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본 후 떠오른 단상들 - 치파오, 홍콩 등

Lesley 2013. 12. 19. 00:01

 

  이 포스트를 '영화, 드라마' 카테고리에 두기는 했지만, 영화 감상문이 아님을 밝혀둔다...!

  영화 감상문을 볼 생각으로 이 포스트 클릭하신 분들은 안 보시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포스트는 영화 내용 그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 보다는, 최근에 영화관에서 재개봉한 '화양연화' 를 보고서, 영화로 인해 떠오른 이런저런 짤막한 생각들을 나열해 놓은 것이다.    

 

 

 

 

1.  재개봉으로 보게 된 화양연화

 

  2000년에 나왔던 '화양연화(花樣年華)' 를 이번에야 봤다.

  그것도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본 것이 아니라, 영화관에 가서... ^^  어째서인지, 최근 들어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이 줄줄이 재개봉하고 있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 중에 과거를 회고하는 작품(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1999 면회)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조류를 타고 '아, 맞다, 예전에 저 영화 괜찮게 봤는데...!' 라는 느낌을 주는 추억팔이(?) 마케팅인걸까... ^^ 

 

  사실, 화양연화는 개봉 전에 내가 많이 기다렸던 영화이건만, 결국 보지 못 한(혹은 일부러 안 본) 영화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어떤 영화가 제작되고 있을 때 흘러나온 영화 시놉시스나 배우들의 이야기 듣고는 개봉을 기대했는데, 막상  그 영화가 개봉하고나면 특별한 이유 없이 안 보게 되는 경우...  바로 이 화양연화가 그랬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홍콩의 왕가위 감독 신드롬이 일어났다.  나 역시 한동안 왕가위의 독특한 영화에 빠져지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왕가위의 영화 중 '동사서독' 을 최고로 친다. (영상미에, 주옥 같은 대사에, 무엇보다 웅장한 OST가...!)  '열혈남아' 와 '아비정전' 역시 인상적으로 봤고...  그래서 왕가위 감독이 화양연화를 제작하고 있을 때, 영화 잡지에서 관련 기사 찾아 읽을 정도로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정작 개봉했을 때 안 보게 된 것은 물론이요, 몇 년 전에 인터넷으로 다운받아놓고서도 지금껏 묵혀두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 보게 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나도 도통 알 수가 없다.  결국 이번에 영화관에 가서 재개봉 한 것을 보았으니, 몇 년 전 다운받은 그 영화 파일은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셈이다. ^^;;  

 

  그런데 뒤늦게 재개봉으로 보려니, 여러가지로 다른 영화 볼 때와는 달랐다.

  우선,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십수 년 전 양조위와 장만옥 모습을 보려니, 참 새삼스러웠다.  물론, 두 배우 모두 지금 봐도 여전히 멋지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것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것이라 한결 젊었던 그 시절, 그렇다고 해서 풋내도 흐르는 20대가 아닌 중년 특유의 원숙미가 느껴지던 그 시절에, 두 사람은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났다.  '꽃처럼 가장 빛나던 시절' 을 의미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제목이, 영화 내용 뿐 아니라 두 주연배우에게도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번이 재개봉이다 보니 관객이 많지 않아서, 좌석을 몇 개나 차지하고서 우리집 거실 소파에 누워 TV 볼 때처럼 옆으로 누워서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나름 새로웠다. (나중에 친구에게 그 일을 말했더니, 어디 가서 자기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  관객이 나 포함해서 대여섯 명 밖에 안 되었다.  특히 내가 앉은 줄을 포함해서 앞뒤로 몇 줄이, 내 자리 빼고는 텅텅 빈 상태였다.  내 뒤로는 관객이 아예 없어서 누가 나를 볼 일도 없었기에, 용기(!)를 내어 편안히 볼 수 있었다. ^^ 

 

 

 

2. 치파오(旗袍)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은 다양한 무늬와 색상의 치파오 차림새를 선보임.

(머리는 위로 부풀려 올린, 일명 육영수 헤어 스타일... -.-;;)

 

 

  영화 초반부터 내 눈길을 확 잡아끌었던 것은 치파오였다.

  전에 어떤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초미니 스커트와 핫팬츠를 보고 야하다고 하는거라고...  그리고 덧붙이기를, 가장 야한 옷은 중국의 치파오와 올림픽 성화를 채화할 때 그리스 신녀 역할 맡은 사람들이 입는 옷이라고 했다.  치파오나 그리스 신녀 복장은 얼굴과 팔을 제외한 몸 대부분을 다 감싸주면서도,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예 대놓고 노출하는 옷보다, 그렇게 안 보여주면서 옷 속에 감춰진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는 옷이 더 야하다고 했다.

