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러시안 소설 - 한 편의 러시안 소설 같은 영화

Lesley 2013. 10. 28. 00:01

 

  영화 '러시안 소설' 을 보게 된 이유가 조금 우습다.

  이 영화 출연진이나 감독 중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저 영화 포스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개봉하기를 학수고대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포스터에 반해서 본 영화가 딱 두 편 있다.  하나는 브래드 피트가 나왔던 '흐르는 강물처럼' 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 '러시안 소설' 이다. ^^

  ☞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http://blog.daum.net/jha7791/15790677)  

 

 

 

 

 

1. 예상과 너무 다른 영화 - 정말로 한 편의 러시안 소설 같은 영화

 

 

  영화를 꽤 인상적으로 보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영화였다.

  아마도 포털 사이트에서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미리 보고서 영화를 감상한 사람이라면, 다들 나처럼 영화의 내용 전개와 형식에서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 소개된 영화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27년 간의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소설가 신효.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젊은 시절과 달리 현실에서 그는 ‘전설’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출판된 소설들이 자신이 쓴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의문을 풀기 위해 ‘우연제’와 단서를 쥐고 있는 27년 전의 인물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 ‘우연제’를 만든 당대 최고 소설가 김기진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고 있는 성환, 신효의 재능에 헌신했지만 결국 그를 파멸로 몰고 가는 여자 재혜, 여공 출신의 성공한 젊은 소설가지만 문단의 질시로 주저앉고 마는 경미.  과연 신효를 대신해 불멸의 명작을 완성한 이는 누구일까?

(출처 : 다음넷 영화 메뉴 중 '러시안 소설' 항목,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67879&t__nil_main_synopsis=more)

 

  자, 이 시놉시스를 읽은 후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영화의 종류가 미스터리물 내지는 스릴러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게다가 포털 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아예 '미스터리, 드라마' 라고 못 박아놓고 있기도 하다.

  원래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시놉시스라는 게 반쯤은 영화 광고의 성격도 띠고 있어서, 영화 내용 중 앞부분만 슬쩍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140분이나 되는 상영시간 중 위의 저 시놉시스에 해당하는 부분이 30분 정도 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주인공 신효가 자신의 소설을 고쳐 쓴 사람을 찾아나서면서 벌어지는 내용일 것이라 예상했다.  또한 미스터리물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이 반전도 한두 번은 있겠거니 했다.

  거기에, 어쩐지 낭만적이고 기품 있어 보이는 저 포스터의 인상까지 한몫을 해서, 이 영화에 대해 '소설을 소재로 하는 품격 높은 미스터리물, 즉 그저 보는 이들을 놀래키기만 하는 단순한 미스테리물 말고, 뭔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며 강한 여운을 남기는 미스터리물'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포털 사이트에 뜬 시놉시스에서 생겨난 모든 예상은 전부 꽝... ^^;;

  일단, 포털 사이트에 나온 영화 종류 소개 중 '드라마' 라는 것은 맞지만 '미스터리' 는 틀리다.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미약하다.

 

  그보다는 한 편의 장편소설, 그것도 제목 그대로 '러시안 소설' 을 영상으로 옮겼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주인공 신효(강신효)와 함께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성환(경성환)은, 초등학생인 가림(이빛나)에게 러시안 소설을 '길고, 복잡하고, 등장인물이 많다.' 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지루함을 느끼겠구나 싶을 정도로 영화가 긴데다가(상영시간이 140분이나 되니... ^^;;), 느릿느릿한 호흡으로 전개되어 더 긴 느낌을 준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사연이 나오는데다가, 영화의 독특한 형식(각자의 눈에 비춰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 또는 나래이션으로 풀어나감.)까지 겹쳐서, 잔잔한 영화답지 않게 복잡하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영화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는 주인공 신효 이외에 내용상 큰 줄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산만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위의 세 가지 말고도, 그 길고 복잡하고 등장인물 많은 사연을 다 보고 났을 때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는 점까지, 러시안 소설과 비슷하다.

