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점 등

진순신(陳舜臣)의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4권 및 5권

Lesley 2014. 8. 20. 00:01

 

  이번 여름, 대만계 일본 작가 진순신(陳舜臣)이 쓴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시리즈 중 일부를 읽었다.

  이 시리즈는 중국사를 총 7권으로 다룬 대중 역사서인데, 그 중 4권과 5권만 읽었다.  중국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었더라면 1권부터 7권까지 차례대로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사 그 자체보다는 재작년부터 불붙은 고려사에 대한 관심에서 읽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해당되는 중국의 오대십국, 북송, 남송, 원나라, 명나라 건국 직후까지가 나오는 4권과 5권만 읽은 것이다. (4권 앞부분에 나오는 수나라와 당나라 부분은 그냥 덤으로 읽고... ^^)

 

 

 

 

  그런데 이번 포스트에서는 책을 읽은 감상이 아니라, 내용 이외의 잡다한 것들에 대해 써볼까 한다. 

 

 

 

  ◎ 작가 진순신

 

  작가의 인생 내력이 특이하다.

 

  진순신(陳舜臣)은 일본 작가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람의 이름을 보고서 중국인의 이름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대만계 화교 출신의 일본 작가이기 때문이다.  아마 부모가 모두 일본에 거주 중이었는지, 1924년에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오사카외국어학교(현재의 오사카대학 외국어학부)에 입학해서 힌두어와 페르시아어를 공부했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당연히 할 줄 알았으니, 무려 4개 언어를 할 줄 아는...!)  졸업한 후에는 모교의 서남아시아언어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하기도 했고 힌두사전 편찬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국적을 잃게 되면서(대만이 일본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기 때문인 듯), 전공에 걸맞는 직업을 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무역업에 종사하기도 했고, 대만으로 돌아가 잠시 중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영어도 할 줄 안다니, 그러면 무려 5개 언어를 할 줄 아는 언어천재...!)

 

  대만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후, 1960년대부터 작가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역을 생업으로 삼던 시절에도, 일본의 유명한 동양사학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의 제자가 되어 중국사를 공부했다.  게다가 중국의 그 방대한 정사를 모두 독파하기도 했다.  그런 해박한 중국사 지식을 바탕으로 한 중국사 관련 소설, 수필, 평론 등을 집필하고, 중국고전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내놓기도 했다.

  위키피디아 중문판에 나온 책 목록을 보면, 진순신이 다작을 하는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이런저런 상도 많이 받을 정도로, 일본문학계의 중국사 관련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나중에는 진순신의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대하드라마가 NHK에서 제작 및 방영되기도 했다.

  1990년에 일본으로 귀화했고, 1998년에는 일본정부에게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 입장에서는 정말 공교로운 점이 있으니, 이 작가의 이름이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같다...!

  진순신(陳舜臣)과 이순신(李舜臣)이라니...  물론, 그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하지만 괜히 묘한 기분이 든다. ^^  혹시나 해서 중국 포털에 두 사람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어떤 역사소설의 작가가 누구인가 하는 객관식 문제의 보기가 ① 陳舜臣 ② 李舜臣 이라고 되어 있는 게 보였다. ^^;;

 

 

 

  ◎ 어울리지 않는 한국어판 이름

 

  이 책의 원제는 '中国の歴史(중국의 역사)' 다.

  1980년대 초반에 15권으로 나온 중국통사인데, 한국과 중국에서는 7권으로 편집되어 번역되었다.  어쩌면 초판이 나온지 30년 이상 된 책이라 일본에서 개정판을 내면서 7권으로 바꿔 정리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판과 중국판의 권수가 같고 목차까지 거의 일치하는 것을,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드니까.

 

  그런데 한국에서 2011년에 발간한 번역본은, 이 포스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란 이름을 달고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름이 적절하지 못 하다고 생각한다.  '진순신' 이야 저자가 그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니, 그런 진순신이 쓴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 란 단어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 단어를 쓰면, 독자에게 이 책이 마치 이야기책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니까.

  물론, 전공서적에 비하면 틀림없이 읽기 쉬운 책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한 권으로 읽는 000' 등의 다른 대중역사서처럼 페이지가 팍팍 넘어가지가 않는다.  원래 작가가 딱딱하게 글을 쓰는 편인지, 번역자가 매끄럽게 번역하지 못 한 것인지...  사실, 나는 후자 쪽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번역자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이야기하겠다.