  나 역시 친구와 같은 생각이다.  이 영화에서 장만옥은 물론이고 다른 여자들도 나이가 많고 적고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치파오 차림으로 나온다. (영화 배경인 1960년대에는 홍콩에서 치파오를 일상용으로 많이 입었던 모양임.)  그렇잖아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옷인데, 하이힐을 신고 걸으면 하이힐의 특성상 하체를 흔드는 식으로 걸을 수 밖에 없다.  여자의 눈으로 봐도 상당히 선정적인데, 남자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런데 중국 전통옷으로 잘 알려진 치파오는, 원래는 중국옷이 아니었다.

  중국옷으로 편입(?)된지 400년도 채 안 된 역사가 짧은 옷이다.   치파오는 원래, 우리 역사에서 여진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했던 만주족의 옷이다. 

  그런데 만주족이 중국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를 세워 지배민족이 되면서, 피지배민족으로 전락한 중국의 주류민족 한족에게 변발(일명 황비홍 머리)과 함께 치파오를 강요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반발이 심했지만, 세월이 흐르자 결국에는 변발과 치파오 모두 한족 사이에 정착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론이고 중국인 스스로도, 중국 전통옷이라고 하면 당연히 치파오를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원래의 한족 전통복장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와 관련한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한국 언론에도 보도되었던 사건인데, 2000년대 들어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북경대학 학생들이, 자신들의 전통복장을 잊은 중국인들을 일깨우겠다며 한족 왕조인 명나라 시대 복장을 하고서 거리로 나가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런데 그 학생들 옷차림을 본 북경시민들의 반응은 "대장금 옷이다." 혹은 "일본 기모노구나." 등이었다. ^^;;  그만큼 이제는 치파오가 중국 민중들 사이에 전통복장으로 확실히 뿌리내린 것이다.

 

 

현대인들이 치파오 하면 떠올리는 섹시한 디자인의 치파오.

(뚱뚱한 사람은 절대 소화할 수 없는... ㅠ.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치파오는 원래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 형태' 라는 관념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 생기는 게 너무 당연하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속 등장인물 또는 중국 관련한 행사에서 보는 행사 도우미의 옷차림을 보면, 하나같이 위의 사진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화양연화 속 장만옥이 입고 나온 여러 치파오만 봐도, 색상과 세부적인 장식 정도나 다르지, 결국 모두 몸에 붙는 형태다.

  몸에 달라붙는 옷이다 보니, 활동성이나 착용시 안락함 측면에서는 다소 제약이 있다. (상반신을 아래로 굽히거나 옆으로 돌리거나 하려면 많이 불편할 듯... ^^;;)  그나마 왼쪽 사진처럼 짧은 원피스 형태는, 걷는 데에는 별 문제 없다.  하지만 오른쪽 사진처럼 긴 원피스 형태는, 발목 윗부분까지 다리 전체가 폭이 좁은 치파오 자락에 감싸지는 통에 걷는 데 많이 불편하다.  그래서 다리를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벅지부터 아래까지 트임을 준다.  덕분에, 원래도 신체의 굴곡 다 드러내는 선정적인 옷인데, 선정적인 느낌이 더해진다. ^^;;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치파오는 20세기 들어 등장한, 우리로 치자면 개량한복 비슷한 변형된 형태다.

 

  원래의 치파오는 왼쪽 사진처럼 저렇게 짧지도 않았고, 또한 양장 원피스처럼 다리를 노출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치파오(旗袍)라는 이름 자체가 보여주듯이, 치파오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입는 도포와 같은 포(袍)이기 때문이다.  즉, 윗옷과 아래옷 다 차려입고서 그 위에 따로 걸치는 긴 옷이다.

  원래 만주족은 치파오 속에 바지를 입었다.  만주족이 살던 곳이 추운 북방(만주)이라서, 보온을 위해 남자든 여자든 주로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치파오를 한 겹 더 걸쳤던 것이다.  그리고 기마민족인 만주족이 말을 탈 때 긴 치파오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허벅지 부분부터 발목 부분까지 길게 트임을 냈다.  하지만 치파오 속에 바지를 입고 있으니, 그런 긴 트임이 있다고 해서 맨살이 드러날 일은 없었다.