   

  그 '길고 복잡하다' 는 러시안 소설의 속성은, 영화 자체 뿐만 아니라 신효와 성환 두 청년의 관계에도 해당된다.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도무지 닮은 구석이 없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살아온 환경도 그렇고, 전부 다르다.  그런데 '소설' 이라는 것을 두고 생각해보면 기묘하게 닮았다.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을 쓰는데 필요한 두 가지 요소(열정과 재능) 중 각자 하나씩만 갖고 있어서 고뇌를 겪는다는 점이 닮았다.

  가림은 아이 특유의 예민한 직감으로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는 것을 느끼고, 신효에게 그것을 말한다.  물론 가림이 아무리 조숙해봤자 결국에는 어린 아이라서, 두 청년의 어디가 어떻게 닮았다는 것인지 제대로 집어내어 설명하지는 못 한다.  그저 성환이 들려준 러시안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해서 "오빠(신효)하고 성환 오빠는 닮았어요.  둘 다 러시안 소설처럼 길고 복잡해요." 라고 말할 뿐이다.

  신효와 성환 두 사람은 나름 친분을 유지하면서도, 결코 마음을 터놓지 못 하고 오히려 때때로 갈등을 겪기까지 했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소설로 인한 길고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두 사람 모두 미처 깨닫지 못 했지만,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상대방에게 가벼운 애증을 느꼈던 듯하다.  

 

 

 

2. 두 낚시꾼의 이야기

 

 

  영화의 처음과 끝은 한 장면으로 이어져 있다. (고등학교 문학 수업 때 배웠던 수미쌍관 형식? ^^)

  그렇잖아도 소설 같은 영화다.  그런데 몽환적인 영상에, 붓글씨로 쓴 것 같이 정갈해보이는 글씨체로 된 자막에, 담담한 나레이션이 함께 깔리면서, 영상소설 비슷한 느낌을 준다.

  수미쌍관을 이루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낚시꾼이 하룻밤 내내 낚시를 했건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했다.  그런데 다른 낚시꾼은 수도 없이 물고기를 낚았지만 그 물고기들을 놓아주는 것을 반복했다.  첫 번째 낚시꾼이 두 번째 낚시꾼에게 그 이유를 묻자, 두 번째 낚시꾼이 대답했다.  자신이 그 전날 잡았던 물고기를 찾느라 계속 물고기를 낚는 중이라고, 물고기를 낚아서 자신이 찾는 그 물고기가 맞는지 확인하고 아니면 놓아주고 있는 것이라고...

 

  영화 도입부에서는 이 이야기의 의미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낚시꾼은 무엇이며, 전날 잡았던 물고기를 다시 찾겠다며 계속 물고기 낚는 것은 또 무엇인지...  그런데 영화 맨 마지막에 첫 장면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두 낚시꾼은 바로 신효와 성환을 의미한다는 것을...

 

 

  첫 번째 낚시꾼은 신효다.

  하룻밤 내내 낚시를 할 정도로 낚시에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결국에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한 낚시꾼...  신효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정은 넘쳐나는데, 글쓰기의 기본을 갖추지 못 한 탓에 좋은 소설을 쓰지 못 했다. 

 

  신효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모를 정도로 글쓰기 능력이 형편없다.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그런 후천적인 이유 말고도, 글쓰기에 대한 선천적인 재능도 부족했던 듯하다.  경미(이경미) 또한 신효처럼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드느라 정규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지만, 이미 전도유망한 신인작가로 자리 잡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해서 글쓰는 재주가 아예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한 번 훑어보는 것조차 거북하고 짜증스러울 정도로 형편 없는 소설일 뿐이다.  되바라졌다고 할 정도로 직설적인 성격의 경미야 말 할 것도 없고, 점잖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환까지도 신효에게 대놓고 기본이 안 된 글을 썼다고 말할 정도니...

