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인사동 수제 도장 / 도장의 추억

Lesley 2014. 3. 13. 00:01

 

  ◎ 지난 3.1절에 오래간만에 인사동에 나갔다가 특이한 유행을 확인했다.

 

  전에는 못 봤던 몇몇 도장 전문 가게가 눈에 띈다 했더니만...

  쇼 윈도우에 전시된 것들을 살펴 보니, 우리가 도장 하면 떠올리는 그런 평범한 도장이 아니었다.  '수제 도장' 이라는 이름이 붙은, 하지만 내 생각에는 차라리 '패션 도장' 이나 '팬시 도장' 정도로 이름 붙이는 게 딱일 것 같은, 예쁘장한 도장들이 다소곳하게 진열장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

 

 

인사동의 예쁜 도장. 

(쇼윈도우 통해서 찍은 사진을 확대했더니만, 찍을 때는 몰랐던 쇼윈도우의 먼지들이 잔뜩 보이는... -.-;;)

  

 

  도장목적은 사용자의 이름을 종이에 찍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은 도장 밑바닥에만 사용자의 이름을 새길 뿐, 그 외의 부분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날 인사동에서 본 도장들은 기존의 도장과 너무 달랐다.  도장 몸체에 뭔가 기념할만한 날짜, 의미있는 문장이나 단어, 혹은 팬시상품에나 들어갈 법한 예쁘고 귀여운 그림이나 무늬를 새기거나 그려놓았다.  그래서 기존의 도장이 좀 딱딱하고 엄숙한 느낌인데 비해, 그 날 인사동에서 본 도장들은 너무 아기자기 한 게 귀여웠다. (다만, 도장이 얼굴값 하느라 가격이 좀 세더구만... ^^;;)

 

  그러고 보니 꽤 오랫동안 도장을 쓴 일이 없다.

  요즘은 은행 계좌를 만들 때도, 관공서에 가서 무언가를 신청할 때도, 볼펜으로 서명을 하지 일일이 도장을 들고 다니며 찍지 않는다.   게다가 공인인증서를 이용해서 인터넷 뱅킹이나 인터넷 민원신청을 하는 게 일상화 되고 보니, 도장이고 서명이고 간에 사람 손으로 종이에 무언가 찍고 끄적이는 일 자체가 많이 줄기도 했고... 

  도장이 옛날 딱딱한 모습에서 발랄한 모습으로 탈바꿈 한 것도, 이미 사양길에 들어선 도장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처음으로 내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생겼던 게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1인 1통장 갖기' 던가 '1인 1계좌 갖기' 던가, 하여튼 그런 비슷한 이름의 캠페인이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저축을 장려하던 시대라서 일찍부터 저축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우리 코찔찔이 초등학생들도 의무적으로 통장을 하나씩 만들게 했다.  그 때는 통장을 만드는데 자필서명이 금지되었던 건지 어떤 건지, 모두들 도장을 하나씩 사야 했다.  어차피 의무적으로 하나씩 만든 것 뿐이고, 또 꼬맹이들 계좌에 큰돈을 넣을 것도 아니라서,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게 제일 저렴한 나무 도장(일명 막도장...! ^^;;)을 사줬다.

 

  하지만 내 인생의 첫 번째 도장을 사용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형식적으로 쓰는 중학교 입학 원서에나 한 번 찍었던가...  어차피 계좌 개설하는 일도, 그 계좌에 돈을 입금하고 출금하는 일도, 어린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도장은 그냥 엄마가 보관하고 있다가, 세뱃돈 같은 목돈(어린 아이 기준에서는 분명히 목돈이었음. ^^)을 계좌에 넣고 뺄 때 엄마가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모으고 까맣게 잊었던 그 돈, 혹시 집안 살림에 보탰던 건가... ^^;;)

 

 

  ◎ 온전히 나만의 도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생긴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1학년 때였는지 2학년 때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튼 학교에서 전교생에게 도장을 구매하게끔 했다.

  어떤 장애인단체를 돕겠다는 취지에서 전교생이 그 단체에 도장 주문을 하게 된 것이다.  대신 그 단체는 우리가 아직 어린 학생이고 단체주문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가격을 저렴하게 해준다고 했다. 