  청나라 때부터 한족들도 치파오를 입게 되면서, 치파오 속에 바지 뿐 아니라 치마를 입는 것도 일상화 되었다.  한족은 만주족과 다르게 일찍부터 남녀별로 바지와 치마를 구분해서 입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대부분의 지역이 만주보다 남쪽이다 보니 만주만큼 춥지 않기 때문에, 굳이 보온을 위해 바지를 입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원래 치파오 속에는 바지든 치마든 하의를 하나 입었다.  

  지금 우리 눈에 익숙한 위의 사진 속 치파오는, 치파오 속에 원래 있어야 하는 바지나 치마가 빠진 형태다.  바꿔 말해서, 요즘 유행하는 '하의 실종 패션' 비슷한 것이다. -.-;;    

 

 

치파오의 원래 모습, 즉 청나라 시대 치파오의 모습.

(지금의 치파오처럼 몸에 달라붙는 형태도 아니었고, 사진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속에 치마나 바지를 입었음.)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 드라마 속 부잣집 마나님들 모습.

(현대의 치파오와 다르게, 활동성 있게 옷의 품이 넉넉했고 맨다리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치파오의 모습은, 20세기에 상하이에서 나타났다.

  상하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중국에서 현대화와 국제화가 가장 빠른 도시였다.  제국주의가 판치던 그 시절, 서양 여러 나라들이 중국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상하이에 조차지를 마련했다.  그래서 상하이가 중국 다른 지역보다 서양의 영향을 빨리, 그리고 많이 받았다.

  그런 서양의 영향은 정치나 경제 같은 제도적인 면 뿐 아니라, 옷차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품이 넉넉하고 속에 꼭 바지나 치마를 받쳐입던 치파오가, 몸에 착 붙으면서 바지나 치마 없이 입는 형태로 변했다.  즉, 외투 비슷하게 겉에 걸치는 옷이었던 치파오가 서양의 원피스 형태로 바뀐 것이다.

 

 

중국의 유명 여류작가 장아이링(張愛玲 : 장애령)의 서구화된 치파오 차림.

 

 

  이런 변형된 치파오의 유행을 주도한 계층은, 주로 서구식 근대 교육을 받은 상하이의 신여성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장아이링(張愛玲 : 장애령)이 그런 경우다.  장아이링은 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중국의 유명한 여류작가인데, 대표작 중 하나인 반 자전적 소설 '색계' 가 양조위와 탕웨이 주연의 유명한 영화 '색계'로 제작되기도 했다.  ☞ 색계(色戒)(http://blog.daum.net/jha7791/14869876)  장아이링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온갖 스캔들(장아이링 부모의 결혼생활 및 아버지와 장아이링의 관계가 막장 드라마 수준이었고, 훗날 친일파 고위관료와 결혼했음.)로도 유명했지만, 당대의 패션 아이콘으로도 유명했다.

 

  그런 변형된 치파오에 대해, 처음에는 말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미니 스커트니 배꼽티니 하는 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중노년층의 사람들 또는 젊더라도 옷차림에 대해 보수적인 생각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거부감 느꼈을지 상상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미니 스커트나 배꼽티에 대한 거부감이 지역별로는 별 차이가 없었던 데 비해서, 중국에서는 변형된 치파오에 대한 거부감 정도가 지역별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일단, 상하이에서는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당연한 일이다.  변형된 치파오를 입는 것이, 상하이에서 상하이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유행이니까...!  하지만 상하이에 비해 보수적인 색채가 진한 베이징에서는, 변형된 치파오를 '예의 없는 옷차림' 또는 '괴상한 옷차림' 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을 침략한 서양인들을 아무 생각없이 추종하는 한심한 것들이나 하고 다니는 옷차림' 으로까지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변형된 치파오가 널리 보급되었다.

  한족들이 처음에는 치파오에 반발하다가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입게 된 것처럼, 변형된 치파오도 그렇게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제는 중국어권 이외의 국가에서도 치파오를 이국적인 패션으로 생각하고 입거나, 치파오 그 자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치파오의 칼라 부분을 Chinese collar니 Mandarin collar니 하며(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차이나 칼라' 라고 부르는 듯.) 다양한 상의에 응용하는 것을 보면, 패션은 역사도 건너 뛰고 국가와 민족도 넘나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3. 홍콩의 아파트