  하지만 재혜(이재혜)처럼 신효의 소설에서 어떤 매력을 찾아내고 푹 빠져든 사람도 있다.  즉, 신효의 소설 속에는, 재혜로 상징되는 소수의 사람에게서 관심을 끌어낼만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누구도 자신의 소설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깨끗이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소수의 사람에게서나마 기대와 지지를 받으니 소설가가 되겠다는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지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효라는 이름의 낚시꾼은 물고기를 낚는 데 번번히 실패하면서도, 언젠가는 대어를 낚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은 채 차마 낚시터를 떠나지 못 했다.

 

  

  두 번째 낚시꾼은 성환이다. 

  하룻밤 동안 수도 없이 물고기를 잡을만큼 낚시 솜씨가 뛰어났지만, 정작 자신이 찾고자 하는 한 마리 물고기는 찾지 못 해서 잡은 물고기를 모두 풀어줬던 그 낚시꾼이다.

 

  성환은 신효와는 반대로,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글쓰기에 대한 재능을 갖출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우선 성환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소설가인데, 그런 아버지의 피가 어디로 가겠는가...  게다가 유명한 소설가 아버지를 둔 덕에 온갖 문학작품이 즐비한 집에서 자랐다. (영화 초반 성환이 자기 집에서 가림에게 러시안 소설을 건네주는 장면을 보면, 성환의 뒤편으로 수많은 책이 보임.)  성환이 가림에게만 살짝 말했던 신효 소설에 대한 비평을 들어봐도, 소설을 보는 성환의 안목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성환은 좋은 소설을 쓸 재능은 충분하건만 정작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이 없고, 또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지 못 한 채 정신적인 방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환은 너무 대단한 아버지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그 아버지란 사람이 딱 한 번 등장했는데, 아들의 재능을 키워주기 보다는 아들의 기를 팍팍 죽이기나 했을 것 같은 오만방자한 인물임. -.-;;)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문학적 재능을 펼쳐서 아버지란 거대한 벽을 극복할 생각도 못 하고, 그렇다고 아버지의 영역인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 한 채,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세상을 살았다.  어쩌면 그런 성격도, 큰 나무 그늘에서는 작은 나무가 자라지 못 한다는 말처럼, 아버지의 명성에 짓눌려 살아온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환이란 이름을 가진 낚시꾼은, 수없이 잡은 물고기에 만족하지 못 하고 모두 풀어주면서,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자신이 찾는 물고기를 기다리며 낚시터에 계속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무언가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열정과 능력이라는 것은, 둘 다 갖추거나 아니면 차라리 둘 다 갖추지 못 한 것이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효처럼 능력 없이 열정만 갖는 것은 참담하고, 성환처럼 능력은 있되 열정은 없는 것은 공허할 뿐이니...

 

 

 

3. 그 밖의 이모저모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상당수 등장인물의 이름이 그 역을 맡은 배우의 실명과 같다!

  일단, 주인공 '신효' 역을 맡은 배우가 강신효다.  그리고 영화 내내 큰 존재감 없다가 막판에야 숨겨진 공동주연이었음을 드러낸 끝판대장(!) '성환' 역을 맡은 배우는 경성환이다.  또한 젊은 시절의 신효에게 큰 영향을 미친 두 여자 '재혜' 역과 '경미' 역을 맡은 배우는 각각 이재혜이경미다.

  모두 신인배우인 것 같던데, 감독이 검증되지 않은 배우들을 쓰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 하고 독려 차원에서 그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이거 너희들 실명 내걸고 찍는 영화다.  너희가 너희들 이름에 책임을 져야겠지?  신인이라고 안 봐줄테니까, 무조건 잘 해...!" 하는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

 

  강신효와 경성환, 두 배우 모두 눈매가 참 서늘해서 인상적이었다.

