 

(위) 본의 아니게 남의 잔치판에 끼여들어 파장을 놓은 소녀와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청년.

(아래) 흥겨운 잔치와 엄숙한 장례의 만남이라는 아이러니 때문에, 웃음이 나왔던 장면. ^^ 

 

 

  그런 소녀와 청년이 알게 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양편에서 애물단지 취급 받던 중에 만나게 되었다.  청년은 이복형이 진사가 된 것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개밥의 도토리 취급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복형의 어머니(즉, 청년에게는 적모가 되는 사람)에게 톡톡히 모욕을 당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예비(!) 곡비로서 상여행렬에 강제로 끌려들어갔다가, 기회를 잡아 도망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의 첫만남이 참 인상적이다. 
  잔치의 흥을 깨게 된 청년 집안과 상여행렬에 방해를 받게 된 망자 집안의 대비가 묘하다.  한쪽은 색색의 호화로운 옷차림이고, 다른 한쪽은 온통 누렇고 하얀 상복 차림이다.

  청년과 소녀 또한 대비된다.  청년은 잔치에 참석했지만 그 떠들썩한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 하고 겉돌고 있었고, 상여행렬에 강제로 끌려들어간 소녀는 그 울적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무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싶어하는 청년.  그리고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마련되어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녀.

 

 

"왜 그렇게 우는 게 싫으냐?" / "왜 도련님은 웃는 게 싫으세요?"
"네 어미가 생각나서냐?" / "도련님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여러 번 마주치게 된다.
  소녀는 기를 쓰며 기생이 되려 한다.  철없는 마음에 기생들의 화려한 겉모습에 홀렸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곡비나 기생이나 사람들에게 천대받기는 마찬가지니, 어차피 천대받을 거라면 울음을 파는 곡비보다는 웃음을 파는 기생이 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년은 자신에게 천한 피를 물려준 기생 어머니가 싫다.  하지만 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끊어내지 못 해, 항상 어머니를 차갑게 대하면서도 그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막상 어머니와 마주치면 또 모진 소리를 내뱉고 자리를 뜬다.

  웃으려 애쓰는 소녀와 도무지 웃지 못 하는 청년.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발견하고, 신분과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우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에 청년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긴다.

  원래 건강이 좋지 못 했던 것 같은 이복형이 갑작스레 요절하면서, 청년이 처음으로 가문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렇잖아도 관혼상제를 중요시했던 시대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가문의 장손이었던 사람의 상을 치르는 일이다.  그런 중차대한 상례에서, 청년이 상주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청년은 이제껏 '없는 사람' 취급만 받다가 처음으로 '있는 사람' 으로 대우받는 것에 크게 고무된다. 

 

  그런데 이복형의 장례에 불려온 곡비가 하필이면 소녀다.

  원래 와야 하는 소녀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서, 그만 소녀가 대신 끌려온 것이다.  소녀는 지금껏 그랬듯이 절대로 곡을 하지 않겠노라 버틴다.  청년은 어떻게든 이복형의 장례를 완벽하게 치러 가문에서 인정받고 싶기에, 소녀의 완강한 태도에 애가 탄다.  그래서 제발 이번 한 번만 곡을 해달라고, 딱 한 번만 곡을 해준다면 곧 풀어주겠다고, 소녀에게 매달린다.

  청년과 동병상련의 감정을 나누었던 소녀는 이제 배신감을 느낀다.  그깟 양반놀이가 하고 싶어 자신에게 억지로 곡을 시키는 것이냐며 분노한다.  청년은 아마 자기 자신도 처음으로 깨달았을,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던 욕망을 토로한다.  제대로 된 양반이 되고 싶었노라고, 그런데 그 욕심이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

 

  그러나 청년이 그토록 간절히 얻고자 했던 '가문의 인정' 은 허상일 뿐이다.
  청년은 어쩌면 이번 일로 자신이 이복형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가문 사람들은, 기생의 몸에서 태어난 청년에게 그 중요한 자리를 맡길 생각이 없다.  가문 사람들이 청년에게 상주 역할을 맡긴 것은, 당장 그 일을 할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장례를 다 치르고 나면 적당한 이를 양자로 들여 가문을 잇게 하겠다고 이미 결정까지 한 상태다.  그러면 청년은 원래의 위치, 없는 사람 취급받던 그 위치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청년은 뒤늦게야 자신이 '잠시 동안만 쓸 도구' 라는 사실을 알고 허망한 웃음을 터뜨린다.  스스로도 구차하다 생각하면서 소녀를 밀어붙이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그 자리는,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다.