  우리나라에서는, 막연하게 홍콩을 우리보다 더 잘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인당 평균소득으로만 따진다면야 분명히 맞는 말이다.  2012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을 보면, 홍콩은 약 36,000달러고 한국은 약 23,000달러여서, 홍콩이 한국을 크게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빈부격차로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놀랍게도, 2009년 기준으로 홍콩의 지니계수는 0.537이나 된다...! (지니계수가 0.4를 넘어서면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준의 엄청난 빈부격차임.) 이 정도 빈부격차는 세계적인 수치여서, 중남미 국가는 물론이고 중국 본토까지 가볍게 넘어서는 수준다. (다만, 중국 본토의 지니계수가 홍콩의 지니계수보다 양호하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통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음.  왜냐하면 중국 본토의 지니계수는 2012년 기준으로 0.48이지만, 극심한 빈부격차에 불만을 가진 국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0.5 미만으로 발표하고 있을 뿐, 사실은 한참 전에 0.5를 넘어섰다는 발표가 중국의 여러 대학 및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기 때문임.)

  어쨌거나 홍콩도 빈부격차가 높은 곳이다 보니, 2013년 홍콩정부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홍콩 주민 중 19.6%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2013년 기준으로 홍콩 전체주민 710만명 중 210만명이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좋게 말하면 집 없는 사람들에 대한 홍콩의 복지제도가 그만큼 우수하다는 이야기가 되지만, 나쁘게 말하면 주민 전체 중 약 30%가 홍콩정부의 도움 없이는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홍콩을 여러 번 다녀온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서 많이 놀란다.

  처음 갔을 때는 관광객에게 유명한 홍콩 중심가만 다니기 때문에, 홍콩을 그저 화려하기만 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번 다니면서 차츰 다른 지역에도 가게 되고, 현지인들과 친분 쌓게 되면 그들의 집에 초대도 받게 되고, 그러면서 홍콩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다.

  홍콩의 주거상황이 전체적으로 열악하다 보니, 꼭 빈곤층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눈에는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한국인은 홍콩 현지인 집을 방문했는데, 그 초대한 사람이 대기업 부장급으로 일하며 아우디를 몰고 다니건만, 다 무너져가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물론 아파트 내부는 인테리어며 가구며 잘 꾸며놓고 지냄.  단지 아파트 자체가 무척 좁고 낡았다는 뜻임.)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사는 아파트 역시 그렇다.

  극중에서 장만옥의 남편은 꽤 잘 나가는 직장인으로 보이고, 장만옥 역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맞벌이인데다가 아이는 아직 없으니,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일 것이다.   지금처럼 소위 명품이라는 것이 길바닥에 널린 시절이 아닌데도, 장만옥은 수시로 해외출장 다니는 남편이 사다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  그러니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아직 젊은 부부이니 자기들 소유의 집은 없더라도 소형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세내어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부부는 아파트 한 채가 아니라, '아파트 한 채 안에 있는 방 하나' 를 세내어 살고 있다.  달랑 방 하나만이기 때문에, 집 주인네 거실과 주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생활해야 한다.  그건 극중 양조위 부부 역시 마찬가지라, 그 쪽 역시 맞벌이인데 장만옥 부부가 사는 집 바로 옆집에서 방을 하나 세내어 살고 있다. 

 

  영화 속 비좁은 아파트를 보면, 이웃사람끼리 외도를 벌이는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말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부부가 세들어 사는 방이야 달랑 한 칸짜리니 좁은 게 당연하다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아파트 자체가 다 좁다.  계단도, 복도도, 그리고 두 부부가 세들어 사는 양쪽 주인집네 집까지 몽땅 비좁다...! -.-;;  그러다 보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로 오가면서 수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두 젊은 부부네처럼 방 한 칸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아파트 안에 아예 휴게실이라는 게 따로 있다.  그 곳에서 이 집 사람 저 집 사람 할 것 없이, 신문도 보고 담배도 피우고 수다도 떨 수 있다.

  이래서야 '외도를 해도 어떻게 바로 이웃 사람과 외도를 하냐, 너무 억지스럽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꼭 장만옥 남편과 양조위 아내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꼭 남녀간 외도 문제가 아니더라도, 같은 아파트 이웃끼리 어떤 식으로든 얽혀서 사달이 나는 게 나름 자연스러운(?) 상황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4. 홍콩이라는 도시의 이미지

 

  역시 장만옥이 출연한 '첨밀밀(甛蜜蜜)' 은 화양연화와는 내용도 분위기도 주제도 완전히 다르지만, 두 영화 속에 나오는 홍콩의 이미지는 참 많이 닮았다.  두 영화를 통해 내 눈에 비친 홍콩이란 도시는, 계속해서 머물기 위한 곳이 아니라 어디론가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 첨밀밀(甛蜜蜜)(http://blog.daum.net/jha7791/15790798)

 

  첨밀밀은 1997년 홍콩 반환 전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기에, 당연히 홍콩이 불안정한 곳으로 비추어진다.