 

 

 

  ◎ 도대체 지도는 어디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난감했던 것 중 하나는, 지도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슨 역사책이 지도에 이렇게 인색한지...  많은 왕조가 여기저기에서 일어섰다가 스러져가고, 그 과정에서 각 왕조의 운명을 가르는 전투가 사방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그 상황을 설명해주는 지도가 없다...! ㅠ.ㅠ

  오직 글로만 그 많은 지명을 주르르 늘어놓고 설명한다.  4권과 5권 모두 책 끝부분에 두세 장짜리 지도가 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특히나 송-금-원이 번갈아가며 전쟁을 벌이는 부분과, 오대십국 시대(무려 15개의 왕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부분, 이 두 부분에서는 책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까지 들 정도다.  도대체 군대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건지, 남쪽에서 북쪽으로 치고 올라갔다는 건지...  이 나라가 저 나라 동쪽에 있는 건지 서쪽에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다행히 전에 구입한 중국사 관련 지도책이 있어서, 그 책을 이 책 옆에 펼쳐놓고 함께 봤다.

  구입해서는 몇 군데만 골라서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기만 했던 그 지도책이, 드디어 그 값에 맞는 활약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지도책이 이 책의 참고서(?)로 나온 게 아니니, 이 책에 나오는 전투나 사건에 관련된 모든 지명을 다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결국에는, 내가 알아서 내 머리 속에서 지도를 그려가며 봐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잖아도 나란 사람은 원래 '방향치+길치' 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려니, 각 나라의 위치와 전쟁 중 군대의 진격 방향에 관하여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다가, 마침내 뇌의 주름이 다리미로 다린 듯 쫙쫙 펴지는 것 같은 신비체험을 몇 번이나 했다... ㅠ.ㅠ

  혹시 작가가 원래 지도를 삽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번역본을 낸 출판사에서 독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간간히 지도를 넣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번역자도 편집부도 다 졸면서 책을 만들었나...

 

  하지만 건조한 문체나 지도의 부족함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유감스럽게도, 번역자와 편집부가 제대로 일을 한 것 같지 않다.  성의가 부족했던 건지 시간이 부족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이렇게 날림으로 만든 책은 처음이라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번역 상태가 이상하다.

 

  일단, 번역자가 자의적으로 번역했다는 냄새가 폴폴 풍긴다.

  번역자가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던데, 그렇다면 기존에 나온 역사책들을 참고해가며 번역하는 게 맞는거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번역상의 실수 대부분이, 다른 역사책을 참고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냥 마음대로 번역했다. 

 

  먼저, 왕조 국가의 가장 중심되는 인물인 제왕의 명칭에서조차 오류가 있다.

  남송 황제인 도종(度宗)을 '탁종' 이라고 써놓았다.  度를 '탁' 이라고도 읽지만, 이 경우에는 '도' 라고 하는 게 맞다.  이 부분이 정말 의아한 게, 일반적으로 度는 '도' 로 읽는다.  한자에 대해 따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탁' 이라는 음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번역자가 굳이 '탁종' 이라고 해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또한, 인물들의 이름을 바꿔버리거나 인물에 대한 설명이 뒤죽박죽인 경우도 있다. 

  조시(趙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조시의 시(昰)를 시(是)로 바꿔 써놓았다.  是를 이름에 쓰다니 참 특이하구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역시나 그 글자가 아니라 昰였다.  검색해봤더니 두 글자의 뜻과 음이 같다고 하는데, 뜻과 음이 같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장 내 이름만 해도 요즘 안 쓰는 한자인데, 그 한자와 음과 뜻이 같은 자주 쓰는 한자가 따로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내 이름을 마음대로 바꿔 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문제의 조시 대신 이복동생이 황제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생인 공종이 즉위한 것은 조시가 적출이었기 때문으로 조시의 어머니는 양씨로 그는 서자였다."  조시가 적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그 뒤에는 다시 서자라고 써놓았다.  한 문장 안에서 적자가 되었다가 서자가 되었다가, 도대체 왜 이러냐...  그리고 한 가지 더 흉보자면, 저 문장은 왜 저렇게 비비 꼬인 걸까...  문장을 둘로 나누든지, 굳이 한 문장으로 쓸거면 조사를 제대로 사용하든지, 왜 저렇게 이상하게 써놓았는지... 

 

  그리고 독자를 위해 따로 주석 또는 덧붙임을 삽입해야 할 곳을 그냥 지나쳤다.