 

 

(위) 배신감에 분노하는 소녀와 어떻게든 소녀를 설득해서 곡을 시키려는 청년.

(아래) 망자와 망자 주위의 모든 이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곡하는 소녀.  그리고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청년.

 

 

  결국, 소녀는 마음을 바꾸고 곡을 한다.
  자신의 어머니도 과거에 곡비 노릇은 절대 안 하겠다 했지만, 뱃속에 든 자신 때문에 곡비가 되었음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소중한 이를 잃었으면서도, 체통을 지키느라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는 가식적인 양반들이 딱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우 제대로 된 대접을 받게 되었다며 한번만 도와달라 했던 청년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진정 망자와 그 주위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곡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양반들은 소녀가 내는 곡소리에만 만족했을 뿐, 그 곡소리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는 별 관심이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녀가 자신들의 허위의식을 당돌하게 찔러서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애절한 곡소리가 나온 것에 만족해하며 허허 웃을 뿐이다.

 

  장례절차가 아직 남아있지만 청년은 약속했던대로 소녀를 풀어준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가 말한다.  이제야 알았다고, 어머니는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청년은 자신을 둘러싼 얼자라는 신분의 벽을 부수어보려 애썼지만, 그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새삼 깨닫고 다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좌절감을 다시 곱씹고 나니,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기생이란 신분의 벽 또한 얼마나 높은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처지의 어머니가 아들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이,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청년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진 후 처음으로,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른다.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지만 입으로는 웃음을 지으면서...

 

  상여가 나가는 날 곡을 해야 하는 소녀가 안 보여서 모두 당황해 하는데, 청년이 곡비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다.

  평소에는 청년을 가문의 일원으로 대접해주지도 않았던 어른들이, 그 때만큼은 양반이 곡비 노릇을 해서 가문에 먹칠 할 생각이냐고 노발대발한다.  그런 가문 어른들 앞에서, 청년은 소녀로 인해 깨달은 바를 말한다.  그깟 체면 때문에 누구도 형의 죽음에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다고, 자신도 지금까지 마음 속으로 형을 질투했지만 이제는 형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하겠노라고.

 

 

마음 속이 번뇌로 가득했을 때 상여행렬로 만났고, 이제 모든 것을 털어낸 채 다시 상여행렬로 만난 두 사람.

 

 

  소녀와 청년이 다시 마주친다.
  공교롭게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상여행렬과 함께 마주친 것이다.  소녀는 곡비 노릇을 하는 청년을 보고 무척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따뜻한 눈웃음을 짓는다.  청년은 다소 어두운, 그러나 한결 안정된 듯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본다.  그렇게 잠시 마주 보던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길로 간다.

 

 

  드라마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봐야 할지, 새드엔딩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얼핏 보면 해피엔딩 같다.

  두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들에게 씌여진 운명(곡비의 딸, 기생에게서 태어난 얼자) 속에서 괴로워했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운명 한가운데도 소중한 무언가(어머니의 사랑 - 소녀의 어머니는 뱃속에 든 소녀를 위해 죽어도 되기 싫었던 곡비가 되었고, 청년의 어머니는 청년의 앞날을 위해 슬퍼하면서도 청년을 떠나보냈음.)가 있었음을, 두 사람 모두 깨닫는다.  그래서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마음의 평화를 얻고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진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선 소녀의 표정을 보면, 과거에 어째서 어머니가 외할머니 무덤 앞에서 울지 못 했는지 이해하게 된 듯하다.  그리고 자기 몸에 흐르는 천한 핏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에게 냉랭하게 굴었던 청년은, 이제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고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새드엔딩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 결말을 보자면, 소녀는 가장인 어머니를 잃고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곡비로 살게된 듯하다.  현실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네 어쩌네 하며 멋있게 표현해봤자, 결국에는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청년 역시 좋게 말하면, 마음의 갈등을 훌훌 털어내고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가문의 일원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자 하는 소망을 영원히 포기하게 된 것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말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신분의 벽을 극복하고 원했던대로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더라면, 그 시대를 생각했을 때 현실성 없는 결말이었을 테니까...  하여튼 드라마는 따뜻한 분위기가 흐르는 예쁜 영상 속에서 끝났지만, 어쩐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단막극 시리즈 정리 - 단막극, 의외로 괜찮은데