  홍콩인들은 자신들이 누리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줄줄이 해외로 이민을 간다.  그런데 중국 본토인들에게는 그런 홍콩이 그래도 꿈과 희망의 땅이기에, 너도 나도 홍콩으로 이주하려 애쓴다.  누군가는 떠나려 하고 누군가는 들어오고 하는 그 땅이 바로 홍콩이다.

 

  화양연화는 홍콩 반환 결정이 내려지기 전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그런데도 영화 속 홍콩인들의 대화에서는, 이들이 벌써부터 홍콩의 앞날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이 배어나온다.  젊은 자식 세대는 이미 해외로 떠났고, 아직 이민을 망설이는 부모 세대에게도 건너오라 권한다.  홍콩 반환이 결정되기 전이라지만, 식민지라는 홍콩의 위상을 생각했을 때 언젠가는 중국으로 반환될 수 밖에 없음을 모두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사실 20세기 중반에, 더구나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영국의 식민지라니, 그 상황이 계속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아니던가...!)

 

 

 

5. 양조위

 

  대학 때 당시의 홍콩 유명배우들이 총출동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서취' 라는 영화를 보고서 심장마비(!) 걸릴 뻔했다.

  양조위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해서, 헛웃음 밖에 안 나오는 유치한 대사와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적응이 안 되었다.  그런데, 입술에 소시지를 붙여 입술이 퉁퉁 부어오른 모양을 하고 나타나다니...! (나의 양조위가 어떻게... 이럴 수는 없어...! ㅠ.ㅠ)

 

  양조위는 화양연화나 색계에서 맡은 역할처럼, 조용하고 어딘지 비밀스러우며, 다소 우울하면서도 부드러운, 동시에 카리스마가 언뜻 내비치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린다.

  화양연화를 보면서 장만옥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태도도 인상적이었지만, 양조위의 부드러우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새삼 감탄했다.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국수를 먹는 모습이 두어 번 나왔다.  양조위라고 해서 남들과 특별히 다르게 먹은 것은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국수 면발을 후루룩 소리 내며 입에 넣는데, 그 모습조차 한 편의 CF 또는 화보로 보였다. ^^  그만큼 이 양조위라는 배우에게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대학 시절에 어떤 영화 잡지에서 양조위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영화배우라는 직업 가진 사람 치고 무척이나 내성적이고 낯을 가려서, 한국에서 날아간 기자가 인터뷰 진행하는데 좀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만일 다른 배우라면 '아니, 내성적인 사람이 어떻게 배우가 될 생각을 다 했대?' 하며 의아해했을텐데, 양조위가 그렇다니 오히려 당연한 일을 확인받은 느낌이 들었다. ^^

 

 

 

6. 앙코르와트

 

영화 끝부분에서, 앙코르와트에게 자신의 비밀스런 사랑을 속삭이는 양조위의 모습.

 

 

  화양연화 끝부분에서, 장만옥과 이별한지 몇 년이 지난 후 양조위 홀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간다.

  갑자기 등장한 앙코르와트에, 처음에는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회한에 젖은 표정으로 앙코르와트 한쪽 벽에 키스를 하듯이 입술을 가까이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장면이 왜 나왔는지 깨달았다.  과거에 양조위가 장만옥와 비밀스런 만남을 가지면서 한 말이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영원히 간직해야 하는 비밀이 있으면, 산에 가서 나무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비밀을 속삭인 후에 흙으로 봉했어요."  양조위는 앙코르와트를, 자신이 비밀을 속삭일 나무로 삼은 것이다. 

 

  하고 많은 곳 중 왜 앙코르와트일까 했는데,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앙코르와트만큼 적당한 장소도 없겠다 싶었다.

  앙코르와트가 세워지고 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현대인들에게 앙코르와트는 여전히 비밀스러운 곳으로 여겨진다.  건립 시기, 건립 주체, 건립 목적 등에 대해서 여러 전설이나 주변국의 역사 등을 통해 추정만 할 수 있을 뿐,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앙코르와트 벽에 난 구멍에, 양조위는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 즉 장만옥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은 비밀을 속삭인 것이다.

 

  사실, 전부터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앙코르와트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 생각은 막연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이 아니라 '반드시' 앙코르와트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제 나에게, 앙코르와트는 화양연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