  강신효가 다소 작은 편인 눈을 가늘게 뜨고 누군가 또는 어딘가를 살짝 노려보듯이 보는 눈길이, 신효의 부글거리는 마음(어떻게든 훌륭한 소설을 쓰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서 오는 조급함 + 이미 등단해서 자리잡은 우연재 작가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시)을 드러내준다.  남자치고 얼굴선이 가는 편인데다가 서늘하게 빛나는 눈매까지 겹쳐져서, 연약하고 불안정한 성격의 신효라는 인물에 제격이다.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인터넷 기사에 난 사진을 보니, 강신효가 경성환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 @.@  눈매 아니었으면 그 훤칠한 키로는,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연약하고 솔직하다 못 해 어리기까지 한 신효 역할을 맡지 못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경성환은 강신효보다 좀 더 남자답게 생긴 편이다.  그런데 눈매가 서늘할 뿐 아니라 길게 뻗어있기까지 해서, 순정만화 속 기품 있고 교양 높은 귀공자 같은 느낌을 준다.  성환은 영화 막판까지 큰 줄거리에서 좀 비껴나있다는 느낌을 줄만큼, 다른 등장인물들과 겉도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울분과 고뇌를 보란 듯이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신효와는 다르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조용한 태도로 신효와 그 주변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경성환의 길고 서늘한 눈 덕분에 그런 '고뇌와 비밀에 쌓여있는 청년'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났다.

 

  영화 후반부에 몇 마디 중국어가 나오는데 자막은 없다. ^^;;

  갑자기 중국어가 튀어나오는 것도 뜻밖이었지만, 한글 자막이 없는 것이 더 뜻밖이었다.  자막이 없는 탓에, 중국어를 아는 관객과 그렇지 못 한 관객 사이에, 이 영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정도가 차이 났을거라고 생각한다.  "아저씨는 아직 자라지 않았어요. (...라고 듣고, "아저씨는 아직도 철이 안 들었어요." 라는 뜻으로 새긴다... ^^;;)" 라는 중국어 대사는  신효란 인물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젊은 시절의 신효가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다는 점, 나이든 신효가 27년의 세월을 한 번에 건너뛴 탓에 여전히 젊은 시절의 미숙함과 유치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

 

  재혜를 보면서, 역시 어떤 분야에서든 적극적인 추종자는 극단으로 치닫기 쉽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재혜는 현실세계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는 답답한 인물의 전형이다.  내가 신효라도, 덮어놓고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재혜에게 고마움보다는 짜증을 느꼈을 것 같다.  비록 신효처럼 자신을 좋아하는 재혜의 단물만 빨아먹는 비열한 짓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재혜야, 헌신만 하면 헌신짝 신세 된단다~~ -.-;;)

  문제는, 그렇게 지나치게 외곬로만 살던 인물에게는 한 가지 무서운 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자신이 믿던 바가 흔들리게 되면,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짓을 저지를 수 있다.  도덕 교과서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 얌전한 아가씨가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를 줄, 누가 꿈엔들 생각했을까...  신효와 재혜를 보면서,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 속 민요섭과 조동팔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열렬히 따르며 흠모하던 추종자가, 자신의 믿음을 배신하려는 그 누군가를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자, 마침내 극단적인 짓을 벌인다... 는 측면에서 비슷해서 말이다.

 

  이 영화를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지하에 있는 '씨네큐브' 에서 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앞에서 시위가 벌어져서 어수선했다. -.-;;

  영화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평소 못 보던 특이한 모습의 오토바이를 봤다. (유심히 보니, 안장 앞부분에 BMW 로고가 커다랗게 박혀있는...^^;;)  '저렇게 생긴 오토바이도 다 있네...' 하고 신기해하며 눈길은 오토바이에 고정시키고, 발은 계속 계단쪽으로 움직였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사복경찰들이 내 앞을 가로막아 깜짝 놀랬다. (아니, 이 양반들이..!  나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다리뼈라도 부러졌으면 어쩌려고?)  건물 뒤편으로 돌아 후문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씨네큐브를 몇 번이나 이용했지만 후문 통해 출입하기는 또 처음이었다.