 

 

  단막극을 일부러 찾아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TV 드라마를 비교적 많이 봤던 학창시절에도 단막극은 채널 돌리다가 눈에 띄면 봤을 뿐, 일부러 시간 맞춰가며 보지는 않았다.  그나마 내가 내 전용 컴퓨터를 장만하고 인터넷의 바다에 풍덩 빠진 뒤로는, 드라마계의 진골(?)인 연속극조차 1년에 두세 편만 골라보게 되었다.  그런 판국에, 겨우 6두품(!) 신세인 단막극은 더욱 볼 일이 없었다.  블로그에 소개한 네 편의 단막극이 10여년만에 본 단막극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내가 괜찮은 단막극만 골라본 것일 수도 있지만, 단막극의 대본과 연출과 음악이 모두 상당한 수준이라 놀랐다.

  제작비를 200억 들였네 300억 들였네 요란하게 선전해놓고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정말 별 볼 일 없는 연속극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이 블로그에 소개한 작품들은 영상도 예쁘고(특히 '곡비'), 1회로 끝이라는 단막극 특성상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는 없지만 배경음악이 드라마 분위기와 잘 어울렸고(특히 '원녀일기'), 진중한 주제의식까지 담고 있으며(특히 '환향 - 쥐불놀이'), 재미도 있었고(특히 '화평공주 체중 감량사'), 드라마의 뼈대인 대본은 네 작품 모두 좋았다.

 

 

  사실, 블로그에 소개한 단막극 네 편 말고도 몇 편 더 봤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봤으며 작품성도 좋았던 단막극이 있다.

 

  그 작품은 드라마 스페셜 중 하나로 작년 11월에 방영한 '원혼' 이다.

  매니아층을 거느린 시즌제 드라마 '신의 퀴즈' 와 힐링드라마라는 용어를 유행시키며 인기를 끌었던 '굿닥터' 을 쓴 박재범 작가가 대본을 맡았다.  그리고 작년에 인기를 끈 '정도전' 의 스텝이 연출을 맡고, 역시 '정도전' 에 출연했던 안재모가 주연을 맡았다.  또한 '정도전' 과 여러모로 얽힌 인연 때문인지, 역시 '정도전' 에서 주연을 맡은 유동근이 우정출연까지 한 '태생부터 고귀한 단막극' 이다. ^^

  이렇게 드림팀(!)을 모아놓았으니 내용이나 연출, 배우들의 연기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완성도만 따지자면, 마땅히 이 포스트에 '원혼' 의 감상문도 함께 올렸어야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내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공포물에 무척 약한데 '원혼' 이 바로 공포물이다. ㅠ.ㅠ

  시놉시스를 보니, 드라마 배경은 일제시대고 안재모는 친일파 조선인 경찰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원혼' 이라는 제목을 비유적인 뜻으로 받아들였다.  가령, 같은 조선인 손에 죽은 게 너무 억울한 나머지 눈도 제대로 못 감은 독립지사를 뜻한다든지...  식민지 백성들의 원한을 한데 뭉뚱그려서 원혼이라고 표현했다든지...

  그런데 원혼이란 말이 국어사전에 나오는 원혼의 뜻 그대로였다.  원한을 품은 귀신이란 그 뜻...! -.-;;  드라마가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점점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 마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영화 '여고괴담 1편' 속 그 유명한 장면처럼 귀신이 앞으로 팡팡팡 다가오는 장면이 나와서, 이 겁쟁이 시청자는 하마터면 심장마비로 저 세상 갈 뻔했다. ㅠ.ㅠ

 

  공포물에 강한 사람이라면, 블로그에 소개한 네 작품과 함께 '원혼' 도 추천하겠다.

  드라마 자체는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작품이다. (다만,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안재모의 나이든 분장은 좀 아니올씨다 였음. -.-;;)  그러나 그 작품성 좋은 단막극을 여기에 포스팅하는 건 무리다.  드라마 보다가 심장마비 일으킬 뻔한 그 트라우마를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단막극(1) : 원녀일기(http://blog.daum.net/jha7791/15791158)
단막극(2) : 화평공주 체중 감량사(http://blog.daum.net/jha7791/15791174)
단만극(3) : 환향 - 쥐불놀이(http://blog.daum.net/jha7791/1579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