  예를 들어,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에 관한 설명 중 "적(賊)이라는 글자와 음이 같은 칙(則)까지도 금기시했다." 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한국식 한자음으로는 '적' 과 '칙' 은 완전히 다른 발음이기 때문에, 어리둥절해 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중국어로는 두 한자의 발음이 같다고, 괄호 치고서 한 마디 설명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게다가 글의 시점이 바뀌기도 한다. 

  송나라 때 침몰되었던 배가 1970년대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이야기가 두 차례 언급된다.  처음에는 '한국의 신안 앞바다' 라고 작가 시점에서 제대로 쓰더니,  나중에는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 라고 써놓았다. -.-;;  설마 대만계 일본인인 작가가 한국을 '우리나라' 라고 했을 리는 없고, 번역자가 자기 입장에서 쓴 것이 분명하다.  

 

 

  번역자 뿐 아니라, 편집부도 일을 대충대충 한 것 같다. 

 

  물론, 오탈자는 1차적으로는 번역자의 잘못이다.

  하지만 번역자의 원고를 읽으면서 오탈자를 최대한 잡아내는 것은, 분명 편집부 사람들의 몫이다.  오탈자가 몇 개 나온다면,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실수가 없을 수 있나'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 전체도 아니고 4권과 5권 그렇게 두 권만 읽었을 뿐인데도, 발견한 오탈자가 수십 개는 된다.

 

  오탈자 유형도 참 다양하다.

  제일 단순한 유형의 오자, 즉 글씨를 잘못 쓴 것은 부지기수다.  '감' 을 '김' 으로 썼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리고 '은/는' 같은 주격 조사와 '을/를' 같은 목적격 조사를 섞어 쓴 부분도 간간히 눈에 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밥을 먹는다.' 라고 해야 할 것을 '나를 밥을 먹는다.' 라고 쓰는 식이다.  

  또한 같은 단어를 두 번씩 반복해서 쓴 경우도 눈에 띈다.  거기에 문장 끝에 마침표 대신 쉼표가 있는 경우까지 있고...

  그런가 하면 사람 이름을 한글과 한자로 병기하면서, 글자 하나를 빠뜨리는 경우가 두세 번 나온다.  예를 들면, 진순신이란 사람을 언급하면서 '진순신(陳舜臣)' 이라고 써야 할 것을 '진순(陳舜臣)' 이라고 한 글자를 빼먹는 식이다. 

 

 

 

  ◎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 책

 

  차라리 책이 별 볼 일 없으면 굳이 포스팅하지 않았을텐데, 책의 내용은 참 괜찮다.

 

  우선, 양이 적절하다.

  대중역사서로 나온 중국통사를 보면, 의외로 달랑 한 권짜리로 나온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빼놓고는 사료가 많이 부족하다는 한국사도, 수험서가 아닌 다음에야 한 권으로 다루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정사만 24종이니 25종이니 하는 중국사를, 어린이용 책이 아닌 다음에야 달랑 한 권으로 정리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7권짜리 중국통사라면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딱 절적한 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에 쓴 것처럼 문체가 딱딱하기는 하지만, 대신 알맹이가 충실하다.

  작가가 가급적 야사는 배제한 채 정사에 충실하게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주장을 언급할 때에는, 어떤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다른 책에는 저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그렇게 다른 주장이 나오게 된 근거 및 출처를 확실히 알려준다.  본인의 추측이나 주장을 쓸 때에는, 그 근거를 밝히고 그것이 자신의 생각임을 분명히 명시한다.  덕분에 독자는, 이게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인지, 아니면 작가 혼자만의 주장인지, 헷갈릴 일이 없다.

  그리고 작가가 문학 쪽으로도 관심이 많은지, 큰 사건 뒤에는 으레 그 시대 유명한 문인의 시를 몇 수 소개한다.  기다란 한시만 봤으면 지루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에 딱 어울리는 시를 뽑아 소개했기에,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심정이 절절히 전해진다. (문제는 그 시도 잘라먹었음.  긴 시의 일부만 수록했다는 뜻이 아니라, 각 줄마다 한자를 2개씩 빠뜨렸음. -.-;;)

 

  결국, 작가는 별 문제 없으나, 번역자와 편집부에게 문제가 매우 많은 거다. -.-;

  이번에 구입한 책이  2011년에 나온 초판의 1쇄이다.  몇 년 전 나온 초판 1쇄가 아직 팔리고 있는 것은, 책의 판매량이 신통치 않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니, 번역과 오탈자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성토하고 있다.  그렇게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쫙 나버려서 , 작가의 이름값에 비해 책이 덜 팔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새로운 인쇄본을 낼 때에는 각별히 신경써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