  도장 재료는 딱 3종류였는데, 나는 하얀색 인조옥으로 된 것을 골랐다.  지금은 빛도 바래고 자잘한 흠집도 생기고 색깔도 탁해졌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도장 뚜껑이 도장에 끼어지지도 않는다. (설마... 도장도 나이가 들면 뚱뚱해지나? -.-;;)  하지만 그 때에는 그 도장이 정말 뭔가 있어 보였다!  검은색 도장을 골랐던 아이들이, 내 도장을 보면서 자기들도 그것을 고를 걸 그랬다고 부러워했다. ^^

 

 

고등학교 시절 장만해서 최근까지 사용했던 도장.

 

 

  도장에 새기는 이름은 한글과 한자 두 종류였는데, 상당수 학생들이 한자 이름을 골랐다.

  학생들이 한자 이름을 선택한 것은, 한자를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나름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성적표가 나오면 부모님에게 보여드렸다는 증거로 부모님 도장을 찍어서 선생님한테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형편없는 성적표를 감히 부모님에게 못 보이고 대신 자기 도장 찍으려면, 한자 이름 새겨진 도장이 아주 유용했다.  도통 알아볼 수 없게 복잡한 한자로 된 도장 찍는 게, 선생님에게 들킬 위험이 적었으니까... ^^;; 

 

  그 도장이 내가 제일 오래 쓴 도장이다.

  수능 원서와 대학 입학 원서에도 찍었고, 대학 가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진.짜.로. 내 통장이라 할만한 것을 만들었을 때도 찍었고, 대학 졸업하고 이런저런 자잘한 계약서나 신청서 작성할 때에도 썼다.  5, 6년 전까지만 해도 종종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 도장을 쓰지 않았더라?

  어느덧 도장이라는 것에 신경 안 쓰고, 나한테 도장이 있다는 것도 잊고 지냈는데...

 

 

  ◎ 2010년에 어학연수차 갔던 중국 하얼빈에서 뜻밖에 새 도장 하나가 생겼다.

 

  다만, 이 때 생긴 도장은 초등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구입한 도장처럼 서류에 찍는 용도로 쓰는 도장이 아니다.

  하얼빈을 떠나기 얼마 전, 그 곳에서 사귄 중국친구 주뺘오가 한국인들은 아직 도장을 쓰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위의 사진에 나오는 도장을 떠올리며, 일상생활 중에 아직도 많이 쓴다고 했다.  내 대답에 주뺘오가 좀 놀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을 때,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BGM : 두두두둥~~~)

 

 

내 인생 최초의 낙관...!

 

 

  나중에 주뺘오가 이별 선물이라며, 예쁜 주머니에 도장을 넣어 고풍스럽게 생긴 케이스에 담긴 인주와 함께 줬다.

  도장을 팔 줄 아는 자기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부탁해 만들었다는 그 도장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평.범.한. 도장이 아니었다.  서예가나 동양화가 같은 사람이 자기 작품 한쪽에 멋있게 찍는 도장, 즉 '낙관' 이라고 부르는 도장이었다...! @.@  나는 은행 계좌 만들 때 사용하는 그런 도장을 생각하며 한국인들이 아직도 도장을 쓴다고 했던 건데, 주뺘오는 낙관을 생각하면서 한국인들은 참 옛스럽게 산다고 여겨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 

  나 같은 사람이 낙관을 다 갖게 될 줄이야...  저 선물을 받으면서 속으로는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정성스런 선물이고, 또 서예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있기에 언젠가는 쓸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고맙게 받았다. ^^ 

 

  이야기를 다시 앞으로 돌려서...

  인사동에서 예쁘장한 신세대용(?) 도장을 보니, 모처럼 지름신이 강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하지만 이제 도장의 시대는 흘러갔는데 내가 그 도장을 어디에 쓸까 싶기도 하고, 예쁘기는 하지만 가격이 만만찮아서(내가 좋아하는 튀김우동 5그릇은 사먹을 수 있는 돈... -.-;;), 그냥 눈요기나 하는 것으로 끝냈다.

  물론, 도장 지름신이 이대로 조용히 사라질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다음 번에는, 결국 인사동의 예쁜 도장을 샀다면서 이 블로그에 사진을 올릴지도 모른다. ^^

 

 

이육사의 '연인기' / 선물 받은 책도장(http://blog.daum.net/jha7791/1579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